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동생이라는 존재인가….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강우와 위혁오가 앉아있었다. 위혁오는 고된 일정에 피곤한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선전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강우는 곧장 충칭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픈을 앞둔 옛 광복군 사령부를 방문했다.
“주무십니까?”
강우의 고개가 옆으로 스르륵 돌아갔다. 건너편 의자에는 진남규가 앉아있었다.
“아니요.”
“안 피곤하십니까? 진짜 체력 하나는 끝내주십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진남규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광복군 사령부가 그렇게 깔끔하게 재건되어 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신문에서 얼핏 소식을 접하고 내심 놀랬는데 그걸 진행하는 분이 사장님일 줄 정말 몰랐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진남규는 강우가 선전을 떠날 때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충칭에 들르는 스케줄이 있었지만, 강우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선전지사가 생기기 전까지 중국 법인의 업무를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경으로 향해야 했다.
“어머니도 제가 사장님을 따라나선다고 하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진남규가 환하게 웃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강우의 도움으로 가게도 보수하고 생활 안정금도 지원받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과의 소송을 담당할 국제 변호사들도 생겼다.
“다행이네요. 이제 아들이 자기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죠.”
“......”
진남규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를 만나고 인생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한동안 바쁘실 겁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제법 많아서요. 선전지사에서 일하신다고 했지만, 내용은 다 파악해야겠죠?”
“네, 사장님.”
진남규가 의지를 불태웠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뜻밖의 인재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독립투사의 후손이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충칭의 일도 마무리했고, 선전에서의 일도 마무리했다. 이제 베이징에서 남은 업무를 보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방학 기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강우가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을 알고 있었다.
‘그 전에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강우 좌석에 몸을 묻었다. 빡빡한 일정에도 온몸에는 힘이 넘쳐났다.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인 비행기를 이용했음에도 느린 이동속도가 아쉬울 뿐이었다.
* * *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가 들어섰다.
“형아아!”
강용이가 대번에 달려와 강우를 반겼다. 강우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뒤를 따라 뻘쭘하게 들어오던 진남규와 강용이의 눈이 마주쳤다.
“어? 새로운 형이야?”
강용이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진남규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진남규 역시 외동이었다.
“안녕하세요? 박강용입니다.”
강용이가 어설픈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진남규가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안녕? 난 진남규야. 만나서 반가워.”
“어? 한국인이세요?”
강용이의 질문에 진남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조선인인지 중국인인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음…. 그러니까 그게….”
“에이~ 아무려면 어때요. 다 같은 사람인데.”
강용이의 말에 진남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강용이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어떤 국적인지가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지금, 이 순간 좋은 인연을 만난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 고맙다. 강용이가 아쭈 똑똑하구나.”
“그럼요! 제가 누구 동생인데요.”
강용이가 가슴을 쭉 내밀며 자랑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진남규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이게 동생이라는 존재인가….’
강우와 진남규가 거실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방에서 나와 강우를 반겼다.
“강우야, 고생했지?”
“아니에요. 혁오 형님 덕분에 편하게 다녔어요.”
아버지가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에 진남규가 움찔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진남규에게 항상 어려운 상대였다.
“안녕하십니까! 진남규입니다.”
“반가워요. 강우가 이야기 많이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면서요?”
“네! 사장님이 잘 봐주셔서 같이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진남규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강우에게 들어 진남규의 사연을 모두 알고 있는 아버지였다. 나이도 강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강우랑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데 편하게 대해도 될까?”
“네, 당연하죠.”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밥부터 먹으러 가지. 우리 아내가 음식솜씨가 끝내주거든.”
진남규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일정 내내 위혁오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강우 어머니의 음식이었다. 주방에서는 어머니가 열심히 음식을 준비 중이었다.
“엄마, 저 왔어요.”
“그래, 강우 왔어?”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강우를 반겨주었다. 그다음으로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어서 와요.”
“안녕하십니까? 진남규입니다.”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에 진남규의 마음이 편해졌다.
“그쪽으로 앉아요. 크게 차린 건 없고 매일 먹던 대로 차렸어요. 부담 갖지 말고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진남규가 잘 차려진 차림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입을 살쩍 벌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게 평소 먹는 상차림이냐는 눈빛이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진남규에게 낮게 속삭였다.
“우리 엄마가 손이 좀 커요.”
“아…. 네.”
강용이가 달려와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도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어머니가 오늘 상차림의 마스터 피스를 들고 나타났다.
“자~ 오리지날 한국산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입니다~”
어머니의 말에 진남규가 큰 관심을 드러냈다. 선전에 계신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 주던 음식이었다. 다만 김치가 없어 고추를 이용해 만들어 주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맛있게 먹어요.”
어머니가 진남규의 앞쪽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말했다. 진남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됐다. 진남규의 젓가락이 갈 곳을 잃고 잠시 방황했다. 한식 위주로 차려진 상에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았다. 진남규가 첫 경험으로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후루룩.
고기까지 듬뿍 떠서 한 입 크게 먹은 진남규가 탄성을 뱉어냈다. 진한 국물맛이 느껴졌다. 뒤늦게 씹히는 고기에서는 왈칵 지방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맛이었나…….”
진남규가 김치찌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왜인지 한국의 맛을 그토록 그리워했다던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의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는 듯했다. 아주 어렴풋이 말이다.
“맛은 있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진남규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네, 맛있습니다. 아주 많이요.”
그렇게 진남규의 첫 한식 식사가 끝나갔다. 진남규는 밥을 무려 세 공기나 먹었다. 반찬은 오직 김치찌개였다. 다시는 없을 기회인 듯 먹고 또 먹었다.
‘선전에 돌아가면 어머니한테 꼭 알려드려야지.’
그리고 어머니에게 꼭 김치찌개의 본 맛을 알려드리겠다고 다짐했다.
* * *
베이징 시내에 중국 법인의 본사가 있었다. 원래는 길림성에 본사를 두려 했지만, 위진오가 자신과 가까운 베이징에 있기를 원했다. 그만큼 돌보고 밀어주겠다는 뜻이었다.
부우웅.
아버지가 운전하는 세단이 커다란 빌딩으로 다가갔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진남규가 창밖으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저기가 회사 건물이 있는 곳입니까?”
“그래, 우리 회사 소유 빌딩이야.”
진남규가 ‘뜨악’ 한 표정을 했다. 베이징 시내에 빌딩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빌딩은 강우가 사자고 한 것이었다. 앞으로 베이징은 물론 중국 전역의 부동산 가격도 천장을 뚫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선전에도 빌딩을 하나 매입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진남규가 조수석에 앉은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대체 자본 규모가 어느 정도길래….’
진남규의 호기심이 점점 상기된 마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을 굉장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진남규였다. 그럴 만도 했다. 청화대 경영학과라고 하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가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주변 환경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내가 있을 자리를 찾은 기분이야.’
하지만 이제 강우를 만나 능력을 펼치고 높은 곳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이윽고 차량이 빌딩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를 마친 세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을 경비하는 직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경비원이 아버지를 알아보고는 바짝 군기가 들어 인사했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직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니까요.”
“아닙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직원의 말에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올라가 볼까?”
“네.”
강우와 아버지가 빌딩의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ID카드를 대야지만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진남규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CCTV도 입구부터 여러 대가 달려있었다.
‘누구 유명한 사람이라도 있나…. 경비 수준이….’
이윽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진남규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경비 수준이 엄청나네요.”
“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강우가 씩 웃었다.
띵.
이윽고 빌딩의 최상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내렸다. 그 뒤로는 진남규가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진남규는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꾸며진 건물 내부와 크기에 놀란 것이다.
“이쪽으로 가자.”
아버지가 익숙한 듯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회장실의 입구에 도착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회장실 앞을 지키던 비서진들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익숙하게 대했고, 강우는 몹시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룹의 진정한 주인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어?”
그때, 뒤쪽에서 따라오던 진남규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눈이 크게 떠지고 소름이 돋았다.
-광복-
회장실의 닫힌 문에 중국 법인의 이름이 선명히 양각되어 있었다. 그 두 글자에 진남규가 목석처럼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남규 씨, 뭐 해요?”
회장실 입구를 들어서려던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남규가 정신을 차렸다.
“아…. 네네 갑니다.”
강우와 아버지가 회장실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간 진남규가 탄성을 뱉어냈다. 통유리로 되어있는 회장실의 밖으로 베이징의 빌딩 숲이 그대로 보였다.
“와….”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우가 진남규에게 자리를 권했다.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진남규가 회장석 앞쪽의 소파에 앉았다. 진남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화들짝 놀랐다.
-회장 박강우.-
회장석 위에 올려진 명패에 강우의 이름이 선명히 박혀있었다. 진남규가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눈치를 채고는 멋쩍게 웃었다.
“아…. 제가 대주주이기도 하고요.”
“대단하십니다. 정말….”
진남규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린 나이에 오를 수 있는 자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며칠 내내 느낀 강우는 능력도 인품도 충분했다.
“베이징에 숙소를 잡아드릴 테니까 당분간 여기서 업무 파악에 힘써주시고요.”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혹시 다음 일정에 저도 동행하면 안 되겠습니까?”
“저랑 아버지는 다음 일정으로 길림으로 갔다가 하얼빈으로 갈 예정입니다. 상당히 시일이 걸리는 일정인데요?”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진남규가 진지한 표정을 했다.
“이번 일정의 목적이 독립 유적지를 둘러보고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저도 꼭 가고 싶습니다.”
“음….”
강우가 진남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미해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진남규의 결정이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했다.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감사합니다!”
진남규가 환하게 웃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노크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우와 아버지가 반가운 표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부님!”
위진오가 씩 웃으며 강우에게 다가왔다.
“잘 다녀왔어? 우리 강우 얼굴이 홀쭉해졌구나.”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대견해했다.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던 진남규가 위진오를 살피더니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위…. 위진오??!’
중국 정계에 떠오르는 강자인 위진오가 분명했다. 위혁오가 위씨 가문인 것을 생각해 어느 정도 연줄이 있는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만날 정도로 관계가 깊은 줄은 몰랐다. 진남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이 그룹의 정체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