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까지 가셔야죠.
다음 날 아침. 강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깔끔하게 씻고 옷도 잘 챙겨 입은 강우가 방을 나섰다.
“준비 끝났니?”
거실에는 역시 잘 차려입은 아버지가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네, 마사토 아저씨는요?”
강우가 보이지 않는 마사토의 행방을 물었다. 아버지가 씩 웃으며 방을 가리켰다.
“어제 진탕 마시더니 아직 못 일어나네.”
“하긴 어제 너무 마시기는 하셨더라고요.”
강우가 어젯밤을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강우를 반겨주는 것은 기분 좋게 취한 아버지와 마사토였다. 아버지와 마사토는 강우가 돌아오자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한 상 벌인 술자리에 강우를 강제 착석시켰다. 강우는 밤새 아버지와 마사토의 술자리를 함께해주었다.
“그런데 아들 언제 주방도 깨끗하게 치우고 잔 거야?”
“두 분 침대에 눕히고 옷도 갈아입혀 드리고 나서요.”
아버지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강우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고 머리도 잘 만져주었다.
“준비 끝난 거 같으니까 어서 가자 형님 기다리시겠어.”
“네.”
강우와 아버지는 오늘 위진오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일정이 바쁜 위진오였지만, 강우의 중국 도착 소식을 듣고는 바로 만나고 싶어 했다. 위진오도 오매불망 강우가 중국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차였다.
“잠시만요.”
집을 나서려던 강우가 멈춰 섰다. 그리고 식탁 위에 마사토를 위한 메모를 남겨 놓았다. 오늘 일정이 있어서 먼저 나가니 걱정하지 말고 쉬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메모를 식탁에 올려놓은 강우가 아버지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숙부님!”
아파트 밖으로 나가자 위혁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혁오가 아버지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버지도 위혁오를 보며 반가워했다.
“혁오야.”
아버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위혁오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강우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말 중요한 시기에 잘 와주었다. 숙부님께서 많이 기다리고 계신다.”
“잘 지내셨죠?”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위혁오의 얼굴에서 옅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만큼 현재 위진오의 상황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야. 나 살도 빠진 거 봐라.”
“그대로인데요?”
강우의 말에 위혁오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자자. 일단 숙부님 집으로 빨리 가자.”
“네.”
세 사람이 고급 세단에 올라탔다.
* * *
아늑하게 꾸며진 서재에 위진오가 앉아있었다. 위진오는 추운 날씨에 무릎 담요를 덮고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들고 있었다. 위진오가 두 눈을 감은 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뜨끈한 차가 입을 타고 넘어가며 온몸에 온기가 드는 듯했다.
“으음….”
온몸에 차오르는 온기에 위진오가 옅은 침음성을 뱉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슬쩍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우가 올 시간이었다. 강우를 떠올리자 위진오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참 대단한 녀석이야….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나다니.’
위진오는 지난 11월에 있었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무위원장에 선출됐다. 이는 중앙당에 진출한 이후 그야말로 기록적으로 빠른 서열 상승이었다. 위진오가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은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첫째, 위진오는 중국 공산당의 유력 가문 출신이었다.
둘째, 위진오는 현 서열 1위 호금도가 속한 공청단의 경쟁 세력인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고 있었다.
위진오가 눈을 빛냈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위진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배경이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강우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어찌 그 어린아이가 중국 정계의 생리를 꿰뚫고 있단 말인가….’
위진오는 감탄 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진오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똑똑.
서재 문을 노크하고 위혁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부님, 작은 숙부님이랑 강우가 도착했습니다.”
“그래?! 어서 들어오라 해!”
위혁오의 말에 위진오가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느끼던 묘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반가운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아우!”
위진오가 아버지를 부둥켜안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를 보니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가 위진오를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님, 이번에 영전하신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맙다. 이게 전부 우리 강우 덕분이 아니겠더냐.”
아버지와 강우도 이미 위진오가 상무위원장에 뽑힌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양부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강우도 위진오를 보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정말 너를 만나고 내 인생이 이렇게 크게 바뀔 줄 몰랐구나.”
“아닙니다. 이건 전부 양부님의 능력이십니다.”
위진오가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자신의 배경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한 것은 강우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꾸나.”
위진오가 자리를 권했다. 강우와 아버지가 위진오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위혁오는 지키듯 위진오의 뒤쪽으로 앉았다. 위진오가 밖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
“가장 좋은 차로 내오거라.”
“네, 위원장님.”
비서가 깍듯이 답하고는 차를 준비하러 갔다. 위진오가 먼저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그래, 어르신들은 잘 지내시고?”
역시나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와 최준의 안부를 묻은 위진오였다.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잘 지내십니다. 큰아버님은 좋은 인연도 만나 정말 행복하게 사시고 계시고요.”
“오오? 그런가? 정말 잘 됐군.”
위진오가 환하게 웃었다. 한국으로 간 최준이 행복하게 여생을 살기를 늘 기원하고 기원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근황도 자세히 전했다. 특히 잃어버린 막내 할아버지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다행이야. 어르신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진 거로군.”
“네, 형님.”
위진오는 막내 할아버지를 찾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강우를 바라보았다. 막내 할아버지를 찾는데 강우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었다.
“강우야, 잘했다. 네가 정말이지 어르신들의 염원을 다 풀어드리는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가족들의 근황을 전했다. 큰집 식구들과의 이야기도 전했고, 어머니가 잘 계시는 것도 전했다. 강우 가족이 더 크고 넓은 집으로 이사한 것 그리고 강용이가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것도 전했다.
“그래? 우리 막둥이가 그런 재능이 있었어?”
위진오가 강용이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도 헤벌쭉 웃으며 강용이를 떠올렸다. 위진오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지금 한국은 방학 기간일 텐데 같이 오지 그랬어?”
“강용이도 드라마 현장 나가느라 나름 바쁘거든요.”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그럼. 옛날에는 그 나이면 장가도 갔었지. 능력이 있는 남자라면 충분히 자리를 잡고도 남을 시기였고.”
“아…. 형님, 이강이랑 단향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위진오가 쌍둥이 남매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잘 지내고는 있지. 한국 유학 못 가게 돼서 한동안 많이 아쉬워했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이강이랑 단향이가 한국에 정말 오고 싶어하기는 했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위이강과 위단향은 한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위진오가 정계의 중심으로 다가가며 한국 유학을 포기했다.
‘양부님이 높은 자리로 갈수록 점점 많은 견제가 들어오고 정적들은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강이와 단향이가 외국 유학을 택한다면 그것조차 공격할 거리가 되겠지.’
특히 위진오가 친한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잘 알려진 상황이었다. 중앙당 고위 간부의 자식들이 중국 내부가 아닌 외국 유학을 택한다는 것은 중국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강우가 가진 미래 기억 속의 중국 주석도 그 문제로 곤란함을 겪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강우는 위진오에게 위이강과 위단향은 중국대학 진학을 권했었다. 강우의 말을 들은 위진오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크게 공감했다. 그런 이유로 위이강과 위단향은 현재 중국 제일의 명문인 북경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강우의 조언 덕분에 내가 구설수에 오를 일이 없어졌으니 다행이지. 한국이야 관광으로 얼마든지 가도 되니까.”
“네, 한국에 오면 제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특별한 경험 많이 시켜주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강우 네가 친동생들이라 생각하고 잘 챙겨줘.”
“네, 양부님.”
그렇게 훈훈한 대화가 이어졌고, 위진오가 지시한 차가 나왔다.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위혁오의 앞에 찻잔이 놓였다. 강우가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했다.
“향이 정말 좋네요.”
“그렇지? 내가 가장 즐기는 서호용정차다.”
강우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비취 같은 녹색을 띠고 있는 용정차의 향기는 심신을 편하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강우가 차를 음미하자 위진오가 부드럽게 웃었다.
“강우야.”
위진오의 부름에 강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네, 양부님.”
위진오의 분위기가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위진오가 뒤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혁오야, 나가서 사람들을 물리거라.”
위진오의 지시에 위혁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아꼈다. 서재로 옅은 긴장감이 흘렀다. 아버지도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대화가 오고 갈 것임을 직감한 것이다. 이윽고 밖으로 나갔던 위혁오가 다시 서재로 들어왔다.
“밖의 사람들은 모두 물러나라 했습니다.”
“그래, 자리에 앉아라.”
“네, 당숙님.”
위혁오가 다시 위진오의 뒤쪽으로 앉았다. 위진오가 강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너의 조언으로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지원을 받아 이번에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무위원장에 선출됐다. 이게 전부 네가 나에게 알려준 대로 행하여서였다. 다시 한번 고맙구나.”
“양부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까지 가셔야죠.”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탄성을 뱉어냈다. 현재 위진오의 권력 서열은 2위. 여기서 더 높은 곳이라면 바로 서열 1위인 총서기 나아가서는 주석의 자리일 것이다. 위진오의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의 자리도 가끔 너무 놀랍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구나. 하지만…. 강우, 네 말대로 대장부가 출세의 길에 나섰으니 끝까지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위진오의 말에 아버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위진오는 아버지에게 친근한 형님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위진오는 중국의 권좌를 향해 달려가는 거인의 풍모를 보였다. 아버지가 문득 강우를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음….”
그리고는 흠칫 놀라며 침음성을 흘렸다. 평소 부드럽던 큰아들의 모습은 없고,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또 한 명의 거인이 입꼬리를 올린 채 위진오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