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살아남거라.
충칭 장베이 공항 활주로로 한 대의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비행기는 크기도 크지 않았다.
위이이잉.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멈춰 섰다. 그리고 어디서인가 계단을 장착한 차량이 다가와 비행기의 중간에 도킹했다.
덜컹.
문이 열리고 강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살짝 창백한 표정을 보아하니 비행이 어떠했는지 알만했다.
“와···. 진짜.”
강우가 크게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계단을 이용해 활주로에 내려왔다. 땅이 솟아나듯 울렁거렸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이재원이 계단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우욱···.”
이재원도 창백한 표정이었다. 덜컹덜컹 계단을 위태로이 내려온 이재원이 땅을 밟았다. 그리고는 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강우야, 우리 살았다.”
“네, 형.”
그사이 동아리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계단을 앞다투어 우르르 내려온 동아리원들이 타고 온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진짜 좋은 경험 했네.”
“아까 비행기 방향 틀 때 몸 쏠리는 거 느꼈어?”
동아리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우와 일행이 타고 온 것은 상해에서 중경까지 이어지는 중국 국내선이었다. 다만 비행기가 크지 않은 비행기인 게 문제였다. 흔히 알고 있는 비행기와 다른 승차감에 감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이동합니다.”
강우가 크게 소리쳤다. 이제는 이번 여정의 상징이 되어버린 깃발을 든 채였다. 이미 익숙해진 깃발이 손에 착 감기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강우와 동아리원들은 버스를 타고 공항 건물에 도착했다. 일차로 출발해 기다리고 있던 대진 미디어의 촬영팀이 강우 일행을 반겼다.
“자~ 지금부터 또 촬영 들어갑니다. 다들 자연스럽게.”
동아리원들은 이제 촬영에 익숙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카메라를 보며 브이를 마구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강우 일행은 준비된 미니버스에 탑승했다.
“후···. 정신없네요.”
강우가 버스 좌석에 앉으며 긴 숨을 뱉어냈다. 어젯밤 광란의 뒤풀이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이동이었다. 강철 같은 체력의 20대였지만, 힘들만도 했다. 더군다나 타국이 아니던가.
“그러게. 힘들면 잠깐 눈 좀 붙이던가.”
“잠이 안 와요. 아까부터.”
강우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충칭에 가까워져 갈수록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행으로 인한 기압 차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공항을 나오고 미니버스에 타는 순간 점점 두통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강우가 두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미니버스는 달리고 달려 충칭의 임시정부가 있는 근처에 도착했다.
“강우야, 왔니?”
선발대로 출발해 호텔의 체크인까지 끝마친 아버지가 강우를 반겼다. 강우가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 곳을 바라보았다. 강우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임시정부가 있는 방향일 것이다.
“아버지, 동아리원들 짐 풀면 바로 임시정부 청사로 가야겠어요.”
강우의 마음이 급해졌다. 아버지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이번 여행 목적의 결실이 이곳에서 맺혀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확실히 어른다웠다.
“강우야, 마음이 급한 건 알겠어. 그래도 차분히. 알겠지?”
“네, 아버지.”
강우의 급했던 마음이 그제야 누그러들었다. 그렇게 강우와 동아리원들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곧장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충칭 임시정부 청사는 호텔에서 멀지 않았다. 미니버스가 임시정부 청사 앞에 멈춰 섰다.
‘도착했다.’
강우가 감회에 빠져 정면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커다란 석문의 상단에는 ‘부정시림국민한대’라는 문구가 선명히 박혀있었다. 강우의 뒤로 하나둘씩 동아리원들이 도착했다.
“들어가죠.”
강우가 석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짧게 감탄을 터트렸다. 좁은 골목의 양쪽으로 건물이 있었다. 위쪽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도 인상적이었다. 바로 이곳이 대한민국 충칭 임시정부 청사였다.
“와~ 여기는 상해에 있는 청사보다 훨씬 크다.”
상해와는 다른 규모에 동아리원들이 감탄했다. 그사이 촬영팀이 준비를 끝냈다. 오늘의 촬영도 허가를 맡은 상황이었다. 역시 위진오의 힘은 막강했다.
“일단 자유롭게 안쪽을 견학하겠습니다.”
동아리원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곳으로 흩어졌다. 강우는 혼자 남았다. 오늘만큼은 혼자 구경을 하겠다고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강우가 설레는 마음으로 1호 건물에 들어갔다.
‘잘 꾸며져 있네.’
철거 위기에 놓였던 것을 유명 독립운동가 장녀의 노력으로 1995년 복구를 끝마친 상태였다. 강우가 천천히 청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끈.
오전부터 시작된 두통이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강우가 마치 이끌리듯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백범 선생의 주석실이 있었던 3호 건물이었다. 3호 건물에는 주석실뿐이 아니라 재무부, 법무부 그리고 내무부로도 쓰였던 곳이다. 강우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 집무실에 도착했다. 마침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우가 끌리듯 집무실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책상에 손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윽···.’
강렬했던 두통이 머리를 때리더니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의 한 명의 위인이 나타났다. 의자에 앉은 백범 선생이었다. 강우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강우와 백범 선생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묵직한 목소리가 강우의 머리를 때렸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백범 선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백범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힘을 주어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 말을 끝으로 눈앞의 장면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강우가 손을 들어 이마를 훔쳤다.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헉헉···.”
갑자기 숨이 차올랐다. 강우가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땅이 빙글빙글 돌고 어질어질해져 왔다.
“강우야!”
때마침 연정호가 나타나 강우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야. 아까 비행 때문에 그런가 봐.”
강우가 손을 들어 괜찮다고 표시했다.
“내가 같이 다닐까?”
“아니야. 괜찮아. 오늘은 혼자 다니고 싶네.”
강우의 사연을 아는 연정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에게 이곳이 정말 중요한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겠어. 혹시 몸이 더 이상하면 꼭 말해줘. 무리하지 말고.”
“어,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강우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들려온 목소리의 의미를 곱씹었다.
‘분명 백범일지에 적혀있던 내용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강우가 당연히 읽어보았던 책이었다. 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결심하듯 속으로 말했다.
‘백범 선생님. 제가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 뜻을 이루어 보겠습니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강우에게는 이재원이라는 강력한 파트너가 있었다. 강우가 먼 미래의 기억을 떠올렸다.
‘백범 선생님의 말씀은 정확했다. 먼 미래에 문화의 힘이 바로 대한민국을 강하게 해주었으니 말이야.’
강우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여정이 끝나고 나면 이재원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강우가 집무실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아······.”
강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임시정부 청사의 곳곳으로 옛날 양식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강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두 임시정부의 분들이시구나.’
강우가 탄성을 뱉으며 청사 건물을 돌아다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과거의 모습에 감동이 차올랐다. 그리고 강우가 2호 건물에 도착했다. 2호 건물의 1층에는 식당이 2층에는 외무부와 회의실이 있었다.
“형님!”
그때, 눈앞으로 젊은 날의 할아버지가 지나갔다. 강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거다.’
강우가 빠르게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예전의 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강우가 집중해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장부를 맡았던 최경이었다.
“경아, 꼭 살아남거라.”
“네, 형님.”
최준의 손에서 나무상자가 전해졌다. 나무상자를 받은 최경이 눈을 빛내며 밖으로 나갔다. 강우가 빠르게 몸을 날려 뒤를 쫓아갔다.
탕. 타탕.
임시정부 청사를 벗어나자 전쟁통이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난리 통이었다. 거리에는 피난을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놓치면 안 돼.’
강우가 사람들을 비집고 어디로인가 향하는 최경을 쫓았다. 최경은 지난번의 기억대로 멀지 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탕. 타탕.
최경을 향해 눈먼 총알이 쏟아졌다. 그리고 최경의 몸 곳곳을 관통했다.
“커헉!”
최경의 입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 나오며 땅에 쓰러졌다. 강우가 화들짝 놀라며 최경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닿지도 만질 수도 없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경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피를 한 움큼씩 쏟아내던 최경이 한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우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여기는 어디지?’
곳곳에 임시정부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온 최경이 지하의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비밀금고에 장부를 숨겼다.
“형님······.”
마지막 긴 숨을 끝으로 최경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게 바로 최경의 마지막이었다.
‘아···.’
강우의 두 눈이 붉어졌다. 잊힌 독립투사의 마지막은 비참하고 고독했다. 강우가 비밀금고를 향해 다가가는 순간 강우의 머리가 지끈하더니 영상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강우야, 멍하니 서서 뭐 해?”
강우가 짧은 탄성을 뱉어내며 영상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신원주와 채보라가 있었다.
“어머? 이 땀 좀 봐.”
채보라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다. 강우가 손수건을 받아 땀을 닦아냈다. 신원주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정호 말이 진짜네. 너 정말 괜찮냐?”
“어, 괜찮다. 그보다 다녀올 곳이 있다.”
강우의 말에 채보라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디? 너 이제 인터뷰해야 해.”
“금방 올게요.”
강우가 몸을 날리듯 건물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영상 속 최경이 갔던 곳을 그대로 따라갔다. 굉장한 속도로 달리는 강우를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신체 능력이 좋은 강우는 숨도 차지 않았다.
“아···.”
이윽고 강우가 기억 속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안타까운 표정이 되었다. 눈앞에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이제는 여러 개의 상점이 들어선 이곳은 강우도 알 거 같았다.
‘광복군 사령부 건물이었어···.’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역시 재개발의 여파로 철거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보존을 결정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남는 곳이었다. 강우가 긴 숨을 뱉어냈다.
“일단 장부는 찾은 거 같군.”
강우가 눈을 빛냈다. 이제 이 건물을 어찌해야 할지의 문제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해답은 명확히 남아있었다.
‘이 부지도 우리가 임대해야겠어. 그리고 건물들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강우가 건물을 보며 감회에 빠졌다. 허름하고 낡은 임시정부의 파편을 그 어디보다 화려하고 훌륭하게 탈바꿈하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