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요.
늦은 밤. 커플 데이트가 끝나고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이재원과 미나가 남았다.
“우린 한잔하고 들어갈까?”
이재원의 제안에 강우가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나 내일은 스케줄 없어.”
“그래, 우리 포장마차 가자.”
네 사람은 신촌에 있는 포장마차를 향해 걸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모!”
이재원이 씩씩하게 소리치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가 뒤를 따라 들어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단골이에요?”
“아니 처음 오는데?”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이나은도 킥하고 웃었다. 미나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미 이런 이재원에게 익숙한 듯했다.
“이쪽으로 앉아요.”
미나가 이재원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재원이 화들짝 놀라며 미나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강우도 이나은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학생들 뭐 먹을 거야?”
포차 이모가 네 사람에게 다가와 물었다.
“꼼장어랑 제육볶음이랑 꼬막도 주세요.”
“형, 뭘 그리 많이 시켜요.”
강우가 말리자 이재원이 어이가 없어 했다.
“야, 네가 다 먹을 거잖아.”
“어…. 그런가.”
생각해보니 이재원의 말이 맞았다. 먹는 양이 부쩍 늘어난 강우였으니까 말이다. 이나은도 공감했다.
“강우 요즘 먹는 거 보면 무서울 정도예요.”
“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강우가 배를 만지작거렸다. 이재원이 포차 이모를 향해 말했다.
“이모 여기 잔치국수도 추가요. 소주 한 병이랑요.”
“그래요.”
포차 이모가 주문을 받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이재원이 먼저 나온 소주를 따랐다.
“너 해병대 간다고 했다며.”
“네. 조만간 시험 보려고요.”
마침 해병대 입대 지원 기간이었다. 이재원이 살짝 고민에 빠졌다.
“아…. 해병대는 좀 힘든데….”
“아니 내가 힘든 걸 왜 형이 걱정해요?”
강우가 소주잔을 탁 하고 털어 넣었다. 이재원이 잔을 다시 채워주며 진지한 말투가 되었다.
“네가 해병대 가면 나도 해병대를 가야 하니까 그러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강우가 미간을 좁혔다.
“나도 해병대 간다고 너 따라서.”
“아니, 이 형이 지금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거예요? 형이랑 나랑 둘이 같이 자리를 비운다고요?”
“이왕 가야 하는 군대라면 둘이 같이 갔다가 빨리 전역하는 게 낫지. 그리고 내가 말했지 너 가는 길에는 나도 간다고.”
강우가 헛웃음을 뱉어냈다. 이나은은 그런 두 사람이 신기한지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아니, 두 사람이 죽고 못 사는 사이인 건 알겠는데요. 군대까지 같이 가려고요? 아~ 질투 나려고 하네.”
“나은아, 이건 범접 불가능의 영역이다. 진한 남자들의 세계라고.”
“네~ 오빠.”
이나은이 재밌다는 듯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자 미나가 궁금한 표정으로 이나은에게 물었다.
“언니, 해병대가 뭐예요?”
“아…. 그게 있어. 한국에 있는 특수부대라고나 할까?”
“와~ 특수부대요?”
미나가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일본인인 미나에게는 군대에 간다는 것조차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특수부대라고 하니 더욱 놀랐다.
“미나야, 막 엄청난 곳은 아니야.”
“그래도요.”
이재원의 설명에도 미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우가 이재원을 쓱 보며 말했다.
“형, 그런데 해병대 체력시험 통과할 수 있겠어요?”
“당연하지. 요즘 운동 뜸하기는 했지만, 무시하지 마라.”
말을 마친 이재원이 팔을 내밀었다.
“팔씨름, 한번 해?”
“갑자기? 나, 이길 수 있어요?”
강우가 씩 웃으며 팔을 내밀었다.
“학생들 꼬막 먼저 나왔어.”
마침 포차 이모가 안주를 들고 나타났다. 이재원이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너 안주 나와서 봐줬다.”
강우가 픽 웃었다. 그리고는 꼬막을 집어 간장에 찍어 먹었다. 말캉말캉한 꼬막과 간장 소스의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져 나갔다. 강우가 잔을 들었다.
“한잔해요.”
이윽고 나머지 안주가 전부 나왔다.
“아~ 좋다.”
이재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추운 겨울 포장마차에서 먹는 안주들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네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적막이 흐르는 해병대 체력검사장에 강우와 이재원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편해 보이는 운동복을 입은 강우와 이재원은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앞쪽에서는 체력검정이 한창이었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로 이루어진 체력검사였다. 체력검사가 한창인 검사장의 시선은 강우와 이재원에게 쏠려있었다. 두 사람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모두에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시절에 재벌가나 정치인 아들들이 병역면제를 받는 건 흔하디흔한 일이었으니까.’
강우가 쏟아지는 시선을 담담히 받아냈다. 이재원은 조금 긴장을 했는지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강우가 픽 웃었다.
“뭘 그리 긴장했어요.”
“야…. 이게 좀 떨린다. 여기오면 다 군인 후보들 아니냐.”
“그렇긴 하죠. 군대 가면 계급이 다 말해주는 거니까.”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그러자 체력검사관이 크게 소리쳤다.
“자자! 조용! 조용!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 말에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아직 입대 전이었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검사장이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차분히 차례를 기다렸다.
“다음은 수험번호 55번 56번!”
“네!”
강우와 이재원 차례가 돌아왔다. 두 사람이 볼 시험은 팔굽혀 펴기였다. 강우와 이재원이 자세를 잡았다.
“1분 동안 계속합니다. 바른 자세가 아닌 것은 카운팅이 되지 않습니다.”
검사관의 설명이 끝나고 체력검사가 시작됐다. 강우가 차분히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1분에 52개가 만점이라고 했지?’
강우가 점점 속도를 올렸다. 강우의 몸이 마치 기계처럼 속도가 올라가며 미친듯한 빠르기를 내기 시작했다. 검사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 대박!”
시험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재원도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었지만, 강우가 너무 눈에 띄었다.
삑-
1분을 알리는 종료음과 함께 강우가 튕기듯이 몸을 일으켰다. 검사관이 계수기를 보더니 멍한 표정을 지었다.
“55번. 팔굽혀 펴기 배…. 백 개!”
검사관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강우의 모습에 검사관이 자신도 모르게 엄지를 들었다.
“대….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원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강우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이를 악물고 검사에 응한 이재원이었다.
“56번 45개!”
이번에는 조금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얀 얼굴에 날렵한 체구의 이재원이었다. 혹자는 야리야리하다고 놀릴 만도 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다음은 윗몸일으키기였다. 강우가 자세를 잡자 검사장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시작 신호가 떨어지고 강우가 빠른 속도로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미…. 미친!”
이번에도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빠른 속도인지 강우가 몸을 일으킬 때마다 바람 소리마저 나는 듯했다. 그런 강우의 모습에 이재원도 이를 악물고 검사에 응했다.
삑-
종료 소리가 울리고 강우가 씩 웃으며 동작을 멈췄다. 이재원의 뒤로 벌러덩 누워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내가 미쳤지. 미쳤어.”
검사관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결과를 발표했다.
“55번 백 개!! 56번 52개!”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우의 경이로운 기록에 남자로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검사관의 불호령이 떨어졌을 터였다. 하지만 검사관도 강우의 기록에 감탄한 눈치였다.
“정말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우와 이재원이 체력검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재원이 죽을 것 같은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진짜 너는 해병대 말고 UDT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음…. 조금 흥미가 생기기는 하는데요?”
이왕 할 군 생활이라면 자신을 극한으로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재원이 질색을 하며 강우를 말렸다.
“너 그 표정 위험한 표정이다. 아서라 네 몸이 얼마나 귀한 몸인데.”
“음….”
강우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체력검사가 끝나고 다음은 면접이었다. 면접실 앞에 대기하던 강우 차례가 돌아왔다.
“수험번호 55번 들어오세요.”
“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면접실로 들어갔다. 면접실 안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슬쩍 계급장을 보니 국화 한 개. 즉 해병대 소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해병대 일반병을 신청한 수험번호 55번 박강우입니다. 저는 1979년 9월 23일에 태어났습니다. 가족 관계로는 부모님과 아래로 남동생 한 명이 있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휴학 중입니다. 취미로는 운동과 수영을 좋아합니다. 지원 사유는 국가방위의 의무를 다하는 한편, 저 자신의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서 지원했습니다.”
강우의 씩씩한 자기소개에 면접관이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강우가 미리 제출한 현역병지원 서류, 생활기록부, 가산점 증명 서류, 학력증명서였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보세요.”
면접과의 질문에 강우가 술술 답을 하기 시작했다. 기억력이라면 사진으로 찍듯 기억하는 강우였다.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중요 전투와 역사적 이야기까지 막힘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전술적으로 한국군을 승리로 이끈 부분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상입니다!”
“대단하군요.”
면접관의 얼굴에 호감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면접관이 서류를 쓱 내려다보았다.
‘팔굽혀 펴기 백 개에 윗몸일으키기 백 개? 허…. 이건 특등급 중에서도 특급이군. 더군다나 독립유공자 후손이고. 학력도 출중하고…. 대단해.’
면접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 스펙의 인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궁금한 게 있었다.
“일반병에 지원했던데 내 생각에는 일반병으로 군 생활을 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인재 같군. 혹시 수색대 지원 의사는 없나?”
“있습니다. 훈단에 들어가면 곧바로 수색대에 지원할 생각입니다.”
면접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더는 볼 것도 없었다. 눈앞의 강우가 떨어진다면 대한민국에서 해병대에 갈 인재는 없으리라 판단했다.
“좋아. 면접은 여기까지 하지.”
“네! 감사합니다!”
강우가 면접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경우보다 반 이상 빨리 끝난 면접이었다. 같은 수험자들이 강우를 보며 또 탄성을 뱉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다음! 수험번호 56번.”
이재원의 차례가 왔다. 강우가 이재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이재원이 의지를 불태우며 면접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수험번호 56번 이재원입니다!”
안쪽에서 이재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우는 대기실에 앉아 이재원을 응원했다. 이윽고 이재원 역시 생각보다 빨리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어? 형도 빨리 끝났네요?”
강우가 옆으로 돌아온 이재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재벌이 군대 간다고 무조건 합격이라는데?”
“하하….”
강우가 작게 실소를 흘렸다. 그만큼 이재원의 입대는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그리고 강우의 생각은 정확히 일치했다.
펑. 퍼퍼펑!
체력검사와 면접을 모두 마치고 나오는 강우와 두 사람을 수많은 카메라가 맞이해주었다.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보며 픽하고 웃었다.
“남들 다 가는 군대인데 왜 저리 호들갑들인지.”
“내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