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으러 오세요
학교가 끝나고 강우가 교문을 벗어났다. 4교시만 하는 토요일이라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오늘은 이재원을 만나 과외를 하는 날이었다.
빵.
경적이 울리고 멋들어진 스포츠카가 강우의 앞쪽으로 다가왔다. 강우가 익숙하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주변의 학생들은 이미 익숙한지 강우를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밥 먹었냐?”
운전석에 앉아있던 이재원이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배고파 죽겠어요.”
“그래? 그럼 밥부터 먹자.”
스포츠카가 웅장한 엔진음을 뿜어내며 학교 앞을 벗어났다. 이윽고 스포츠카가 빨간 간판의 피자가게 앞에 멈춰 섰다.
“피자 어때?”
“좋죠.”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당시의 피자는 꽤 비쌌다. 사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종업원들이 밝은 얼굴로 두 사람을 맞아 주었다. 자리에 앉은 이재원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네, 거절은 안 합니다.”
강우가 메뉴판을 보며 이것저것 시켰다. 한창 먹을 나이인 강우는 요새 들어 식욕이 더 왕성해졌다. 강우가 슬쩍 배를 어루만졌다. 미래의 기억 속에 배불뚝이 아저씨인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선명한 복근이 느껴졌다. 딱히 운동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성적표 나왔지?”
“네.”
이재원은 약속대로 주말마다 과외를 해주었다. 사실은 과외를 빙자한 얼굴 보기였다. 하지만 강우는 이재원을 묵묵히 만나주었다. 강우가 가방에서 성적표를 꺼내 들었다. 이재원이 눈을 빛냈다.
“이거 기대되는데?”
이재원은 강우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성적표를 확인한 이재원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강우의 반 석차는 1등이고 전교 석차는 18등이었다.
“반에서 1등인데 전교 석차는 좀 낮네?”
“네, 이과 빼고 문과에서만 따지면 전교 7등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과 쪽에 공부 좀 하는 애들이 몰려있긴 하지.”
“그렇죠. 뭐. 아무래도 이과 쪽이 전망이 밝으니까요.”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샐러드바로 갔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먹을 것을 담아왔다. 샐러드바에서 돌아오자 곧 피자가 나왔다.
“잘 먹을게요.”
“그래, 많이 먹어라.”
강우가 피자를 자르고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는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역시나 피자는 미래나 지금이나 맛있었다. 두 남자가 만났으니 그 식성도 대단했다. 커다란 피자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역시 피자는 여기가 맛있네.”
이재원이 다시 메뉴판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메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강우가 입안 가득 피자를 오물거리며 물었다.
“또 뭐 시키게요? 배부른데.”
“어? 아니야. 먹어.”
이재원이 메뉴판을 내려놓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윽고 남은 강우가 남은 피자 조각을 해치워버렸다. 포만감을 느낀 강우가 배를 쓸어내렸다.
“강우야, 너희 학교 이 학년이 전부 몇 명이지?”
“갑자기 그건 왜요?”
“아···. 그냥 궁금해서.”
강우가 잠시 셈을 해보았다.
“넉넉히 800명은 될걸요?”
“음···. 그렇군.”
이재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 잘 먹었어요.”
“다 먹었으면 공부하러 가자.”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강우가 가방에서 참고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성적도 잘 나왔는데 오늘은 좀 쉬죠.”
“서울대 온다며 전교 18등이면 장담 못 한다.”
“첫술에 배부릅니까? 저 1학년 때 마지막 성적이 28등이었거든요?”
“하긴···. 그렇네. 이 괴물 같은 놈.”
이재원이 혀를 내두르며 웃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물었다.
“그나저나 일은 잘돼 가요?”
“어, 회장님 설득은 거의 끝나간다.”
이재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난 강우의 조언 이후 이재원은 삼우 건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삼우 건설의 건설 현장을 순회하고, 대학의 인맥을 총동원해 내부 사정을 파기 시작했다.
“삼우 건설. 아주 엉망이더라. 분양률도 엉망이고 그나마도 부실시공이 의심되는 것도 있어. 은행 부채 비율도 높은 데다가 대금 돌려막기도 하고 있더라.”
“거봐요. 내가 부실기업일 거라고 했죠?”
이재원이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가끔 네가 고등학생인지 헷갈린다니까?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뭐···. 지난번에 신 교수님이랑 프로젝트 할 때 이것저것 찾아본 게 좀 있어서요.”
말을 마친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재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인터넷에 그런 것도 나오냐? 와···. 경제학박사들 다 실직하는 거 아니야?”
“하하···.”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인터넷에 그런 정보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미래의 기억입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튼, 회장님은 거의 넘어왔는데. 인수 추진하던 그룹 간부들이 말이 좀 많은가 봐.”
“음···. 확실한 한방이 필요하겠네요.”
“이미 준비했지. 신 교수님한테 부탁해놓았다.”
“오? 잘했네요.”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했다. 원주 아버지 즉 신철민 교수는 재계에서도 유명했다. 유명 대기업의 자문도 여러 번 맡았었다.
“그동안 모은 자료를 신 교수님한테 드리고 자문 형식으로 회장님에게 연락드리라고 했지.”
“네, 그러면 형네 아버지도 마음을 굳히시겠죠.”
대진 그룹의 모든 실권은 창업주인 이철금 회장에게 있었다. 그의 말이 법이고 곧 그룹이 나아갈 방향이었다.
“잘됐으면 좋겠다. 이번 일만 잘되면 좀 인정해 주시겠지.”
“그 이상일걸요?”
강우가 씨익 웃었다. 현재 대진 그룹의 문어발식 확장은 곧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현금 유동성이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 IMF가 터지지.’
수많은 기업이 IMF라는 파도에 좌초될 것이다. 대진 그룹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재원은 그 공을 인정받을 것이다.
“과외 시작하자”
“네.”
강우와 이재원이 과외를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재원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참고서만 보고 1등 하는 애들이 있다고는 전설로만 전해지던데. 넌 진짜 뭐냐?”
“왜요? 과외도 하잖아요. 그것도 무려 서울대생의 과외.”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실소를 흘렸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강우가 문제를 푸는 것을 지켜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재원은 과외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
이재원이 집중해서 푸는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가에 들어간 이후 늘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비서 겸 감시자인 운전기사뿐이었다.
“얼굴 뚫어지겠네. 그만 좀 봐요. 남자의 그런 시선은 사양입니다.”
“야! 집중 안 하지?”
이재원이 되레 성을 냈다. 강우가 힐끗 이재원을 보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오늘 우리 집 가서 저녁 먹고 갈래요?”
“어?”
갑작스러운 강우의 제안에 이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우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요.”
강우가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재원이 허둥지둥하며 강우를 따라나섰다.
“야야! 이렇게 갑자기 가도 돼? 말도 없이?”
“그렇지 않아도 과외선생님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었어요.”
“아니, 그래도 연락도 없이. 그리고 빈손으로 가는 건 좀.”
강우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이재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가는 길에 장난감이나 하나 사가요.”
“장난감?”
이재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우리 집 실세의 마음을 얻으려면 장난감이 필수예요.”
“하?”
이재원이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차가 주차된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올라탔다.
“집 근처에 문방구 들리면 되니까 출발해요.”
“어어···.”
* * *
딩동.
강우가 벨을 누르자 이재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양손 가득 선물을 들은 이재원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덜컥.
“형아!!”
문이 열리고 강용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강우의 늦은 귀가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왜 늦었어? 나랑 같이 조이드 놀이하기로 했잖아!”
“아···. 미안. 오늘은 누구랑 좀 같이 오느라.”
강우의 말에 강용이 고개를 빼꼼 옆으로 내밀었다. 커다란 덩치의 강우에게 가려졌던 이재원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
“우와? 연예인이다.”
강용의 멍한 표정에 이재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강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 저 왔어요.”
강우의 코끝으로 향긋한 기름 냄새가 느껴졌다. 이재원이 온다는 소식에 한껏 솜씨를 발휘 중이신가 보다.
“강우 왔니? 얼른 들어와.”
강우가 이재원을 거실로 이끌었다.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재원이 소파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 모습에 강용이 크게 웃었다.
“강용아.”
강우가 강용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재원의 얼굴은 이미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미안 내가 경황이 없어서.”
“아니, 그룹을 손에 넣겠다는 사람이 뭐 그리 긴장을 해요.”
“그러게. 이상하게 긴장이 되네.”
이재원이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때, 어머니가 양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며 주방에서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우리 강우 과외선생님.”
이재원이 벌떡 일어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사실 강우랑은 친형제 같은 사이입니다.”
“천천히요.”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알겠다 하셨다. 그때였다.
“우와! 이거 뭐예요?!”
강용이 이재원이 사 온 장난감을 보며 크게 흥분했다. 이때다 싶은 이재원이 실세에게 뇌물을 바쳤다.
“이거 형이 강용이 줄라고 사 온 장난감이야.”
“와와! 진짜요?”
강용이 커다란 조이드 장난감 상자에 매달리듯 달려들었다. 이재원이 움찔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응, 이거 형이 강용이 처음 봐서 주는 선물이야.”
“감사합니다. 잘생긴 연예인 형.”
강용이 칭찬을 퍼부었다. 이재원이 또 웃음을 터트렸다.
“아휴~ 뭘 이런 걸 사 왔어요?”
“강우가 집의 실세한테 잘 보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해서요.”
이재원의 농담에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무슨 음식을 하셨는지 손에 묻어있던 밀가루가 어머니의 입가에 묻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다가가 어머니의 입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주었다.
“어? 아들 왜?”
“뭐 묻었어요.”
이재원이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강용의 방해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형, 우리 이거 같이 만들어요.”
“어? 어어. 그래.”
촤르륵.
이재원이 박스를 뜯고 안의 내용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차분히 조립을 시작했다. 어린 강용이 하기에는 어려운 조립이었다.
“와~ 잘한다!”
강용이는 나름대로 이재원을 옆에서 응원했다. 강우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재원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좋은가 보네.’
이재원의 상황을 아는 강우의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강우 왔냐?”
아버지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안방에서 나왔다. 종일 잠을 잤는지 머리가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우 과외선생님 아니 친한 형 이재원입니다.”
이재원이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강우 어머니에게 인사할 때보다 긴장한듯한 모습이었다. 이재원에게 아버지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강우가 말하던 그 형이군요. 잘 놀러 왔어요.”
무심한 듯 반가운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화장실로 향하셨다. 이재원이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샤아아.
샤워 소리가 들리고 이재원은 다시 강용과 조립을 했다. 강우는 주방으로 가 어머니를 도왔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요?”
미리 연락을 받은 어머니의 주방에는 온갖 음식들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 아들 과외선생님인데 엄마가 솜씨 좀 부려봤어.”
“하여간 우리 엄마 손 큰 건 알아줘야 해요.”
어머니가 다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강우는 다시 입가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주었다.
치이익. 치이익.
어머니가 특별한 날에 한다는 온갖 전들이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져 갔다. 기름기를 머금은 향긋한 냄새가 온 집안 가득 퍼져나갔다.
“어이구 이거 연기 봐라. 누가 보면 불난 줄 알겠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버지가 농담을 던지며 이곳저곳의 창문을 열었다. 이재원과 강용은 어느새 조립을 끝내고 조이드 배틀 놀이에 한창이었다.
“덤벼라!”
“우아아!”
이재원이 강용의 장단에 맞춰주며 놀이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본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생각해보면 이재원도 아직 20대 초반이었다.
“뭐 재밌는 거 안 하나?”
아버지가 소파에 앉으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자~ 다들 밥들 먹으러 오세요.”
어머니가 상차림을 끝내고 선언하듯 외쳤다. 아버지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아이고.”
강용이는 조금 더 놀면 안 되냐며 물었다가 어머니에게 제압당했다.
“이리로 와서 앉아요.”
어머니가 이재원에게 자리를 권했다. 강우 가족의 식탁은 4인 가족이 둘러앉기 딱 좋은 원형의 형태였다.
“내 자리.”
강용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이미 착석상태였다. 배가 고프신지 수저를 들고 부정 출발을 시도했다.
“여보?”
하지만 어머니에게 금세 제압당했다. 이재원이 어디에 앉을지를 모르고 주저했다.
“형 자리가. 잠깐만요.”
부족한 의자 숫자에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화장대 의자를 가지고 나왔다.
“내가 여기 앉을 테니까 형이 내 자리에 앉아요.”
“어? 아니 그냥 내가···.”
뻘쭘하게 서 있던 이재원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자 강용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양보할래!”
“우리 강용이 착하네.”
어머니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용이 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화장대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평소와는 달리 한 명이 늘어난 5명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좁은 식탁의 크기에 어깨가 부딪혔지만, 서로의 온기가 가득했다.
“이야? 이거 누구 생일이야? 상다리 휘어지겠네.”
아버지가 온갖 음식으로 가득 찬 상을 보며 감탄했다.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휴~ 뭘요. 우리 매일 이렇게 먹잖아요?”
“어?”
아버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머니의 눈빛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픽 웃으며 이재원의 팔을 툭 쳤다.
“형, 먹어요.”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겨있던 이재원이 작게 답했다.
“어···.”
강우 가족의 식사가 시작됐다. 강용은 연신 맛있다는 소리를 하며 강우에게 조잘거렸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버지는 그런 가족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음식이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어서 먹어요.”
“네, 어머님.”
이재원이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잘 먹겠습니다.”
이재원이 갈라진 목소리로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강우 어머니 표 된장찌개를 한 입 먹었다.
뚝.
이재원의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이 식탁 위로 떨어졌다. 옆에 있던 강용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형 운다.”
이재원이 황급히 눈가를 훔쳤다.
“아···. 그게 된장찌개가 매워서···.”
이상한 변명이었지만, 강우 부모님은 모른 척해주었다. 이미 강우를 통해 이재원의 가정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푸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 고춧가루가 좀 맵지. 물 마시면서 먹어요.”
그리고는 이재원의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어머니도 말을 보태며 이재원의 밥 위에 호박전을 올려주었다.
“된장찌개 매우면 전부터 먹어요.”
“네, 어머님.”
이후로는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재원은 어느새 밝게 웃으며 부모님의 질문에 답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재원의 넉살에 부모님은 아들 하나 더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과일 먹자.”
이윽고 거실에 둘러앉은 네 명의 남자에게 어머니가 과일을 가지고 나오셨다. 아버지가 소파로 올라가 앉으시더니 텔레비전을 틀었다. 화면이 밝아지고 이내 9시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뉴스를 보시며 이런저런 한탄을 하셨다.
“에잉···.”
사각. 사각.
어머니의 과일 깎는 소리가 들리던 때였다. 뉴스 앵커의 입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진 그룹이 삼우 건설의 인수에서 철수했다는 소식입니다. 대진 그룹은···.-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재원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강우야, 아무래도 내가 해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