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우가 제일 바빠 보이는구나.
부우웅.
한 가족이 모두 탈 만한 승합차가 서울대 캠퍼스에 나타났다. 승합차는 그대로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드르륵.
주차가 끝나고 뒷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작은 발이 불쑥 나타났다.
“영차.”
땅으로 내려앉은 작은 발의 주인공은 강용이였다. 차에서 내린 강용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 빨리.”
“알았어. 강용아.”
강용이의 뒤를 이어 어머니가 내렸다. 그때, 운전석과 조수석이 열리며 강우와 아버지가 내렸다. 두 사람은 곧장 뒷문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내리세요.”
강우의 말에 안쪽에 타고 있던 할아버지와 최준이 내렸다.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캠퍼스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대단하군.
할아버지와 최준이 인파를 보고는 감탄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아들, 학생들 강의 듣는 데 방해되겠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교수 회의에서 오늘만 휴강하기로 했으니까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부시키기로 유명한 서울대에서 축제 기간에 휴강이라니 그럴 만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축제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요. 금요일이니까요.”
“그랬구나.”
강우가 씩 웃으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금요일인 오늘은 수, 목, 금으로 이어진 축제의 막이 내리는 날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농구 결승과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 결승이 모두 있었다. 그리고 역시 초대가수들의 무대인 ‘라이벌’도 준비되어 있었다. 대미를 장식할 강우의 밴드 공연도 있었다.
‘한마디로 축제의 하이라이트지.’
그때, 할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축제 기간이면 친구들이랑 놀고 싶을 텐데. 이렇게 늙은이들까지 데리고 오고 괜찮겠어?”
“그러니까 말이지.”
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가족이랑 와야죠. 뭐를 하던지 가족이랑 하는 게 제일 즐겁잖아요.”
강우의 말에 강용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형아 말이 옳소!”
아버지와 어머니도 대견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강용이가 조르르 달려와 강우의 손을 꽉 잡았다.
“난 형아랑 갈래.”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우와 가족이 캠퍼스 안을 걷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소문이 퍼져나간 덕분에 오늘은 정말 엄청 사람이 많았다.
“아이코….”
키가 작은 강용이가 인파에 치여 힘들어했다. 강우가 힐끗 강용이를 보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우아!”
강용이가 공중에서 바둥거렸다. 강우가 강용이를 자신의 등에 올려놓았다.
“목마다! 우와~ 다 보여! 형아 짱이야!”
잔뜩 흥분한 강용이가 마구 소리치며 좋아했다. 강우가 목말을 태운 채 인파를 헤치고 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최준을 보호하듯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캠퍼스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조금 한산해졌다. 사람들이 캠퍼스의 입구를 지나쳐 각각 흩어진 덕분이었다.
“이제 내려서 걸을까?”
“응.”
강우가 강용이를 땅에 훌쩍 내려놓았다. 강용이가 강우의 허벅지를 와락 안으며 웃었다.
“형아, 나 힘들면 또 태워줘. 알겠지?”
“어, 알았어.”
강우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때, 강용이가 앞쪽을 가리켰다.
“솜사탕이다!”
강용이가 솜사탕을 파는 노점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는 강우를 손짓으로 불렀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노점으로 다가갔다.
“솜사탕 하나 주세요.”
“네, 잠시만요.”
위이이잉-
솜사탕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노점상의 손에 들린 기다란 나무막대에 점점 솜사탕이 만들어졌다. 강용이가 눈을 반짝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여기 있습니다.”
강우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값을 치렀다. 그리고 솜사탕을 강용이에게 내밀었다. 강용이가 환하게 웃더니 솜사탕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마시써….”
강우가 말없이 웃으며 강용이의 볼에 묻은 솜사탕을 닦아주었다. 그사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할아버지와 최준을 모시고 나타났다.
“할아버지! 형아가 솜사탕 사줬다?”
“그랬어? 맛있어?”
할아버지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강용이가 솜사탕을 할아버지에게 쓱 내밀었다.
“할아버지도 먹을래요?”
“아니, 나는 됐어.”
강용이가 이번에는 최준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러자 최준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할아비도 됐어. 강용이 먹어.”
“네!”
강용이가 신난다며 솜사탕을 계속 먹었다. 어머니가 강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강우야, 나은이는?”
“아마 체육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빨리 가자. 엄마 나은이 보고 싶어.”
어머니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이나은과 함께 몇 번의 데이트를 통해 더 친해진 상태였다. 강우와 가족이 체육관으로 향했다. 강용이 덕분에 가는 길에 있는 노점에서 몇 번이고 멈춰서야 하기도 했다.
퉁. 퉁.
시합 준비가 한창인 체육관에 강우와 가족이 도착했다.
“나은아!”
강우가 이나은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불렀다. 벤치에 있던 이나은이 뒤를 돌아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강우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은 이나은은 오늘따라 더욱더 예뻤다.
“강우야!”
이나은이 강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족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강우 가족은 이나은을 보며 너무 반가워했다.
“우리 나은이 오늘 너무 예쁘네?”
“어머니도 정말 예쁘세요.”
특히 어머니와는 어느새 착 달라붙어 있었다. 또 강우 가족을 반기는 사람이 있었다.
“정식아!”
“형님.”
SLAM의 감독을 맡은 신철민 교수였다.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신철민 교수가 할아버지와 최준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들 오셨습니까?”
할아버지가 신철민 교수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철민아, 잘 지냈지?”
할아버지가 최준에게 신철민 교수를 소개해주었다.
“형님, 여기는 신철민 교수입니다. 우리 정식이랑은 형, 동생 하는 아이죠.”
“안녕하신가? 나는 최준이라고 하네.”
최준이 쓱 손을 내밀었다. 신철민 교수가 어쩔 줄을 모르며 최준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어르신,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허…. 영광까지야.”
최준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신철민 교수가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을 했다.
“한국 국적 회복하신 거 기사로 접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신철민 교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벤치 쪽을 공손히 가리켰다.
“이러지 말고 저기 가서 앉으시죠.”
할아버지와 최준이 신철민 교수의 안내를 받아 벤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와 강용이도 뒤쪽으로 앉았다. 어머니와 이나은은 도통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수다 삼매경이었다.
“엄마, 나은아, 나 유니폼 입으러 갔다….”
반응 없는 어머니와 이나은에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가방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이윽고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온 강우가 벤치로 향했다. 이재원과 신원주 그리고 연정호까지 모두 강우 가족과 함께 있었다.
“저 왔습니다.”
강우가 이재원과 신원주 그리고 연정호와 인사를 나누었다.
삑- 삑-
“시합 시작합니다. 선수들 나와 주세요.”
경기 진행을 맡은 심판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강우를 포함한 SLAM의 주전 멤버들이 코트 위로 나왔다. 오늘의 상대방은 기존에 있던 서울대의 농구 동아리였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대진운이 좋아 결승에 왔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삑-
상호 간에 인사를 끝내고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 아들 파이팅!”
가족들이 강우를 응원하며 소리쳤다. 가족들의 응원에 강우가 힘이 마구 샘솟는 기분을 느꼈다. 오늘따라 몸도 가볍고 컨디션이 정말 최상이었다.
퉁- 퉁-
강우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코트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말 그대로 상대 팀 림에 폭격을 쏟아부었다. 결승을 보러온 관중들의 함성이 마구 커졌다.
“대박! 진짜 잘한다.”
관객들의 환호성에 강용이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우리 형아, 잘한다!”
SLAM의 벤치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강용이의 주변으로 많은 동아리원이 모여있었다. 소문의 귀염둥이 동생 박강용의 실물을 접한 날이 아니던가.
“강용아, 이거 먹을래?”
“음료수도 마실래?”
쏟아지는 동아리원들의 구애에 강용이가 씩 웃으며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동아리원들이 단체로 귀엽다며 난리가 났다. 강용이는 어느새 경기는 뒷전이 됐다. 동아리원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놀기 시작했다.
“허허…. 강우는 운동도 참 잘하는구먼.”
최준이 감탄을 터트렸다.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젊은 시절 운동을 매우 잘했던 자신과 너무나 닮은 강우였다.
“저를 닮아서 그런가 봅니다. 형님.”
“맞아. 자네가 운동을 참 잘했었지.”
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아버지는 코트를 보며 몸이 바짝 달아오른 눈치였다.
“형님, 내년에는 우리도 팀 만들어서 참가해볼까요?”
“그래? 농구 좀 하나 봐?”
신철민 교수가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그럼요. 제가 카투사 있을 때 미군들이랑 게임 붙어도 안 밀리던 사람입니다. 우리 카투사들이 매일 내 덕분에 이겼어요.”
“그래? 운동 잘하는 건 집안 내력인가 보네. 나는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서 말이야.”
아버지와 신철민 교수가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어머니는 강우가 골을 넣을 때마다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은아, 우리 강우 참 잘한다 그치?”
“네, 어머니.”
이나은도 싱긋 웃으며 좋아했다.
삑삑- 삐이익-
한참이 지나고 경기를 끝내는 호각 소리가 울렸다. SLAM의 동아리원들이 코트로 쏟아져 나가며 즐거워했다.
“우승이다!”
“대박!”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동아리원들을 보며 강우가 화들짝 놀랐다. 마치 자신을 잡아먹겠다는 듯한 동아리원들의 파도였다.
“어어?”
강우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도망쳤다. 동아리원들이 끝끝내 강우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헹가래를 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하늘로 치솟은 강우가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몇 번의 헹가래가 끝났다.
“다음은 재원이!”
강우를 보며 실실 웃던 이재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양손을 마구 저으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니야. 하지 마.”
동아리원들이 이재원도 붙잡았다. 강우보다 가벼운 이재원이 더 높이 하늘을 날았다.
“으아….”
동아리원들의 손에서 벗어난 이재원이 코트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아리원들이 차례대로 신원주와 연정호를 헹가래 쳤다.
“지용이는 불가능이겠지?”
“아마도?”
마지막 남은 차례는 이지용이었다. 이지용은 올 테면 와보라는 듯 여유만만이었다. 거대한 이지용의 덩치를 누가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싶었다. 동아리원들이 고개를 저으며 포기하려던 순간이었다.
“잡아!”
강우가 크게 소리치며 이지용에게 달려갔다. 설마 하던 이지용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강우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강우가 이지용을 번쩍 안아 들었다. 동아리원들이 좋다고 웃으며 합세했다.
“오 마이 갓!!”
이지용이 하늘을 날았다. 그렇게 코트 위가 왁자지껄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와 최준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역시 젊음이 좋은 겁니다.”
“그러게 말일세. 참 보기가 좋군.”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SLAM의 동아리원들이 모여 우승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승 상금은 삼백만 원이었다. 대회 MVP는 강우가 차지했다. MVP 상품은 여행상품권이었다.
“우리 아들 축하해.”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들의 모습에 너무 행복했다.
“엄마, 아버지랑 여행 보내드릴게요.”
“정말? 너무 좋다.”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강우가 씩 웃었다. 그때, 신원주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급히 말했다.
“강우야, 결승 시간 다 돼간다. 빨리.”
“어? 벌써?”
강우가 화들짝 놀라며 샤워실로 뛰어갔다. 신철민 교수와 함께 2:2 결승에 오른 신원주도 강우의 뒤를 따랐다. 강우와 신원주 그리고 신철민 교수가 함께했던 3:3 경기는 시간이 부족한 강우 때문에 기권을 했다.
“허허…. 우리 강우가 제일 바빠 보이는구나.”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용이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역시 우리 형아가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