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97화 (197/200)

< 오늘 좀 바쁠 거야 >

“XX! 말이 안 되잖아!”

서준하의 페스티스트 랩 달성 소식에 메르세데스 스태프들은 어딘가 크게 한 방 맞은 듯했다.

-아마도 일부러 속도를 줄였던 거겠지...

팀으로부터 선두의 상황을 전해 들은 레이스 엔지니어. 다시 서킷에 복귀해 페라리 팀을 쫓는 보타스에게 이를 전달했다.

“랩타임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그딴 게 가능하다고?!”

-그것 말곤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 레이싱카가 이렇게 확 갑자기 빨라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아까도 충분히 따라잡을 기회가 있었던 거란 소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거지?”

-저 타이어로 끝까지 버틸 생각이거나, 아니면... 지금 이런 상황이 더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던 거겠지.

피트 스탑을 하며 시간 손해를 본 보타스. 이제 그는 페텔의 뒤를 달리며 그와 13초가량 격차가 있었다.

남은 바퀴 열한 바퀴 동안 페라리 팀 두 선수가 끝까지 버틴다면, 서준하에겐 유리한 상황이 분명해 보였는데,

“후... 유리해?”

엔지니어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한숨을 내뱉는 보타스. 무언가 작정한 듯 말없이 코스 돌파를 이어갔다.

부와아아아아앙.

어느새 그의 새 SS 타이어가 작동 온도에 도달했고, 가벼워진 연료량에 힘입어 보타스 경주차는 이전과 다른 속도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T6 진입 속도가 너무 빠른데?!

“아니, 신경 꺼!”

선두를 되찾기까지 서준하가 두른 페텔이란 방어벽은 견고했지만, 경주차의 컨디션은 보타스가 훨씬 유리했다. 그리고,

[Fastest lap on lap 48]

-Mercedes No. 77 BOT]

-1분 37.434초

이제 그는 서준하가 세웠던 페스티스트 랩보다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며 막판 대역전극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다섯 바퀴 연속 핫 랩 끝에 페텔의 경주차를 눈앞에 둔 상황. 그렇게 보타스가 50랩의 백스트레이트에 들어서고,

“누가 유리한 건지 끝까지 지켜보라고!!!”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며 페텔의 리어윙을 향해 달려들었다.

훼에에에에에에에에엥.

타이어 컨디션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페텔의 페라리카. 모두의 예측대로, 블로킹 한 번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고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선두와 격차는?!”

연달아 핫 랩을 만들어내느라 숨이 찼지만, 보타스는 아직 힘이 넘쳐났다. 희망에 부푼 그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선두의 위치를 묻는데,

-하...

답변 대신 엔지니어의 헛웃음만이 팀 라디오로 들려왔다.

“...!”

페텔을 추월한 이후, 보타스의 앞으로 서준하가 보이지 않았지만, 단순히 코너가 많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홈스트레이트에 오른 지금, 곧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7.9초... 벌써 오르막을 오른다, 이게 무슨...!

직선 주로의 끝으로 빛나는 작은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지는 소식에 보타스는 전의를 상실했다.

-허... 이번 랩 페스티스트 기록...

“뭐?!!!”

-우리보다 0.4초나 빨라. 도대체 어디서 저런 스피드가 나오는 거냐...

아무리 연료 무게가 가벼워졌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타임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소는 없다.

게다가 서준하는 차량 컨디션조차 서킷 그 누구보다 열악한, 서른 바퀴 이상 소모한 소프트 타이어를 장착한 상황. 결국 보타스의 입에서 페이크에 당했던 때와 똑같은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XX! 그딴 게 어떻게 가능한 거냐고!!!”

***

서준하는 지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 홀로 서킷을 질주했다.

간혹 백마커가 트래픽을 만들었지만, COTA의 넓은 노폭 덕분에 쉽게 지나칠 수 있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머신의 한계를 넘어서고픈 지금, 서준하는 오직 이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레이싱카와 하나가 된다...!!!’

그러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레이스 시작 전 꿈속에서 경험했던 무한 질주가. 그때의 완벽한 주행감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

드라이버에 의해 조작된다기보단 스스로 움직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자연스러운 레이싱카의 움직임은 크루징 기능이 탑재된 자율 주행 머신 같았다.

“아!!!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

“또 한 번 페스티스...”

파이널 랩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서!!! 준!!! 하!!!”

“와아아아아아아아!”

선두 차량이 스타트 라인을 통과할 때마다 COTA 전역에 울려 퍼지는 엄청난 함성. 하지만 서준하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

타이어나 서스펜션과 같은 특정 부품에서 드러내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즉각적으로 드라이빙 스타일을 바꾸는 대응까지.

대신 그의 신경은 허리로 찌릿찌릿하게 전해지는 감촉과 미세한 노면의 마찰음 등 레이싱 카가 뱉어내는 반응에 향해 있었다.

‘...’

어느새 드라이버는 고요한 상태에 이르렀다. 레이싱 카가 한계를 초월한 것도, 서준하가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천상계의 드라이빙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까.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단 한 차례 미스도 없었던 완벽한 드라이빙. 드디어 꿈속 주행이 완벽히 재현됐다.

“또 한 번 페스티스트 랩 갱신!!! 다섯 바퀴 연속 톱 기록 달성!!!”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레이스 종반.

“아!!! 이번 기록은 그냥 페스티스트가 아닌데요...!!!”

“1분 34.647초면...!!!”

마지막 한 바퀴 직전 기록된 랩타임에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의미가 담겨 있었으니,

“F1 최초로 트랙 레코드보다 빠른 랩 레코드가 탄생했습니다!!!”

2017시즌 강력해진 공기역학적 성능으로 많은 서킷의 레코드가 갱신됐지만, 이런 예선 최고 기록을 넘어선 경우는 없었다.

“오늘 서준하는 그야말로 신! 레이스의 신입니다!!!”

퓨엘 이팩트와 트랙 에볼루션 등 여러 이점이 있었지만, 물론 지금 머신의 컨디션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체커기를 앞으로 달려오는 서준하의 페라리카! 역사적인 순간인데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분위기로 휩싸인 COTA의 피니시 라인으로 서준하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피니시!!!”

“스쿠데리아 페라리와 한국의 서준하가 월드 챔피언을 확정 짓습니다!!!”

서킷 레이싱의 정점이자, 모든 레이싱 드라이버의 최종 목표,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시즌 종료까지 아직 세 경기를 더 남겨둔 지금, 서준하가 총 349포인트로 월드 챔피언을 확정지었다.

“헉... 헉... 헉...”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고 한참 뒤에야 들려오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 서준하는 서서히 현실 감각을 되찾기 시작했다.

“챔피언...!!!”

환호성으로 가득한 팀 라디오에서 ‘챔피언’이라는 단어만이 귓가에 박혔다. 동시에 뜨겁고 묵직한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고,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스르르르륵.

환생 후 레이스에 처음 도전하던 시점부터 오늘 레이스까지, 수십 년 동안의 시간들이 일순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든 시간은 한 점을 향해 있었고, 이는 다시 자신의 목표였던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을 향해 있었다.

‘...!!!’

주변을 둘러보니 서킷 전역의 엄청난 에너지는 다시 또 한 점, 이번에는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러자 곧,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찰칵 찰칵.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환호를 받으며 경주차에서 내렸다. 지금 그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예쓰!!!”

멈춰선 페라리카 위로 올라선 서준하. 하늘 위로 태극기를 펼치며 챔피언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

[FIA 갈라(FIA Prize Giving Ceremony)]

17시즌의 마지막 라운드가 종료되고 일주일 후,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

레드 카펫 위로 말끔한 슈트 차림의 서준하가 궁전 입구로 들어섰다.

“여기요, 여기!”

포토존에 멈춰서 포즈를 취하자,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어서 오게, 준하 군.”

“잘 지내셨나요, 회장님?”

행사장 내부로 들어서자, FIA(국제자동차연맹)의 회장, 쟝 토드가 반갑게 맞이했다.

“준하, 오늘 좀 바쁠 거야.”

“...?”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는 서준하에게 회장이 아리송한 말을 건넸다.

자세한 뜻을 물어보려 했지만, 토드는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금세 사라져버렸다.

빠바바밤. 빠바바바.

F1을 비롯해 WRC, WEC 등등 FIA가 관장하는 9개의 모터레이싱 리그 관계자들이 참가한 오늘 시상식.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올해 드라이버들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행사장 스크린 전면에 상영됐다.

“지금부터 시상식을 시작할 텐데요. 챔피언 트로피 수여에 앞서... 갈라의 단 세 개뿐인, 특별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각 리그의 컨스트럭터와 드라이버 챔피언에 대한 트로피를 수여하기 전, 9개 리그에 참가한 선수와 팀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상 수여가 진행됐다.

“먼저 올해의 드라이버(Personality of the Year) 상...!”

FIA의 특별상은 200명이 넘는 드라이버 중 단 한 명에게 주어진다. 아직 수상자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시즌 중반부터 많은 팬과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상이었는데,

“축하합니다! 포뮬러 원,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서준하 선수...!”

각 리그의 챔피언 드라이버들과 전 세계 명망 있는 모터레이싱 관계자들이 모인 영광스러운 자리. 궁전의 연회장으로 서준하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울려 퍼졌다.

“감사합니다. 먼저 이 자릴 만들어주신 쟝 토드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

올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서준하가 짤막한 수상 소감을 말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으로 올해의 액션(Action of the Year) 상... 수상자는...!”

곧바로 두 번째 시상자가 무대에 등장했고, 다음 특별상 시상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포뮬러 원,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서준하 선수!”

드라이버 커리어 평생 단 하나라도 받기 어려운 상을 두 개나 차지한 서준하.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한 시즌 2관왕에 오른 선수는 아마 서준하 선수가 처음일 것 같은데요. 정말 대단하군요...”

소감을 마치고 내려가는 수상자에게 다시 한번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이제 마지막 특별상만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자, 다음은 올해의...”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는 사회자. 이에 참석자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음, 죄송합니다... 다음은 올해의 루키(Rookie of the Year)!”

시상 내용만 듣고도 수상자가 예상이 되는 상황. 참석자 모두의 시선이 그 선수에게로 향했다.

연신 시상식을 오르내리는 서준하도 그제야 토드 회장의 마지막 말을 이해했다.

“돌아갈 때 짐이 좀 많을 것 같군요. 하하... 다시 한번 감사...”

서준하의 세 번째 수상 소감이 끝나자, 9개 리그의 컨스트럭터 챔피언과 드라이버 챔피언들에 대한 트로피가 수여됐다.

빠바바바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제 서킷 레이싱의 최고봉이자, 연말 시상식의 대상과도 같은 월드 챔피언 시상이 진행되고,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서. 준. 하!!!”

1950년, F1이 처음 개최된 이래 800명의 드라이버 가운데 서른세 명에게만 허락됐던 자리. 챔피언 트로피가 서준하에게 전달됐다.

“...”

트로피를 받은 챔피언의 수상 소감 시간. 서준하는 말이 없었다. 덕분에 무거운 정적이 시상식 전역에 흘렀다. 그러던 그때,

“...!”

“...!”

이미 세 번이나 감사 인사와 수상 소감을 전달했던 그의 입에서 더 나올 말은 없었다.

월드 챔피언을 따낸 이번 시즌. 마지막은 임팩트 있게 가고 싶었던 서준하. 갑자기 트로피를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렸다.

모든 참석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고,

“앞으로 이 트로피를 7번 더 들어 올릴 때까지 레이스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의 진짜 목표가 전해지자, 순간 잠잠했던 객석에서 서서히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오늘 좀 바쁠 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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