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찬성.
딩동. 딩동.
“내가! 내가!”
강용이가 후다닥 현관으로 달려갔다.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용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엄마아아아!”
“우리 강용이!”
열린 문 사이로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선글라스를 끼고 캐리어를 든 어머니의 모습은 참 예뻤다. 강용이는 대번에 어머니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미안~ 우리 강용이 엄마 많이 보고 싶었구나?”
강우가 주방에서 나오며 씩 웃었다. 지난 며칠 강용이는 씩씩하게 지냈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는 순간 본래의 나이로 돌아간 것이다.
“어머니 다녀오셨어요?”
“우리 장남 고생 많았지?”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지난 나흘 동안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하루였을 뿐이었다.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니에요. 그동안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죄송할 뿐이었어요.”
“아들···.”
어머니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슬쩍 안아주었다. 그 사이에 낀 강용이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강우가 어머니의 캐리어를 집 안으로 들였다.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서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어머니가 집을 보며 스르륵 웃었다. 역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의 집은 참 아늑한 기분을 주고는 했다. 어머니가 집 안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들은 안 계셔?”
“네, 오늘 인터뷰 있어서 방송국 가셨어요. 내일 저녁에 다큐멘터리 방영하거든요.”
“그래? 방송국에는 누가 갔어?”
어머니의 질문에 강용이가 빠르게 답했다.
“재원이 형이 모시고 갔어요!”
“그랬구나.”
강우와 어머니가 캐리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갈 때보다 빵빵해진 캐리어에는 가족을 위한 선물이 가득했다.
“이건 강용이 거.”
“우와!”
어머니는 강용이를 위해 나무를 깎아 만든 코끼리 조각상을 사 오셨다. 피규어를 좋아하는 강용이가 잔뜩 신이 나서 좋아했다. 강우를 위해서는 티셔츠 몇 벌을 사 오셨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티셔츠였다.
“이건···. 아들 거?”
“아···.”
강우가 티셔츠를 받아들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도 살짝 민망한지 말을 돌렸다.
“이건 할아버지들 드릴 말린 과일이고 이건 아빠 거.”
“네.”
강우가 티셔츠를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짐 정리를 끝낸 어머니는 단번에 냉장고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감탄을 했다.
“어머~ 밑반찬 다 먹었네?”
어머니가 뒤를 돌아 강우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진짜 대단하네? 끼니마다 요리해서 먹은 거야?”
“응, 우리 형아, 요리 엄청 잘해요. 엄마가 만들어 준 거랑 똑같아요.”
강용이가 기다렸다는 듯 엄지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바라보며 대견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엄마가 우리 아들 믿고 자리 비워도 걱정이 없겠네.”
“너무 자주만 비우지 말아 주세요.”
강우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어머니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방으로 들어간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는 주방 앞에 서서는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엄마가 여행 가서 생각해낸 새로운 요리를 해줄게.”
“우와! 신난다!”
강용이가 좋다고 펄쩍 뛰었다. 강우도 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가 돌아온 주방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익.
맛있는 냄새가 금세 주방을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딩동. 딩동.
“어어? 누구지?”
벨이 울리자 강용이가 벼락같이 튀어 나갔다. 이윽고 강용이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아아!”
강우가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는 가벼운 차림의 이나은이 있었다. 평범한 반바지에 반소매 티를 입은 이나은이었지만, 말 그대로 화보처럼 예뻤다.
“나은아?”
“안녕?”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싱긋 웃었다. 강우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사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은이 왔어?”
“네~ 어머니.”
이나은이 대번에 주방으로 향했다. 강용이는 이나은의 뒤를 따라갔다. 강우가 마지막으로 주방에 도착했다.
“어머니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그럼~ 너무 좋았어. 나은이도 잘 지냈지?”
“네, 저도 방학해서 집에서 쉬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이나은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우리 나은이가 나 없는 동안 집에 와서 강우 많이 도와줬다며? 참 착해.”
“아니에요.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잠깐 들렸어요.”
어머니의 칭찬에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어머니는 그런 이나은이 정말 좋았다.
“아 참. 엄마가 나은이 주려고 선물 사 왔어.”
어머니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나은의 선물을 들고나왔다. 면세점에서 산 화장품들이었다.
“자 나은이 선물.”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나은이 선물을 받으며 너무 좋아했다. 어머니는 또 싱글벙글 웃었다. 어머니와 이나은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주방에 나란히 서서 쉴 새 없이 웃음꽃을 피웠다. 강우는 식탁에 앉아 그런 두 여자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강용이도 왠지 모르지만, 아무튼 흐뭇한 표정이었다.
“자~ 완성.”
어머니가 음식을 내왔다. 어머니가 이번 여행으로 다녀온 태국의 음식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마침 재료들도 냉장고에 모두 있었다. 요리가 취미인 어머니의 주방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강우와 강용이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어머니의 음식솜씨는 장난이 아니었다. 강우가 입안 가득 음식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진짜 우리 엄마 음식점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맞아!”
강용이도 열심히 음식을 먹으며 맞장구쳤다. 이나은도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진짜 맛있어요.”
“그래, 나은이도 많이 먹어.”
어머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행도 좋았지만, 역시 가족이 함께하는 순간이 최고였다.
“그러지 말고 우리 가족 여행 갈까?”
코를 박고 음식을 먹던 강우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 가족 여행이라고 어디 가본 적도 없고. 이렇게 좋을 때 한번 다 같이 여행 가면 좋을 거 같아서. 마침 아버지도 중국 가시기 전이니까.”
“난 찬성! 완전 찬성!”
강용이가 잔뜩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일단 바쁜 것들 정리되면 여행 한 번 가요. 장소는 속초가 좋겠네요.”
“동해안? 엄마는 찬성.”
어머니의 표정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강우가 그 모습을 생각에 잠겼다. 속초는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강우가 참 자주 가던 여행지였다.
‘펜션을 큰 곳으로 알아봐야겠네.’
그런 강우의 옆에서 이나은은 잔뜩 부러운 표정이었다. 그런 이나은의 모습에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은이도 같이 갈래?”
“진짜요?”
이나은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나은의 부모님은 강우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강우 부모님과도 몇 번의 식사를 같이했다. 하지만 이나은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의 허락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엄마한테 말해 볼게.”
“정말요?”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응, 우리 가족 다 가고 할아버지들도 가시니까 허락해 주실 거야. 아니면 나은이네 가족도 다 같이 갈까?”
“어? 그러면 되겠다!”
강용이가 손뼉을 치며 어머니의 묘수에 감탄했다. 그러자 이나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네, 그럼 제가 먼저 집에 가서 말씀드려볼게요.”
“그래, 우리 꼭 같이 가자.”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 * *
“다녀오겠습니다.”
강우가 현관을 나섰다. 이나은이 어머니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어머니, 저도 가볼게요.”
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오며 강우와 이나은을 배웅했다.
“그래, 가서 데이트 잘하고 와.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그 말과 동시에 강우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잘 차려입은 강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멜빵 반바지에 반소매 그리고 귀여운 무지개색 모자를 쓴 강용이는 참 귀여웠다.
“형아, 누나, 가자!”
강용이가 위풍당당 현관으로 다가왔다.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어머니가 강우와 이나은을 보며 민망해했다.
“아우~ 애가 정말···. 꼭 따라 나가야겠어?”
“가지 말까?”
강용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이나은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강용이를 와락 끌어 앉았다.
“아니야. 같이 가자.”
“거봐요!”
강용이가 어머니를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정말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가자.”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강용이가 현관을 나왔다. 그리고는 주차장에 주차된 승합차에 올라탔다. 아버지는 승용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
부우웅.
승합차는 어디로인가 열심히 달렸다. 오늘은 데이트에 앞서 먼저 방문할 곳이 있었다.
“형아, 빨리빨리.”
뒷좌석에 이나은과 함께 앉은 강용이가 잔뜩 상기됐다. 오늘 강용이가 따라나선 이유는 지금 가는 곳 때문이기도 했다.
“강용아, 그렇게 좋아?”
강우가 룸미러로 강용이를 보며 물었다.
“어어. 형들이 다음에 오면 많이 놀아준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 그래도 형들 너무 많이 방해하면 안 돼. 알겠지?”
“응.”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승합차는 강남을 벗어나 명동의 회사 건물에 도착했다.
“다 왔다.”
강용이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
드르륵.
뒷문을 열고는 바람같이 건물의 입구로 달려갔다. 이나은이 차에서 내려 강용이를 쫓아갔다.
“강용아.”
강우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주차공간에 주차했다. 역시나, 일 층 카페의 사장이 나와서 인사를 건넸다. 강우가 반갑게 인사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용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아, 빨리 타.”
“알았어.”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강용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의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은 새 단장을 한 상태였다.
-동양 레지스탕스 게임단.-
2층의 입구에 걸려있는 현판이었다. 강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강우를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감독님! 오셨습니까?”
인사를 건네오는 인물들은 게임단의 코치들과 스태프들이었다. 강우는 게임단의 감독을 맡은 상태였다. 다른 감독을 구하려고 했지만, 선수들의 요청이 거셌다. 사실 생각해보면 강우에게는 아주 나중에 쓰일 게임의 빌드들이 머릿속에 있었다.
“다들 연습 중입니까?”
“네, 지금 대회 준비 중입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며칠 뒤면 한국 최초의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는 대진 미디어에서 거액을 들여 단장한 용산 E-SPORTS 센터였다. 아직은 참가하는 프로구단이 적었지만, 꾸준한 홍보로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덜컥.
강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습실의 안쪽은 최고의 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게임단의 선수들이 맹렬히 연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단연 최고의 선수는 바로 강우가 직접 영입한 삼인방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강용이가 강우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용이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강용이다!”
“강용아, 이리 와 나랑 놀자.”
강용이가 씩 웃더니 선수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강용이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마스코트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자자! 나랑 먼저 놀아줄 사람은 줄을 서세요!”
강용이의 말에 선수들이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