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81화 (181/200)

< 포뮬러 레이스, 그 이상을 보여달라 >

“행어 스트레이트를 빠져나오는 페텔! 7턴 스토에서 진입과 동시에 감속! 엄청난 G 포스를 이겨내며 이제 내리막 구간에 들어갔습니다!”

11차전 Q3에서 일찍이 등장한 해밀턴의 트랙 레코드. 페텔 역시 안정적인 코스 돌파를 보여주며 중계진의 기대를 샀다.

“섹터 1까지 완벽했던 페텔의 플라잉 랩! 지금처럼 나머지 절반만 잘 타준다면, 해밀턴의 폴 기록과 겨뤄볼 만하겠어요...!”

내리막을 타고 내려오는 페텔의 앞으로 이제 저속 시케인이 등장했다.

“아! 흔들려요! 페텔도 흔들립니다! 8턴 진입에서 페텔의 경주차가 라인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Q3 진출자 대다수가 여기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어지는 10턴에서 다시 긴 가속 구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시케인에서 흔들리지 말고 정확한 라인을 따르지 않으면 좋은 기록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해밀턴을 제외한 모든 드라이버들이 고속 내리막 구간 이후 저속 시케인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해밀턴과 비슷한 랩타임으로 달리던 페텔도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는데,

“보시죠! 섹터 2 후반부에서 제대로 속도를 살려내지 못하니까 지금 섹터 3도 돌파가 늦어지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한두 차례 미스를 낼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절대 해밀턴의 폴기록을 잡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 까다로운 실버스톤에서 폴포지션을 차지하려면 정말 완벽하게 머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거죠...!”

현재 잠정 2위를 기록한 보타스의 랩타임보다 1초 이상 빠른 기록을 세운 해밀턴. 다른 경쟁자들의 플라잉 랩이 진행될수록 해밀턴의 돌파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텔 피니시! 1분 27초 183의 기록이 나오는군요.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눈여겨볼 또 한 명의 선수가 남았죠?”

캐스터의 말과 동시에 실버스톤의 고속 슬라럼을 빠져나오는 서준하의 경주차가 중계 화면에 등장했다.

“4턴을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서준하의 슬라럼 돌파가 괜찮았던 것 같고요. 5턴에서 컨트롤만 잘해준다면, 랩타임을 앞당길 수 있을 텐데요...!”

슬라럼 구간은 코너마다 조금씩 속도를 떨어트리며 특정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 4.5 G 이상의 G 포스를 견뎌야 한다.

서준하가 F1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있는 코스에 올랐다. 머신 컨트롤이 상당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5턴으로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데,

“와하하! 연석 바깥으로 빠져나갈 듯 말 듯! 경주차의 중심을 잡아내는 서준하!”

“자! 이러면 출발이 좋습니다. 섹터 2, 3에서 안정적으로 타주면 충분히 좋은 기록 기대해볼 수 있겠는데요...!”

조금 전 페텔이 실수했던 섹터 2의 8턴 내리막으로 내려가는 서준하. Q3 마지막 우승 후보의 어택에 실버스톤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아! 서준하 속도를 줄였어요!”

“뭐죠? 굳이 줄일 필요가...”

“아마도...!”

미리 브레이킹을 밟으며 저속 시케인 앞에서 속도를 떨어트리는 모습에 중계진이 의아함을 표했다. 하지만,

“오! 시케인을 빠져나가는 라인이 아주 정확합니다! 속도를 낮춰 진입했으니, 시케인에서 흔들리지 않는 거겠죠!”

“조금 다른 공략이긴 하지만, 이어지는 가속 구간에서 초를 회복하겠다는 생각인 건가요?!”

시케인을 빠져나가며 가속 구간을 달리는 서준하의 개인 주행 영상이 카메라에 잡혔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중계진의 말대로 서준하는 가속 구간 통과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런 공략을 택한 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버스톤에선 머신이 조금도 불안정해서는 안 돼.’

다른 서킷과 달리 실버스톤은 각 섹터마다 고난도 코너가 하나씩 존재하기에 공략법도 달라져야 한다.

‘여기서 잡아주면...!’

불안정한 머신을 휘어잡으며 연속으로 난코스 돌파를 시도하기보단, 처음부터 한 개의 섹터에서 무리하지 않고, 안정감을 유지한 다음, 후반부 랩타임을 단축하는 게 더 낫다.

“확실히 차량이 안정적이니까, 가속이 빠릅니다! 섹터2를 안전하게 지나온 서준하가 이어지는 13, 14턴에서도 정확한 라인을 지켜냅니다!”

이제 스타트 라인까지 남은 코스는 단 두 개.

“15턴까지 잠정 2위와 랩타임이 비슷하거든요! 이제 남은 코스에선 훨씬 과감한 드라이빙이 나와야 해밀턴의 기록과도 겨뤄볼 수 있겠습니다!”

완만하게 꺾인 마지막 코너를 제외하면, 실버스톤 섹터 3의 이름난 헤어핀 러필드가 서준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푼 형태의 헤어핀으로 서준하가 진입을 시작하고,

‘안쪽...! 최대한 안쪽으로...!’

180도 이상 선회하며 섬세하게 페달링을 가져가던 서준하가 엄청난 중력 가속도를 이겨내며 코너 안쪽을 공략했다.

“마치 자석처럼 경주차가 트랙 안쪽에 착 달라붙어 흔들리지 않습니다.”

머신은 강한 브레이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레코드 라인을 정확히 지켜내며 까다로운 속도 조절에 성공했다.

“아! 탈출 속도 보시죠! 다른 선수들보다 15km/h 가까이 빠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선수들은 물론, 해밀턴의 폴 랩과도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인데,

‘우어어어어어어!!!’

탈출과 동시에 찍어 누른 스로틀. 마지막 코너를 스치고 지나갈 때쯤 경주차의 속도는 이미 270km/h로 평균보다 훨씬 빨랐다.

“스타트 라인으로 들어오는 서준하...!”

“해밀턴과 막상막하! 과연 오늘 기록은...!”

일찍이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 해밀턴의 폴 기록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바로,

“실버스톤은 이렇게 타는 거야!!!”

전생의 데뷔 이후 유일하게 2연속 폴투피니시를 달성했던 곳이 영국. 서준하에게도 실버스톤은 홈그라운드였다.

띠링.

“와하하!!! 1분 26초 231!!! 새로운 트랙 레코드의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슈퍼 스크린에 등장한 레코드 알람. Q3 랭킹의 맨 위로 서준하의 이름과 함께 트랙 레코드가 표기됐다.

***

퀄리파잉이 끝난 저녁, 미슐렝 쓰리 스타 쉐프의 요리가 준비된 실버스톤의 호텔. F1의 전설적인 월드 챔피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레전드 유나이트(Legends Unite) 갈라 디너가 진행됐다.

“로이스의 기록도 믿기 힘든데, 무려 0.37초나 빨리 들어왔더군요.”

1970년대를 호령했던 레전드 드라이버들 가운데, 아직도 F1 안팎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재키 스튜어트와 에머슨 피티발디가 오늘 예선 결과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의외네요. 최근 몇 년 동안 해밀턴 말고 실버스톤에서 이렇게 잘 타는 드라이버를 못 봤는데... 흠, 해밀턴 이 친구 머리 좀 아프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덕분에 F1이 더 흥미로워지지 않았나. 페텔 하나만으론 부족했거든, 하하.”

엄청난 성적과 레이싱 안전에 끼친 영향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은 스튜어트 경. 트레이드 마크인 롤렉스 시계를 한 번 매만지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솔직히 자네가 있어서 F1에 더 빠졌던 거 같아. 그때만큼 레이싱이 재밌던 적이 없었지. 안 그렇나, 에머슨?”

70년대 초반 최고의 F1 드라이버로 군림했던 스튜어트의 자릴 위협했던 선수가 바로 지금 그의 옆에 있는 에머슨이라는 신인이었다. 추억에 잠긴 스튜어트 경이 에머슨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튼 이러다 해밀턴이 갑자기 추락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내일 타이틀 달성이 쉬워 보이진 않는데...”

평소 해밀턴과 친분이 있는 에머슨으로선 지금 상황이 걱정스러웠다. 영국 GP 4연속 폴포지션 획득 실패와 이번 시즌 단 두 번뿐인 우승으로 봤을 때, 그 성적이 예전과 같진 않았으니까.

“내가 시즌 초반에 해밀턴이 좀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잖는가.”

“...성공을 지속해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계속 성공하다 보면, 그 일이 쉬워 보이기 마련이지. 하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잘못되기라도 하면, 열심히 해도 잘 안 풀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태가 지속되는 삶을 살게 되지...”

지난해 해밀턴 젯셋 라이프(Jet-set life, 전용 제트기나 호화 유람선을 타고 세계 여행을 다니는 라이프 스타일)을 비난했던 적이 있었던 스튜어트 경. 자신의 경험상, 이번 시즌의 결과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루키의 활약이 단순히 반짝하고 끝날 것 같지가 않아.”

“그렇죠, 해밀턴이 강적을 만났어요.”

“오, 나이스 타이밍. 마침 저기 오는구만.”

무언가 얘기를 꺼내려던 스튜어트가 말을 멈추고, 디너쇼 현장을 바라봤다.

“누구죠...?”

입장하는 F1 드라이버 한 명을 향해 손을 흔드는 스튜어트 경. 그 모습을 발견한 선수가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게 준하 군. 오늘 퀄리파잉 잘 봤네.”

실제 만남은 초면인 두 사람.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서준하가 테이블에 앉았다.

“섹터3를 노리겠단 전략이 딱 맞아 떨어졌더구만, 하하.”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퀄리파잉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주위를 살피는 스튜어트. 그리고,

“크흠... 잠깐 가까이 와보게.”

미소 짓던 스튜어트 경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일 레이스 말이야...”

이번 시즌 서준하를 눈여겨봤던 재키 스튜어트. 자신의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긴밀한 대화를 시작했다.

***

부와아아아아앙.

17시즌 전반기 최종전 영국 그랑프리. 포메이션 랩이 시작되고, 서준하의 페라리카가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관객들의 환호 사이로 주변 경주차들의 롤링 스키드음이 서준하의 귓가에 들려왔다.

-준하, 롤링. 우리도 롤링을 할 필요가 있어

US보다 다소 컴파운드가 단단한 SS타이어는 포메이션에서 적당한 롤링이 필요하다. 서준하가 롤링 없이 정적으로 움직이자, 당황한 롭이 무전을 날렸다.

“...”

서준하는 그리드에 오르며 스탠드 근처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스튜어트 경을 발견했고,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존경을 잃지 마라...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상대와 팀, 그리고 F1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말들. 전생에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와 똑같은 말을 스튜어트로부터 들었다.

원래 모든 선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심 어린 말투와 표정은 전생과 같았다.

“포메이션 랩을 마치고 멈춰선 선수들! 자, 이제 하나둘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리드 위엔 긴장감이 엄청났지만, 서준하는 두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난 저녁 스튜어트의 말들이 오늘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타오르게 만들었으니까.

‘포뮬러 레이스, 그 이상을 보여달라...’

단순한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스튜어트의 말. 새로운 역사의 탄생을 갈망하는 레전드 드라이버의 눈빛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2017 전반기 최종전 그랑프리가 시작됐습니다!!!”

스타트와 동시에 분명해진 하나의 목표.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그리드를 빠져나갔다.

< 포뮬러 레이스, 그 이상을 보여달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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