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뚜르르. 뚜르르.
침대에 누워있던 강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손을 뻗어 옆을 더듬거렸다. 침대의 한쪽에서 묵직한 핸드폰의 감촉이 느껴졌다. 강우가 핸드폰을 집어 액정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니 새벽 4시에 무슨 전화를….”
강우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야….”
-강우야!!! 해냈다!-
남재식의 숨넘어가는 목소리에 강우가 핸드폰을 귀에서 땠다. 그리고는 다시 귀에다 가져다 댔다.
“귀청 떨어지겠네. 새벽에 전화해서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아…. 미안…. 그런데 지금 몇 시냐?-
강우가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아마 또 밤새 개발작업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나 보다.
“지금 새벽 4시 넘었다.”
-헉…. 미안하다. 자는데 깨웠…. 아니지 너 잠 별로 안 자잖아.-
“그래도 지금은 눈 좀 붙이고 있었거든?”
-한 시간만 자도 충분하잖냐. 지금 빨리 회사로 좀 와줘라.-
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남재식은 강우를 잘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알겠다.”
강우가 통화를 끝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집 안은 깊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강우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지이잉-
차고 문이 열렸다. 겨울 아침이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컴컴한 주변을 두 개의 헤드라이트가 밝혔다.
부우웅-
강우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차고를 벗어나 목적지인 JG 소프트를 향해 출발했다. 야심한 새벽의 강남이었지만, 거리에는 차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강우가 모는 차는 JG 소프트 건물로 들어섰다. 주차를 마친 강우가 곧장 개발팀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개발팀 안으로 들어선 강우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마치 길고 긴 전투를 치른 병사들처럼 늘어진 개발팀 인원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재식아?”
강우가 직원들 무리에 섞여 널브러져 있는 남재식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개발팀 사무실의 시선이 강우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일시에 사기가 충전된 병사들처럼 벌떡 벌떡들 일어났다.
“부사장님!”
“아아! 드디어 오셨다!”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강우가 남재식의 옆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일인데? 새벽에 전화해서 사람을 불러내냐?”
강우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남재식이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준비됐죠?”
남재식의 말에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재식이 짧게 심호흡을 하더니 앞에 있는 PC를 가동했다.
위이잉-
피시가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파란색 바탕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탕화면에는 단 한 개의 아이콘이 있었다.
-Twinge 2-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완성한 거냐?”
“그래, 방금 마지막 테스트 끝났다.”
남재식이 소매로 눈가를 슬쩍 훔쳤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결실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었다.
“전화할만했네. 인정.”
“큭….”
남재식이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고 강우가 남재식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튀니지가 런칭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자 강우는 후속작 이야기를 꺼냈다. 튀니지가 한창 성공하고 있을 시기라 남재식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미래 기억을 가진 강우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전 세계를 강타할 MMORPG가 출시된다. 그 게임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시장 선점도 좋은 방법이지.’
강우는 남재식에게 곧 히트할 게임의 중요 콘텐츠들을 전부 알려주었다. JG 소프트의 개발진들은 강우가 알려준 대로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개발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딸칵.
강우가 마우스를 클릭해 게임을 실행시켰다. 컴퓨터가 다시 소음을 내며 이윽고 화면 위로 게임 타이틀이 떠올랐다. 웅장한 배경음과 함께 로그인 화면이 나타났다. 기존의 그래픽과는 다른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배경이 특히 눈에 띄었다.
“오…. 좋은데?”
“잠깐만 테스트용 아이디로 접속해줄게.”
남재식이 개발자용 테스트 아이디로 접속했다. 풀 세팅이 되어있는 캐릭터가 화면 위로 떠 올랐다. 강우가 내심 기대되는 눈빛을 지었다. 강우의 아이디어로 미래의 기억과는 완전히 달라진 게임이었다. 강우에게도 새로운 게임이었고, 강우는 게임을 참 좋아하기도 했다.
“오…. 그래픽 좋다.”
강우가 화려한 그래픽을 보며 감탄을 뱉어냈다. 남재식이 의기양양했다.
“당연하지. 우리가 여기에 쏟아부은 개발비가 얼마냐.”
“그래도 다른 개발사들에 비하면 효율적인 개발비였지.”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이렇게 좋은 결과물을 뽑아냈고.”
튀니지 2 개발에 들어간 개발비용은 다른 게임 제작사들과 비슷한 규모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외부 투자가 없는 순수 JG 소프트의 자금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전문가의 간섭 없이 효율적이고 빠른 개발이 가능했다.
“자…. 어디 한번 해볼까.”
강우가 두 손을 비비더니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한참이나 새롭게 개발된 게임 속 세상을 누볐다. 남재식을 비롯한 개발진들의 시선은 온통 강우를 향했다.
“오….”
강우가 탄성을 뱉어내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됐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
강우가 침음성을 흘리면 머리를 싸매 쥐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강우의 손이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철수했다.
“어때?”
남재식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우가 남재식을 보며 씩 웃었다.
“합격.”
그 말과 동시에 개발팀에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지쳐 보였다.
“다들 고생했는데 보너스 지급이라도 해야겠네.”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내 폭발적인 함성을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남재식이 그 모습을 보더니 픽 웃었다.
“아니 여기 대표이사는 나라고….”
“왜? 안 돼?”
강우의 물음에 남재식이 움찔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돼.”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지금 여러분의 노고로 탄생한 이 게임은 대한민국 게임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겁니다.”
강우의 말에 개발진들의 얼굴에서 피로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 개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강우와 남재식이 JG 소프트의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로 게임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동안 빠듯한 개발 일정에 철야 작업도 많이 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점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개발 시간을 넉넉히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강우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개발진들이 마구 손사래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좋아서 매달린 겁니다!”
“우리 회사 대우가 얼마나 좋은데요!”
직원들의 반응에 강우가 씩 웃었다.
“이해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럼 오늘은 다들 돌아가서 쉬고 내일이나 모레쯤 개발 완료 파티를 할까 하는데 다들 어떠십니까?”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좋다고 하며 손뼉을 쳤다. 두둑한 보너스에 근사한 파티까지 열어준다니 정말 이런 회사가 어디 있나 싶었다.
“그럼 다들 일찍 퇴근들 하세요.”
강우의 말에도 직원들은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고 강우의 인정까지 받았으니 그 흥분이 가시지 않나 보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재식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럼 다들 배고픈데 근처 가서 뜨끈한 국밥이나 한 그릇 할까요?”
남재식의 말에 직원들이 벌떡 일어나 외투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JG 소프트 건물을 벗어난 강우와 남재식이 회사 근처의 단골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이른 새벽 한산하던 감자탕집이 금세 가득 찼다. 강우와 남재식은 한쪽 구석에 마주 앉았다.
“다들 먹고 싶은 만큼 주문들 하세요.”
남재식의 말에 직원들이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대표님, 저희 소주 한잔해도 됩니까?”
직원들이 남재식에게 물었다.
“그럼요. 오늘은 어차피 휴무들이니까 마음대로들 하세요.”
남재식의 말에 개발팀 직원들의 얼굴이 더욱더 상기되었다. 그리고는 테이블별로 소주잔을 놓으며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그동안 개발을 하며 겪었던 일들이 마치 무용담처럼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소주 한잔하고 싶은데. 넌 조금 있다가 출근이지?”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물었다. 이제는 제법 술을 즐길 줄 아는 남재식이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 나는 그냥 따라만 줄게 너 한잔해.”
“오케이.”
이윽고 강우와 남재식이 앉은 테이블에 감자탕과 소주가 도착했다.
따라락.
강우가 소주병을 뜯어서 남재식의 잔을 채워주었다. 남재식이 단숨에 소주잔을 들이키더니 미간을 좁혔다.
“크….”
남재식이 깍두기를 집어 먹더니 오도독오도독 씹었다. 강우가 다시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재식아, 일단 빨리 클로즈베타부터 하자.”
“그렇지 않아도 일정은 잡아놓은 상태야. 연말에 클로즈베타 시작해서 내년 초에는 정식서비스까지 갈 생각이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보통 게임의 정식서비스는 방학 기간을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정 빨라서 좋다.”
“다른 회사들이라면 생각도 못 할걸? 허겁지겁 개발해서 일단 런칭한 다음에 버그 잡고 밸런스 조절하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르지.”
남재식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JG 소프트는 개발 과정을 그야말로 완벽히 가져가고 있었다. 좋은 조건에 좋은 인재들이 몰려 개발 인력이 풍부했고, 개발에 투입하는 인원도 아끼지 않았다. 좋은 인력과 풍부한 인원은 곧 양질의 개발 환경으로 이어졌다.
“개발자가 행복해야 게임도 잘 나오는 거니까.”
“암…. 그렇고말고.”
강우와 남재식이 허공에서 주먹을 툭 하고 부딪혔다. 게임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든 JG 소프트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개발사라고 자부했다.
“아 그리고 이번에 나 중국 갈 때 클라이언트 백업자료 부탁한다.”
“오케이. 알겠다.”
남재식이 알겠다고 하며 눈을 빛냈다. 강우와 남재식은 이번에 개발한 튀니지 2를 바로 중국에 런칭할 생각이었다. 중국에서 떠오르는 퍼블리싱 회사인 틴센트를 통해서였다. 최초의 국산 게임의 수출을 앞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우야, 정말 우리 게임이 중국에서도 먹힐까?”
남재식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분명 대박 날 거야. 아니 내가 대박 나게 만들 거다.”
“크…. 역시 박강우.”
남재식이 감탄성을 뱉어냈다. 강우의 저 자신감은 절대 허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끓기 시작한 감자탕의 국물을 휘휘 저었다.
‘이제 대한민국이 가진 문화의 힘이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침공하기 시작하겠지.’
강우는 이미 준비를 모두 마쳐놓은 상태였다. 대진 그룹의 문화 콘텐츠들과 SJ 그룹이 가진 한식 그리고 JG 소프트가 가진 미래 산업 게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컨트롤 하는 중심에는 바로 강우 자신과 동양 무역이 있었다.
“이번 중국행 정말 중요한 일이다. 너도 꼭 성공하기를 기원해줘.”
강우의 말에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걱정 별로 안된다. 다름 아닌 박강우가 하는 일인데 성공은 떼놓은 당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