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402)

우유 먹어.

다음 날 아침. 강우와 아버지는 오랜만에 같이 출근을 준비했다.

덜컥.

화장실 문이 열리고 샤워를 끝낸 강우가 나왔다. 슬쩍 주방으로 가자 어머니는 분주히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강우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주방으로 갔다.

“엄마, 도와드릴 거 없어요?”

계란프라이를 만들던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다 됐어. 앉아서 밥 먹을 준비해.”

“네, 강용이 깨우고 올게요.”

강우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강용이는 아직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잠꼬대를 중얼거리는 강용이의 모습에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강우가 슬쩍 강용이에게 머리를 가져다 댔다.

“음냐···. 우리 팀 이겨라···.”

강용이의 잠꼬대에 강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젯밤 보았던 경기가 강한 인상을 남겼나 보다. 강우가 슬쩍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용아, 일어나 엄마가 밥 먹으래.”

“으음···. 형아?”

강용이가 눈을 부스스 뜨며 강우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가서 씻고 주방으로 와.”

“응.”

강우가 강용이를 번쩍 일으켜 주었다. 강용이가 깔깔대며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반신욕 하는 거 잊지 말고!”

“어!!”

강용이는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반신욕을 하고는 했다. 강우가 매일 아침 꼭 하라고 했고, 강용이는 형아의 말이라면 절대 충성이었다.

“일어났어?”

주방으로 다시 나가니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신문을 읽고 있던 아버지가 슬쩍 강우에게 내밀었다.

“한번 봐라. 어제 일 기사 났어.”

“아···. 네.”

강우가 신문을 받았다. 신문의 일면에는 어제 일에 관한 기사가 나 있었다. 개관식을 진행한 것부터 시범경기의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대진 그룹을 메인 후원사로 하는 E-SPORTS 리그가 어제 시범경기를 가졌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 맞춘 대진 그룹의 빠른 행보라고···.-

호의적인 기사 내용이었다. 대진 그룹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대진 그룹이 체질 개선을 통해 문화산업 영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전면에 강우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좋군. 여론이 호의적이야.’

요즘 강우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듯했다. 자신이 기획한 일들이 모두 대박을 터트리고 있으니 말이다. 덩달아 이재원의 기분도 하늘을 날아갈 듯했다. 이철금 회장도 강우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강우가 아니었다면 대진 그룹의 현재는 없을 것이라 했다. 그도 그럴만했다 IMF의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대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점점 나빠진다.’

그런 상황에서 강우라는 존재는 치트키 그 자체였다.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강우 가족이었다. 대진 그룹의 모든 일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하는 강우가 있기에 대진 그룹의 이미지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단법인을 만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야.’

강우가 계획하고 있는 문화산업 장악이 점점 탄력을 받고 있었다. 문화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점찍은 경쟁사도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하나씩 하나씩 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군.’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때, 어머니가 특제 토스트를 완성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노릇하게 구워진 식빵에 계란프라이가 들어갔다. 케첩과 설탕을 살짝 뿌리고, 얇은 햄까지 얹히니 그야말로 전문 토스트집 저리 가라였다.

“우와~ 맛있겠다!”

어느새 나타난 강용이가 토스트를 보며 잔뜩 흥분했다. 어머니가 오렌지 주스를 따라 강우와 아버지 앞에 놓아주었다. 강용이에게는 우유를 따라 주었다.

“나도 오렌지 주스.”

강용이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강용이 너 키가 너무 안 커서 우유 먹어.”

“네.”

강용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4학년인 강용이는 체구가 작았다. 어머니는 강우에 비해 잘 크지 않는 강용이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강용이는 외탁을 한 편이었다.

‘외가 쪽 친척들은 대부분 키가 작긴 하지.’

미래의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강용이는 그리 크지 않은 키였다. 강우가 슬쩍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작고 귀여운 강용이가 참 귀여웠다. 하지만 강용이를 위해서는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강용아. 형도 키 크려고 매일 우유 이만큼씩 먹었어.”

강우가 식탁에 놓여있는 1.5ℓ 우유를 가리켰다. 강용이의 얼굴에 비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정말? 매일 이만큼씩 먹으면 형아처럼 커져?”

“그래, 그러니까 잘 먹자.”

강용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우유를 벌컥 마셨다.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잘했다며 윙크를 했다. 강우가 슬쩍 엄지를 들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가 일어나 아침 인사를 했다. 강우와 강용이도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다들 잘 잤니?”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강용이가 동시에 잘 잤다고 답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커다란 사발을 건넸다.

“아버님, 어제 과음하셨죠. 꿀물 드세요.”

“고맙구나.”

어머니의 말에 강우가 할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할아버지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강우의 말에 할아버지가 움찔했다. 평소 할아버지의 건강에 신경을 엄청나게 쓰는 강우였다. 간단한 약주는 모르겠지만, 과음했다 하니 다소 걱정스럽게 물었다.

“허허···. 그게 말이야. 어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다.”

할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님, 그렇게 웃으시면서 머리 만지시니까 강우랑 너무 똑같아요.”

“흠흠···.”

할아버지가 내심 좋은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꿀물을 단숨에 마셨다.

“형님은 아직이신가?”

할아버지가 최준의 방을 보며 물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준의 방문이 열렸다.

“형님, 일어나셨어요?”

“잘 잤어?”

할아버지와 최준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매일 보는 두 분이었지만, 항상 서로를 보면 반가운가 보다.

“꿀물 드세요.”

어머니가 최준에게도 꿀물을 가져다주었다. 최준이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우리가 너무 취했지?”

“아니에요. 오랜만에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머니의 농담 섞인 말에 최준이 헛기침을 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꿀물을 단숨에 마셨다.

“역시 우리 강우 엄마가 타주는 꿀물이 해장으로는 최고야. 로열젤리라도 탔나?”

“어르신도 참~”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아했다. 그렇게 강우 가족의 아침은 화기애애하게 시작됐다.

“시장하시죠? 앉으세요. 제가 해장국 준비했어요.”

역시 어머니는 센스 만점이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을 위해 따로 해장국을 준비한 것이다.

“오~ 콩나물국이구나.”

할아버지와 최준이 만족스러워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해장국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좋구나.”

“속이 확 풀려.”

그 모습을 보던 강우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어제 누구 만나신 거예요?”

“어제 종로에 갔었어.”

“피맛골에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저번에 말한 친구들 있지? 예전에 말숙이네 가게에서 자주 만났다던 술친구들.”

“아···. 그분들이요?”

“그래, 오랜만에 만나고 왔지. 형님도 같이.”

강우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으니 술자리가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우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말숙 할머니는 잘 계시죠?”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가게 수리하고 장사하기 편해졌다고 하더라. 그리고 강우 네가 남긴 사진 때문에 소문도 나기 시작해서 손님도 엄청 늘었어.”

“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이나은과 가게에 방문했을 때 남긴 사진이었다. 김말숙이 강우와의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부탁한 것이다.

“말숙이가 그 사진을 가게 계산대에 붙여 놓은 모양이야. 손님들이 그걸 알아봤고.”

“그걸 알아본다고요?”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야, 너 생각보다 유명해. 아빠도 맨날 여기저기 연락받느라 난리도 아니야.”

“엄마도.”

강용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나도. 형아, 우리 학교 언제 와?”

“개학하면 바로 간다.”

강용이가 ‘아싸!’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잘됐네요. 말숙 할머니도 잘됐으면 좋겠어요.”

“입소문 나기 시작했고, 가게 음식 맛이 좋으니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겠지. 앞으로 잘 될 거야.”

“강우가 참 대단한 일을 했네.”

최준의 말에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형님, 우리 강우 인기가 대단하기는 한가 봅니까?”

“그럼, 사람들 만나면 꼭 물어봐. 강우 어디 있냐고.”

가만히 듣고 있던 강용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우리 형아 이제 연예인이에요?”

그 말에 가족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할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강우야.”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강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손길에 강우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제 알겠지? 강우 너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앞으로 어디를 가든지 항상 행동 조심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가진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도 잘 생각해야 하고.”

“네, 할아버지.”

“아 참 강우야, 언제 시간 내서 할아비들이랑 말숙이네 가게에 한번 가지 않겠니?”

“그럼요. 같이 가요.”

“그래, 내 친구들이 너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하더구나.”

강우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없이 웃었다. 흐뭇하게 보고 있던 최준도 입을 열었다.

“네가 정말 우리의 등대가 되어주겠구나.”

“이게 전부 할아버지들 덕분이죠.”

강우의 말에 최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최준의 말에 가족 모두가 깊이 공감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북적이는 강우 가족의 식사가 끝났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강우가 사무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그러자 일을 하고 있던 직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사님, 오셨습니까?”

“강우 이사님!”

오랜만에 출근하는 강우를 반기는 사무실이 시끌벅적해졌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다들 나 반기는 거랑은 영 차원이 다르네.”

아버지의 말에 직원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일층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 올라왔다. 양손에는 직원들을 위한 시원한 음료가 있었다.

“제가 사는 겁니다. 더운데 다들 한 잔씩 하세요.”

강우의 말에 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강우뿐이라며 난리가 났다. 강우가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어주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뒤를 따랐다.

덜컥.

회의실 문이 열리고 강우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아버지가 씩 웃었다.

“깜짝 손님이지? 오늘 아침에 도착하셨다. 그런데 강우 너 놀래 줄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아니 굳이 왜···.”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내 환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너무나도 반가운 사람이 회의실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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