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청춘을 위해!
부산에서의 첫 메뉴로 정해진 것은 돼지국밥이었다. 미래의 기억 속이나 지금이나 부산의 명물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강우와 친구들은 첫 끼를 먹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부산의 명물 거리 남포동 일대였다. 버스에 올라탄 강우와 친구들은 창가 쪽으로 나누어 앉았다.
“우악….”
버스는 정말 거칠게도 달렸다. 마치 자동차경주를 펼치는 듯 빠르게 달리는 버스에 강우와 친구들의 몸이 연신 들썩였다. 반면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은 일상인 듯 평온했다. 이윽고 버스가 목적지인 남포동에 도착했다.
치이익.
버스 문이 열리고 강우와 친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앞장서기 시작했다. 강우는 유독 길눈이 밝았다. 반면 길치인 신원주는 주변이 세상 신기한가 보다.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친구들과 거리가 벌어지면 허겁지겁 따라왔다.
“같이 가!”
이윽고 강우와 친구들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북적거리는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먹자골목이었다. 강우와 친구들은 곧장 시장 안의 돼지 국밥집으로 향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구수한 국밥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국밥 네 그릇 주세요.”
김춘배가 크게 소리쳐 주문했다. 주방에서 바삐 일하던 아주머니가 힐끗 강우 일행을 바라보았다.
“총각들, 서울에서 왔나?”
“네, 여행 왔습니다.”
아주머니가 푸근하게 웃었다.
“우리 집이 소문난 국밥집인지 알고 왔나? 여는 어째 알고 찾아왔대?”
강우와 친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먹자골목에 보이는 국밥집 중 아무 곳이나 들어온 것이다. 어쨌든 소문난 집이라 하니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뜨끈한 국밥이 강우와 친구들 앞에 하나씩 놓였다.
“먹자.”
강우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후루룩 떠먹었다. 살짝 기름진 듯한 맛이 입안에 퍼져 나갔다. 같이 나온 깍두기를 아삭 깨물어 먹으니 그 맛이 훌륭히 조화됐다. 힐끗 친구들을 보니 하나같이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아…. 잘 먹었네.”
순식간에 국밥을 해치운 강우와 친구들이 계산을 치렀다. 주인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로 배웅을 해주었다.
“총각들, 요 앞에 시장도 한번 들러보이소.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
“네, 감사합니다.”
식사를 마친 강우와 친구들이 국밥집을 나섰다. 속이 든든해지자 이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안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다.
“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김춘배가 눈을 빛냈다. 강우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PIFF 광장 가자는 거지?”
“어, 맞아.”
김춘배는 부산에 오면서 유독 남포동에 오고 싶어 했었다. 작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한 PIFF 일명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어졌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포동은 부산에서 알아주는 번화가이기도 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와….”
이윽고 PIFF광장에 도착한 강우와 친구들이 짧게 탄성을 뱉어냈다. 사방으로 극장이 있었고, 그 앞으로는 온갖 먹을 것들을 팔고 있었다. 미래의 포스터와는 달리 정성스러운 붓으로 그려낸 영화 간판들도 걸려 있었다.
“아…. 작년 영화제 때 꼭 오고 싶었었는데.”
김춘배가 아쉬움을 토해냈다. 1997년에 열린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에 열렸었다. 한참 수능을 앞둔 김춘배가 올 수 없었던 이유였다.
“내가 그거 방송으로 보면서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아?”
“그럼 올해에 참석하면 되겠네.”
강우의 말에 김춘배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지?”
“아니 이놈 김칫국 마시는 거 봐라? 그냥 구경 오라고.”
“야….”
김춘배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신원주와 남재식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김춘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구경부터 하자. 여기 분위기 진짜 좋네.”
“그렇지? 낭만이 줄줄 흐른다.”
김춘배가 거리의 분위기를 만끽하듯 양팔을 쫙 벌렸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강우와 신원주 그리고 남재식은 그런 김춘배를 따라다녔다. 이윽고 김춘배가 우뚝 멈춰 섰다.
“와….”
김춘배의 앞쪽 바닥으로 핸드프린팅이 줄지어 있었다. 모두 영화 관계자와 배우들의 핸드프린팅이었다. 김춘배가 무릎을 꿇더니 핸드프린팅 하나하나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한참을 있었다. 김춘배의 어깨가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
“......”
강우와 친구들이 묵묵히 김춘배를 기다려 주었다. 김춘배는 무언가를 다짐하듯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후아….”
이윽고 김춘배가 긴 숨을 뱉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강우와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강우는 그런 김춘배의 얼굴에서 왜인지 모를 후련함을 느꼈다.
“그렇게 좋냐?”
강우의 물음에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특유의 오바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우야, 지켜봐라. 언젠가 이곳에 내 손을 큼지막하게 박아 넣을 테니.”
강우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꼭 해낼 수 있을 거야.”
강우의 말에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원주와 남재식이 김춘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친구의 미래를 응원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김춘배가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자 다음 목적지로 출발!”
김춘배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강우와 친구들은 남포동을 한참을 돌아다녔다. 역시나 한창 먹을 나이의 강우와 친구들이었다. 다음 목표는 먹자골목 그 자체였다. 부산의 대표 번화가답게 먹을 것도 볼 것도 많았다.
“총각들 이리 오이소!”
자판을 깔고 영업 중인 아주머니들의 강렬한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강우와 친구들이 이끌리듯 간이의자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홀리듯 주문을 했다. 하지만 그 맛은 정말 끝내줬다.
“잘 먹었습니다.”
강우와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먹을 것 천지였다. 강우와 친구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먹고 죽자고 했지?”
강우가 눈을 빛냈다. 친구들이 결의에 차올랐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더라.”
“가자. 먹으러.”
강우가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강우와 친구들은 먹자골목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 * *
어느새 어두워진 부산 거리였다.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의 두 눈동자에서 빛이 쏘아져 나와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는 강우와 친구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시간 진짜 빨리 간다.”
남재식이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원래, 재밌는 거 할 때는 시간이 빛처럼 흐르는 거야.”
신원주의 말에 강우와 김춘배 그리고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한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가 소리쳤다.
“학생들, 송정에서 내린다고 하지 않았나?”
특유의 구수한 억양으로 알려주는 수동 알림 서비스였다. 강우와 친구들이 벌떡 일어나 뒷문으로 다가갔다.
삐이이.
신원주가 벨을 누르자 기사 아저씨가 룸미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윽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치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강우와 친구들이 차례대로 내렸다. 오전보다는 약간 지쳐있는 모습들이었다.
“학생들 여행 재밌게들 보내.”
기사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버스가 지나가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제 숙소에 가면 되는데.”
김춘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소를 알고 있는 강우가 역시 앞장서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강우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저기네.”
역시 길눈이 밝은 강우였다.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도 잘 찾네. 강우는 만능이야. 만능.”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첫날의 숙소가 있는 곳은 송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민박집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크기의 집이었다. 하얗게 칠해진 담벼락과 녹색으로 칠해진 철문이 인상적이었다.
끼이익.
조금은 낡은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나는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의 중앙에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수돗가가 있었다. 민박집의 안쪽은 인기척이 없었다.
“계세요?”
강우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부엌의 문이 드르륵 열리며 푸짐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강우와 친구들을 확인한 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민박하기로 한 학생들?”
“네, 안녕하세요. 김춘배로 예약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손에 묻은 물기를 옷에 쓰윽 닦더니 마당의 한쪽을 가리켰다. 강우와 친구들의 시선이 스르륵 돌아갔다.
“이쪽으로 오소.”
아주머니가 방문으로 다가가 벌컥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보이는 온돌식 방의 한쪽에는 이부자리가 잔뜩 놓여 있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차례로 방으로 들어갔다.
“일단 짐부터 풀자.”
강우와 친구들이 가방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들 앉았다.
“으아….”
“아아….”
친구들의 입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혈기 왕성한 나이라지만, 오늘은 정말 종일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반면 강우는 멀쩡했다.
“약골들 평소에 운동들 좀 하라니까.”
강우가 혀를 차자 친구들이 발끈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다 자기 같은 괴물인지 알아 아주.”
강우가 피식 웃었다. 이윽고 김춘배가 허리춤에 메고 있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와. 그렇게 먹고 놀았는데도 아직 많이 남았네.”
짐을 정리한 강우가 방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방으로 다가오던 아주머니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저녁들은 묵었나? 안 묵었으면 아지메가 맛난 저녁 차려 줄게.”
역시 인심 좋은 민박집다웠다. 저녁까지 차려준다고 하니 말이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닙니다. 저희 나갔다가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서요.”
“이 시간에 어딜 갈라고?”
강우가 힐끗, 대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밤바다에 좀 가려고요.”
“지금? 밤바다에 가면 바람이 찰 텐데?”
“아직 젊어서 튼튼합니다.”
아주머니가 강우의 건장한 체격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옷은 따듯하게 입고 가라.”
“네, 아주머니.”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주머니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총각들 너무 술 많이들 마시지 말고. 겨울 밤바다는 사람이 없어서 쪼메 위험하다.”
“네.”
그 말을 끝으로 아주머니가 부엌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짐 정리를 끝낸 친구들이 하나둘씩 방을 나왔다. 강우와 친구들이 민박집의 대문을 벗어났다.
“이제 밤바다 보러 가자.”
김춘배가 신이 나서 앞장섰다. 강우와 친구들은 한참을 걸었다. 부산의 바닷가 공기가 점점 진해질 무렵 친구들의 앞쪽으로 넓은 백사장이 펼쳐졌다. 강우와 친구들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텅 빈 백사장은 여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
“......”
강우와 친구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백사장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모래 밟을래?”
김춘배가 돌발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 강우가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는 냅다 백사장으로 달려들어 갔다.
“내가 먼저 간다!”
차가운 모래의 감촉에 온몸이 짜릿해 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해방감이 느껴졌다. 강우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아아아!”
크게 소리치며 달리는 강우를 본 친구들이 결심을 내렸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더니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헉헉….”
밤바다에서 한참을 달린 강우와 친구들이 백사장에 드러누웠다. 부산 하늘 위로 별들이 쏟아지듯 반짝이고 있었다.
“맥주 마실까?”
신원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재식이 자신도 가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김춘배가 허리춤에서 돈을 꺼내 신원주에게 주었다.
“갔다 올게.”
신원주와 남재식이 백사장을 또 달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어깨를 툭툭 부딪치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 백사장에 강우와 김춘배가 나란히 누웠다.
“강우야.”
강우가 스르륵 고개를 돌려 김춘배를 바라보았다. 김춘배의 눈동자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담겨있었다.
“왜?”
김춘배가 잠시 침묵했다.
“아버지한테 이야기 들었다. 고마워.”
“아…. 그랬냐.”
김춘배가 긴 숨을 토해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더라고. 아버지가 네 말 듣고 어음을 바로 할인해서 처리하셨거든. 손해는 좀 보셨다지만, 다른 공장들에 비하면 어휴….”
김춘배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김춘배의 어깨를 툭 쳤다.
“잘됐네. 별 탈 없어서.”
“그래, 다행이지.”
그때, 맥주를 사러 갔던 신원주와 남재식이 돌아왔다. 강우와 김춘배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잠깐 일어나봐. 신문지 좀 깔자.”
신원주가 백사장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강우와 친구들이 신문지 위에 둘러앉았다.
딸칵.
맥주캔이 따지고 하얀 거품이 흘러나왔다. 강우가 아차 싶어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남재식의 손에는 콜라 캔이 들려있었다.
‘휴….’
강우가 캔을 앞으로 내밀었다. 친구들의 캔이 가볍게 다가와 부딪혔다.
“우리의 청춘을 위해! 원샷!”
강우가 맥주캔을 단숨에 삼켰다. 친구들 역시 단숨에 캔을 비워냈다.
퍼엉. 퍼엉.
때마침 백사장의 누군가가 터트린 불꽃놀이가 하늘을 밝혔다. 마치 강우와 친구들의 청춘을 축하해주듯이 말이다.
“오! 폭죽이다.”
“우리도 사서 할까?”
강우가 씨익 웃었다.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