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74화 (174/200)

< 도대체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이제 끝이다!!!”

9턴을 돌아 백스트레치에 들어선 해밀턴. 레이스 최후반에서야 본격적인 어택을 시도한 건, 상대에게 일격을 먹여 다시 뒤집고 들어올 틈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DRS ZONE]

전방 우측으로 DRS 표지판이 보였고, 스티어링 우측 아래 DRS 버튼 위 손가락에 신경을 집중했다. 액티베이션 상태를 기다리며 앞차의 슬립 스트림을 노리던 그때,

“...!!!”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페라리 카가 제트 전투기처럼 폭발적인 가속을 내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앗!!!

다른 엔진을 장착한 것도 아닌데 마치 부스터를 쓴 것 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해밀턴도 순간적으로 DRS 버튼에서 손가락을 뗄 수밖에 없었다.

참가 팀마다 엔진 출력이 다르다곤 해도, 방금 전과 같은 순간적인 속도 상승은 불가능한 일. 게다가 직선 주로에서 서준하의 한계 속도를 알고 있는 해밀턴으로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하지만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스트롤 XXX!!!”

해밀턴의 우측 시야로 등장하는 또 다른 포뮬러카 한 대. 백마커였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훼에에에에엥.

갖고 있는 모든 기술과 정신력을 투입해서 거리를 줄인 코스들. 그리고 코스를 벗어날 듯 말 듯한 라인을 타며 손실을 최대로 줄였던 최종 섹션. 그러나 엔진 파워가 완전히 개방되는 직선 코스에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서준하! 서준하가 스트롤의 슬립 스트림을 타고 백스트레치를 빠져나갑니다!!!”

F1 규정상 선두 차량은 DRS를 사용할 수 없지만, DRS 구간에서 만약 선두가 백마커와 1초 간격 내에 있다면 사용 가능하다.

“해밀턴이 기회를 다 잡았었는데요! 서준하가 백마커를 제대로 이용하는군요...!!!”

백스트레치 등장과 동시에 백마커를 발견한 서준하. 스트롤의 차량 쪽으로 살짝 진로를 바꾼 다음 DRS를 열어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스트롤의 앞으로 튀어나오는 서준하! 선두 자릴 지켜냅니다!!!”

“다시 격차는 1.8초로 늘어납니다! 서준하가 이번 백스트레치에서 1초 가까이 이득을 봤군요!”

백마커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겠다는 판단력과 곧바로 진로를 바꿔 슬립에 들어가는 놀라운 순발력. 모두가 해밀턴의 추월을 예상했던 순간이 빗나가자, 객석에서 감탄 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 이제 두 선수 앞으로 백마커가 너무 많은 백마커들이 보입니다.이런 상황이면 해밀턴이 또 다시 기회를 만들어낼지는...”

순위권 차량에게 스트레치를 달리는 백마커는 종종 부스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경쟁자다. 의도치 않게 트래픽을 만들어 두 선수의 앞길을 방해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해밀턴이 훨씬 불리한 건 사실입니다. 적어도 서준하보다는 자신의 앞으로 차량 한 대가 더 달리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백마커들이 만드는 더티 에어(Dirty Air)는 코스 돌파는 물론, 추월 시도를 훨씬 어렵게 만든다. 해밀턴의 경우, 선두 차량의 공기 흐름까지 더해져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60랩에서 해밀턴의 한 방이 먹히지 않으면서 힘이 많이 빠진 듯해요!”

“서준하는 이제 두 바퀴! 두 바퀴 남았어요! 서른한 바퀴째 리드! 아직 타이어도 한계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프론트 타이어... 제발 앞으로 두 바퀴만 버텨라...!’

하지만 중계진의 해설과 달리 서준하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왼쪽 프론트 그립이 완전히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며 이미 한계를 드러낸 상황. 할 수 없이 최대한 왼쪽 프론트에 하중이 걸리지 않도록 경주차를 몰아야 했다.

띠링.

“자, 이제 파이널 랩!!!”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고 시작된 파이널 랩. 그의 기록에 서킷은 들썩거렸지만, 서준하는 완주에만 집중했다.

‘점점... 느려진다.’

쓰러져가는 머신을 붙잡아 달리느라 온몸의 힘이 배로 들어간 상태. 중고속 코너를 돌파하는 순간, 이번 레이스 처음으로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

파이널 랩의 어느 순간, 배기음과 서킷의 함성이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쿵쾅쿵쾅쿵쾅.’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전방 시야로 빠르게 다가오던 코너들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릿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는데,

‘...!!!’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자, 거대한 암흑 터널이 서준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생에도, 아니 이번 생 F3 시절에도 본 적 있는 거대 터널. 터널과 마주한 서준하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여길 지나치지 못하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되는 거야!!!’

반드시 그곳을 지나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준하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

터널을 빠져나오자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셨다. 그와 동시에 사라졌던 갤러리의 함성과 포뮬러카의 배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자극들이 서준하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고, 이제 점점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준하야!!! 서준하!!! 멈춰!!! 멈추라고!!!

팀 라디오로 깩깩 소리를 질러대는 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눈앞으로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방호벽이 보였다.

“...!!!”

끼이이이이이이익.

깜짝 놀란 서준하가 본능적으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의 머리를 비틀었다.

“헉... 헉... 헉...”

경주차는 강하게 회전하며 방호벽 앞으로 멈춰섰다. 그리고,

-이제 그만 달려!!! 네가 우승이야!!!

서킷 스텐드에서 쏟아지는 서준하의 이름. 롭의 무전을 들으며 서준하가 상황 파악에 나섰다.

***

“서준하 선수가 계속 달리는 바람에 FIA에서도 66랩이 맞는지 혼란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요.”

레이스가 끝난 열기가 아직도 채 식지 않은 카탈루냐의 피트 레인. 준비된 스테이지 위로 스카이 스포츠의 프레젠터 토니와 테드가 페라리 팀 관계자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도대체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설명 좀 해주시죠, 감독님.”

질문을 던지는 프레젠터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서준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승리를 이변으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파이널 랩이 가까워오면서 서준하 선수의 프론트 서스펜션 얼라이먼트가 틀어지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드라이버는 타이어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남은 몇 바퀴 동안 사력을 다해야 했는데, 아마도 이것이 서준하 선수에게 큰 무리를 줬던 것 같습니다. 결국 파이널 랩 도중에는 몇 번의 블랙아웃(blackout)이 있었던 것 같고요.”

서준하가 겪었던 상황을 설명하는 감독의 표정은 걱정이 가득했던 그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지금 아리바베네의 얼굴에서 레이스 직후 자신을 부둥켜안던 모습이 겹쳐 보였고, 다시 한번 가슴이 뜨거워졌다.

“블랙아웃까지 있었던 상황이란 말이신가요? 그러면... 65랩에서 탄생한 랩 레코드는 어떻게...?!”

“...하하, 이번 시즌은 물론, 여태껏 서준하 선수의 발자취는 항상 그런 믿기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 않겠습니까? 항상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선수라고밖에 말씀드릴 게 없군요.”

파이널 랩 직전, 불안정한 레이싱카로 페스티스트 랩을 만들며, 추격하는 해밀턴에게 마치 포기하라는 듯한 메시지를 던졌던 서준하. 이밖에도 오늘 그는 다른 참가자들과도 큰 격차를 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오늘부로 어느 누구도 서준하 선수의 승리를 이변으로 여기지 않을 것 같군요...”

“흐음, 그렇다면 이제 다음 그랑프리에서도 연승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이번 시즌 6라운드, 확실히 쉬운 곳은 아니죠?”

F1 드라이버들이 제일 정복하고 싶어 하는 곳이자, F1 캘린더 중 가장 어려운 곳으로 손꼽히는 그랑프리.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다음 경기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거죠. 어떤가요, 서준하 선수. 이번에도 자신 있으신가요?”

역대 유명했던 드라이버들조차 쉽게 정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던 곳으로 신인 드라이버의 포디엄 수상 역시 찾아보기 힘든 그랑프리였는데,

“모나코에서 우승해야지만 해당 시즌 월드 챔피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체커기를 받을 겁니다!”

“...!”

F1 최고의 그랑프리를 두고 또 한 번 자신감을 드러내는 서준하. 단순히 시즌 몇 번의 승리로 오만해진 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그 목표를 이룰 기회가 온 거야...’

모나코 GP 우승. 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꿈이자, 그의 우상이 최강자로 군림했던 레이스. 서준하에겐 이번 생 반드시 정복해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

“준하! 여기요! 이쪽이요, 준하!”

포스트 레이스(post-race)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서려는 해밀턴의 옆으로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인 서준하가 보였다.

“...파이널 랩 질주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서준하 선수...”

그랑프리가 끝난 저녁 그날의 주인공은 우승 드라이버였기에 모든 이의 관심이 그에게로 향하는 건 당연했지만, 평소 자신이 느꼈던 취재 열기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이 조금 놀라웠다.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기자들이 원래 그렇지...’

상대가 기회를 잡은 건 VSC 상황 덕분이었다. 운도 레이스의 일부지만, 오늘만큼은 서준하의 우승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결과만 놓고 칭찬을 늘어놓는 언론들의 모습도 해밀턴의 짜증을 키웠다.

그런 해밀턴이 갑작스럽게 인터뷰 중인 서준하에게로 다가섰다.

“마지막 두 바퀴 환상적이었다. 안 다쳐서 다행이네.”

갑작스러운 악수 요청에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서준하는 곧바로 손을 맞잡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준하! 내일 곧바로 모나코로 떠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걸음을 옮기는 해밀턴에게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 하나가 들려왔다.

“이번 시즌 앰버 라운지(Amber Lounge)의 패션쇼에서...”

F1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그랑프리인 만큼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모나코 그랑프리. 그 가운데 F1 공식 에프터 파티 주최 측 앰버 라운지에서 여는 패션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사다. 하지만,

“서준하 선수가 메인 모델로 발탁되셨다고 하는데요. 소감 한 말씀...”

2010년부터 엠버 라운지의 메인 모델은, 패션과 음악 그리고 문화 트렌드 전반을 이끌어온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 소식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엠버 라운지를?’

컨스터럭터 팀은 물론, 드라이버까지 F1의 중심이 바뀐 듯한 분위기. 해밀턴은 처음으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며 루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 도대체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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