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같이 대륙을 정복해 보시죠.
사라락. 사라락.
엄청난 양의 서류가 빠르게 넘어갔다. 아버지와 마사토 그리고 진남규는 담담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서류를 모두 확인한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네요. 일단 투자한 곳들에서 수익률도 좋고요. 무엇보다 포털사이트 시장 점유율이 엄청나네요.”
“회장님의 선견지명으로 시장을 먼저 선점한 게 컸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진남규가 강우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살짝 부담스러운 시선에 강우가 움찔했다. 강우가 고개를 슬쩍 내려 서류를 바라보았다.
“검색 사이트를 장악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죠.”
“기술적인 업데이트도 지시하신 대로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모바일 시대를 향해 나아갈 겁니다. 모바일에서 최적화된 플랫폼 제품 개발에 최선을 다해주셔야 합니다.”
진남규가 강우의 말을 열심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강우가 해주는 말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거나 획기적이었다.
“네, 그렇지 않아도 모바일 플랫폼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B2C 사이트 런칭을 준비 중입니다.”
광복은 자체적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도 진출한 상태였다. 모두 강우가 지시한 것들로 마원의 알리바마에 투자하는 순간부터 준비돼온 프로젝트였다.
“좋네요. 마원 사장님의 알리바마와 연계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세요.”
“네, 회장님.”
강우에게 투자를 받은 마원은 미래 기억대로 알리바마라는 기업을 성장시켰다. 알리바마는 자국 내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B2C 형식의 쇼핑몰 그리고 알리바마라는 B2B 사이트를 런칭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다만 미래 기억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강우의 중국 법인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회사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마원은 자신이 힘든 시기에 투자해준 강우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강우는 마원에게 알리바마가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마원은 강우가 가진 선구자적 아이디어에 크게 감명한 상태였다. 강우가 그런 것에는 이유도 있었다.
‘원래 마원은 약간 거만한 스타일의 사람이지. 쉽게 보이면 언제 딴생각을 할지 모르는….’
마원이 겉으로는 대범한 사람이라 알려졌지만, 강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투자자로서만이 아닌 IT업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중국 시장은 어느 한 회사가 독점하기에는 큰 시장이다. 적당히 파이를 나누어 먹어도 알리바마가 크는 데 문제는 없겠지.’
강우는 알리바마가 크는 것도 원했지만, 그렇다고 중국 법인 광복이 가져갈 수 있는 파이까지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강우도 마원에게 투자한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었다. 알리바마에게서 받은 주식은 그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증시 거래소에 상장되기 전까지는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할 주식이지.’
강우가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들어오는 한국 제품들은 우리 회사의 플랫폼에 먼저 런칭할 겁니다. 그에 따른 마케팅 방법과 일정도 제가 지시한 대로 준비해주세요.”
“네, 회장님.”
진남규의 손이 점점 바빠졌다. 강우의 입에서 업무지시가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가 지시한 SNS 플랫폼은 개발이 끝나가고 있습니까?”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는 미래 기억을 통해 곧 SNS의 시대가 열릴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남규의 묘한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이 경제시장을 개방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까지 개방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중국 사회는 중앙당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다.
‘그건 미래에도 마찬가지지 아니 점점 심해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까지 억누를 수는 없는 거고.’
냉전 시대와는 달랐다. 아무리 정보를 억제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사람들은 외국의 문물을 접하고 받아들이며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중국 역시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문화적인 변화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문화적으로 거대한 성벽을 치듯 자국에서 생산한 것들로 내부를 단속하기 시작하지.’
강우는 그런 중앙당의 방침에 맞춰 중국 내부를 공략한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려는 것이었다.
“네, 회장님 지시대로 개발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중국 사람들에게 보급할 수 있을까요?”
진남규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우가 씩 웃었다.
“중앙당의 심사를 받고 기준을 충족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아니더라도 SNS는 곧 세계인이 사용하게 될 겁니다.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그런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죠. 차라리 우리가 개발하는 플랫폼이 더 다루기 쉽다고 생각할 겁니다.”
“음…. 그렇군요.”
진남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분명 성공 원인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강우에게는 위진오라는 강력한 뒷배경이 있었다.
‘이 정도 플랫폼을 런칭하는데 힘써주는 건 일도 아니겠지.’
생각에 빠진 진남규에게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엔터 사업부도 이제 본격적으로 규모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일단 엔터 사업부의 직원들은 모두 당국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현재 중국의 연예 산업은 기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
‘지금의 중국 연예계는 말도 안 되는 노예계약과 매니지들의 횡포가 난무하는 시기다. 방송의 다양성도 떨어지고 그저 연예인 개인의 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지.’
또한, 매니저를 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에서 지정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도 했다. 즉, 현재 중국의 엔터 회사들은 매니저들이 장악하고 연예인들을 착취하다시피 하는 구조였다. 강우는 그런 중국 엔터 산업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정당한 대우와 상식적인 계약 내용 그리고 대진 엔터가 가진 전문성을 합치면 대단한 파급력이 나오겠지.’
중국 연예계는 콘텐츠를 개발할 능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래 기억 속에서도 중국은 한국 연예프로그램을 베끼기 급급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당한 대가도 내지 않은 채 한국의 것을 가져다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지.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도 내가 중국 엔터 산업의 뿌리부터 바꿔놓겠어.’
강우의 이런 생각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막강한 자금력과 든든한 뒷배경을 가진 중국 법인 광복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좋네요. 곧 대진 엔터에서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한 프로젝트팀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주세요.”
“네, 이미 방송 채널 허가도 받은 상태입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위성방송 채널의 수는 엄청났지만, 강우는 그 전쟁 속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혼자서 처리하느라.”
“아닙니다. 정말 일에 빠져 사느라 행복했습니다.”
진남규의 밝은 표정에 강우가 씩 웃었다. 진남규가 눈을 빛냈다.
“회장님이 지시하신 대로 가능한 한 모든 분야에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설 차례입니다. 그룹의 모든 사원은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중국 법인 광복은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문화, 건설, IT, 식품, 유통 등등 중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였다.
“좋네요. 저랑 같이 대륙을 정복해 보시죠.”
“네, 회장님.”
강우와 진남규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와 마사토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 *
간단한 미팅을 끝내고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마사토와 진남규는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중국에 온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처음 방문한 마사토를 위해 진남규가 저녁을 사기로 했다.
스르륵.
고급 세단 두 대가 북경 시내의 고급 호텔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강우와 진남규가 내렸다. 다른 세단에서는 아버지와 마사토가 내렸다.
“거참…. 중국이 넓긴 넓군.”
마사토는 북경 시내를 이동하는 내내 솟은 거대한 빌딩 숲들을 보면서 왔다. 물론, 마사토가 원래 살던 일본이나 지금 사는 한국도 빌딩 숲은 많았다. 하지만 뭐랄까 중국은 무엇이든 거대해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사람 기차 타고 하얼빈 가면 입이 떨어지겠네.”
“기차 여행 좋지.”
마사토가 살짝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 중국 출장 스케줄에는 하얼빈에 방문할 예정도 있었다.
“제가 예약해 놓았습니다. 바로 들어가시죠.”
진남규가 아버지와 마사토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강우는?”
아버지가 강우를 찾았다. 진남규가 기묘한 표정을 짓더니 뒤를 슬쩍 가리켰다. 아버지와 마사토의 시선이 진남규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실소를 흘렸다.
“아니…. 강우는 왜 저러고 있는 거냐?”
강우가 몇몇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었다. 열정적으로 강우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이었다. 강우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사람들이 강우 옆으로 주르륵 늘어섰다.
찰칵. 찰칵.
사진을 든 사람들이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우가 사진을 모두 찍고는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일행에게 돌아오려는 순간.
“허….”
아버지가 탄성을 뱉어냈다. 또다시 모여든 사람들에게 붙잡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마사토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한국은 그렇다 치고 중국 사람들은 강우를 왜 좋아하는 건데?”
이해가 가지 않는 두 사람의 옆에서 진남규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애써 모른 척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도 잘….”
그 순간, 사진을 모두 찍어주고 돌아온 강우가 진남규에게 다가왔다.
“남규 형.”
직책이 아닌 평소 호칭을 부르는 강우를 보며 진남규가 움찔했다. 아버지와 마사토의 시선이 진남규를 향했다.
“하하…. 그게 말이죠.”
“아니, 왜 그룹 홍보물에 제가 실린 건지 설명 좀 부탁드리죠?”
강우가 조금 전 자신을 둘러쌓던 사람 중 한 명이 건네준 책자를 내밀었다. 그 책자는 중국 법인 광복을 홍보하는 홍보물이었다. 그리고 그 홍보물의 앞면에는 강우의 전신 샷이 실려있었다.
“그게 중국 사람들은 기업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그 수장이 누구인지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하아….”
강우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진남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오랫동안 일당독재로 이어져 오고 있는 나라였다. 그 당의 수장은 항상 선전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우상화되기까지 했었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중국인들은 그 대상을 거대 기업들의 수장에게도 투영하고는 했다.
“아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마원 사장님만 예로 들더라도 벌써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단 말입니다. 아니 우리 회장님 정도는 돼야!!!”
진남규가 열변을 토해냈다. 그리고 솔직히 강우를 모델로 내세운 기업 홍보물이 불티나게 뿌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항간에서는 웬만한 연예인이 모델로 한 책자보다 인기가 많다고 할 정도였다. 홍보물을 무료로 나누어주던 기업 홍보팀에서 유료판매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말이다.
“하아…. 중국 오면 좋은 게 아무도 나를 몰라본다는 것도 있었는데….”
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강우의 유명세는 이제 중국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