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76화 (176/200)

< 신인 시절에도 안 하던 짓을 >

“F1에 관심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구만.”

모나코 그랑프리의 일요일 오전. 본격 레이스 시작 전 몬테카를로 서킷에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중에서도 팬들의 관심을 끄는 건, 단연 유명 셀럽들과 F1 팀들의 만남. 좀처럼 한곳에 모이기 힘든 세계적인 배우와 스포츠 스타들이 피트 레인에 등장했다.

“뭐지, 뭔데 저렇게 갑자기?”

“누가 나온 거 같은데요?”

누군가의 등장으로 환호와 함께 소란스러운 모나코의 피트 레인. 펜스 라인 바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국의 모터스포츠 기자 한하석과 조민철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와, 해밀턴이구나. 역시 인기는 역시 최고네요.”

“아마 지금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이싱 드라이버 아니겠어?”

“할리우드 배우들이 저렇게 줄을 서는 건 또 처음 봐요, 하하.”

패션, 음악, 영화 등 모터스포츠 외 다른 분야의 셀럽들과도 관계를 쌓아온 해밀턴. F1의 슈퍼스타답게 피트 레인을 찾은 많은 VIP 게스트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줄을 서는 게스트들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가 잘 드러났다. 그런데,

“어?!”

“응? 또 뭐지?”

이번에는 패독 엔터런스 주변으로 또 다른 게스트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연출됐다. 덩달아 취재진들의 카메라 앵글도 그리로 향했다.

“...!!!”

“...!!!”

사람들이 모여든 곳의 중심에는 두 사람이 그토록 기다리던 서준하가 서 있었다. 몇몇 셀럽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자, 점점 더 많은 게스트들이 모여들었다.

“이거 재밌구만, 허허.”

한하석은 또 다른 흥미로운 장면을 포착했는데, 해밀턴을 기다리는 셀럽 가운데 몇몇이 황급히 서준하 쪽으로 자릴 옮겼다는 점이었다.

“바, 반응이 너무 달라졌어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들고 있어. 와, 저 사람은 재키 스튜어트잖아...!”

어제 Q2에서 트루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장면과 더불어, 놀랍게도 곧바로 Q3에서 폴포지션을 차지하며 현재 모나코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된 서준하. 그와 초면인 게스트들도 그를 히어로라고 부르며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특히나 해밀턴과 달리 F1의 오랜 레전드 드라이버들이 서준하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야말로 기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저 나이에 지금 상황이 별로 놀랍지도 않나 봐요. 아니, 어떻게 저렇게 여유가 있을 수 있죠? 하키넨 정도가 와서 말 걸면 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 않겠어요?”

“그러게, 오히려 너무 친해 보여서 이상할 정도군...”

한하석도 서준하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관심에 전혀 당황하지 않는 모습. 마치 이를 겪어보고 아는 사람처럼 여유 있는 제스처와 포즈가 인상적이었다. 레이스는 물론, 대외적인 활동에서도 그는 안정적이었다.

“이 정도 반응이면, 그 소문이 진짜일지도 모르겠구만.”

“그게 뭔데요?”

“오늘 레이스가 끝나고 스폰 오너들의 파티에 서준하가 미리 초대받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더군.”

모나코 GP는 F1 안에서도 비즈니스적으로 가장 중요한 그랑프리다. 그랑프리 기간 내내 보트와 호텔에서 온갖 파티가 열리는 것은 기본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도가 높은 건, 참가팀 스폰서들의 모두 모이는 스폰 파티다.

“서준하가 스폰 파티를요?!”

해밀턴과 페텔 같은 챔피언 드라이버도 좀처럼 초대받지 못하는 프라이빗 파티. 아직 기자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서준하의 인기로 봤을 땐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드라이버 아니, 저런 스포츠 선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건지... 진짜 이번 시즌 챔피언만 차지하면, 역대급 슈퍼스타가 탄생하는 건 아닌지...”

“그럴지도 모르지. 어서 빨리 그 순간을 보고 싶구만.”

우승 행진을 이어가는 서준하의 활약에 한국은 이미 그의 이름 세 글자로 떠들썩하다. 오늘 해외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한 한하석의 눈에 이미 그는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었다.

***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모나코 그랑프리 레이스 출발 전 스타팅 그리드에 대기 중인 서준하. 여러 이벤트에 참여와 동시에 레이스 준비에도 소홀하지 않으며 스타트 준비를 마쳤다.

“서준하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덕분에 다시 레이스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타팅 그리드에 대기 중인 선수들 근처로 주최 측 리포터와 함께 중계 카메라가 투입됐다. 어제 사고 이후 다시 레이스에 등장한 사인츠 주니어의 모습에 모나코의 갤러리들이 환호했고, 몇몇 팬들이 서준하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네 그리고, 오늘 복귀전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선수가 있는데요. 이번 시즌 팀 최고의 스타팅 그리드를 만들어내면서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오랜만의 레이스 출전인데 자신 있나요?”

“물리적인 대회 준비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꾸준히 몸을 만들어왔어요. 게다가 09시즌 6번의 그랑프리 우승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이곳 모나코죠. 몬테카를로 서킷 제겐 너무나 익숙한 곳입니다.”

알론소가 F1 시즌 도중 인디 500(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에 출전하면서 대신 맥라렌 콕핏에 오른 09시즌 월드 챔피언 젠슨 버튼. 어제 퀄리파잉에서 5그리드를 차지하며 여전히 톱 드라이버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F1에서 가장 핫한 선수들과 레이스를 할 수 있게 돼서 너무나 기쁩니다. 맥라렌에게 시즌 첫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주도록 하겠습니다.”

버튼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윙미러를 흘겨보는 서준하. 그와 동시에 버튼을 주위로 다섯 명의 쟁쟁한 우승 후보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개소리하지 마.’

오늘 레이스에서 서준하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선수들의 인터뷰까지 거슬릴 정도.

‘이번 생에선 반드시 미스터 모나코를...’

F1에서 가장 어려운 서킷에서 최다 우승을 차지한 아일톤 세나. 그가 역대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모나코에서 최강자로 군림했기 때문. 덕분에 세나의 별명 중 하나가 미스터 모나코다.

“경주차들이 슬슬 포메이션 랩을 시작하는군요.”

전생에도 스파 스페셜리스트. 몬차 스페셜리스트 등 특정 서킷에서 활약하며 특별한 타이틀을 얻었지만, 전생에 서준하가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그랑프리가 바로 이곳. 자신의 우상이 이름을 남긴 서킷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전생에 놓쳤던 타이틀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부와아아아아아앙.

르망 24시, 인디 500과 더불어 세계 3대 레이스로 꼽히는 모나코 그랑프리. 여느 레이스와 달리 포메이션 랩에도 서킷의 긴장감은 굉장했다.

“과연 오늘 레이스를 끝으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포메이션 랩의 느린 속도지만, 좁은 서킷을 줄줄이 빠져나가는 경주차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그렇죠. 2017시즌 F1 레이스카는 더 커졌어요. 때문에 약간의 실수와 계산 착오만으로도 곧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노폭이 가장 좁은 모나코 서킷에서 이번 시즌 무려 20cm나 늘어난 차폭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조금이라도 겁을 먹고 최대한 방호벽에 바짝 붙지 않는다면, 랩 타임이 느려지는 곳이라, 드라이버가 갖는 부담은 엄청나다.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할 한 가지,

“싱가폴 만큼은 아니지만, 차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냉각 효율이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참가 팀들은 엔진 계통의 문제를 주의해야 하죠.”

모나코는 시가지 서킷으로 개활지가 없기 때문에 바람이 들이치는 구간이 적다. 게다가 17시즌 터보차져로 바꾼 이후 엔진룸의 열 발생량이 더 많아졌다. 때문에 그에 따른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분명 엔진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라이트 아웃!!! 2017 모나코 그랑프리를 시작합니다!!!”

이 모든 불안함을 가득 안고 스타트 라인을 떠나는 F1 드라이버들. 그 어느 때보다 위험천만한 모나코 그랑프리가 드디어 시작됐다.

***

“빨라...!!!”

폴 시터 서준하는 깔끔한 스타트를 끊어내며 첫 코너를 돌파했다. 모나코는 폴 시터가 2그리드에 비해 매우 유리한 시가지 서킷이기 때문에, 폴 시터가 무난하게 출발했다는 얘기는 한동안 선두 자리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 이게 무슨...!”

그들의 보기에 페라리 팀 루키의 질주는 모나코를 처음 달리는 신인의 드라이빙이 결코 아니었다. 기대했던 해밀턴의 빠른 스타트가 나오지 못한 반면, 서준하가 계속 리드를 이어가자, 메르세데스 코치진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팀 스태프들이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3랩 스타트! 현재 해밀턴과 선두의 격차가 2초 바깥으로 벌어졌습니다! 해밀턴 계속해서 추격 중! 앞으로 열 바퀴 안에 추월해보겠답니다!”

“뭐? 2초?! 지금까지 못 나왔으면 이젠 더 힘들어진 거야. 원래 전략대로 격차 유지하라고 해!”

모나코는 스타트와 초반 몇 바퀴 실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도로의 구성상 다른 어떤 F1 경주보다 앞차를 추월하기가 어려운 서킷이다.

지난 20년 동안 레이스 당 추월 횟수는 평균 12회. 추월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상하이 그랑프리가 52회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실로 압도적인 수치.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는 스타트 이후 단 세 바퀴 동안만 선두 추월을 노려보기로 했고, 이후에도 추월 시도는 분명한 기회가 왔을 때만 하기로 해밀턴과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다, 다시 붙습니다...! 로이스가 다시 페이스를 올리고 있습니다...”

추월 시도를 멈추라는 엔지니어들의 오더에도 해밀턴이 계속 따라붙자, 분노가 치밀어 오른 테오가 직접 무전을 날렸다.

“로이스! 지금 뭐하는 거야! 팀 오더를 안 따르겠다는 거야?!”

5랩에서 2.5초 정도를 유지하던 선두와 해밀턴의 격차가 새로운 랩을 시작하며 갑작스럽게 3초 이상 떨어지고 말았다.

“붙으면 오히려 우리 손해라고, 로이스! 제발 차분히 기다려!!”

좁은 시가지 서킷 특성상 앞차의 더티 에어는 극심하다. 해밀턴이 2초 이내로 근접하자, 더티 에어의 영향으로 해밀턴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무리한 추월 시도로 경주차와 드라이버에게 부담은 부담대로 떠안으면서 결과적으론 손해를 보고 말았다.

‘신인 시절에도 안 하던 짓을...!’

팀 오더를 무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 시작부터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해밀턴의 모습은 의외였다.

“이런 XX! 결국엔 그때를 노리는 수밖에...”

모나코에서 추월은 계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테오에겐 선두 자릴 뺏을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모나코가 처음인 네가 오래 버티긴 힘들 거다, 서준하!’

모나코에서 추월은 쉽게 일어나지 않지만, 순위 변동은 일어난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피트 스탑.

-여기는 컨트롤 라인! 로이스, 우린 계획대로 롱 스틴트로 간다...!

무언가 결심한 테오가 로이스에게 직접 무전을 날리며 전략 설명에 들어갔다.

< 신인 시절에도 안 하던 짓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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