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겁니다.
강준식 부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준식 부장의 주변으로는 1팀부터 3팀까지의 과장들도 모여있었다.
“맙소사….”
1팀 과장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강우의 입에서 사업 1팀의 자료들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강준식 부장이 1팀의 과장을 툭 하고 쳤다. 조금 전 놀라운 장면을 먼저 목격한 강준식 부장은 곧장 각 팀 과장들을 불렀다. 이 놀라운 장면을 혼자 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앞으로 강우와 자주 마주칠 실무자들이 바로 각 팀 과장들이었다.
‘이렇게 부사장님이랑 안면을 트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지.’
강준식은 오늘 하루 강우를 겪으며 강우의 열렬한 추종자가 돼버렸다. 그리고 대단한 강우의 능력을 과장들도 알기를 원했다. 이윽고 강우는 사업 2팀과 3팀의 자료들까지 줄줄이 말하기 시작했다.
“......”
“......”
2팀 과장과 3팀 과장은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준식 부장이 속으로 웃었다. 2팀과 3팀의 과장은 이태건 이사 라인이었다. 그리고 중국 진출 건을 주도했던 실무자였다. 조금 전 강우를 만나러 왔을 때 조금 갈등하는 표정들을 하기도 했었다.
“뭐…. 이게 그렇게 궁금하시면 아예 마이크라도 잡을까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2팀 과장과 3팀 과장을 바라보았다. 두 과장이 깜짝 놀라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두 과장이 재빨리 잔을 들었다. 강우가 두 손으로 두 과장의 손에 술을 따라주었다.
“중국 진출 건 열심히 준비하신 것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은 안 합니다. 다만 중국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다른 방식이 더 알맞았던 것뿐입니다. 앞으로 저를 도와서 성공적인 중국 진출을 만들어보시죠.”
강우의 말에 두 과장이 묘한 기분을 느꼈다. 결국, 두 과장 역시 일을 사랑하고 미쳐있는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강우라는 사업 천재가 같이 잘해보자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네, 부사장님!”
“열심히 돕겠습니다.”
강우와 두 과장의 잔이 허공에서 닿았다. 두 과장이 소주를 넘기며 생각했다.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고 말이다.
* * *
소고깃집을 나서는 강준식 부장이 문턱에 걸려 휘청거렸다. 직원 몇 명이 ‘어어?’ 하며 강준식 부장을 부축했다. 강준식 부장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오늘 좀 취한 거 같구만….”
강준식이 힐끗 고개를 돌려 강우를 바라보았다. 가게 앞에는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강우가 보였다. 멀쩡한 강우의 모습에 강준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우는 오늘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다. 회식에 참석한 직원들이 주는 술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하…. 정말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강준식 부장이 고개를 세차게 저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강우를 향해 다가갔다. 강우는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늘 술자리로 강우와 친해진 직원들은 정말 강우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물론, 강우도 그런 직원들을 편하게 대했다.
“괜찮으십니까?”
강준식 부장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직원들이 움찔하며 양옆으로 비켜섰다. 강우가 강준식 부장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요. 멀쩡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강준식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더 놀랄 일도 아니었다. 강우라는 존재는 그냥 받아들이는 게 이해하기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강 부장님도 한 술 하시던데요?”
“하하! 제가 사실 푸드빌 대표 주당입니다.”
강준식 부장의 말에 주변에 있던 세 명의 과장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어? 이 사람들이 지금 웃어?”
강준식 부장의 말에 과장들이 재빨리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가 보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강준식 부장을 보며 호기심을 품었다. 대기업 부장의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강우가 듣기로는 강준식 부장은 전도가 유망한 인물이었다.
‘오늘 회식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중립적인 성향의 인물이기도 하고.’
강우는 오늘 회식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SJ 그룹의 전반적인 분위기. 회사 안에 벌어지는 각종 사업 이야기들 그리고 주요 임원들과 각 부서장의 성향 등등을 말이다.
‘역시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는 술자리만큼 좋은 게 없지.’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그동안 고생했지만, 프로젝트가 무산된 직원들도 위로하고 정보도 얻고 일거양득이 이런 것이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죠.”
강우의 말에 강준식 부장과 세 명의 과장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우는 늘 1차에서 회식을 마무리하고는 했다. 물론, 그 이후에 삼삼오오 모이는 것까지는 자유였지만 말이다.
“네, 부사장님.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강준식 부장이 강우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겁니다.”
강우의 미소에 강준식 부장이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는 속으로 자신에게 남은 정년을 세어보았다. 순간, 동양 무역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강 부장, 그럼 다음에 보자고.”
황규범 부장이 강준식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나이대가 비슷한 두 사람은 술자리에서 급격히 친해진 상태였다.
“어어…. 그래 연락하고.”
강준식 부장도 황규범 부장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황규범 부장은 세 명의 과장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조심히들 들어가세요.”
강우가 직원들을 향해 인사했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강우를 배웅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직원들 사이에서 강우의 인기는 최고였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동양 무역의 사무실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덜컥.
부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서류철을 잔뜩 든 직원이 나왔다. 직원이 서류철을 가지고 나와 한쪽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정말 저걸 다 기억하셨다가 필사하는 거야?”
“대박이다 진짜.”
강우는 출근하자마자 어제 보았던 자료들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머릿속에 있는 자료들의 핵심 부분만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윽고 자료 정리를 모두 끝낸 강우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강우야, 고생했다.”
부사장실에 있던 아버지가 강우에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강우가 물을 벌컥 마셨다. 함께 있던 마사토는 강우를 향해 대단하다며 엄지를 들고 있었다.
“진짜 컴퓨터가 따로 없네.”
강우가 아버지와 마사토를 보며 말했다.
“일단 자료 정리는 끝났고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업무 시작을 하면 될 거 같아요.”
“한동안 정말 바빠지겠구나.”
아버지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현재 동양 무역의 상황은 평온 그 자체였다. 일본 시장도 중국 시장도 바람을 탄 돛단배처럼 순항 중이었다. 국내 사업도 일사천리였다. 강우의 선견지명으로 투자한 대진 그룹은 나날이 주가를 높여가고 있었다. 창단한 이래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내는 프로게임단도 승승장구였다.
“그래, 이거 한동안 너무 한가했다고.”
마사토도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아버지와 마사토는 역시 타고난 사업가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단 인원 충원은 마무리되고 있어요?”
“1차 서류 심사에서 통과된 사람들의 2차 면접만 남았지.”
동양 무역이 경력직 사원을 모집한다고 하자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밀려드는 지원자들의 숫자는 물론이고 지원자들의 스펙 역시 어마어마했다.
“면접 날짜 잡히면 알려주세요. 제가 직접 면접 볼게요.”
“그래, 알겠다. 강우, 네 안목이라면 좋은 인재들을 뽑을 수 있겠지.”
마사토가 강우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강우의 사람 보는 눈은 정말이지 특별했다.
“네, 경력직은 특히 더 신경을 써서 뽑아야 하니까요.”
동양 무역은 현재 세간의 관심이 쏠린 곳이었다. 대진 그룹과 SJ 그룹의 동맹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강우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서 뽑고 싶은 게 강우의 마음이었다.
“그래, 앞으로 강우 너도 더 바빠지겠구나. 아 참 그리고 오늘 오후에 대진 건설 관계자들이 오기로 했다.”
현재 상반기에 있던 동양 무역 신사옥 입찰에서 선정된 기업은 대진 건설이었다.
“좋네요. 그러면 있다가 대진 건설 쪽도 제가 직접 미팅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아버지와 마사토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강우가 나선다면 두 사람이 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해졌다. 그만큼 강우의 업무 처리 능력은 대단했다.
“직원들한테 자료는 전부 전달된 거죠?”
“그래, 지금 다 나누어 주었다.”
강우가 부사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직원들은 강우가 정리해준 자료를 검토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필요한 부분만 깔끔히 정리된 자료였다. 읽는 것만으로도 SJ 푸드빌의 현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다.
“자료들 전부 받으셨죠?”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우에게 쏟아졌다. 강우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SJ 그룹의 중국 진출 건은 비단 SJ 푸드빌의 성공만 달린 게 아닙니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위한 첫발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SJ 푸드빌과 연계해서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예정이니까요.”
강우가 그리는 큰 그림은 바로 이것이었다. 강우는 문화와 음식을 세계화 시장에 경쟁력 있게 진출시킬 생각이었다. 특히 미래 기억 속에 한식의 세계화가 아쉽게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한다. 한식도 충분히 고급지고 경쟁력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겠어.’
중식이나 일식과 비교해 인지도가 현저히 낮은 것이 한식의 현주소였다.
“각자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렵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시고요.”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 무역의 또 다른 사내 분위기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직원들은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상사에게 묻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회사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
강우의 말이 끝나자 직원들의 열의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강우가 바라는 것이었다.
“그럼 오늘 하루도 힘들 내세요.”
마지막 격려의 말을 끝으로 강우가 부사장실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마사토는 각자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동양 무역의 사무실이 다시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똑똑.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던 강우가 노크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네.”
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사장님, 대진 건설 관계자분들이 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힐끗 시계를 바라보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강우가 부사장실을 나와 회의실로 향했다.
“어?”
회의실에 도착한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강우를 반겨주는 사람은 바로 대진 건설 사장 이재중이었다.
“여! 동생아.”
“형이 직접 왔어요?”
강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재중이 씩 웃었다.
“당연하지. 동양 무역 신사옥 건설인데. 우리 그룹 본사 건물보다 더 잘 지어야지.”
이재중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