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9화 (309/402)

오만 원에 보너스로 삼만 원 더 얹어준다.

다음 날 아침. 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젯밤 오랜만에 뭉친 친구들과 자리는 정말 즐거웠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강우와 신원주 그리고 친구들은 신익준의 가게에도 들이닥쳤다. 그리고 여전히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 밤새워 즐겁게 놀았다.

똑똑.

마침 방문을 노크하고 강용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형아, 밥 먹으러 내려오래.”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중학생 까까머리인 강용이 머리의 까끌까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빨리 씻고 내려갈게.”

“저기 형아….”

2층 강우방 앞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려던 강우가 멈춰 섰다. 그리고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어?”

강용이가 멋쩍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 나 대진 엔터랑 계약하는 거 말이야.”

“어.”

“그…. 계약금 받는 거 말이야.”

강우가 내심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미간을 좁혔다.

“계약금? 그거 왜? 엄마가 다 적금 든다고 하셨는데?”

“저…. 적금?”

강용이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순식간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응, 엄마가 너 대학 갈 때 보탠다고 적금 든다고 했어.”

“대…. 대학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강용이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으으…. 큰일이다.”

“왜? 무슨 일 있어?”

모르는 척했지만, 강우는 진작에 강용이의 사정을 눈치챘다. 얼마 후가 크리스마스였으니 아마도 두둑한 용돈이 필요한 게 분명했다.

“아니 큰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 있잖아.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고 내가 이번에 작가 계약한다고 애들한테 말해 놓은 것도 있고 다들 밥이라도 한 끼….”

말을 이어가던 강용이가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밥이나 한 끼 산다는 말이 어이가 없었나 보다. 강우는 그런 강용이가 참 귀여웠다.

“애들은 무슨 너 진아랑 데이트하려고 그러는 거지?”

“하아~ 형아한테는 뭘 숨길 수가 없어. 맞아. 진아 선물도 좀 근사한 거로 사주고 싶은데. 아뿔싸! 마침 용돈이 딱하고 떨어졌지 뭐야?”

“용돈 다 어디 썼는데.”

“친구들이랑 분식 사 먹고 게임하고 어…. 뭐…. 남자들 사이에 그런 거 있잖아. 비즈니스라고나 할까?”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쿵’ 하고 쥐어박았다.

“이게 작가님 되더니 능글맞아지기만 하네.”

“악!”

강용이가 엄살을 부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얼마, 얼마면 되겠니?”

“형아! 최고!”

강우를 향해 손가락을 ‘척’ 하고 든 강용이가 그대로 손가락을 쫙 폈다.

“오만 원.”

“오만 원?”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또 얼마나 달라고 하려나 했더니 아직 애는 애였다. 본인이 이번에 대진 엔터와 계약하며 받게 된 계약금의 액수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놀랄까 싶었다.

“좋아. 오만 원에 보너스로 삼만 원 더 얹어준다.”

강우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현금을 꺼내 강용이에게 내밀었다.

“아싸! 감사합니다!”

용돈을 받은 강용이가 일 층으로 후다닥 달려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강용이의 저 순수함이 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솨아아-

후딱 샤워를 마친 강우가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일 층으로 내려가자 근사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있었다.

“아들, 어서 와서 앉아.”

어머니가 강우에게 줄 국을 준비하며 말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인자하게 웃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 강우 일어났구나.”

“어서 와서 앉아.”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네, 할아버지.”

강우가 자리에 앉자 큰아버지가 강우에게로 반찬을 쓱 밀었다.

“강우야, 이것 좀 먹어봐라. 아침에 큰엄마가 구운 생선인데 아주 노릇하게 잘 구워졌어.”

“네, 큰아버지도 드세요.”

큰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큰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박지영이 눈을 살짝 흘겼다.

“와~ 아빠, 딸은 챙겨주지도 않더니. 강우 오니까 아주 푹 빠졌네.”

“흠흠….”

큰아버지가 민망함에 헛기침했다. 그러자 이른 출근 때문에 허겁지겁 밥을 먹던 박선영이 툭 한마디 던졌다.

“나 같아도 그럴 거 같은데?”

“언니!”

박지영이 억울하다는 듯 박선영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리셨다. 어머니가 강우 몫의 국을 놓으며 싱긋 웃었다.

“나는 우리 지영이가 더 좋더라.”

박지영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 오늘도 같이 출근할 거지?”

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네, 밥 먹고 같이 나가요.”

“그래.”

대가족이 모인 아침 식사는 정말 훈훈했다. 이윽고 아침 식사가 끝나고 가족들은 각자의 일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강우야.”

주방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던 강우를 어머니가 조용히 불렀다. 강우가 황급히 물을 다 마셨다.

“네?”

“엄마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시간 있어?”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아침 장운동이 활발한 아버지가 화장실을 간 상태였다.

“네, 아버지 화장실 가셨어요.”

어머니가 강우를 슬쩍 주방 구석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심문을 시작했다.

“혹시 강우 너. 강용이한테 용돈 줬지?”

“네? 네?”

강우가 눈을 끔뻑끔뻑 뜨며 어리바리했다. 아들의 보기 드문 모습에 어머니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심문 중에 웃음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니, 분명히 아침까지만 해도 계약금 얼마냐고 끈질기게 물어보더니 강우 너 깨우러 올라간 후로부터 잠잠해졌다. 아까 밥 먹으면서도 싱글벙글하고. 얼마나 줬어?”

어머니가 강우를 향해 손을 ‘척’ 하고 올렸다. 강우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나은의 허리 ‘척’도 무서웠지만, 원조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파…. 팔만 원이요….”

“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이내 입을 가리며 웃었다. 큰 액수의 계약금을 두고 팔만 원에 싱글벙글하는 막내아들이 너무 귀여웠다.

“그…. 크리스마스 때 약속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랑…. 아니 친구들이랑요.”

거짓말 못 하는 강우가 동생을 위해 이를 악물고 글자 하나를 바꿔말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 용돈으로 팔만 원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 알겠어. 그런데 강우야, 엄마가 강용이 용돈을 너무 박하게 주는 건가?”

“네?”

“아니 엄마는 넉넉히 준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용돈이 부족한 거 같아서.”

강우가 심각한 내적 갈등을 일으켰다. 강용이가 이진아와 사귀는 것을 어머니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굳이 숨길 이유가 있을까도 싶었다.

‘강용이 보고 빨리 말을 하던가 하라고 해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오늘과 같은 곤란함을 겪을 것이 아니겠는가. 강우는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 게 정말 곤욕이었다.

“아니에요. 딱 적당해요. 혹시 부족한 거 같으면 제가 적당히 챙겨줄게요.”

“그래, 알겠어. 아들.”

어머니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강우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화장실에서 나온 아버지가 강우를 찾아 주방에 왔다. 강우와 어머니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강우야, 빨리 아버지 모시고 출근해.”

“네, 엄마.”

강우가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늦겠어요”

“왜? 뭔데? 나만 모르는 거 같은 기분인데?”

강우가 슬쩍 웃으며 앞장서서 현관을 벗어났다. 아버지가 머리를 긁적하더니 강우를 따라 현관을 벗어났다.

멍- 멍-

강우와 아버지의 출근길을 장군이와 루피가 배웅해주었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장군이와 루피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버지는 강아지를 참 좋아했다. 부유했던 어릴 적에는 집에서 대형견을 여러 마리 키우기도 했었다고 했다.

“그래, 아빠 회사 갔다가 올게.”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장군이와 루피가 멍멍 짖으며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지이잉-

차고 문이 열리고 승용차 한 대가 밖으로 나왔다. 승용차 안에는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박선영과 박지영이 있었다.

“강우야, 나는 역에서 세워줘.”

“나도.”

박선영과 박지영이 지하철역에서 세워달라고 했다. 강우가 룸미러로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았다.

“누나랑 지영이도 슬슬 운전면허 따는 게 어때?”

박지영이 깜짝 놀라며 강우를 향해 물었다.

“차 사줄 거야?”

“박지영!”

박선영이 박지영의 등을 퍽하고 후려쳤다. 박지영이 몸을 배배 꼬며 울상을 지었다.

“왜?”

“너는 참….”

박선영이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흘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씩 웃었다.

“선영이는 회사 일이 바쁘니까 차가 필요할 거고. 그리고 형님이랑 큰엄마도 모시고 다녀야지.”

“네, 작은아빠.”

박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한남동 저택 단지에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아 택시를 타고 오기 일쑤였다.

“나는요? 나는요?”

박지영이 자신을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졸랐다. 딸이 없는 아버지는 박지영의 애교에 살살 녹았다.

“우리 지영이는 시험 잘 보면 작은아빠가 한 대 뽑아줄게.”

“아싸! 작은아빠가 최고!”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박지영은 나이가 많았지만, 강용이랑 참 비슷한 모습이 많았다. 역시 막내는 막내였다.

탁.

이윽고 역 앞에서 박선영과 박지영이 내렸다.

“다녀오겠습니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아버지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아버지가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 잘 다녀오고. 있다가 보자.”

강우도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부우웅-

강우가 차를 출발시켰다. 강우와 아버지는 승용차를 함께 타고 동양 무역으로 향했다. 정 기사가 모는 고급세단은 당분간 휴가를 준 상태였다. 최 비서도 마찬가지로 휴가를 준 상태였다.

* * *

딸랑.

사무실 문이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출근했다. 강우와 아버지의 중국 출장을 앞둔 사무실은 정말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장님, 부사장님.”

황규범 부장이 강우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그래 황 부장. 아침부터 얼굴이 아주 좋은데?”

아버지의 말에 황규범 부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인원이 대폭 보강돼서 일이 아주 수월해질 거 같아서요.”

“그래? 잘됐네. 그동안 고생들 했지.”

황규범 부장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동양 무역만큼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는 곳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고생이라는 말은 조금 민망하게 들릴 정도였다.

“새로 출근한 과장급 직원들이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사장실로 전부 모이라고 해줘. 아…. 간단한 다과도 부탁해.”

“네, 사장님.”

아버지의 말에 황규범 부장이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몇몇 직원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신사옥으로 옮기면 비서진들도 뽑아야겠어요.”

“그래야겠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강우도 뒤를 따라 사장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직원 몇 명이 사장실에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다.

“수고들 했어.”

아버지가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직원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똑똑.

사장실 문을 노크하고 황규범 부장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사장님, 새로 출근한 과장급 직원들 모였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황규범 부장이 뒤를 돌아보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윽고 강우가 뽑은 새 직원들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인사 소리와 함께 세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나이대는 모두 삼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동양 무역의 중간 주춧돌이 될 경력직 사원 중에서도 과장급으로 뽑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반가워요. 자리에 앉아요.”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널찍한 사장실에 있는 작은 회의 탁자로 직원들이 둘러앉았다. 잠깐의 긴장감이 흐르던 차였다.

똑똑.

“누구세요?”

“사장님, 접니다.”

문이 열리고 부사장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온 강우가 나타났다. 강우가 나타나자 긴장하고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강우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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