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7/402)

다 제 가족이니 당연하죠.

부우웅.

강우의 승용차가 빠르게 서울대 병원으로 들어섰다. 주차장에 주차한 강우가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병원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이곳이 중환자 병동임을 알려주었다. 강우가 익숙하게 한 곳을 향해 다가갔다.

“이사님!”

강우를 알아본 사단법인 광복의 직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어르신은요?”

“지금 막 의식이 돌아오셨습니다. 빨리 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강우가 직원과 함께 병실로 향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김일국은 1인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그 말은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강우가 불안해 마지않던 연락이 온 것이다.

드르륵.

병실의 미닫이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서자 방 안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병상에는 김일국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김일국의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도 모여있었다. 김일국을 제외한 모두가 강우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르신….”

강우가 김일국에게 다가갔다. 김일국의 손이 살짝 떨리더니 눈을 스르륵 떴다.

“아버지!”

“할아버지!”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들이 병상을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강우의 뒤편으로 섰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담당의가 들어왔다. 의사는 곧장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지금 마지막으로 의식이 돌아오신 상태입니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유언을 들을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의사의 말에 김일국 가족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강우도 깊은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법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의사가 한쪽으로 물러섰다. 강우가 가족을 향해 말했다.

“가족분들은 다 모이신 거죠?”

“그래, 여기 있는 사람이 전부야.”

병실 안에는 아들과 딸 그리고 2명의 친손주와 3명의 외손주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동질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꼈다. 김일국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김성진은 제물포에서 제법 큰 철물상을 운영했다고 했다. 그 시대에 철물상을 운영할 정도면 생활은 윤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만행을 참지 못하고, 모든 재산을 정리해 의열단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많았던 가족들과 친인척들은 모두 요절하거나 비명횡사하고 그나마 남은 직계들이 지금 눈앞의 인원이 전부인 거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슬픈 현실이었다. 삼대가 망하는 걸 떠나서 한 가문의 숫자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그런 현실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인사들 나누세요.”

강우의 말에 가족들이 김일국을 향해 다가갔다. 의사가 김일국의 입에서 산소마스크를 벗겼다.

“허어….”

김일국이 크게 숨을 들이시더니 괴로워했다. 그리고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정국아…. 미정아….”

“네, 아버지!”

김일국의 시선이 스르륵 아들과 딸을 향했다.

“미안하다…. 내 평생 너희들을 고생만 시켰구나. 부디 이 아비를 원망치 말아라. 그리고 자부심을 잃지 말아라. 우리는 훌륭하신 조상을 둔 자손들이다. 항상 자긍심을 갖고 살 거라….”

그 말을 끝으로 김일국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앙상히 마른 손을 힘겹게 들었다.

“강우야, 고맙다. 덕분에 내 말년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마음이 놓인다. 내 자식들과 손주들을 잘 부탁한다. 그래도 되겠지?”

“네, 저에게 다 맡겨 주세요.”

“그리고 내가 전해준 수첩은 잘 간직해다오. 거기에는 내 부친께서 평생을 모은 자료가 담겨있어.”

“네……. 어르신. 너무 늦게 어르신을 찾아서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남은 사람들을 잘 부탁하마.”

그 말을 끝으로 김일국의 얼굴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띠이이이-

심장이 멈추고 김일국의 두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와 최준이 들어섰다. 상황을 파악한 할아버지와 최준이 눈시울을 붉히며 김일국에게 다가갔다.

“이 사람아…. 뭐가 그리 급해서….”

“늦어서 미안하네.”

의료진이 김일국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유가족을 향해 사망 선고를 했다.

“훌륭하신 유공자분의 부고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의사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강우와 할아버지 그리고 최준이 병실에서 나왔다. 유가족들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병실 안에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장 총무님. 장례식은 모두 재단에서 책임지고 진행해주세요. 최고의 예우를 다해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네, 이사님. 최고의 장례식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강우의 지시를 받은 장 총무가 자리를 떠났다. 강우가 슬쩍 병실을 바라보았다. 독립유공자의 직계 후손이 죽었을 경우 나라에서 장례지원금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장례를 온전히 치르기는 힘들었다.

“강우야, 그 사람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부탁한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강우를 향해 당부했다. 그리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병실을 바라보았다.

* * *

김일국의 장례식장은 서울시의 외곽에 있는 규모가 크고 좋은 장례식장이었다. 사단법인 광복에서는 곧장 소속 회원들에게 김일국의 부고를 알렸다. 그리고 지역별로 관광버스를 보내 장례식 참석에 편의를 제공했다.

“.......”

울음소리가 가득한 장례식장의 한구석에 검은 양복을 입은 강우가 있었다. 한쪽 팔에는 삼베로 만들어진 완장이 차 있었다. 물론 강우가 김일국의 친가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우를 친손자처럼 생각한 생전의 김일국과 유가족들의 부탁 때문이었다.

“밥은 좀 먹었냐?”

그런 강우의 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이재원이 있었다. 김일국의 부고를 들은 이재원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장례식장으로 달려왔다.

“네, 형은요?”

“나도 먹었지. 애들은 언제 온대?”

“지금 오고 있대요.”

소식을 들은 친구들도 한달음에 달려오고 있었다. 강우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장례식장이 차려지고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인맥이 부족한 김일국이었기에 대부분이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이 대부분이었다.

“저 손님들 좀 접대하고 올게요.”

“어, 갔다 와. 애들은 오면 내가 챙길게.”

강우가 몰려들기 시작하는 손님들에게 다가갔다. 손님들이 강우를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강우야, 이게 무슨 일이래니.”

“일국이 그 사람 마지막은 평안했겠지?”

쏟아지는 질문을 강우가 하나씩 답해 주었다. 지난여름 강원도에서 1회 모임 이후 강우는 지역별로 소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역별로 세워진 사단법인 광복의 지부를 통해서 모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은 모임을 자주 가지며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왔다.

“네, 마지막에 평안히 눈 감으셨어요. 그리고 다들 잘 지내라는 말도 남기셨어요.”

강우의 답에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 가서 마지막 보내드리세요.”

강우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영정 앞으로 다가가 고인의 마지막에 예를 표했다. 유가족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이했다. 이윽고 사단법인 광복에서 준비한 관광버스를 타고 사람들이 도착했다. 강우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후…….”

강우가 힐끗 장례식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독립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이 유가족을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슬픔이 가득하던 유가족의 얼굴도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조문객 없이 쓸쓸하던 장례식장이 금세 사람들의 따듯한 온기로 가득했다.

‘그래, 사람 사는 게 이런 거지.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되는 거 말이야.’

강우가 그 장면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사단법인 광복을 매개체로 점점 하나로 뭉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강우는 속으로 이 모임을 더욱더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강우야!”

그때, 급하게 달려온 친구들이 도착했다. 튀니지 런칭 이후 정신없이 바쁜 남재식. 영화 촬영의 막바지라 늘 스탠바이라는 김춘배. 수능을 치르고 다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박광웅.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며 공부에 집중하던 연정호. 마지막으로 말없이 든든한 단짝 신원주까지.

‘자식들….’

친구들을 보자 강우의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강우가 손을 슬쩍 들어 친구들을 반겼다.

“걸어와. 장례식장 무너지겠다.”

친구들이 강우를 지키듯 둘러쌌다. 그리고는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냐?”

“밥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먹었다. 일단 조문들부터 해라.”

“알겠어.”

친구들이 장례식장으로 가서 조문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강용이가 있는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뜨끈한 육개장과 함께 잘 준비된 한 상이 준비되었다. 친구들이 밥을 먹으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조금은 어리둥절해 있던 강용이는 형들이 와서 좋은가 보다. 대번에 신원주의 다리에 앉았다.

‘안 피곤하신가?’

할아버지와 최준은 다른 어르신분들과 함께 한쪽에 앉아있었다. 모두 영정사진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강우와 할아버지의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가 손짓으로 강우를 불렀다.

“네, 할아버지.”

강우가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곁에 있던 어르신들이 강우를 향해 말했다.

“강우야, 정말 고생이 많다. 네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는구나.”

“고맙다. 강우야.”

할아버지의 곁에 있는 어르신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한 독립운동가 본인과 연배가 같은 그 후손들이었다. 이미 여러 장례식장을 다녀 쓸쓸한 마지막을 많이 본 분들이었다.

“아니에요. 다 제 가족이니 당연하죠.”

강우의 말에 어르신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어느 날 갑자기 강우라는 존재가 나타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삶의 질은 물론이고 세세한 것 하나하나 신경 쓰는 섬세함이 정말 대단했다.

“강우야, 유가족들 잘 부탁한다.”

할아버지의 부탁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례식장의 한쪽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강우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분들은?’

나이가 지긋한 몇 명의 어르신들이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광복회의 회장 권태복과 일행이었다. 권태복이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곧장 조문하러 향했다. 김일국의 영정사진 앞쪽으로 광복회의 조기가 놓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김일국의 아들이 조금은 담담한 표정으로 조문을 받았다. 조문을 마친 권태복이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는 다른 몇 명의 독립유공자가 함께였다. 강우를 발견한 권태복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잘 지냈나? 한번 만나기가 참 힘들군.”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찾아뵙지 못했네요.”

“아니야. 자네가 바쁜 건 나도 잘 알고 있지. 참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내가 다 뿌듯하이.”

권태복 회장이 흐뭇한 얼굴로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러자 권태복 회장의 곁에 있던 인물 한 명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권태복 회장이 강우를 향해 말했다.

“이번 장례에 우리 쪽 조기를 배치해도 상관없겠지?”

권태복 회장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일국 어르신도 좋아하실 겁니다.”

“그래, 고맙다.”

그때, 권태복 회장의 옆에 있던 한 명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미간을 찌푸리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독립유공자 본인이 죽은 것도 아니고 후손이 죽었는데 너무 과하지 않은가?”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권태복 회장이 크게 노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나창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순간,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졌다.

‘으윽….’

강우의 눈앞이 번쩍거리며 찰나의 순간처럼 나창식의 일대기가 스쳐 지나갔다. 기억을 받아들인 강우가 나창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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