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402)

첫 출장?(3)

컴컴한 밤. 호텔 앞으로 강우와 아버지를 태운 차량이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강우가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깨웠다.

“아빠, 다 왔어요.”

“으음···. 그래?”

새벽부터 시작된 현지답사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식사 자리였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했다.

덜컥.

강우 아버지가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미니바에서 맥주캔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강우야, 이리 앉아.”

“네, 아빠.”

강우가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강우 아버지가 맥주캔을 연달아 따더니 한 캔을 강우에게 내밀었다.

“한잔해라.”

“네? 술을요?”

내심 좋았지만, 강우가 아닌 척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술은 아빠한테 배워야지.”

“네.”

강우가 망설임 없이 맥주캔을 받았다. 강우 아버지가 감개가 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다.

“마시자.”

“네.”

강우가 고개를 돌려 맥주캔을 들이켰다. 알싸한 알코올의 향과 목을 찌르는 따끔함이 느껴졌다. 기억과는 달리 강우에게 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알았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강우가 맥주캔을 내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재고 물품에 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아마 제가 중국어를 못 한다고 생각하고 말한 거 같아요.”

“으음···.”

속이 많이 상한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물론, 임성환을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산지까지 가서 물건을 확인하고 계약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삼산물산 쪽에 가는 물건에도 같은 방법을 쓰는 거 같더라고요.”

“고추라는 게 금세 상하는 물건이라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 텐데.”

아버지의 말에 강우가 또 하나를 깨달았다.

“삼산물산 쪽에 협력하는 사람이 있나 보죠.”

“그렇겠지.”

강우 아버지가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강우 아버지는 강직하고 정직한 성격이었다. 이러한 일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당장 한국에 가면 삼산물산부터 찾아가 봐야겠구나.”

“아빠 생각대로 하시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강우는 아버지의 행동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만의 신념이 있는 것이니까.

“이번에도 네 도움을 받았구나.”

“운이 좋았죠.”

강우 아버지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언제 이렇게 컸지? 아빠 팔 밑에서 자던 게 어제 같은데.”

“.....”

강우가 고개를 돌리고 맥주캔을 묵묵히 마셨다. 아버지의 말에 눈가가 괜스레 붉어졌다.

“하아···. 이번에도 강우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걸 생각하니···.”

“아빠,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차피 물건이 나갈 때 아빠가 다 검수할 생각이셨잖아요? 그랬으면 아빠 눈에 다 걸렸겠죠.”

강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일 만날 사람하고만 관계를 잘 쌓으면 임성환 사장은 필요 없어지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임 사장이랑 관계가 돈독하다는데···.”

“사람은 만나봐야 알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우의 위로와 격려에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강우를 자랑스럽다는 듯 보았다.

“이거 우리 아들을 여행이라고 데리고 와서는 일만 시키게 생겼구나.”

“사회 경험 일찍 한다고 생각할게요. 견문 넓히고 좋죠.”

“그럼 우리 아들이랑 아빠랑 첫 출장인가?”

아버지의 말에 강우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미래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가며 흩어졌다. 강우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네요. 이번 출장은 제게 좋은 경험이 되겠죠?”

“그렇고말고.”

마지막으로 남은 맥주를 비워낸 두 부자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있을 중요한 만남을 앞둔 두 부자가 흥분된 마음을 감추고 잠이 들었다.

* * *

청도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이 있었다. 그 앞으로 한 대의 택시가 나타났다.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전용 기사가 돼버린 택시기사 말했다.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택시에서 내렸다.

“수고하셨어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택시가 멀어져 갔다. 강우 아버지가 강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강우 네가 통역을 해준다니 너무나 마음이 놓인다.”

“저도 아빠를 도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두 부자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진풍경이었다. 왁자지껄한 소음은 물론이고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형님!”

강우와 강우 아버지를 기다리던 임성환이 식당의 안쪽에서 다가왔다. 강우를 발견한 임성환의 얼굴이 살짝 경직됐다. 강우가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 어, 그래. 안녕 강우야.”

강우 아버지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오지 않으신 건가?”

“네, 갑자기 높은 분이 찾아왔다고 조금 늦는다고 하시네요.”

강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성환 사장이 두 사람을 예약된 별실로 안내했다. 별실의 안쪽은 은은한 붉은색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임성환 사장은 강우 아버지의 옆에 자리했다.

“높은 분이라면 누가 왔다는 건데?”

“당 관계자라는데 저도 잘 모릅니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오늘 아버지가 소개받을 사람은 청도시의 공산당원이었다. 미래에도 마찬가지지만 이 시기에는 공산당원의 힘이 매우 강력했다.

‘더군다나 오늘 만날 사람은 청도시 당의 서기니까.’

임성환 사장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차라도 좀 내오라 할까요?”

임성환 사장이 종업원을 불러 차를 내오라 시켰다. 이윽고 종업원이 차를 내오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강우 아버지는 임성환을 향한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강우 아버지의 모습에 임성환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형님,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세요.”

“알겠다. 네가 일하는 스타일까지 참견할 수는 없지.”

강우 아버지가 담담히 말했다. 임성환 사장이 슬쩍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강우는 신경을 안 쓰는 척 차를 음미했다.

잠시 후, 별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임성환 사장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왔나 봅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중년남성이 들어섰다. 수행원으로 보이는 한 명의 건장한 남성도 있었다. 임성환이 대번에 아는 척을 했다.

“위 서기님.”

“오래 기다렸나?”

묻기는 그러했지만, 남성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임성환 사장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하하! 아닙니다. 저희도 지금 방금 왔습니다.”

“다행이군.”

두 사람은 강우 일행을 무시한 채 둘만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남성이 강우 일행의 앞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행원은 깍듯이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제가 옆에 앉겠습니다.”

임성환이 기다렸다는 듯 남성의 옆쪽으로 자리했다. 강우가 속으로 픽하고 웃었다.

‘기회주의자 같은 놈.’

임성환이 남성에게 강우 아버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박정식 부사장입니다.”

강우가 빠르게 아버지를 향해 통역해주었다. 그 모습에 남성의 얼굴에 살짝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강우 아버지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 들어 정중히 내밀었다.

“GIC 한국지사 부사장 박정식입니다.”

강우가 빠르게 통역을 해주었다. 남성의 얼굴에 떠오른 이채가 짙어졌다. 하지만 강우 아버지가 내민 명함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자 임성환 사장이 빠르게 명함을 낚아챘다.

“형님, 원래 이분이 명함을 잘 안 받아요. 제가 가지고 있다가 전달하겠습니다.”

“어···. 그래.”

강우 아버지의 얼굴에 살짝 당혹감이 떠올랐다. 남성이 강우 아버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청도시 당 서기 위진오라고 합니다.”

임성환이 강우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형님, 이분은 청도시 당 서기 위진오 님이십니다.”

임성환 사장의 말이 끝나자 위진오가 살짝 목인사를 했다. 강우 아버지도 목인사로 응답했다.

‘윽···.’

강우가 다시 한번 기억의 파편을 받아들였다. 기억 속에서도 아버지가 소개받았던 중국의 인맥이 위진오였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임성환이 다시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윽고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술도 함께였다. 임성환이 위진오를 향해 아부를 떨었다.

“오늘 형님을 만난다고 특별히 준비한 술입니다.”

“오? 그래?”

위진오는 알아주는 애주가였다. 식사가 시작되고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위진오가 조금씩 강우 아버지에 관해 묻고는 했다. 주로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중국에 왜 왔는지였다.

“음···. 수출입진출구 공사라면 사장이 나랑 막역하기는 하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시기가 늦은 거 같군요.”

“내년 물량이라도 계약을 미리 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우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위진오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꽌시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중국인들은 꽌시에 의해 움직이지만, 함부로 남에게 곁을 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꽌시가 아닌 자들은 철저히 배척했다.

“자자, 오늘은 식사나 하시죠.”

임성환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 자신이 아니면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 그래? 그럼 업무 이야기는···.”

“오늘은 피곤해 보이시는 거 같으니까 다음에 또 자리를 만들죠.”

강우 아버지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임성환이 강우를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때, 위진오가 강우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자네는 중국어를 참 잘하는군.”

“감사합니다.”

“혼자 공부한 건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중국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영어 못지않게 꼭 배워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 그런가?”

위진오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차올랐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 중국은 처음이겠지?”

“네, 처음 방문했는데 역시 상상대로 대단한 곳입니다.”

“청도시는 볼만한 곳이 제법 있지. 그래 관광은 좀 했나?”

강우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아버지를 돕느라 야시장만 다녀왔습니다.”

“아쉽군. 중국에는 유명한 곳이 참 많은데 말이지. 다음에 또 중국에 오면 꼭 여기저기 다녀보게.”

“네, 다음에 오면 꼭 상해를 가보려고 합니다.”

상해를 언급하자 위진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의 상해는 말 그대로 시골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상해를? 거기는 관광할만한 곳이 아닐 텐데.”

강우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을 꼭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임시정부를?”

위진오의 얼굴이 호기심에 꿈틀거렸다. 강우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제 조부께서 상해임시정부 소속이셨습니다.”

“진짜인가? 자네의 조부가 항일투사이셨단 말이야?”

위진오의 반응에 임성환 사장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위진오의 아버지 역시 항일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십니다.”

“하하하! 역시 훌륭한 가문의 자손이었군. 내 그럴 줄 알았지.”

위진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기뻐 보이는지 오랜 인연이 있는 임성환도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임 사장, 이렇게 귀한 분들이라는 걸 왜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거야?”

위진오가 임성환을 살짝 나무랐다. 임성환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저도 모르는 사실···.”

“됐어. 나중에 이야기하지.”

위진오가 임성환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강우 아버지를 향해 정중한 자세로 손을 내밀었다.

“나라만 달랐지 저와 같은 아버지를 두셨군요. 이거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강우가 빠르게 통역을 했고,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아버지께서 하신 일입니다. 저야 훌륭한 아버지를 둔 걸 감사할 뿐이죠.”

강우가 아버지의 말을 살짝 다르게 통역했다. 아버지께서 한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임성환을 슬쩍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음···.”

임성환의 얼굴이 죽을상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강우 아버지와 위진오가 각자의 아버지 이야기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강우의 자연스러운 통역에 임성환은 어느새 찬밥 신세였다.

“자자 한잔 더 하게!”

“감사합니다.”

나이가 많은 위진오가 강우 아버지에게 술을 계속해서 권했다. 과연 애주가다운 주량이었다. 하지만 강우 아버지의 정신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위진오가 주는 술을 사양 않고 계속 받아 마시고 있었다.

‘역시 술을 엄청나게 마시는군.’

중국인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꼭 술을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상대방이 취했을 때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우 아버지는 처음과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아버지의 주량을 알고 있는 강우마저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강우 군은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진오가 잔뜩 취기가 묻은 얼굴로 강우에게 물었다. 위진오의 돌발 질문에 임성환이 눈을 크게 떴다. 별실 안의 시선이 온통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강우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개방개혁 정책 이후로 시장이 급격하게 개방되고는 있지만, 중국은 경공업과 제조업에 지나치게 쏠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위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강우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성장하려면 중공업과 첨단기술 산업.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음···.”

위진오가 강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감탄의 빛이 가득했다.

“자네 삼국지 좋아하나?”

뜬금없는 질문에 강우가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아마 중국인들보다 더 많이 읽었을 겁니다.”

“좋아.”

위진오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퍼져나갔다.

“만약 자네가 난세의 장수라 치세. 그 장수는 시골 출신이지만 일신의 능력은 평범치는 않은 자지. 그 장수에게는 주군으로 모실 선택지가 두 개가 있네. 하나는 난세의 영웅으로 불리는 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명가의 후손인 인물이지. 자네라면 어떤 주군을 섬기겠는가?”

위진오의 질문에 임성환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우는 위진오의 진의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난세라면 쓰임이 필요한 곳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라면 난세답게 제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난세의 영웅을 따르겠다?”

“네, 명가의 후손 곁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라면 난세의 영웅에게 제 운명을 걸고 도박을 걸어보겠습니다.”

“음···.”

위진오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현재 중국의 권력 구도는 현 주석에게 이양된 상태였다. 하지만 전대 주석이 아직 살아있고, 막후에서 거대한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현 주석을 꼭두각시라 평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현 주석은 착실히 자신의 권력을 찾아가고 있지.’

다만 배경이 약한 현 주석에게는 인재가 적을 뿐이었다. 위진오는 그런 현실을 빗대어 강우에게 질문한 것이다. 위진오는 당 내부의 파벌 중 어디에 줄을 댈지 고민 중인 상태이다. 그리고 강우는 위진오에게 가장 최선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 이거군.”

“네, 맞습니다.”

위진오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위진오가 술잔을 들더니 강우 아버지에게 술을 권했다.

“정말 대단한 아들을 두었군.”

“감사합니다.”

위진오가 이번에는 강우를 향해 말했다.

“이제 열여섯이라 들었는데 정말 대단한 인재군. 중국인이 아닌 게 아쉬울 정도야.”

“감사합니다.”

강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위진오가 강우 아버지를 향해 잔을 들었다.

“밤은 깊고 좋은 사람과 함께이니 술맛이 나는군. 한잔하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술자리가 이어졌다. 위진오는 강우 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어 보일 정도였다. 마음을 주면 급격하게 친해지는 중국인다운 모습이었다. 급기야 위진오의 입에서 깜짝 놀랄 말이 터져 나왔다.

“하하! 이거 내가 나이가 많으니 자네를 아우 삼고 싶은데 괜찮겠나?”

“형님, 저야 영광이죠.”

술이 불콰해진 위진오가 형님 아우를 하자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강우 아버지는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국적을 뛰어넘는 형제가 탄생했다.

물론 임성환은 제외였다.

“이제 자네가 내 아우이니 강우는 내 양자다.”

위진오가 본심을 드러냈다. 강우가 마음에 무척 든 나머지 양자로 삼겠다는 것이다. 강우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대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였다. 위진오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번져 나갔다.

“좋아. 좋아.”

연신 좋다고 외치던 위진오가 임성환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보게 임 사장, 그런데 아까 말했던 고추 수출 문제 말이야.”

“네.”

“내가 진 사장에게는 말을 해놓을 테니. 물량을 좀 내어줄 수 있겠지?”

임성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진 사장이라면 청도시 수출입진출구 공사의 사장이었다. 위진오는 지금 강우 아버지에게 특혜를 주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말이라고 거역하겠는가. 위진오는 임성환의 생명줄이었다.

“네, 형님. 이를 바가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임성환이 고개를 푹 떨궜다. 위진오는 임성환이 수년 동안 쌓아 올린 꽌시의 결정체였다. 그런 인맥을 불과 몇 시간 만에 강우에게 뺏기다시피 한 것이다.

‘......’

임성환이 고개를 들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우가 임성환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임성환이 침음성을 흘리며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일 좋은 물건으로 부탁드려요. 이왕이면 가격도 잘 쳐주시면 좋고요.”

임성환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첫 출장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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