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402)

이 회사의 정체가 뭐지?

동양 무역에 세 명의 직원이 새로 뽑혔다. 강우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인원이었다.

“역시 아빠도 이 사람들이 제일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 일단 외국어도 잘 사용하고 무엇보다 성실해 보이더라고요.”

거실에 앉은 강우와 아버지가 이력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던 할아버지가 이력서에 호기심을 보였다.

“어디 나도 좀 보자꾸나.”

“네, 할아버지.”

강우가 새로 뽑은 직원들의 이력서를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할아버지가 옆에 있는 안경집에서 돋보기를 꺼내 쓰셨다. 그리고는 이력서를 집중해서 살피기 시작했다.

“김지숙. 이대를 나왔구나. 일본어를 잘한다고 나와 있고. 경력도 훌륭하구나. 삼우 종합상사 직원이었다니.”

김지숙은 강우가 제일 첫 번째로 뽑은 직원이었다. 대기업의 해외영업부에 있던 사람이었다. 아마 이번 IMF 사태 때 정리해고를 당한 듯했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김지숙을 뽑았다.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성실해 보이기까지 했다.

“네, 일 잘할 거 같더라고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이력서를 넘겼다.

“강종민.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구나. 전 직장은 삼정 무역상사였구나. 영어를 잘한다고 쓰여있고.”

강종민은 가장 먼저 면접을 봤던 인물이었다. 역시나 대기업의 경영지원팀에 다녔던 이력이 있었다. 마지막 인물을 확인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살짝 이채가 서렸다.

“오···. 이 사람은 나이가 많구나.”

강우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사람은 4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이름은 황규범이라는 인물로 역시 대기업에서 과장까지 지냈던 사람이었다. 역시나 IMF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 면접에 지원한 경력직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GIC의 일로 바쁘시니까요. 아무래도 회사 일을 조금 끌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어요.”

아버지는 GIC의 일로도 바빴다.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줄 사람으로 제격이었다.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단 세 명뿐이었지만, 강우의 선별한 인원은 구성이 완벽했다.

“상황이 이러니 좋은 인재들을 뽑기는 했다만,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알 수 있겠구나.”

강우와 아버지도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 무역이 제시한 조건이 좋다고는 했지만, 대기업 출신들은 엘리트라 볼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중소기업까지 면접을 보러온 것이다.

‘뭐···. 덕분에 횡재한 기분이긴 하지만.’

강우가 눈을 빛냈다. 비록 지금은 중소기업에 취업한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기업 부럽지 않은 회사로 만들어 갈 것이었다. 이번에 뽑힌 세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럼 출근들은 언제부터 하라고 할 게야?”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당장 내일부터 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렇구나. 이제 김치 공장 건이 제대로 바빠지겠어.”

강우와 아버지가 서로를 바라보며 전의를 다졌다.

* * *

다음 날, 강우와 아버지가 명동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늘은 새로 뽑은 직원들의 첫 출근날이었다.

“강우야, 오늘만 좀 수고해줘. 그리고 나면 당분간 집에서 쉬어도 돼.”

아버지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들렀다가 GIC 본사로 가셔야 했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강우의 도움이 필요했다.

“괜찮아요. 얼마 전에 여행도 갔다 왔고, 집에 있어도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런가···.”

아버지가 미안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견한 아들이 나이에 어울리는 하루를 보냈으면 했다. 하지만 강우는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 흔히 말하는 낭중지추 같은 경우였다.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빛을 내고는 했다.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참···. 누구 자식인지 잘났다. 잘났어.’

아버지의 시선을 받은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이윽고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첫 번째 출근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출근했습니다.”

깔끔한 양복을 입고 위에는 코트를 입은 남성은 첫 면접자였던 강종민이었다. 올해 나이는 29살로 나이보다는 약간 젊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뒤를 이어 김지숙이 나타났다. 역시나 투피스 정장을 입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황규범이 도착했다. 역시 꾸벅 인사를 하며 긴장감을 내보였다.

“다들 자리에 앉으시죠. 첫 회의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직원들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기 시작했다. 사무실 중앙에 있는 공간에 직원들이 둘러앉았다. 아버지가 상석에 앉아 부드럽게 웃었다.

“먼저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직원들이 서로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들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들 어제 들어서 알고는 있겠지만, 다시 한번 우리 회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된 프린트물을 나누어 주었다. 동양 무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있는 것이었다. 지난 밤새 강우가 준비한 것으로 아버지도 읽어보고는 감탄했다.

“일단 읽어보시죠. 회사의 규모와 사업계획 그리고 각자 맡아주실 업무를 적어놓았습니다.”

강우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짙어졌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프린트물을 가리켰다. 직원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프린트물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얼굴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자본금이···. 60억?”

황규범이 눈을 비비며 프린트를 다시 보았다. 혹시나 숫자가 잘못 적힌 게 아닌가 싶었다. 김지숙은 일본에 세워진다는 공장에 관한 부분을 보며 놀라워했다.

“일본에 공장을 짓고 있다고요? 이 정도 규모의 공장을요?”

강종민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다. 그저 IMF라는 취업난을 잠시 비껴갈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양 무역은 강종민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

사업계획을 읽는 직원들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우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해주실 일은 안쪽에 적혀있는 대로입니다.”

강우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을 이어받았다.

“황규범 씨의 직책은 부장으로 하겠습니다. 연봉은 면접 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앞으로 회사의 전체적인 업무 진행을 확인해 주시고요.”

“네, 이사님.”

황규범이 부장이라는 직책에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도 다른 중소기업들보다 두둑한 연봉을 떠올렸나 보다. 아버지가 김지숙을 바라보았다.

“김지숙 씨의 직책은 대리입니다. 일본 쪽이랑 연락하면서 공장의 건설 상황을 점검해주세요. 그리고 일본에 영업전략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군요. 일본 쪽 직원들에게는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네, 이사님.”

김지숙의 얼굴에 의욕이 불타올랐다. 신생 회사라 해서 당분간은 일거리도 없으려니 했다. 하지만 오자마자 커다란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강종민을 바라보았다.

“강종민 씨의 직책도 대리입니다. 앞으로 일본 쪽 공장에 직원들을 대량으로 뽑을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면 직원들 관리에 신경 써주세요.”

“네, 이사님.”

“그동안은 황 부장님을 도와서 국내 업무를 맡아주고요.”

강종민이 눈을 빛내며 답했다.

“네.”

아버지의 지시사항은 깔끔했다. 강우도 내심 감탄했다. 역시 아버지는 유능했다.

“마지막으로 제가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사무실에는 자주 못 들를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서 보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황규범 부장의 얼굴에는 강한 책임감이 떠올랐다.

“이사님, 회사를 잘 키워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황규범 부장이 꾸벅 인사를 했다. 중년의 실직자에게 동양 무역은 마지막 기회의 장소나 다름없었다. 나머지 두 명의 직원들도 아버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비록 세 명뿐인 직원이었지만, 든든함을 느꼈다. 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까 각자 업무 파악에 집중해 주시고요. 서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시길 바랍니다. 이제 같은 직장의 동료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에 직원들이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역시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황 부장님.”

“이사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황 부장,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잘 부탁해.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다들 회식 괜찮지?”

직원들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서로가 친분을 쌓는데 회식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네, 좋습니다.”

“저도 시간 괜찮아요.”

단 세 명뿐이니 서로가 어색한 것도 빨리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때 강종민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 이사님.”

“강 대리, 말해.”

강종민 대리가 강우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 계신 분은 회사의 어떤 분이신지···.”

강종민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면접 날 보여준 강우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했나 보다. 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인사들 해. 여기는 내 아들 박강우. 올해 20살이고···.”

강우의 나이가 흘러나오자 세 명의 직원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려 보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였을까 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직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 대주주님이기도 하지. 앞으로 종종 회사 일을 도울 테니 다들 편하게 지내.”

그때였다. 김지숙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깜짝 놀랐다.

“어? 이번에 수능 만점자? 맞죠?”

“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특히 또래의 자식을 둔 황규범 부장은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3개 국어에 수능 만점에···. 대단합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가볼 테니까 오늘은 강우가 업무 파악을 도와줄 거야.”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며 아버지를 배웅했다. 아버지가 사무실을 나서자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우에게 쏟아졌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오늘의 업무를 시작해보죠.”

강우와 직원들은 온종일 업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준비해놓은 설비 업체와 원자재 업체들 그리고 중국 쪽 회사들까지 파악할 게 많았다. 직원들은 이 많은 일을 아버지 혼자 했다는 것에 놀랐다.

‘아버지가 대단하시긴 하네.’

강우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그동안 일당백의 업무를 처리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GIC 한국지사의 일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퇴근 시간이 됐다.

딸랑.

회사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돌아왔다. 직원들이 존경심이 담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다들 첫날 업무 수고했어. 퇴근들 하지.”

직원들이 대번에 밝아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와 직원들은 곧장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첫 회식인 만큼 아버지가 통 크게 소고기를 사셨다. 강우도 자리에 함께했다.

치이익.

불판 위로 소고기 익어갔다. 오늘의 막내 강우가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강우야, 이거 내가 해도 되는데···.”

강종민이 연신 불편한 듯 집게를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강우가 씨익 웃으며 거절했다.

“제가 고기를 잘 구워서요.”

강우가 강종민을 바라보았다. 첫날 받았던 인상대로 강종민은 배려심이 많고 세심한 성격이었다.

“우와~ 강우는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고기도 잘 굽네.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일본 쪽 업무는 걱정하지 마. 내가 빠르게 파악할 테니까.”

김지숙은 똑 부러지고 당찬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다. 오늘도 업무를 파악하는데 가장 열성을 보였다.

“네,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당분간은 물어보셔도 돼요.”

“그래, 알겠어.”

김지숙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강우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오늘 강우 덕분에 업무 파악을 잘 끝냈습니다. 앞으로는 제게 맡겨 주시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규범은 아버지와 대화 중이었다. 황규범은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었다. 대기업에서의 오랜 경험도 장점이었다.

‘내가 뽑았지만, 정말 잘 뽑았네.’

아버지를 보니 역시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당분간 함께할 직원들이 이리 훌륭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고기가 모두 익었다.

“이제 드세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강종민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소주병을 든 강종민이 아버지를 시작으로 황규범 그리고 김지숙의 잔을 채웠다.

“아···. 강우는···.”

강종민이 머뭇거리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강우도 한잔해야지.”

“네, 이사님!”

강종민이 환하게 웃으며 강우의 잔을 따라주었다. 강우가 소주병을 넘겨받아 강종민의 잔을 채웠다.

“고마워.”

잔을 채워주는 것도 고맙다는 강종민이었다. 잔이 채워지자 아버지가 건배를 제안했다.

“자! 오늘 처음 출근해서 적응들 하느라 고생했다. 앞으로 동양 무역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길 바란다. 자! 건배!”

아버지의 선창이 끝나자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양 무역을 위하여 건배!”

강우가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강종민은 반만 비운 상태였다. 강우의 시선을 받은 강종민이 멋쩍게 웃었다.

“아···. 내가 술을 잘하지 못해서.”

“무리하지 마세요.”

강종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김지숙은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는 고기를 집어 아버지와 황규범에게 놓아드렸다.

“이사님, 부장님. 드세요.”

역시 똑 부러지는 성격이 확실했다. 황규범이 빠르게 아버지의 잔을 채우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이사님,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저희 연봉도 신경을 써주시고. 앞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래, 황 부장만 믿을게.”

아버지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많은 사회생활의 경험이 어디 가나 싶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이어졌다.

“글쎄 말이야. 우리 강우가···.”

술기운이 돈 아버지가 강우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일과 일본에서의 일들을 들은 직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스무 살 맞아?”

강종민이 실소를 흘렸다. 김지숙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우를 보았다. 황규범은 그저 부러울 따름인가 보다.

“이사님, 우리 아들도 강우처럼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아버지가 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뚜르르. 뚜르르.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딸칵 전화를 받자 이재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야, 어디냐?-

대뜸 어디냐고 묻는 이재원이었다.

“여기 명동이요. 오늘 회사 회식 있어요.”

-아. 맞다. 오늘 직원들 첫 출근이라고 했지?-

강우 가족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이재원이었다.

“네, 지금 한참 회식 중이에요.”

-그래? 거기 어디냐? 나도 가도 될까?-

“형이요?”

강우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재원이냐?”

“네. 여기 와도 되냐고 묻는대요? 어쩌죠?”

아버지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하지만 오늘은 동양 무역의 회식이 아니던가.

“일단, 이 앞으로 오라고 해. 회식은 우리끼리 하고 끝난 다음에 재원이랑 술 한잔하자.”

“네.”

강우가 이재원에게 아버지의 말을 건넸다.

-오케이! 그럼 시간 맞춰서 천천히 갈 테니까. 끝날 때쯤 문자 한 통 보내줘.-

“네.”

통화가 끝나고 회식이 이어졌다. 첫날인 만큼 회식을 길게 하지는 않았다.

“자. 오늘은 1차까지만 하고. 다음에는 더 찐하게 회식을 해보자고.”

아버지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직원들이 알았다고 하며 대답했다.

“다들 조심히들 들어가.”

아버지가 직원들에게 택시비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하나같이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아니야. 시간도 늦었는데 고생들 하지 말고. 받아.”

아버지가 싫다는 직원들에게 기어코 택시비를 쥐여 주었다. 직원들이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빵.

그 순간이었다. 멀리서 한 대의 고급세단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리고는 강우와 아버지의 앞에 멈춰 섰다.

“아버지.”

차에서 내린 이재원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 집 큰아들 왔구나!”

“약주 많이 드셨어요?”

“하하! 오늘 기분이 좋아서 조금 마셨지.”

이재원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일이 바빠 집에도 못 온 이재원이었다.

“저랑도 한잔하셔야 하는데···.”

“괜찮아. 아직 더 마실 수 있어.”

“정말이시죠?”

이재원이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종민이 강우에게 슬쩍 물었다.

“위로 형이 있었어?”

“아···. 친형은 아니고요. 그냥 우리 집 큰아들이긴 해요.”

강종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사람을 잘 알아보는 김지숙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이름이 재원?”

한참 고민하던 김지숙이 깜짝 놀라더니 강우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재원? 대진 미디어 사장 이재원?”

“뭐?! 대진 미디어 사장?”

황규범도 화들짝 놀랐다. 이재원은 요새 재계에 떠오르는 신성이었다. 강한 추진력과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화제를 낳고 있었다. 그런 이재원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맞아요. 그 이재원.”

그때,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손짓했다.

“강우야! 뭐 해? 빨리 가자.”

“네, 잠깐만요.”

아버지는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 강우가 직원들을 바라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조심히들 들어가세요. 오늘 즐거웠어요.”

강우가 차로 달려가 앞자리에 탔다. 아버지가 창문 틈으로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들 들어가!”

마지막으로 이재원이 직원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앞으로 동양 무역을 잘 부탁드립니다.”

직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재원이 뒷좌석에 타자 차가 출발했다. 멀어져 가는 이재원의 차를 직원들이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로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황규범이 실소를 흘렸다.

“도대체···. 이 회사의 정체가 뭐지?”

강종민도 김지숙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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