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402)

도약을 위한 준비

강우의 아버지는 온 가족이 잠든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오셨다.

달칵.

“으음···.”

긴 신음성과 함께 들어선 강우의 아버지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강우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아빠, 오셨어요?”

“안 잤어?”

아버지의 얼굴 가득 담겨있는 냉기와 피로감에서 강우는 가장의 무게를 느꼈다. 강우가 빠르게 다가가 아버지의 옷을 받아 들었다.

“고생하셨어요.”

강우의 말에 강우 아버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금껏 아들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 그래.”

“들어오세요. 컵라면 하나 끓여 드릴까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삐이익.

이윽고 물이 끓기 시작하자 커피포트가 비명을 질렀다. 강우가 동생과 어머니가 깰까 봐 빠르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슈퍼에서 사 왔던 컵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찌이익. 콸콸.

컵라면에 뜨거운 물이 부어지자 강우 아버지의 얼굴에서 냉기가 살짝 사라졌다.

“씻고 오마.”

“네.”

강우 아버지가 화장실로 가서는 샤워를 시작했다. 면이 불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강우의 아버지는 불은 면을 좋아하는 특이한 스타일이었다.

달칵.

화장실에서 나온 아버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냉기를 밀어낸 더운물의 온기 덕분이었다. 강우 아버지가 방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루룩. 후루룩.

역시나 시장했는지 금세 면을 흡입하는 강우 아버지였다. 강우가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는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고민도 많으실 거야.’

강우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강우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어제는 왜 집에 안 들어온 거냐?”

“친구네 집에 갔었어요.”

이전 같으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을 텐데 오늘의 반응은 달랐다.

“엄마가 걱정 많이 했다. 다음부터는 꼭 연락해,”

“네···.”

강우가 살짝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어느새 국물까지 모두 해치운 강우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제 자자.”

“저, 아빠, 드릴 말이 있어요.”

강우 아버지의 얼굴에 궁금증이 떠올랐다. 강우가 가방에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저 내일부터 아르바이트하러 가기로 했어요.”

“아르바이트? 공부해야지. 이제 이 학년인데.”

아르바이트 장소를 모르는 강우 아버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서울대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났어요.”

“서울대?”

서울대라는 말에 강우 아버지가 호기심을 보였다. 서울대라는 단어는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는 마법의 단어였다.

“네, 원주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이신데요. 프로젝트에 제가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프로젝트에?”

강우 아버지가 더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강우가 내민 서류를 훑어보았다.

“음···. 이건 미국에 있는 중견기업들을 조사하는 프로젝트구나.”

“네, 맞아요. 그 프로젝트에 인터넷을 잘 다루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그런데 이거 전부 영어인데 네가 가능하겠어?”

“그럼요.”

강우 아버지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류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거 해석해봐.”

강우의 입에서 원어민 뺨치는 발음으로 영어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해석까지 해버렸다. 강우 아버지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허.”

“맞죠?”

강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실룩이는 입꼬리를 억지로 참아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했구나.”

“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갑작스러운 영어 실력의 향상은 강우도 의아한 일이었다.

“가서 폐 끼치지 않게 열심히 해야 한다.”

강우 아버지의 당부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인 강우가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아버지 취업 문제요···.”

“취업? 걱정하지 마라. 한동냉장은 안 가기로 했으니까.”

“정말요?”

강우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 모습에 강우 아버지가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자세히 알아보니까. 그 회사에 문제가 조금 있더구나.”

강우가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네···. 그럼 다른 곳은 안 알아보세요?”

“글쎄다.”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강우가 슬쩍 본론을 꺼냈다.

“이 회사들은 어떠세요?”

강우가 노트를 내밀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회사 두 곳의 정보가 적혀있었다. 강우 아버지가 관심을 보였다.

“미국에 있는 회사구나. 둘 다 식품 무역 쪽을 하는 회사고.”

“네, 마침 한국에 지사를 낼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요. 아버지 이력이면 충분히 좋은 자리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강우 아버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현실적인 문제점을 꺼내 들었다.

“좋은 생각이기는 하네. 하지만 이 회사가 나한테 관심이 있을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강우 아버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네가?”

“네, 원주 아버지가 경영학 교수시잖아요. 이 회사들에 대해 알아봐 주신다고 했어요.”

강우의 말에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원주의 아버지와 비교되는 자신의 현실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그래도 친구 아버지한테 폐를 끼치는 건···.”

“아니에요. 흔쾌히 좋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아르바이트하면서 잘 도와드리면 돼요.”

“으음.”

강우 아버지가 계속 망설이자 강우가 힘을 주어 말했다.

“아버지가 가장이시잖아요. 빨리 자리를 잡으셔야 우리 가정이 안정되지 않을까요?”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격하게 흔들렸다. 강우 역시 아버지의 반응이 의외였다. 원래라면 크게 화를 내실 거로 생각했었다.

‘아버지도 약해져 계신 거겠지.’

강우가 아버지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아버지 능력이라면 이 회사에 충분히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래,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강우 아버지가 이불속에 누웠다.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던 강우가 그 반대편의 자리로 누웠다. 강우 어머니와 강용을 사이에 두고 두 부자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 * *

“우와~ 서울대다.”

신원주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서울대학의 입구에 있는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그런 신원주의 옆에 있던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넌 아버지 직장인데 처음 와보냐?”

“아니 그건 아닌데 올 때마다 새롭네.”

당당한 신원주의 답에 강우가 잠시 멍했다. 그러자 신원주가 한숨을 쉬며 강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알잖아 나 지독한 길치인 거.”

“내가 앞장설게.”

신원주와 강우가 당당히 서울대의 안으로 걷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에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이 경영대학의 건물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빠 사무실은 어떻게 찾냐?”

“그러게.”

역시나 길치인 신원주는 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쪽으로 한 명의 남학생이 지나갔다. 신원주가 다급히 말을 건넸다.

“저기요.”

“네?”

남학생이 길을 멈추고 두 사람을 돌아봤다. 순간,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졌다.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그 사이 신원주가 남학생에게 물었다.

“저, 경영대학 신철민 교수님을 찾아왔는데요. 교수실이 어딘지를 몰라서요.”

“신철민 교수님이요?”

남학생이 익숙한 듯 원주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일 층 왼쪽의 첫 번째 방입니다.”

“감사합니다.”

신원주의 말이 끝나자 남학생이 강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가던 길을 재촉했다. 신원주가 강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제 기억 좀 난다. 이쪽으로.”

“어.”

강우가 끌려가며 남학생이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 * *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신철민 교수가 통화를 끝내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똑똑.

교수실의 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누구십니까?”

문이 열리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강우와 신원주였다.

“오? 강우 왔구나.”

“아빠, 아들도 왔는데?”

신원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원주의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넌 왜 따라왔어.”

“강우, 이놈이 길을 헤맬까 봐.”

“그래서 길치인 네가 도와주려고 했다 이거지?”

원주 아버지의 말에 신원주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고개를 돌리며 픽하고 웃었다. 원주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둘 다 이쪽으로 앉아.”

강우와 신원주가 원주 아버지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원주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우 네가 부탁한 회사랑 연락을 끝낸 참이다.”

“정말요?”

강우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역시 인맥 넓은 원주 아버지에게 부탁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력서도 접수했다.”

“잘되겠죠?”

강우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원주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잘된 정도가 아니야. 두 회사에서 난리가 났어. 마침 한국 지사의 실무를 담당할 부사장을 찾는 중이었다던데. 강우 너희 아버지 같은 적격자를 또 어디서 찾겠니.”

“부···. 부사장이요?”

강우가 화들짝 놀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부사장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자리였다. 하지만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아버지가 스펙이 좋은 건 맞는데 부사장 자리가 가능할까?’

강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경사가 터졌는데 고민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상대방 측에서 강우 아버지를 만나보고 결정할 문제일 것이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주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냥 중간다리만 놔줬을 뿐이지.”

“아닙니다. 아저씨를 통해 이력서가 들어간 게 크게 작용을 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녀석.”

강우를 바라보는 원주 아버지의 눈에는 호감이 가득했다. 신원주가 헛기침하며 유세를 부렸다.

“봤지? 우리 아빠 능력이 이정도야.”

“그래, 정말 대단하시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원주 아버지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흠흠···. 다들 점심 전이지? 밥이나 먹고 오자꾸나.”

원주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와 신원주가 그 뒤를 따라나섰다. 다시 밖으로 나온 강우의 눈에 온 세상이 밝아 보였다.

‘대박이다. 대박.’

문득, 공사장을 나가셨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빨리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강우의 마음이 붕 떠버렸다. 그렇게 원주 아버지를 따라 들어선 곳은 학생 식당이었다.

“아빠, 맛있는 거 사주는 거 아니었어요?”

신원주가 대번에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자 원주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아들, 네가 언제 여기 밥 먹어보겠어. 온 김에 먹고 가.”

“윽···.”

아버지의 말에 신원주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아픈척했다. 원주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후아···.’

제멋대로 뛰는 심장에 밥이 코가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자신의 몫으로 나온 함박스테이크를 강우가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구내식당을 나서자 원주 아버지가 신원주를 보며 말했다.

“그럼, 강우는 나랑 같이 가고. 원주 너는 집에 가 있어.”

“네, 아빠.”

신원주가 강우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 아빠 말 잘 들어라.”

“걱정도 팔자다.”

신원주가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려 달려갔다. 원주 아버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들 거기 말고 저쪽.”

“아···.”

신원주가 멈칫하더니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혼자 잘 갈 수 있겠죠?”

“글쎄다···.”

그 말을 끝으로 원주 아버지와 강우가 신원주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신원주가 이리저리 헤매더니 결국 맞는 길을 찾아갔다. 이윽고 신원주의 모습이 사라지자 원주 아버지가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갈까?”

“네.”

교수실로 돌아가는 길에 학생들이 원주 아버지를 알아보고는 꾸벅 인사를 해왔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원주 아버지가 학생들을 향해 친밀감을 표하며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원주 아버지는 권위 의식이 없기로 유명한 교수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었다.

‘원주 친구들한테도 참 잘 대해 주셨었지.’

이윽고 교수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강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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