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어 >

“서준하와 막누스가 사이드-바이-사이드로 배틀을 벌입니다!”

스타트 이후 두 번째 랩. DRS는 사용할 수 없지만, 경주차 간의 거리는 가까워 순위 변동이 극심하다.

막누스와 서준하 두 선수뿐만 아니라 서킷 곳곳에서 모든 선수가 치고받기 시작했다.

“아! 막누스와 서준하가 연석 바깥으로 밀려나는군요!”

두 선수의 접전은 얼마나 치열했는지, 슬라럼 구간의 탈출 과정에서 두 드라이버가 모두 트랙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서준하가 막누스를 흔들고 있습니다! 레드불이 버텨낼 수 있을지...!”

“와, 지금 서준하의 움직임이 기가 막합니다!”

8턴에 진입하는 서준하의 페라리카 콕 찝어내는 중계진.

“막누스가 위치상의 유리한 점을 살려서 코스 진입이 빨랐지만, 서준하가 라인 크로스를 잘 활용하면서 탈출 속도를 높였거든요? 이렇게 되면 다음번에는 추월도 가능해 보이는데요...!”

“가까스로 레코드 라인을 지켜내고 있는 막누스! 이제 두 선수가 백스트레이트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서준하의 압박은 거셌다. 7턴 이후 백스트레이트까지의 모든 코너에서 막누스와 부딪힐 뻔한 장면을 수차례 연출했다.

“서준하가 막누스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려 합니다!”

“자, 그러면 막누스는 직전 주로 끝에서 서준하가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갈지, 잘 선택해야 막을 수 있을 텐데요...!”

페라리카의 최고 스피드는 점점 높아졌다. 앞차의 슬립에 들어가자 페라리카가 받는 드래그가 감소했기 때문.

그렇게 서준하가 서서히 막누스를 쪼이기 시작했다.

“아! 왼쪽...!”

직선 주로 끝에 위치한 좌측 코너 12턴 헤어핀. 우측 바깥쪽 라인으로 진입을 시도해야 코스 돌파가 수월하다.

하지만 슬립에 빠져나온 서준하가 좌측으로 나올 듯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아! 페이크 무빙!”

앞차가 좌측으로 진로를 변경하게끔 만들고는 급격하게 스티어링을 비트는 더미 어택.

서준하가 상대를 속이고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나와요! 오른쪽으로 치고 나옵니다!!!”

앞차의 움직임 예측과 거리 계산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 삼박자가 골고루 맞아떨어진 더미 어택에 막누스가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이번 랩 레드불의 경주차 두 대를 가뿐하게 제쳐버린 서준하! 아, 레드불 팬들이 머리를 감싸쥡니다...”

“하지만 아직 괜찮습니다. 막누스도 서준하를 다시 압박하면 되니까요. 다음 섹터에서 충분히 추월 기회가 올 겁니다.”

상대의 페이크에 당했다고 크게 상심할 건 없다. 어차피 레이스 초반이고, 남들보다 험난한 Q3를 거쳐온 서준하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추월 성공 이후 페라리카는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중저속 코너로 이루어진 COTA의 섹터2과 섹터3. 수시로 기어변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랩타임은 드라이버의 시프팅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브레이킹은 최소한! 악셀은 과하지 않게!’

다운시프트를 반복하며 적절한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

3랩이 시작된 지금, 다시 섹터 2에 들어선 서준하가 실버 스톤 서킷의 마곳-베켓-채플을 오마쥬한 슬라럼 구간에 들어섰다.

-4랩 스타트! 추격자와 격차는 1.8초! 앞차와는 5.4초!

저속 테크닉이 중요한 섹터2. 기량 차이는 곧 막누스와의 격차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 홈스트레이트에 올라선 서준하가 윙미러를 보고 웃으며 무전을 날렸다.

“두 바퀴. 딱 두 바퀴면 충분하다.”

그의 말엔 힘이 실려있었다. 허풍이 아닌, 그야말로 실적을 쌓아온 사람만이 뱉을 수 있는 무게가.

‘너보다 다운 시프트 속도가 배는 빠르다, 꼬맹아.’

섹터2, 3에서 따라붙지 못한 막누스. DRS를 사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며 페라리카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

[17R USA GP]

[Race Rank: 15 / 56 lap]

[1.페텔(US)]

[2.보타스(US) + 4.5s]

[3.서준하(US) + 8.3s (3.8s)]

[4.막누스(US) + 10.5s (2.2s)]

......

스타트 초반 배틀이 치열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페텔과 보타스는 무난하게 레이스를 할 수 있었다.

서준하가 3위에 올라서고, 보타스를 추격했지만, 격차는 크게 줄이지 못했다.

“16랩 베스트 타임 기록! 피트 스탑 전까지 선두를 노려보겠답니다!”

타임 로거를 체크하던 엔지니어의 밝은 목소리가 메르세데스 피트 월에 울려퍼졌다.

본격적으로 보타스가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가장 빠른 랩타임을 만들어냈고, 선두를 뺏을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이제 들어갈 때가 된 것 같구만.”

라우다가 보타스의 추격자들의 랩타임을 살피며 말했다.

“실수만 없다면, 페텔과의 싸움이 되겠어. 스틴트를 늦추고 지금부터 최대한 격차를 줄여야 해.”

“3위 싸움이 치열해지겠군요.”

페라리 루키의 랩타임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보타스에게 압박을 가할 수 없을 만큼 격차는 더 벌어지고 말았다.

“하하.”

라우다의 말에 테오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남들보다 스틴트가 짧은 서준하가 일찍이 순위권에서 사라질 건 뻔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결국,

“블리스터(Blister)가 생긴 것 같구만.”

블리스터는 타이어 표면에 물집 같은 것이 잡힌 상태로, 보통 타이어가 그 한계에 달했을 때 발생한다. 코너링 구간 서준하의 돌파 스피드가 줄어든 모습을 라우다가 포착했다. 그런데,

“허허, 버텨보겠다는 거야?”

“저건 또 뭐 하는 건지...”

헤어핀을 돌파하는 페라리카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코너링하기 시작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프론트 그립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서준하. 온 신경을 경주차의 리어 바디에 집중하는데,

‘지금부턴 리어로 돌아야 살아남는다...!’

최대한 타이어를 골고루 쓰면 좋겠지만, 수차례 플라잉 랩과 초반 레드불 팀을 추월하느라 타이어 관리에 치중하지 못했다.

스티어링을 꺾으면 프론트에 부하가 걸리기 쉽다. 되도록 무게 중심을 후방으로 두고 코너링을 한다면 프론트를 살릴 수 있다.

-준하, 랩타임이 떨어졌어.

“그립이 많이 없어. 한계야.”

-생각보다 이른데...

“...”

-어쩔 수 없어, 이제 교체하자

“아직... 조금 더 버틸 수 있어.”

-지금 이 상태로?

“교체 시기는 내가 정한다.”

레이스 후반을 생각한다면, 순위를 유지해 경쟁자들과 최대한 비슷한 시기에 피트 스탑해야 한다. 서준하는 조금 더 버텨보기로 하는데,

-이번 랩 보타스와 5.1초. 페텔하고는 9.3초 차이야! 젠장... 너무 벌어지는데...

오늘 레이스 목표는 우승. 레이스 초반 선두와 이 정도 격차라면, 후반에도 반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순위권 가운데 가장 먼저 피트 스탑을 하게 될 경우, 다시 3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조차 굉장히 불투명해지는 상황. 롭의 당황한 목소리가 서준하를 조금 더 조여왔다.

-이번 랩 무조건 피트 인 해! 더 떨어지면 이젠 뒤차한테 기회를 주는 거라고!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금, 윙미러로 이전보다 가까워진 막누스의 경주차가 보였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지...’

그와 동시에 불현듯 스치는 생각 하나.

‘그래,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어.’

경쟁자들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 오늘 레이스. 챔피언 달성에 위기에 처한 서준하가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

“확실히 코너링이 부자연스러우니까 탈출 속도가 현저히 낮다...”

팀의 언더컷 오더에도 답변을 늦추는 서준하. 추격자 막누스의 차량은 더욱 가까워졌고, 덕분에 페라리 피트 분위기는 긴장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러면 다음 스트레이트면 DRS를 내줄지도 몰라...!”

“크흠...”

원래 타이어의 한계가 왔을 때, 일찍이 언더컷을 시도해 후반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가기로 했지만, 서준하는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준하야...’

상황을 지켜보던 안토니아치도 좀처럼 드라이버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던 그때,

“1턴 헤어핀 막누스 추월 시도!”

결국 막누스가 서준하와 배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1턴 헤어핀 인코스로 파고든 막누스를 가까스로 막아내는 서준하!”

다른 선수들도 타이어 교체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서너 바퀴는 여유가 있었다.

“슬라럼을 빠져나가는 서준하! 탈출 속도가 느려요!”

“이러면 막누스에게 기회가 올 것 같은데요?!!”

이어지는 코스에서도 타이트한 돌파가 불가능해 보이는 서준하의 페라리카. 객석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백 스트레이트 직전 애타게 기다려왔던 헤어핀 하나. 급감속이 필요한 코스가 서준하의 앞에 나타났다.

최대한 브레이킹을 늦추며 진입하는 서준하.

‘와라...!!!’

서준하가 아웃 라인으로 방향을 바꾸자, 헤어핀 안쪽으로 생긴 공간으로 막누스가 찌르고 들어왔다.

끼이이이이이익.

추격자가 파고드는 모습을 확인하며 재빠르게 급브레이킹으로 차량을 돌려세우는 서준하.

‘...!!!’

상대에게 추월당했지만, 막누스는 서준하의 앞에 없었다.

“아!!!”

COTA의 첫 헤어핀과 코너각이 비슷한 수준이지만, 턴을 받쳐주는 뱅크각이 없어 최고속에서 70km/h가까이 속도를 낮춰야 한다.

즉, 추월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인코스로 들어가면 사고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휘리리리리리릭.

끼이이익.

서준하의 레이트 브레이킹 덕분에 진입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막누스의 차량. 순간 미끄러지며 방호벽으로 날아갔다.

쾅.

훼에에에에에에에엥.

가까스로 막누스와 충돌을 피한 서준하가 다시 속도를 내며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괜찮냐, 준하야?! 이번 랩 무조건 들어와!

가장 당황했을 서준하를 진정시키는 롭. 괜찮다는 드라이버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던 그 순간,

-엇?!

직선 주로를 달리는 서준하의 경주차 상태를 확인한 롭이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타, 타이어! 우측 프론트가...!

실밥이 드러나 너덜너덜해진 프론트 타이어. 급감속으로 인한 무리한 턴으로 타이어의 수명이 끝나고 말았다.

“괜찮아.”

이어지는 서준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타이어가 끝장나더라도 슬라이드 시켜 코너를 돌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의지만으론 레이스를 완주할 수도, 타이어를 되살릴 수도 없다. 어이없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

-이래서 아까 들어오자고 했...!!

답답한 롭이 소리를 지르려던 그때,

[Race Control Message]

COTA 서킷 전광판 전체로 깜빡거리는 신호.

[SC] [SC] [SC]

막누스의 리타이어로 경기가 중단됐다.

“거봐, 괜찮다고 했잖아.”

레이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드라이버의 실력. 서준하가 SC 상황을 만들며 앞차들과의 격차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