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93화 (193/200)

< IT’S TIME >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COTA의 홈스트레이트를 거쳐 1턴을 돌아나간 세이프티 카. 슈퍼카 가운데서도 플래그쉽 모델인 메르세데스-AMG GT가 핫랩을 시작했다.

“This is fxxxing crazy!!!”

입술은 메마르고, 얼굴을 허옇게 질린 조수석의 탑승자. 고속 슬라럼 돌파가 시작되자, 출발 전 자신감 넘쳤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브로...!”

“뭐?! 살살...! 소, 속도 좀 줄여! 지금 너무 빠르잖아!”

우사인 볼트, 두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남자와 네 바퀴의 스피드 킹 서준하의 만남.

17라운드 본격 레이스 시작 전, 볼트가 서준하가 모는 SC 차량에 올라 드라이빙 체험을 하는 이색 이벤트가 열렸다.

“너희 부모님도 너 이거 하시는 거 알아? 이거 진짜 미친 거 같은데?!”

“몇 번 타봤다면서, 너무 무서워하는데?”

“...지금은 드라이버가 다르잖아!!!”

4000cc V8 터보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를 가지고 저속으로 달리는 건 예의가 아니다. 레이스 직전 몸을 풀기도 할 겸 서준하는 시작부터 타이트하게 코스를 돌파했다.

750마력의 F1 머신보단 못하지만, 최고 출력이 476마력에 달할 정도로 빠른 돌파가 가능한 게 세이프티카다.

“야야야!!! 으아아아!!!”

“아직 한 바퀴도 다 안 돌았다고, 브로!”

백스트레이트를 끝으로 급격하게 꺾인 헤어핀에 들어서자, 3G 이상의 엄청난 G포스가 두 사람을 덮쳤다.

볼트는 실신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지만, 운전자는 껌을 씹으며 부착된 카메라에 브이를 그리는 여유를 보였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은데?”

“오우, 스트레이트 끝나고부터 엄청 머리 아프네. 여긴 좀 버틸 만해. 우어...”

“버틸 만해?”

주최 측이 요청한 핫랩은 총 세 바퀴. 볼트도 어느 정도 적응한 듯, 두 번째 핫랩이 끝나면서 비명이 급격히 줄었다.

“자, 이제 파이널 랩. 좀 더 재밌게 가볼까?”

“재밌게? 이것보다 더 빠르게 달리겠다는 거야?! 아냐 지금 충분히 재밌다고, 브로!”

오늘 주어진 핫 랩은 총 세 바퀴. 볼트의 반응을 최대한 끌어내라는 주최 측의 말이 서준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 뭐 하는 거야. 뭘 또 하려는 거야...!”

파이널 랩을 시작한 SC 차량. 서준하의 손이 기어박스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TCS, Traction Control System) OFF]

트랙션 컨트롤은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적절히 엔진 출력을 제한하거나,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조절해 타이어 그립을 잡아주는 장비다. 일종의 자동 제어 시스템이다.

“이걸 꺼야, 그나마 레이싱을 맛볼 수 있는 거야.”

도통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볼트가 불안한 눈으로 서준하를 쳐다봤다.

“뭐?!”

“아까 두 바퀴 주행은 잊어. 그건 내 주행이 아니니까...!”

F1 경주차는 순종 말이다. TCS와 같은 전자제어장치 따위의 개입 없이 오직 드라이버의 손과 발로 컨트롤 된다.

TCS OFF로 전자 장치의 불필요한 개입이 줄었다. 마치 얼음판을 달리듯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SC카. 그리고,

“Holy Fxxxing Hell!!!”

끼이이이이이익.

직선 구간을 빠져나온 차량이 드리프팅을 하며 턴을 시작했다. 귀가 떨어질 듯한 스키드음과 함께 볼트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미, 미친...!!!”

파이널 핫 랩을 도는 동안 볼트의 비명은 계속됐고,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올 때쯤 그는 거의 떡(?)이 되고 말았다.

“...!”

볼트는 감탄을 내뱉었다. F1 선수들이 방금과 같은 주행을 50바퀴 이상 한다는 사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지금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코너를 빠져나가는 운전자의 여유였다.

“와씨, 얘가 나 죽이려고 했어!! 오우...!”

스타트 라인에 도착하자, 행사 스태프들에게 웃으며 하소연을 늘어놓는 볼트. 그 모습을 본 스태프 한 명이 손을 흔들며 안녕의 인사를 보냈다.

“응...?”

갑작스러운 인사에 볼트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슈트...!”

전 세계로 라이브 중계된 두 스타의 핫랩.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원 모어 랩 오더가 내려졌다.

***

“레이디즈 앤 젠틀맨, 위 얼 라이브(we are live)! 오늘 레이스야말로 이번 시즌 최고의 메인 이벤트...!”

COTA 서킷 전역으로 울려 퍼지는 화끈하고 허스키한 보이스. 레이스 출발 전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에 갤러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너무나 기다려왔던 순간이 왔습니다...!”

스타트 라인 근처 마이크를 들고 나타난 UFC의 옥타곤 대표 아나운서 브루스 버퍼. 얼굴이 시뻘게진 브루스가 스타팅 그리드로 전 관중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I~IT’S TIME...!!!”

모두가 아는 캐치 프라이즈 ‘이츠 타임’과 함께 그가 가볍게 점프를 했다.

“20번 그리드, 맥라렌의 무서운 신인 스토펠. 19번 그리드 토로 로쏘의 하틀리...”

이어서 최후미 그리드에서부터 한 명씩 선수 소개가 시작되고,

“...다섯 번째 그리드엔 호주 출신의 명 드라이버. 긍정왕, 허니 뱃저 레드불의 리카도...! 그리고...”

숨이 찼는지 아니면 멈춰야 할 이유를 찾았는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빠르게 대본을 읽어온 브루스가 말을 멈췄다.

“17시즌 11승의 믿을 수 없는 레코드! 사우스 코리아, 써울 출신의...”

마치 챔피언을 소개하듯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목소리. 확실히 이번 시즌 F1 팬들과 주최 측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선수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

“이번 시즌 월드 챔피언을 눈앞에 두고 있는 서. 준. 하아아아!!!”

드라이버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COTA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자, 그리고 이번 대회를 응원하기 위해 참석한 또 다른 슈퍼스타. Speed King with two leg! 우~사인 볼트!!!”

FOM이 준비한 또 하나의 이벤트. 녹색기를 들고 등장한 볼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팅 그리드에 나타났다.

“헤이 브로, 아까처럼 달려줘~”

스타트 깃발을 흔들기 위해 20번 그리드로 걸음을 옮기는 볼트. 서준하의 페라리카에 멈춰서는 웃음과 함께 굿 사인을 보냈다.

띠띠띠...

볼트가 승리의 포즈를 취하자 출발 신호에 불이 들어왔다.

12만 관중으로 가득찬 COTA 전역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라이트 아웃!!!”

우승을 향한 갈망을 품은 경주차들이 스타트 라인을 빠져나갔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회전 헤어핀에 도달하기 전, 기다란 오르막으로 경주차들이 줄지어 오르기 시작했다.

스무 대의 경주차가 거대한 하나의 기차로 보이는 듯한 진풍경. 발사대로 향하는 로켓들처럼 COTA에서만 볼 수 있는 경주차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COTA의 홀샷! 경주차들이 첫 코너에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경주차들이 이어지는 내리막을 향해 미끄러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

코너 안쪽으로 몰리기 시작하며 부딪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주차들. 어느 하나라도 과속했다간 대참사가 벌어지기 딱 좋아 보였는데,

“막누스! 속도를 높이는 막누스!”

트랙 폭이 굉장히 넓고, 코너를 받쳐주고 있는 뱅크각을 가진 첫 코너. 일정한 속도로만 달린다면 통과하는 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아, 뒤에서 오콘도 치고 나오는데요...!”

서준하의 뒤로 두 명의 욕심 많은 루키 드라이버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

-부딪혀! 부딪힌다고!!

“...!!!”

자신의 옆으로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서준하의 차량을 막누스가 확인했다.

끼이이익.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막누스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찌르듯이 들어오려 하자, 서준하는 오히려 피하지 않고, 오히려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런 XXX! 돌았나!”

앞차의 저돌적인 움직임에 급브레이킹을 한 막누스. 그의 경주차가 주춤하며 한 템포 물러났다.

-오콘, 저 새낀 왜 갑자기...!

덩달아 뒤따르던 오콘의 차량도 속도가 줄었고, 서준하의 뒤로 다시 행렬이 시작됐다.

-물러나선 안 돼! 계속 시도해!

이제는 막누스도 잘 안다. 서준하를 넘어서기 위해선 초반 몇 바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춤했을 뿐이다. 슬라럼 구간에 들어온 막누스가 좌우 연석을 적극적으로 넘어가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이후 저속 헤어핀에서도 서준하가 전혀 공간을 내주지 않자, 다급해진 막누스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훼에에에에에엥.

직선 주로에 오르자, 페라리카와 함께 또 다른 레드불 경주차의 질주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무언가 떠오른 듯한 막누스. 앞차에 대한 압박보다 리카도의 주행 라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격차가 벌어졌어! 지금 벌어지면 또 따라잡기 힘들다고!

백스트레이트 이후 페라리카는 본격적으로 페이스를 올렸다. 막누스의 압박이 끊기자 팀 라디오가 어택하라는 오더로 들끓었다.

“알아, XX! 좀 닥쳐!”

흥분 목소리로 되받아치는 막누스. 시즌 초반 포디엄에 오르지 못하고 부진한 건, 엔지니어들의 푸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떠올린 전략에 집중하며 앞차들의 주행 라인에 주목했다. 그리고,

“지금이야!!!”

막누스가 기다린 건 지금, 서준하의 추월 시도가 리카도에게 막히는 타이밍이었다.

끼이이이이익.

18턴 인코스를 파고든 서준하의 앞을 리카도가 가로막았다.

-...!!!

두 선수의 바깥으로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훼에에에에에엥.

블로킹에 서준하는 감속했고, 리카도는 달려드는 경주차가 팀 메이트인 걸 확인하며 곧바로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덕분에 당분간 뒤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후후! 봤지! 봤냐고?! XX! 죽여주지?!”

-잘했다...! 한 방에 3위! 계속 치고 올라가!!!

단숨에 순위권으로 도약하며 막누스의 자신감은 넘쳐흘렀고, 이제 그의 앞으로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의 차량이 보였다.

‘니들도 곧...!’

메르세데스 팀의 유일한 영입 실패작으로 불리는 보타스와 은퇴 시기를 예측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퇴물 소리를 듣는 페텔.

막누스에겐 이 최고의 팀 소속 드라이버들은 더 이상 버겁게 다가오지 않았다.

-보타스가 언더스티어가 났어!

“봤다...!”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또다시 주어진 기회에 앞차의 빈 공간을 향해 달려드는데,

훼에에에에에에에엥.

-이제 16턴에서 연석 안으로 바짝... 엇...?!

고속 슬라럼을 빠르게 돌파한 후 추월 시도를 노려볼 상상에 잠겼던 막누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갑작스런 레이싱카의 기척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뒤차와의 배틀에서 스핀하고만 리카도! 그리고 서준하가 막누스를 향해 달려듭니다!”

7턴으로 다가서며 노즈를 밀어 넣는 추격자. 막누스의 우측으로 등장한 건 팀 메이트가 아닌, 페라리카였다.

“또 다시 페라리와 레드불의 휠투휠 배틀!!!”

레이스 초반, 팀 메이트가 서준하를 막아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 IT’S TIM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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