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둘.
강용이가 다니는 양하 초등학교의 교문 앞에는 커다란 문방구들이 있었다. 그 앞쪽으로 강우가 스윽 나타났다.
“어딨지?”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여러 개의 문방구 중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문방구의 앞쪽으로는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중앙에는 강용이가 있었다.
“강요···.”
강용이를 부르려던 강우가 멈칫했다. 강용이의 손에는 일본에서 사 온 미니카가 들려있었다. 그동안 일본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의 부품 공급으로 화려하게 튜닝된 기체였다. 강우가 슬며시 문방구의 옆으로 다가갔다. 강용이는 잔뜩 집중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위이이잉.
강용이의 미니카에서 강렬한 모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강용이의 콧잔등으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야! 기찬우. 오늘은 내가 이겨.”
“어림도 없지.”
강용이와 함께 승부욕을 불태우는 아이는 강용이가 언급하던 기찬우였다. 순간, 머리가 살짝 아파져 오며 미래의 기억이 조금 떠올랐다.
‘찬우···.’
고개를 살짝 흔든 강우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문방구의 정문에 커다란 종이가 붙어있었다.
-양하 초등학교 미니카 대전.-
커다란 글씨로 적혀있는 글씨를 본 강우가 입꼬리를 스르륵 올렸다. 오늘은 학교 앞 문방구 사장님이 주최한 미니카 레이스의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미니카 세팅에 열을 올리더니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나 보다.
“자. 그럼 아저씨가 시작하면 동시에 출발하는 거다.”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아이들을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들이 벌이는 승부의 세계라니.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문방구의 앞쪽으로는 커다란 평상이 있었다. 평상 위에는 두 대의 미니카가 경주를 벌일 수 있는 플라스틱 레일이 있었다.
“자 시작!”
주인아저씨의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강용이와 기찬우가 기다렸다는 듯 미니카를 출발시켰다.
드르륵. 드르륵.
미니카가 레일을 달리며 마찰음을 뿜어냈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의 환호가 커졌다. 각자 친한 사람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강용이 이겨라!”
“찬우 이겨라!”
강용이의 표정은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승부욕으로 불타는 눈빛에 강우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승부욕 하나는 끝내줬다.
“아싸!”
승부가 갈렸다. 강용이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서는 레일 위를 계속해서 달리는 미니카를 손으로 탁 하고 막았다. 살짝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좁힌 강용이가 미니카를 집었다.
“찬우야, 오늘은 내가 이겼어.”
“그···. 그래.”
기찬우가 내심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강용이가 ‘척’ 하고 손을 내밀었다. 기찬우가 잠시 뻘쭘하게 있더니 강용이의 손을 마주 잡았다. 강용이가 손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너도 진짜 빨랐어. 다음에 또 붙자.”
“그래, 알겠어.”
두 아이의 표정에서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어린아이의 즐거움만이 남아있었다.
‘자식···. 제법 어른스러워졌네.’
그 모습을 보던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강용이었다. 아직 아담한 체구는 그대로였지만, 얼굴에서는 제법 소년의 티가 났다.
“축하한다. 이거는 우승 상품.”
문방구 아저씨가 잘 포장된 커다란 상자를 내밀었다. 강용이가 눈을 반짝이며 상품을 온몸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래, 강용아, 오늘 진짜 즐거웠다.”
이름까지 아는 것을 보니 강용이가 얼마나 자주 출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가 그보다 작은 상자를 기찬우에게 내밀었다. 준우승 상품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찬우도 오늘 잘했어.”
강용이와 기찬우가 미니카를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먼저 건전지를 빼고, 타이어를 분리하고 경주를 위해 달았던 부품들도 떼어냈다. 소중하게 담은 아이들의 모습에 강우가 스르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잘들 가라.”
주인아저씨가 손을 흔들어준 후 문방구로 들어갔다. 주인아저씨의 얼굴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아주 조촐한 대회가 끝나자 아이들이 개미 떼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고, 무거워.”
한 손에는 상품을 한 손에는 미니카 박스를 든 강용이었다. 강우가 강용이에게 다가갔다.
“어? 형아!”
강용이가 강우를 발견하고는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강우가 커다란 상품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강용이 우승 축하해.”
“형아, 봤어? 내가 찬우를···.”
말을 이어가려던 강용이가 멈칫했다. 기찬우가 이제는 울 듯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강우가 기찬우에게 다가갔다.
“안녕? 네가 찬우구나?”
“안녕하세요.”
커다란 강우의 덩치에 기찬우가 흠칫하며 인사했다. 강우와 강용이의 터울은 무려 아홉 살이었다. 이런 나이 차이가 나는 형제는 흔하지 않았다.
“우리 형아야.”
강용이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소개했다. 기찬우의 얼굴에 부러움이 떠올랐다. 강우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찬우는 형이랑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다고 했었지.’
미래의 기억 속 강용이는 친구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강용이에게 먼저 다가오고 늘 걱정해주던 친구가 기찬우였다.
“찬우 미니카도 진짜 빠르던데?”
“하지만, 강용이에게는 졌어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찬우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지. 다음에는 더 잘 세팅해서 우리 강용이 이기면 되겠네.”
“네?”
기찬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형과는 다른 부드러운 강우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형이었다면 아마 온종일 놀림감이었다고 생각했다.
“형아! 지금 찬우 편이야?”
강용이가 대번에 역정을 냈다. 강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아니야. 형은 항상 우리 강용이 편이지.”
“배신하면 안 된다?”
강용이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를 따라 허리에 손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강우가 자신의 임무를 떠올렸다.
“아···. 그런데 강용아, 너 점심 먹으러 안 들어갔어?”
“아! 맞다!”
강용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회에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엄마가 화 많이 났던데?”
“아아···. 나 죽었다. 형아, 어떡하지?”
강우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강용이가 점점 시무룩해져 갔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형아랑 제대로 놀다 들어가는 건 어떨까?”
“우와! 좋아!”
대번에 반색하던 강용이가 흠칫했다.
“괜찮아. 형아랑 놀다 왔다고 하면 안 혼나.”
“맞아. 형아 말이라면 엄마도 화 안 내.”
강용이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강용이는 계속해서 식단을 관리 중이었다. 저염식 위주의 식단이었다. 어린 강용이에게 저염식의 식단은 너무나도 힘든 것이었다.
“그래, 교수님도 한 달에 한 번은 괜찮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형아랑 둘이 맛있는 거도 먹고 신나게 놀다 들어가자.”
“좋아! 좋아!”
강용이가 펄쩍 뛰며 좋아했다. 미니카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더 신이나 보였다. 강우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기찬우가 부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음···.’
잠시 고민하던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인원 한 명 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기찬우는 강우에게도 좋은 기억이 있는 인물이었다.
“찬우 너도 갈래?”
“저···. 저도요?”
기찬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이내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가고는 싶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집에 대진 학습지 선생님이 와요.”
“아···. 그렇구나.”
강용이의 얼굴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찬우야, 그럼 다음에 같이 가자.”
“어···.”
기찬우가 멋쩍게 웃더니 집을 향해 후다닥 뛰어갔다.
“이제 가자.”
“응, 형아.”
강우가 미니카 박스를 강용이의 손에서 가져왔다.
“내가 들 수 있어.”
“형아가 들게.”
강우와 강용이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우가 남은 손을 스윽 내밀었다. 강용이가 콧등을 훔치더니 강우의 손을 잡았다.
* * *
치이익.
불판 위로 고기가 익어갔다. 강용이가 선택한 메뉴는 바로 돼지갈비였다. 식단조절 이후 강용이가 한참이나 못 먹었던 메뉴였다. 그리고 강우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으으···. 형아, 못 참겠어.”
익어가는 돼지갈비를 보며 강용이가 눈을 빛냈다. 강우가 고기 몇 점을 들어 익었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는 강용이의 앞으로 놓아주었다.
“이거 익었다. 먹어.”
“응, 형아.”
강용이가 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뱉어냈다.
“하아···. 맛있다.”
강용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강우가 그런 강용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래와는 달리 조금만 고생을 하면 괜찮아질 강용이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어.”
“응, 요즘은 엄마가 못 먹게 하는 게 많아서 조금 짜증이 났어.”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될 거라고 말하려던 강우가 말을 멈췄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그냥 즐기게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강우가 열심히 고기를 구워 강용이의 접시에 놓아 주었다.
“우와! 형아 최고야!”
강용이가 신이 나서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래, 실컷 먹어.”
“응, 오늘 진짜 많이 먹을 거야.”
자신이 장담한 대로 강용이는 정말 많이 먹었다. 점심까지 걸렀으니 배가 엄청 고플 만했다.
“형아, 나는 형아가 참 좋다.”
“응?”
갑작스러운 강용이의 발언에 강우가 눈을 살짝 떴다. 그러자 강용이가 내심 멋쩍은 듯 웃었다.
“그냥 좋다고. 형아는 항상 나 이해해주고. 이뻐해 주고. 그리고 나 아픈 것도 낫게 해주고.”
“.....”
강용이의 말에 강우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강용이가 다시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는 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 좋아. 하루하루가 지금 같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럴 거야.”
강우가 물끄러미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미래의 강용이는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성치 않은 건강과 기울어진 가정형편에 변변치 못한 학교생활을 했다.
‘늘 급식비가 밀려 교무실에 불려가고 옷도 다 낡은 것만 물려 입고. 돈이 없어서 친구들이랑은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PC방비가 없어서 친구들 옆에 정승처럼 서 있는 날도 허다했었다. 하지만 강용이는 착한 아이였다. 자신의 몸이 아프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도 늘 불만을 품지 않았다. 강우는 기억 속 그런 동생에게 참 미안한 게 많았다.
‘형이라고 하나 있는 게 자기 살기 바빠서 늘 허덕였으니···.’
가족과 동생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강우가 슬쩍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래의 기억은 기억일 뿐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고, 일어날 일도 아니었다.
“이거마저 먹어.”
강우가 한 점 남은 고기를 강용이에게 내밀었다. 강용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형아, 먹어.”
강우가 씨익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형아가 강용이에게 전부 다 해줄게. 그러니까 이것도 너 먹어.”
“응···.”
강용이가 살짝 망설이더니 고기를 입안에 쏙 넣었다. 그리고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강우는 그 미소가 참 좋았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딸랑.
가게 문을 열고 강우와 강용이가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우가 슬쩍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집에 갈래?”
강용이가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 놀고 싶어.”
“음···. 그럼 형아랑 만화방 갈까?”
“조···. 좋아!”
강용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우와 강용 형제는 만화나 소설을 참 좋아했다. 이윽고 강우와 강용이가 만화방에 들렸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만화를 읽었다. 강용이는 작은 몸 옆쪽으로 잔뜩 만화책을 쌓아놓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만화방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가 스윽 들어왔다. 거실 안을 살짝 살피니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다.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들어와.”
“응.”
강우와 강용이가 총총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강우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
강용이가 형아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형아! 성고······.”
강우와 강용이가 흠칫 얼어버렸다. 두 형제의 방안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허리에 손을 '척'하고 올린 어머니의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너희 둘.”
강우와 강용이가 움찔했다. 강용이가 강우의 다리 쪽으로 쓰윽 다가와 붙었다. 강우가 강용이를 숨기듯 팔을 내밀어 감쌌다.
그 모습에 어머니가 실소를 흘렸다.
“아주 형제끼리 쿵짝이 맞아서 잘한다.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