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402)

우리 형아, 짱 멋진데?

강우와 부모님이 타고 있는 차 안에 옅은 긴장감이 흘렀다. 뉴스에서 연신 이번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졌고, 눈치작전으로 인해 고득점자들의 탈락이 예상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우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논술도 잘 봤고, 면접이야 뭐···. 말할 것도 없었지.’

이미 독립운동가의 손자라는 것도 알려진 강우였다. 면접장에서 강우는 교수들의 호의 넘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것이 아니더라도 강우의 면접은 완벽했다.

부우웅.

잠시 후, 서울대의 입구에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타고 있는 차가 나타났다.

뚜르르. 뚜르르.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이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했냐? 했어?-

“아직이요. 지금 서울대 정문이에요.”

-그래?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조금 긴장되네. 빨리 가서 확인하고 알려줘. 알겠지? 확인하자마자 알려줘야 한다?-

“네. 알겠어요.”

강우가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재원이니?”

어머니가 궁금한 듯 물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합격 확인하고 알려달라고 하네요.”

“그래, 빨리 가보자. 엄마도 긴장돼.”

어머니가 긴장하자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막상 서울대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렸나 보다.

“우리 아들이 수능 만점자인데 설마 떨어질 리가 있겠어?”

“어휴···. 그래도요. 떨려요.”

강우가 씨익 웃으며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주차를 마친 강우와 부모님이 서울대 안을 걸었다. 곳곳에서 합격을 확인하러 온 학부모와 학생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긴장감과 기대감이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이윽고 강우와 부모님이 대자보가 붙어있는 운동장에 도착했다.

“빨리 가보자.”

아버지가 경영학과의 합격자 명단이 붙은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열심히 강우의 수험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환한 표정이 되었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아버지가 대자보의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강우의 수험번호와 이름이 선명히 적혀있었다. 어머니가 대번에 밝은 표정이 되었다.

“아들! 축하해!”

어머니가 강우를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감사합니다. 잘 키워주셔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아버지는 대견한 표정으로 강우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강우도 그 손길이 참 따듯하고 좋았다.

“오늘은 우리 셋이서 축하 파티라도 하고 들어갈까?”

아버지가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도 내심 오붓한 시간을 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오늘은 설 연휴의 첫날이었다. 좋은 일은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게 강우의 마음이었다.

“집에 가서 파티해요. 강용이랑 할아버지도 함께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강용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늘 의젓한 형으로서의 모습인 강우였다. 근래 들어 더욱더 그러했다. 오늘만큼은 오롯이 강우에게 시간을 쓰고 싶었다.

“그러지 말고 대학 안도 좀 둘러보고 어디 좋은 데 가서 밥이라도 먹자.”

아버지가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강우가 결국 부드럽게 웃어버렸다.

“네, 그래요 그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강우가 힐끗 대자보를 바라보았다.

“잠시만요. 저 확인할 게 있어서요.”

강우가 대자보의 한쪽으로 움직였다. 신원주와 연정호의 합격이 궁금했다. 강우가 먼저 확인한 대자보는 신문학과였다. 역시나 신원주의 수험번호와 이름도 적혀있었다.

딸칵.

강우가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 신원주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원주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 핸드폰을 선물로 받았다.

뚜르르. 뚜르르.

몇 번의 신호가 가고 신원주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원주야.”

-어, 강우야. 너 합격했더라.-

“그래? 벌써 대자보 보고 왔냐?”

-아니 나 집이야. 우리 아버지가 확인해 줬어.-

“아···. 그랬냐. 아무튼, 너도 축하한다.”

신원주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우야, 고마워.-

“내가 뭘···.”

신원주는 강우에게 정말 고마워했다.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준 강우였다. 그리고 늘 옆에서 안정감을 가져다도 주었다.

-그럼, 조만간 보자.-

“어.”

전화가 끊어졌다. 강우가 이번에는 법학과의 대자보를 보았다. 연정호의 수험번호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자보를 훑어 내려가던 강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합격이네.’

연정호의 수험번호와 이름도 선명히 적혀있었다. 강우가 연정호의 집에 전화를 걸려다 말았다. 지금쯤 연정호는 아르바이트 중일 것이다. 연정호는 호프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강우야, 친구들도 합격했지?”

아버지가 강우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네, 원주랑 정호 둘 다 합격이에요.”

“잘됐네.”

어느새 다가온 어머니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합격을 확인하고 강우와 부모님은 서울대 안을 크게 한 바퀴 산책했다.

“우리 아들이 서울대생이라니. 엄마는 너무 행복해.”

어머니는 너무나 행복해했다. 자식의 경사가 자신의 경사보다 기쁜 것이 부모의 마음일 터였다. 아버지도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강우야, 남들은 대학 입학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야. 꼭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견문도 더 넓히고.”

“네, 아버지.”

강우와 부모님은 서울대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넓은 서울대를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배가 고파져 왔다.

“아들 밥 먹고 가자. 할아버지랑 강용이는 밥 먹었단다.”

강우와 부모님은 근처의 경양식집에 들렀다. 그리고 오붓한 저녁 식사를 했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재원의 전화가 왔다.

-합격이야 불합격이야? 연락 달라니까.-

“아···. 깜빡했어요. 당연히 합격이죠.”

-오케이.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툭 끊겼다. 강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뭐지? 뭐가 이리 급해?’

* * *

다음 날 아침부터 강우네 집이 분주했다.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맞이해 강우네 집은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주방에는 온갖 음식 재료들로 가득했다.

치이익. 치이익.

프라이팬 위로 전이 노릇하게 구워져 갔다. 강우는 식탁에 앉아 열심히 산적을 만들었다.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오늘만큼은 아버지도 팔 벗고 나서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는 주방에서는 정말 마에스트로였다. 전을 굽고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토란국을 끓였다.

보글. 보글.

한쪽에서는 어머니의 특별 양념이 들어간 돼지 갈비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편안해 보였다. 연신 콧노래를 부르는 어머니는 지금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어디 보자. 양념도 이 정도면 충분하고.”

어머니가 음식들의 간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온 가족이 맛있게 먹을 음식을 하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가장 큰 취미가 아니던가.

“엄마, 또 도와드릴 거 없어요?”

산적을 전부 만든 강우가 물었다. 어머니가 강우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우리 아들, 꼬치도 잘 끼네. 그럼 이제 전 굽는 거 좀 도와줄래?”

“네.”

이제 본격적으로 전을 구울 차례였다. 강우가 주방의 한쪽에서 전을 구웠다. 어머니는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엄마는 강우가 있어서 딸 부럽지 않네.”

“하하···.”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강우와 어머니가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다. 역시나 강우 어머니는 손이 컸다. 강우 가족이 먹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양의 음식들이 준비됐다.

“강우야, 세배하러 와야지.”

할아버지가 강우를 불렀다. 지난번 친구들에게 받은 세배는 용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진짜 세배는 오늘이라 하셨다.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요.”

“건강하세요.”

강우와 강용이가 꾸벅 세배했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세뱃돈을 주었다.

“그래, 강우는 대학 생활 잘하고. 우리 강용이도 건강하고.”

할아버지에게 세뱃돈을 받은 강용이는 잔뜩 신이 났다. 세뱃돈을 두 번이나 받았으니 그럴만했다. 이윽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거실에 앉았다. 강우와 강용이는 또 세배했다. 그리고 두둑이 용돈을 받았다.

“아싸! 나 이걸로 전동 BB탄 총 사야지!”

강용이는 요즘 BB탄 총싸움에 흠뻑 빠져있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나가 전쟁을 치른다며 난리였다. 이윽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세배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세뱃돈을 주었다.

“감사해요. 아버님.”

물론 아버지의 세뱃돈은 그대로 어머니의 품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제 먹자꾸나. 어멈이 해준 음식들 빨리 먹고 싶구나.”

할아버지가 입맛이 도는지 조금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의 음식솜씨야 자타공인 최고였다.

딸칵. 딸칵.

아버지가 거실에 교자상을 두 개나 놓았다. 교자상 위로 준비된 음식이 올려지기 시작했다. 온갖 전들에 돼지 갈비찜 그리고 소불고기가 놓였다. 따끈한 밥과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토란국도 놓였다.

“토란국이구나.”

할아버지가 국을 내려다보며 감상에 빠졌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명절마다 늘 먹던 음식이었다. 지난 추석은 할아버지와 강용이가 아파 간단히 지나갔었다. 할아버지가 강우네 집으로 오고 난 후 제대로 된 명절 음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님, 많이 드세요.”

“그래, 어멈아, 고맙다.”

할아버지가 첫술을 떴다. 그와 동시에 강우 가족의 식사가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정말 잘 드셨다. 완벽히 회복한 할아버지는 오히려 더 건강해 보였다.

“맛있구나.”

할아버지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아버지도 흐뭇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이거 맛있어요.”

강용이는 전을 집어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할아버지가 젓가락으로 전을 받으려 하자 강용이가 씨익 웃었다.

“할아버지~ 아아~”

강용이의 재롱에 할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크게 웃었다. 결국, 강용이는 할아버지에게 전을 먹이는 데 성공했다.

“우리 할아버지 잘 드신다.”

강용이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강용이는 강우 가족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가 이어지던 때였다.

“재원이는?”

어머니가 이재원에 관해 물었다.

“아···. 오늘 본가에서 밥을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랬구나.”

명절을 맞이해 이재원은 이철금 회장의 집에 갔다. 어찌나 투덜대며 가던지 강우가 적당히 하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달라진 이재원의 입지를 반증하는 일이었다.

“강우야, 밥 먹고 저녁에 아버지랑 짐 좀 싸자.”

“네.”

설날 당일인 오늘이 지나면 강우와 아버지는 중국으로 간다. 청도에서 위진오를 만난 후 같이 북경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중국도 춘절이라는 대명절 중이었다. 위진오는 강우와 아버지를 가족 모임에 초대했다. 정말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건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거니까 말이지.’

그때,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강우야, 이번에 장학금이 또 나오겠지?”

강우는 서울대 전체 수석 입학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서울대에서 장학금이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독립유공자 후손이었다. 대학 등록금은 나라에서 지원이 나왔다. 정확히는 학생회비만 내면 됐다.

“네, 그럴 거 같아요. 그런데 서울대 장학금은 포기하려고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다. 나라에서 장학금이 나오니까. 다른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지.”

“네.”

“그럼, 재원이가 주는 장학금에 국가지원 장학금까지 모두 두 군데서나 받겠구나.”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강우야, 그거 전부 받아서 뭐 할 거야?”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강우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대진 미디어에서 주는 장학금은 서울대 장학금과는 성격이 달랐다. 국가 장학금과 중복이 되지 않으니 어디에 쓰던 강우의 마음이었다. 강우는 그 장학금들을 어디에 사용할지 결정한 상태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요. 꼭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가족의 대견한 시선이 강우에게 쏟아졌다. 강우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우리 강우가 또 누구를 도울 모양이구나.”

“아직 확실한 거는 아니에요. 재원이 형한테도 말해봐야 하고요.”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강용이가 엄지를 '척'하고 들었다.

“우리 형아, 짱 멋진데?”

강용이의 말에 가족 모두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