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1화 (311/402)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고급 세단에 타고 있는 마사토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눈앞으로 보이는 커다란 빌딩에는 ‘광복’이라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저…. 저기가 중국 본사 건물이라는 거지?”

마사토가 놀랄 만큼 중국 법인의 빌딩은 컸다.

“그럼, 저기 다 우리가 쓰는 빌딩이야.”

“하…. 역시 중국이라 스케일이 크군.”

아버지가 마사토의 놀란 표정을 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마사토는 사진으로 중국 법인의 빌딩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직접 보는 것이랑은 느낌이 달랐다.

스르륵.

고급 세단이 미끄러지듯 중국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지하로 들어서고 철저한 보안시스템을 통과해 지하 임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마사토는 보안 인력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 입구로 들어섰다. 마사토는 철저한 보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역시…. 그분 때문에 그런 거지?”

“네, 아무래도 그렇죠.”

위진오가 중국 정계에서 높은 위치로 갈수록 필연적으로 정적도 늘어나고 있었다. 예전만큼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위진오가 이곳에 방문하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은 필수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회장실로만 쓰이는 층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우와 아버지는 익숙하게 내려 회장실로 향했다. 마사토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짜 잘 꾸며 놨네.”

강우가 나타나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진들이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룹의 주인을 보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다들 수고 많아요.”

강우가 유창한 중국어로 인사했다. 비서들이 회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강우와 아버지가 회장실로 들어섰다. 마사토는 회장실 옆쪽에 걸려있는 현판을 보며 잠시 생각이 잠겼다.

-광복(光復)-

마사토에게 두 글자는 참 많은 의미가 있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며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마사토였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한국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마사토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살았다. 열심히 봉사도 하고 기부도 했다. 그렇게 강우와 친구를 도우며 동양 무역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그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 같아.’

중국 법인의 규모도 규모였지만, 이번 출장길에 강우가 들고 온 프로젝트의 규모도 엄청났다. 마사토는 솔직히 동양 무역의 성장세가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낸 강우를 떠올리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랑 함께라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상상이 되지도 않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강우와 정식하고 함께하기로 한 거지.’

마사토가 씩 웃은 뒤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강우는 벌써 회장석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즐기고 있었다.

“마사토, 이쪽으로 와서 앉아. 여기 경치가 아주 좋다고.”

“어어.”

마사토가 아버지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그리고는 짧게 탄성을 뱉어냈다. 아버지의 뒤쪽으로 보이는 빌딩 숲의 경관이 아주 볼만했다.

똑똑.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서류를 보느라 정신없는 강우를 대신해 아버지가 말했다. 바로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사장님!”

“오? 진 부사장.”

강우와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중국 법인을 총괄하는 진남규가 나타난 것이다.

“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진남규가 고개를 돌려 강우를 발견했다. 회장석에 앉아 서류를 정신없이 정리하는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일에 집중할 때의 강우는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강우는 진남규의 롤모델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옆에서 전쟁이 나도 모를 거야. 일단 이리 와서 인사 좀 하지. 여기는 한국 지사 마사토 이사.”

아버지의 말에 마사토가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마사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중국 지사 진남규 부사장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남규 역시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직급은 자신이 높았지만, 마사토가 동양 무역의 시작을 함께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자 일단 앉아서 차라도 한잔하지.”

아버지가 인터폰을 들어 차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마사토가 나란히 앉고 그 앞으로 진남규가 앉았다. 아버지가 진남규를 보며 말했다.

“진 부사장이 그룹 경영을 너무 잘 해줘서 우리가 한국에서 올 필요를 못 느낄 정도였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아직 경험이 짧은 저를 믿어주시고 큰 직책까지 주셨으니 당연히 열심히 일해야죠.”

진남규가 의지가 가득 담긴 눈빛을 지었다. 나날이 커지는 그룹의 규모만큼 자신의 삶도 바뀌고 있었다.

“그래, 어머님은 잘 지내시고?”

“네, 가게 그만두시고 그동안 밀린 건강 검진도 하고 정말 편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오? 드디어 가게를 그만두셨어?”

아버지가 잘됐다는 듯 말했다. 진남규는 부사장의 직급인 만큼 높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강우는 중국 법인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진남규에게 보너스도 아끼지 않았다. 회사의 수입이 늘어날수록 직원 대우에 더 신경을 쓰는 강우였다. 그렇게 돈이 생기자 진남규는 바로 어머니부터 쉬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진남규의 어머니는 가게를 그만두는 것을 망설였다. 오랜 시간 겪어온 고생으로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진남규가 거둔 성공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두려웠다고 했다.

“네, 어머니 설득하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들 걱정시키기 싫으셔서 그랬을 거야. 그래도 이제라도 편히 쉬실 수 있다니 다행이다.”

“이게 전부 회장님이랑 사장님 덕분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던 저를 여기까지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진남규의 말에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부사장이 능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온 거지.”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진남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사토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부사장님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진남규가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진남규라면 지금 이런 표정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은 진남규 가족에게 멍에였고, 고통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남규는 자신의 핏줄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중국에 남아있던 독립운동가분들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 지시하신 일이죠.”

진남규가 강우를 바라보며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을 마구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진남규의 시선 때문일까.

“음…. 어?”

강우가 서류에서 시선을 떼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진남규를 발견했다. 진남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장님!”

“아…. 부사장님. 오셨어요.”

진남규가 강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강우의 몸을 이곳저곳 살폈다.

“잘 지내셨습니까? 어디 아프신 곳은 없죠? 와! 몸이 더 좋아지셨습니다.”

쉴 새 없이 안부를 묻는 진남규를 보며 마사토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차분한 듯싶던 진남규의 모습은 사라지고 마치 주인을 만난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엉덩이에 꼬리가 달렸나 슬쩍 바라볼 정도로 말이다.

“부사장이 강우라면 아주 끔뻑 죽어.”

그런 마사토를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마사토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네. 강우는 참 인복도 많아.”

“그렇지?”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진남규는 정말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규모가 거대한 중국 법인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깔끔히 정리해놓은 당사자였다. 그런 인재가 강우를 저리 따르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부사장님은 살이 좀 찌신 거 같은데요?”

“윽….”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배를 슬쩍 만졌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매일 업무 보느라 책상에 앉아서 끼니를 때워서 그런가 봅니다. 그룹이 커진 만큼 제 뱃살도 커졌다고나 할까요?”

“운동하세요. 운동.”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멋쩍게 웃었다. 강우가 깔끔히 정리된 서류 뭉치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가 진남규의 옆쪽으로 앉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서류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와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네, 회장님.”

진남규가 강우 옆에 앉았다.

사라락. 사라락.

진남규가 서류 뭉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감탄을 뱉어냈다. 강우가 정리해놓은 순서대로 읽기만 해도 이번 프로젝트의 윤곽이 정확히 이해됐다. 그야말로 핵심만 정확히 정리된 서류에 진남규는 감탄 또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셔. 이 서류만 잘 이해해도 이번 프로젝트의 반은 성공하겠네.’

진남규는 계속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이윽고 진남규가 서류를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회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류를 다 읽었을 뿐인데 이번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해나가야 할지 알겠습니다.”

이미 서류를 사전에 접했던 아버지와 마사토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첫 번째 서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엔터 사업 분야는 대진 엔터와 연계해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 분야는 제가 담당할 거고요.”

대진 엔터 역시 중국 법인 광복에 엔터 사업 일체를 일임한 상태였다.

“네, 회장님 연락을 받고 바로 엔터 담당 부서를 구성해 놓았습니다.”

“좋네요.”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간단한 언급만 해주어도 알아서 척척 하는 진남규였다. 강우가 두 번째 서류를 가리켰다.

“SJ 그룹과 합작할 식품사업부는 부사장이 담당해주세요.”

“네, 반드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겠습니다.”

강우가 마사토를 바라보며 말을 보탰다.

“그리고 마사토 이사님도 중국에 계시는 동안 부사장을 도와주시고요.”

“그래, 알겠다.”

마사토가 눈을 빛냈다. 진남규와 같이 일하는 것에 기대감이 들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능력자와의 협업에 의지도 활활 타올랐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전반적인 그룹 상황 파악해서 정리해주시고요. 특히 독립운동가분들 지원 사업 현황 잘 정리 부탁드려요.”

“그래, 아들 걱정하지 말고 중국에 있는 동안 프로젝트 완벽히 정리해놓고 가자.”

“네, 아버지.”

강우가 든든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강우의 뒤에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런데 회장님. 이번에 새로 런칭하는 게임은 아예 틴센트 쪽에 맡기시는 겁니까?”

진남규가 마지막 서류를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아니요. 그 부분은 한국에서 JG 소프트의 사장이 직접 와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 회장님의 친구분이라는….”

“네, 맞습니다.”

진남규가 또 진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강우의 친구는 또 어떤 대단한 능력자일지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아…. 그리고 대진 그룹에서도 이재원 사장님이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이재원 사장님까지요?”

진남규가 흥미진진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재원이 누구던가 너무나 잘 알려진 강우의 친형 같은 존재이자 영혼의 파트너였다.

“네, 상해 지사 방문 목적이긴 한데. 일단 북경으로 와서 우리 그룹부터 방문한다고 하더라고요.”

“준비 철저히 해놓겠습니다.”

진남규가 성대한 환영식을 머리로 그리며 호언장담했다. 그런 진남규를 보며 강우가 씩 웃었다.

“그냥 편하게 하세요. 막 화려하고 그런 거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아…. 네!”

고개를 끄덕인 진남규가 이번에는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이건 회장님이 지시하신 중국 업무 현황들 보고서입니다.”

그 엄청난 서류의 양에 아버지와 마사토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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