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80화 (180/200)

< 저 친구도 한 번 테스팅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F1의 고향, 실버스톤에서 펼쳐지는 영국 그랑프리는 종주국답게 화려한 사전 행사와 함께 개막됐다.

부와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앙.

영국 런던 코번트 가든의 트라팔가 광장. 화이틀홀 궁전에서부터 속도를 높여 달려온 F1 레이싱카들이 타이어 스키드음을 내며 광장을 돌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RS01이다!!!”

1970년대 르노 F1 팀의 레전드 차량부터 이번 시즌 레이싱카까지. 서로 다른 시대를 풍미했던 경주차들이 런던 팬들 앞에서 쇼런을 선보였다.

“진작 할 걸 그랬습니다. 반응이 괜찮은데요?”

“음, 그래. 후반기에도 적극적으로 추진해보게나.”

FOM에서 주관한 이번 F1 라이브 런던 행사. 쇼런은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체이스 회장은 크게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팬들의 반응에 기뻐하던 션 사장이 그런 회장의 표정을 포착해 물었다.

“이 트라팔가에선 말이야...”

회장이 말을 이으려던 순간, 행렬의 가장 마지막 경주차가 광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

“...!!!”

원형 광장을 수차례 뱅글뱅글 돌며 도넛을 그리는 페라리카. 앞선 스무 대의 차량이 똑같은 패턴으로 한 바퀴 돌아 광장을 타이어와 빠져나간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는데,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런 걸 원했다고!”

“역시...!”

드리프트 레이싱에서나 볼법한 퍼포먼스를 F1 경주차로 선보인 드라이버는 바로, 서준하. 시원하고 짜릿한 퍼포먼스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바, 방향을 바꾼다고...?!”

이어지는 장면에 FOM 관계자들은 물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바퀴 턴도 아슬아슬한 좁은 원형 공간에서 페라리카는 자유자재로 움직였고, 한 방향으로 턴을 하던 경주차가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도넛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게 지금...!!”

“저러다 부딪히겠어... 머, 멈추라고 할까요?!”

한 바퀴 턴에도 방호벽에 부딪힐까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던 다른 선수들의 턴과는 다른 움직임. 회장의 반응에 놀란 션 사장이 운영 스태프들에게 손짓하려는데,

“둬! 둬!”

“...”

“이거 무슨 츠치야의 턴을 보는 것 같구만...!”

전설적인 모터스포츠 선수이자 드리프트 킹으로 알려진 일본인 드라이버, 츠치야 케이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8’자형 도넛 턴이 회장의 머릿속에서 오버랩 됐다.

부와아아아아아앙.

내일모레 곧바로 시작되는 그랑프리 공식 일정. 행사에 참가한 선수 대부분이 크게 무리하지 않았지만, 서준하는 달랐다.

이런 팬 베이스 행사만이 팬들의 성원에 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고, 쇼런을 보여준다는 것보단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참가했다.

“우후...!”

행사장 주변으로 즐거워하는 팬들의 얼굴이 보였다. 턴에 성공하며 느꼈던 성취감보다 지금 팬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짜릿했다.

“대박! 대박! 언제 이런 걸 연습했대?”

“음, 포뮬러 입문할 때쯤? 그나저나 해밀턴이 안 보이네요.”

쇼런을 마치고 서준하가 대기 장소에 도착하자, 한서윤이 기쁜 얼굴로 맞이했다.

오늘 행사엔 모든 드라이버가 참여하기로 예정됐지만, 메르세드스 팀에선 보타스의 차량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말 레이스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불참 의사를 밝혔다는데?”

“주말 레이스 준비?”

“응, 레이스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대. 이거, 영국 팬들 실망이 크겠어.”

이번 그랑프리는 여름휴가 전 마지막 레이스로, 사실상 시즌 후반기 시작 전의 분위기를 끌어올 수 있는 기회. 특히나 해밀턴은 이번 영국 GP에 아주 중요한 타이틀이 걸렸기 때문에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듯 보였다.

‘하루 쉰다고 달라질 게 있나...?’

한서윤도 땀에 젖은 서준하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서준하는 그저 문제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

“실버스톤에서 네 주행은 거의 흠 잡을 데가 없어. 근데 딱 한 군데, 마곳(Maggots, 실버스톤의 2턴) 여기서 진입 속도가 290km/h 밑으로 떨어지는데 이것만 주의해.”

실버스톤 서킷에 위치한 메르세데스 팀의 게러지. 해밀턴과 레이스 엔지니어 보노가 지난 몇 년간의 주행 데이터를 보며 분석에 들어갔다.

“흐음...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16시즌은 특히 차가 무거워서 그랬어.”

예전부터 영국 드라이버의 강세가 돋보였던 실버스톤. 이곳에서 주목할 만한 드라이버는 단연 해밀턴이다.

지난 세 차례 영국 그랑프리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던 그가 만약 이번 홈 그랑프리 4연승에 성공한다면, 52년 전 짐 클라크가 세웠던 불멸의 기록(영국 GP 5년 연속 우승)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여기서 분위기를 뒤집어 놔야 해. 이번 시즌도 여름 휴가 편하게 다녀오고 싶다, 로이스.”

“그래, 휘청일 때 꺾어 버려야지. 안 그럼 또 기어오르니까.”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최근 상승세를 타며 페텔을 제치고, WDC 종합 2위에 오른 해밀턴. 한 달간의 행복한 여름 휴가를 위해서는 물론, 시즌 후반기 순조로운 출발을 위해선 이번 레이스 반드시 잡아야 한다. 게다가 홈팬들의 기대와 엄청난 타이틀까지 걸린 이번 GP 우승에 대한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뭔데 또 이렇게 난리야?”

분석을 마치고 팀 하우스를 빠져나가는 두 사람. 휴대폰 영상을 들여다보던 보노가 다소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조회수가 높을 만하네...”

“뭔데?”

휴대폰 속 화제의 주인공은 트라팔가 광장의 서준하. 수많은 팬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쇼런 장면에 이어, 레전드 드라이버들과 만담을 나누는 모습이 SNS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원래 신인 땐 저런 걸 하는 거야. 나도 도넛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지.”

“흐, 맞아. 야 근데 이건 그냥 도넛이 아닌데? 이것 봐, 오, 손목 안 다쳤으려나.”

보노가 영상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여주자, 해밀턴이 휴대폰을 가로챘다.

“쯧쯧...”

F1 팬들을 향한 진정한 서비스는 레이스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해밀턴. 쇼런에서 드리프팅을 하는 서준하의 모습을 한심하단 듯 바라봤다.

“로이스...! 잠시만요, 로이스.”

팀 하우스를 빠져나가는 보노와 해밀턴을 향해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 오전부터 종일 해밀턴을 기다렸던 취재팀이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서며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GP 준비로 오늘 F1 라이브 런던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신 걸로 아는데요. 혹시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기자의 질문에 곤란한 표정을 짓는 해밀턴. 이를 포착한 보노가 곧바로 답변을 꺼냈다.

“지금 말해드리긴 곤란하고요. 레이스 당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네에. 그렇다면 F1 라이브 이벤트에 관해 간단히 코멘트 한번 해주시죠. 오늘 런던 쇼런 드리프팅이 굉장히 화제인데요. 혹시 보셨나요?”

자신도 당연히 영상을 봤을 거라고 여기는 질문에 해밀턴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못 봤습니다, 그딴 거.”

불쾌함을 드러내며 이내 자리를 뜨는 해밀턴. 그 모습에 가장 놀란 사람은 기자도 아닌, 그의 절친 보노였다.

“로이스...?”

수년간 다른 경쟁자들의 활약에도 좀처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해밀턴. 말도 없이 사라진 챔피언 드라이버의 모습에 보노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

“이왕이면 내일 레이스 우승하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만났으면 좋을 텐데, 흐음...”

“지금 기록으론 무난히 우승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만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고 하더군요.”

영국 GP의 퀄리파잉이 시작된 실버스톤 서킷. 미국을 대표하는 모터 레이싱 대회, 인디카 시리즈(100년 넘게 진행된 역사를 이어온 인디 500 레이스 포함)의 출전 팀 안드레티 오토스포츠의 관계자들이 경주차들의 질주를 바라봤다.

“일요일 미팅은 문제없이 진행되는 거죠, 에드워드?”

팀 대표 안드레티와 에드워드 감독은 18시즌 인디 500 레이스에 출전할 드라이버를 물색 중이었다.

“네, 대표님. 오늘 오전에 에이전시와 다시 한번 통화했습니다. 차질 없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이들의 미팅 상대는 최정상 F1 드라이버 로이스 해밀턴. 안드레티 팀은 이번 시즌 알론소를 인디 500에 출전시킨 경험이 있었고, 지난 몇 년간 F1 출신 드라이버들의 인디 500 출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해밀턴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됐다.

“확실히 해밀턴은 고속 코너에서도 스피드가 훨씬 빨라. 오벌 코스(테크니컬 코스에 비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타원형 코스)도 금방 적응하겠어. 이거 잘만 되면 좋겠는데 말이야, 허허.”

“해밀턴도 알론소의 인디 500 활약도 들었을 겁니다. 에이전시 쪽의 답변도 어느 정도 긍정적이었으니 너무 걱정마시죠, 대표님.”

인디500은 4km 길이의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 웨이를 약 200랩 가량 소화하는, F1보다 평균 속도가 60~70km/h나 빠른 330km/h의 질주형 레이스다.

해밀턴의 빠른 플라잉 랩 질주에 팀 대표의 입에선 감탄이 쏟아져 나왔고, 그를 미국 레이스에 초대하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역시 폴 기록이 나오는군요.”

“오?”

전광판에 표기된 해밀턴의 Q3 플라잉 랩 기록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던 안드레티 대표. 이번엔 고속 슬라럼을 빠져나가는 또 다른 경주차의 배기음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진입 속도가 290km/h은 가뿐히 넘겠구만...!”

관계자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페라리 팀의 서준하였다.

“이번 시즌 후반까지 안정감 있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저 친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모터스포츠 중의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3대 대회, 르망24시, 인디500 그리고 포뮬러 1의 모나코 그랑프리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일컫는 트리플 크라운. 안드레치가 해밀턴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그가 16시즌 모나코 GP 우승자였기 때문이었다.

“좋지. 근데 저런 신인이 인디카에 관심이나 있겠어? 아직 F1을 한 시즌을 안 치렀는데 말이야.”

“음,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인디카 팀이 영입을 제안하는 F1 선수들은 이미 오랜 커리어와 함께 챔피언 이력이 있는 선수들. 하지만 서준하를 바라보는 감독의 눈빛은 어딘가 달라 보였는데,

“이번 모나코 우승으로 분명 트리플 크라운에 관심이 생겼을 테니까요.”

반세기가 넘는 모터스포츠의 역사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오직 한 명뿐. 모터레이싱 드라이버에겐 가장 영예로운 업적에 한발 다가서게 된 서준하도 인디 500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저 친구도 한 번 테스팅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표님?”

인디카 시리즈만 수십 년 겪은 안드레티 팀이 F1의 초신성에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

< 저 친구도 한 번 테스팅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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