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98화 (198/200)

< 별관이 따로 있습니다 >

“와, 여기 대박이다. PD님, 어느 집이에요?”

“저기 호숫가 앞에 주황색 지붕 있는 집이요. 좀 더 들어가야 해요.”

이탈리아 북부 내륙 도시 볼로냐(Bologna) 트레보 호수를 눈앞에 둔 저택의 정문으로 방송 관계자들이 탑승한 승합차가 들어섰다.

“근데 그냥 이렇게 막 들어가도 괜찮아요?”

“네, 아까 도착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렸죠.”

“아아, 그렇구나.”

“자, 먼저 인트로 찍을 건데요. 그냥 두 분은 정말 집 구경 오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둘러보세요. 여기 관리인 선생님 따라 움직이시면 됩니다.”

17시즌부터 시작된 한국의 포뮬러 원 투나잇. 4년 연속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스포츠 관련 방송 가운데 단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 그러면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 촬영을 위해 이탈리아를 찾은 메인 MC 최별과 임재원. 최근 새로 이사했다는 서준하의 현지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와아아!”

거대한 고급 저택의 내부 모습에 두 MC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하, 이 집 얼마일까요?”

“음... 연봉만 4500만 달러니까. 집도 좀 비싸겠죠?”

서준하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은 광고비를 포함해 5500만 달러(한화 650억)로 전 세계 스포츠 스타 몸값 13위다.

엄청난 연봉을 받는 선수의 집인 만큼 저택 내부에는 영화관, 사우나, 수영장 등 다양한 휴식 공간이 있었다.

“이런 집에 혼자 산다니까 정말 부럽네요... 이 정도면 거의 호텔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흐음, 근데 이 집의 특별한 것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방은 전부 둘러본 것 같고.”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본 최별과 임재원. 두 사람은 아직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는 눈치였다.

“아, 이쪽으로 오시죠.”

그런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선 관리인.

“뭐가 또 있나요?”

“별관이 따로 있습니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관리인이 방송팀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지금 둘러보셨던 건물은 서준하 선수의 휴식 공간이고, 아마 말씀하셨던 하이라이트는 이곳이 아닐까 싶군요.”

저택의 바로 옆, 심플해 보이는 사각 건물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로 방송팀이 들어섰다. 그리고,

“여깁니다!!!”

건물의 정체는 주거 공간이 아닌 거대한 게러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든 방송 관계자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와아!!!”

커다란 유리 전시장 안으로 번쩍이는 무언가. 서준하의 카트 시절 우승 트로피부터 F1 그랑프리에서 받은 트로피까지 수십 개의 트로피가 보물처럼 쌓여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그 종류는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이게 그 월드 챔피언...”

단연 압도적인 실물을 자랑하는 것은 바로 딱 네 개뿐인 트로피, 포뮬러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트로피들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

트로피 전시장 너머로 십여 대의 차량들이 보였다. 이륜차부터 슈퍼카, 보기 드문 클래식카까지. 페라리 엠블럼을 부착한 고급 차량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었다.

“누가 페라리의 아드님 아니랄까봐... 차가 전부 페라리네요,”

“하하. 그러니까요. 어? 근데 이 모델은 처음 보는 건데.”

도열한 차량 가운데 임재원의 눈에 띈 슈퍼카 한 대. 모델명을 찾기 위해 그가 차량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Scuderia Ferrari: 서준하]

스티어링 휠 네임태그에 새겨진 한글 이름. 특별해 보이는 차량에 방송팀 관계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런데,

“페라리 900 몬차. 다음 시즌 페라리의 스페셜 에디션이죠.”

페라리 창립 90주년을 맞이해 서준하가 직접 개발에 참여해 탄생한 페라리 900. 갑작스럽게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엇...!”

F1 최연소 4회 연속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서준하. 웃는 얼굴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일단 소개부터 다시 하도록 하죠.”

서준하와 함께 게러지와 집안 곳곳을 둘러본 방송팀.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호숫가 주변 정원으로 둘러앉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 1위!”

“앞에 이게 붙어야죠! 단연 압도적 1위!”

“하하, F1 무대를 평정하고 있는 세계적인 슈퍼스타 서준하 선수입니다!”

“와아!”

MC 최별의 깜찍한 제스처와 귀여운 목소리 덕분에 녹화 시작부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집이 정말 넓어요. 이 큰 집에 혼자 지내시는 건가요?”

“네, 근데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죠. 레이스를 하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요. 비시즌에만 머물고 대부분은 마라넬로에 있습니다.”

“아아, 며칠 전 SNS에 여자친구분과 함께 찍으신 사진 올리셨잖아요. 그 사진 속 배경의 호수가 여긴 거죠?”

“네, 맞아요. 얼마 전에 케이시가 볼로냐에 놀러 왔었어요.”

20시즌이 끝나고, 새 시즌 준비와 함께 휴식기에 들어간 서준하. 신차 개발과 해외 방송 출연으로 F1에 데뷔한 이후 줄곧 이탈리아에서 머물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이제...”

아이스 브레이킹이 끝나고,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번 시즌(2020시즌)에도 달성한 기록들이 어마어마하잖아요. F1 최다 연승(11연승), 그랑프리 우승 전부 폴투윈... 거기에 최연소 4회 연속 챔피언까지. 그야말로 전성기를 달리고 계시는군요.”

17시즌 이후, F1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승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서준하.

슈마허나 해밀턴 같은 대부분의 챔피언 드라이버들이 이십 대 후반, 삼십 대에 들어 전성기를 누렸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다음 시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아직 서준하 선수가 뒤집지 못한 기록들이 몇 개 있죠?”

“시즌 최다승(13승), 전 그랑프리 포디엄 피니시, 슈마허를 뛰어넘는 연봉 등등. 이제는 이런 것들도 탐나지 않겠습니까?”

아직 서준하가 이십 대 초반이라는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그의 성공은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10년 넘게 그의 전성기가 이어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왜, 그것도 있잖아요. 몇 주 전에 테스팅 받으셨던.”

“그렇죠, 인디카 테스팅도 있었죠. 그러면 이번에는 트리플 크라운까지 노리고 계신다는 건데...”

슈퍼스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금, MC들이 팬들의 주목도가 높은 질문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 우리끼리 말이 너무 많았네요. 서준하 선수! 혹시 이번 시즌에는 어떤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서준하의 승리를 당연시했다. 그가 전성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보단, 앞으로 어떤 기록을 뒤집을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으음, 먼저...”

그런 분위기를 서준하가 포착했다.

“인디카나 르망 24시에 대해서 테스팅을 했던 건, 좀 더 먼 미래를 위해서고요. 전 계속 F1에 집중할 겁니다.”

“아아, 인디카는 나중이군요...”

“그리고 많은 분들께서 제가 새로운 기록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서준하. 그 모습엔 인터뷰 처음과 달리 진지함으로 가득했다.

“사실 이번에도 제 목표는 월드 챔피언입니다. 새 시즌을 치르면서 이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없습니다.”

1950년 F1이 처음 개최된 이래 800명 정도의 F1 드라이버 중 단 33명만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월드 챔피언.

그만큼 정말 극소수만이 달성할 수 있는 레이싱의 정점으로, 제아무리 4회 연속 챔피언이라도 당연시할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다.

“앞으로 네 번의 챔피언을 더 달성한다면... 그땐 새로운 도전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FIA 갈라에서 하셨던 말을 정말 지키실 생각이군요...”

“그렇습니다. F1 드라이버로 달리는 동안 제 목표는 늘 월드 챔피언입니다.”

전생부터 이루고 싶었던 역대 최다 월드 챔피언에 대한 꿈. 서준하는 여전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는 중이었다.

***

해가 바뀌고 또다시 찾아온 봄. 이제 72번째 F1 시즌이 시작됐다.

“2021 시즌 개막전이 시작됐습니다! 먼저 최후미 맥라렌의 스토펠 그리고, 19번 그리드 하스의 마그누센...”

개막전이 열리는 호주 멜버른의 앨버트 파크. 포메이션 랩을 도는 포뮬카들의 배기음이 서킷 전역에 울려 퍼졌다.

“...4번, 5번 그리드엔 레드불의 새로운 드라이버들이 사이좋게 위치합니다. 가슬리와 알본의 이번 시즌 레드불 팀 첫 출전 그리드가 나쁘지 않군요!”

20시즌부터 시작된 레귤러 드라이버들의 은퇴. 소위 3 강팀, 레드불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의 드라이버 라인업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시즌 후반 좋은 성적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던 제프 베시! 제프의 페라리 카가 3번 그리드를 차지했습니다!”

“메르세데스 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받고 콕핏을 옮긴 막누스! 아쉽게 폴포지션을 놓친 막누스 페르스타펜이 2번 그리드에서 개막전 우승을 노려봅니다!”

중계진의 선수 소개가 마지막을 향하자, 앨버트 파크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하하!! 엄청난 함성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역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서준하! 개막전에서도 폴포지션을 차지하며 팬들의 기대에 보답합니다!”

서준하는 네 시즌 연속 F1 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FOM과 주최 측에선 서준하 독주를 막아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

호주 팬들이 절반 넘게 차지하는 앨버트 파크에서도 그 인기는 여전했다.

그렇게 시작된 개막전 레이스.

“라이트 아웃!!!”

출발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스무 대의 포뮬러카가 그리드를 벗어났다.

“아! 스타트부터 접전! 가슬리! 가슬리가 제프의 앞으로!”

시작부터 경쟁은 치열했다.

“스타트가 굉장히 빨랐던 막누스는 서준하의 옆으로 나옵니다!”

스타트 타이밍이 제각기 달랐던 경주차들이 뒤엉키며 첫 코너를 향해 달렸다. 덕분에 개막전 시작부터 서킷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첫 코너 진입에 유리한 위치를 두고 다시 배틀!”

“양보 없는 경주차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보입니다!”

모두가 부푼 꿈을 안고 뛰어드는 개막전 레이스. 충돌이 있을지라도 기선 제압에 성공하고 말겠다는 듯, 선수들은 전투적이었다.

“아직 라인 정렬이 안 됐는데요! 이렇게 되면 홀샷에서...!”

앨버트 파크의 첫 코너는 300km/h 이상의 머신 속도를 절반 아래로 떨어뜨려야 하는 고속 시케인이다.

“시케인 진입!!!”

“진입과 동시에 코너 안쪽으로 쏟아지는 경주차들...!!!”

긴 직선 구간 후 급감속이라는 추월 공식이 성립하는 이곳.

무엇보다 이 시케인의 가장 큰 특징은,

“아악!!!”

첫 랩에서 굉장히 많은 사고가 일어났던 구간이라는 사실. 홀샷과 동시에 중계진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콰과가가가가가강.

경주차끼리 부딪치는 충돌음이 서킷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크러쉬! 대형 크러쉬입니다!”

스크린으로 파손 차량의 모습이 등장했고, 앨버트 파크에는 전에 없던 대혼란이 찾아왔다.

< 별관이 따로 있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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