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장?(4)
청도 공항에 고급 세단이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기사가 내리더니 뒷자리를 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강우가 감사를 전하며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이거 형님 덕분에 너무 편하게 왔네.”
“그러게요. 대부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네요.”
강우와 아버지가 타고 온 세단은 위진오의 차량이었다. 위진오는 바쁜 일이 있어 공항에 못 올 거 같다며 기사와 함께 차량을 보내주었다.
덜컹.
트렁크가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의 캐리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의 강우 가족에게 위진오가 보낸 선물도 잔뜩 있었다. 강우 아버지가 선물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형님도 참···.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데.”
“엄마랑 강용이가 좋아하겠네요.”
위진오라는 꽌시는 정말 대단했다. 청도시 공산당 서기의 힘은 막강했다. 위진오의 전화 한 통에 없던 고추가 땅에서 솟아나 버렸다.
‘수출입진출구 공사의 진 사장이 버선발로 뛰어올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진 사장은 아버지를 교주와 평도로 모셔갔다. 그리고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물건들을 잔뜩 보여주었다. 강우 아버지는 그중에서 최상급의 물건들을 골랐다.
‘아버지의 물건 보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대단한 것은 가격도 현재 가격인 톤당 1,000불이 아닌 950불에 사가게 됐다는 것이다. 계약을 끝낸 아버지는 진 사장과 또 술자리를 가졌고, 인맥을 다졌다. 그 과정에서 내년 생산분도 충분한 양을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꽌시가 꽌시를 낳는다더니.’
물론 임성환 사장은 일련의 과정에서 완벽하게 제외됐다. 듣기로는 임성환의 비리를 알게 된 위진오의 실망이 매우 컸다고 했다.
‘임성환 사장의 썩은 표정이 눈에 선하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사실 이번 중국행의 목표는 두 개였다. 아버지와 임성환의 악연을 끊어놓을 것. 그리고 위진오라는 인맥과 친분을 다져 놓을 것. 강우가 힐끗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에 강우의 마음에 성취감이 차올랐다.
‘이 정도면 초과달성 아닌가?’
강우와 아버지가 공항의 안으로 들어섰다. 운전기사가 공항 안까지 모시겠다고 했지만, 강우 아버지가 극구 사양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기사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차량을 몰아 공항을 떠나갔다. 잠시 감회에 젖은 눈빛을 짓던 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우리도 들어가자.”
“네, 아빠.”
잠시 후, 강우와 아버지를 태운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내에서 강우가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피곤하세요?”
“조금? 중국인들은 뭔 술을 그리 좋아하는지 힘들어 죽겠다.”
아버지는 진 사장과도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한국에 가면 술은 돌아도 보지 않으실 거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강우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죠.”
“그래, 생각지도 못한 물량도 확보했고, 내년 생산분까지 계약했으니까.”
강우가 슬쩍 물었다.
“그걸로 이제 일본에 수출하실 거예요?”
“응, 일본 쪽에 아는 바이어가 있어. 그 사람 회사가 고추를 많이 수입해간다고 하더라.”
“고추를 수입해가서 뭐 하는데요?”
“그걸 가루를 내서 온갖 양념에 섞어서 팔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과 한 치의 차이도 없이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말린 고추로 사가요? 중국에서 가루를 내서 가면 훨씬 편하지 않나요?”
“그게 말이지. 일본 바이어가 중국을 못 믿어.”
강우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가루를 내면 재고 물품을 섞어도 확인하기가 훨씬 어려워지거든. 그래서 꼭지만 딴 말린 고추를 수입해가는 거야.”
“아···. 그렇군요.”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끝나자 강우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아빠는 피곤해서 좀 잘게.”
“네, 아빠.”
강우가 비행기의 작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멀어져 가는 중국을 보며 눈을 빛냈다. 위진오는 분명히 높은 곳까지 올라갈 것이다. 기억 속에서도 중앙당까지 진출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강우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훨씬 빠르고 쉽게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 인맥은 나와 아버지에게 중국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
중국은 지금부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다. 위진오라는 꽌시는 아버지의 중국 사업에 엄청난 힘을 보태줄 존재가 될 것이다.
‘임성환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말이지.’
강우가 잠든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중국을 떠나오시며 임성환 사장과의 인연을 완벽히 끊어내셨다. 아직도 죄송하다며 매달리던 임성환 사장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인과응보지 뭐.’
강우가 좌석에 몸을 깊게 묻었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관광을 충분히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충분히 알찬 시간이었다.
‘엄마랑 강용이는 뭐 하고 있으려나.’
문득 집에 남은 가족이 그리워지는 강우였다.
* * *
덜컥.
늦은 저녁. 강우네 집 문이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들어섰다. 강우와 아버지의 코끝으로 향긋한 된장찌개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잔뜩 흥분한 강용이 두 팔을 벌리며 달려왔다.
“형아! 아빠!”
강용이 강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 강우 아버지의 표정에 옅은 패배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용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형인 강우였다.
“강용이, 형아 안 보고 싶었나?”
강우가 강용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강용이 제법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형아, 원래 비행기 타면 이렇게 몇 밤이나 있다 오는 거였어?”
“어, 비행기 타면 원래 그래.”
강우의 말에 강용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혼자 노느라 진짜 심심했어.”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친구들과 멀어진 강용이었다. 혼자 놀기가 매우 심심했나 보다.
“남은 방학 동안은 형아가 많이 놀아줄게.”
“진짜지? 약속?”
강용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강우가 강용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아싸!”
강우에게 목적을 이룬 강용의 다음 목표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였다.
“선물이에요?”
“응, 선물이야.”
강용의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크리스마스 때도 선물을 받지 못한 강용이었다.
“내가 뜯어볼래요.”
아버지의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가 강용의 작은 손에 의해 차근차근 해체되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 중이던 어머니가 거실로 나왔다.
“선물을 많이 사 왔네요?”
“어, 중국에서 알게 된 형님이 이것저것 보내주셨어.”
형님이라는 말에 강우 어머니의 얼굴에 진한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선물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이건 월병이야. 한국에서 먹었던 거랑은 맛의 차원이 다를걸? 어디 보자 이건 달여 먹는 차네······.”
선물꾸러미에는 온통 먹을 것이 가득했다. 위진오가 중국의 전통이 담긴 식품으로 잔뜩 선물한 것이다.
“내 술은 여기 있군.”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위진오가 선물한 술을 찾아낸 것이다. 강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술은 돌아보지도 않으신다더니.’
역시 남자와 술은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인가보다. 아버지의 캐리어에서 위진오가 선물한 술이 계속 나왔다. 어찌나 많은 술을 선물했는지 세관을 통과할 때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애주가 아니랄까 봐.’
선물꾸러미가 모두 해체되자 강용의 얼굴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사실 어린 강용이 반길만한 선물이 있을 리 없었다. 어른들의 시선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강용에게는 강우가 있었다.
“강용이 선물은 형아가 사 왔지.”
강우가 캐리어에서 야시장에서 샀던 선물을 꺼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작은 동물 모형들이었다. 강용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와! 형아 이거 뭐야?”
강용이 강우의 손에 들린 동물들을 단숨에 낚아챘다. 화려한 색감으로 칠해진 동물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싱글벙글했다.
“진짜 예쁘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기억 속 어른이 된 강용은 피규어 수집을 참 좋아했었다.
“마음에 들어?”
“응! 역시 형아가 짱!”
강용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 모습에 부모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엄마 거예요.”
강우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선물을 꺼냈다. 미대를 나온 어머니의 미적 감각에 어울리는 중국식 머리핀이었다.
“어머? 아들~ 엄마 선물도 사 왔어?”
어머니가 선물을 받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며 불만을 토해냈다.
“아들, 아빠 선물은?”
“아빠 선물은 대부님인 거로 해요.”
“뭐? 하하!”
아버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선물 증정식이 끝나자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갔던 일은요?”
“너무 잘됐어. 우리 장남이 아주 대단한 활약을 했지.”
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며 대견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궁금해 죽겠는지 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강우가 또 어떤 대견한 일을 했길래?”
강우가 말없이 씩 웃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아니 글쎄 강우가 그새 중국어를 공부했더라고.”
“네에? 중국어를요?”
어머니가 놀랍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흥분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중국인들 말로는 자기네 아나운서 뺨치는 실력이래.”
“그래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선이 강우에게 쏟아졌다. 민망해진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밥 먹으면서 얘기해요. 아빠 시장하실 거예요.”
“그래, 준비는 다 됐으니까. 가서 먹기만 하면 돼.”
짐 정리가 끝나고 강우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어머니는 강우와 아버지가 돌아오자 집안이 가득 찬 거 같다며 너무나 좋아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장남이.”
아버지의 입에서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무용담 같은 두 부자의 출장기에 어머니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임성환 사장이 언급되는 부분에서는 연신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들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뻔했네요.”
“응, 아들 데려가기를 진짜 잘한 거 같아.”
쏟아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칭찬 세례에 강용의 승부욕이 발동했다.
“엄마, 아빠! 나 시금치 이만큼이나 먹는다?”
강용이 시금치를 잔뜩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울상이 된 얼굴로 열심히 오물거렸다. 잔뜩 빵빵해진 볼이 마치 햄스터 같았다. 우스꽝스러운 강용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강용이 최고네.”
가족의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이내 강용이 캑캑거리고 어머니가 급하게 물을 떠주었다.
“강용아, 천천히 먹어야지.”
식탁 위의 음식들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이 맛있다고는 하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느새 식사를 끝낸 강우가 둘러앉은 가족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좋다.’
강우가 가족의 화기애애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문득 외삼촌의 학원에서 나오던 날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맨몸이나 다름없었는데 말이지.’
그날의 다짐대로 강우는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내 가족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기억 속 아버지에게 큰돈을 안겨준 사업이 바로 일본과의 고추 사업이었다. 기억보다 훨씬 큰 성과를 얻었고, 위험 요소까지 완벽하게 제거했다. 이제 당분간 강우 가족에게 닥칠 위험은 없을 것이었다.
‘이제 한고비는 넘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