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반가워서 그랬지.
상하이에는 대진 그룹의 중국지사가 있었다. 대진 그룹은 상하이에 많은 투자를 한 상태였다. 모두 강우의 제안대로였다. 그런 상하이 지사 건물이 폭탄을 맞은 듯 부산스러웠다. 바로 강우와 이재원이 방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왜들 저리 난리가 난 거야?”
이재원이 블라인드 넘어 난리가 난 사무실을 보며 말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죠. 그룹 본사에서 사장이 왔는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래? 내가 볼 때는 나보다 너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은데?”
강우 옆에 앉아있던 남재식의 말에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서 강우의 영향력은 엄청나다는 것을 조금 전 공항에서 느꼈다. 강우를 바라보는 시선들과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는 사람들의 숫자에 자칫 공항을 빠져나오지 못할뻔했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해서는.”
강우가 이재원을 향해 툴툴거렸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러기냐? 난 반가워서 그랬지.”
“하긴…. 나도 반갑긴 했죠. 그런데 이번에 중국에 온 인원이 생각보다 많네요?”
이번 중국 출장에 대진 엔터 소속의 사업팀이 함께 오기로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공항을 가득 메운 대진 엔터 소속 직원들의 숫자는 정말 많았다. 처음 이재원과 함께 게이트를 나온 인원이 전부가 아닐 정도로 말이다.
촤라락-
이재원이 블라인드를 내려 밖이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강우를 보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룹 내부에서 이번 중국 진출에 기대가 커. 한국 내수 시장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까 말이야. 그룹 내에 자본금도 탄탄하고 인력도 넘치니 외형적 확장을 해야 할 시기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진 그룹은 한국 문화 산업의 정점에 섰다. SJ 그룹과의 연계로 국내 시장은 더욱더 탄탄해지기도 했다. 그런 시점에서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다. 특히 대진 엔터처럼 체계적이고 역량이 넘치는 회사에 중국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시기도 딱 좋아요. 지금 중국 연예계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으니까요. 대진 엔터가 가진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리를 잡을 수 있죠.”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팀을 꾸려왔다. 대진 엔터 소속 기획팀, 홍보팀, 그리고 육성팀까지 전부 함께 왔지.”
이재원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음…. 사실 인원이 많으면 좋긴 하죠. 중국 전역을 돌아다녀야 하기는 하니까요. 그런데 한국 쪽은 문제없겠어요?”
“걱정하지 마라. 한국 쪽은 안정적이고 충분한 인원을 남기고 왔으니까.”
“잘했네요.”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강우가 이번에 중국에서 기획한 것이 있었다. 중국 대도시를 돌며 연예인이 될 인재들을 뽑는 프로그램이었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대유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려 기획했다. 그러기 위해서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그럼 일단 상하이부터 시작하는 거 맞지?”
“네, 상하이 시장님이랑은 이야기 끝났어요. 장소 대관도 끝났고요. 그룹 차원에서 홍보도 시작할 거예요.”
“좋아. 그러면 우리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군.”
이재원이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상하이에 스타디움 짓는 거 말이야. 재중이 형이 한번 실사를 오고 싶다고 하더라.”
“좋죠. 와야죠.”
강우가 계획하고 있는 스타디움 공사는 대규모의 공사였다. 상하이의 명소가 될 것임을 확신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큰 건설을 맡게 될 대진 건설의 현장 방문은 당연하였다.
“그럼 날짜 잡으라고 할까?”
“네, 이번에 와서 관다 그룹이랑 스타디움 건설에 대해 회의도 하고 그럼 좋죠.”
이재원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관다 그룹이 도움을 준다면 스타디움 건설은 한결 수월할 것이었다.
“그래, 중국 먼저 와서 고생이 많았다.”
“고생은요 다 제 일인데요.”
이재원이 이번에는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JG 소프트는 어때? 이번 중국 진출 건.”
“오늘 오전에 선전에 있는 틴센트 다녀왔어요. 생각보다 준비를 잘해놨더라고요. 정식서비스까지는 문제없을 것 같아요. 문제는 게임성이 중국 대중에게 먹히냐 마냐인데….”
남재식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강우는 이번 튀니지 2의 성공은 확실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크게 의심은 하지 않았지만, 사업이라는 건 만약의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강우가 남재식의 등을 팡팡 쳤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꼭 대박 날 거야. 우리 이거 대박 터트려서 중국 시장을 시작으로 세계시장을 집어삼켜 보자고.”
강우의 말에 남재식이 탄성을 뱉어냈다. 어린 시절 게임을 막연히 좋아했던 남재식이었다. 강우를 만나 게임개발에 뛰어들기로 하고 이제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게임 개발사를 이끌고 있었다.
“그래,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강우 너만 믿는다.”
강우를 향한 굳은 신뢰가 느껴지는 남재식의 표정이었다. 강우도 씩 웃었다.
“그래, 나만 믿어라. 그리고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 JG 소프트가 개척해나가야 할 길이 많다. 난 궁극적으로 한국산 콘솔 개발도 해보고 싶으니까.”
“코…. 콘솔을?”
강우가 눈을 빛냈다. 현재 콘솔 시장은 일본의 한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90년대까지 일본 회사끼리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그 경쟁에서 승리한 회사가 시장을 장악했다. 미국의 소프트 회사가 작년인 2001년에 경쟁기기를 내놓았지만, 반응은 별 신통치 못했다.
“그래, 중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콘솔 사업에 투자해 보자.”
“오케이!”
남재식이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늘 국산 콘솔 게임기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낄만했다. 그리고 남재식 역시 오락실부터 비디오 콘솔 게임으로 게임의 역사가 이어지는 세대였다.
“이야…. 이거 보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우리 힘을 합쳐서 중국 시장을 싹 다 점령해 보자.”
이재원이 강우와 남재식을 보며 말했다. 강우와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의를 다졌다. 이제 강우와 남재식 그리고 이재원까지 이번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삼인방이 모두 모인 것이었다.
* * *
강우와 남재식은 상하이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북경으로 돌아왔다. 이재원과 대진 엔터의 인력은 상하이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남았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일부 인력은 북경으로 넘어오기로 했다. 남재식은 곧장 기술팀과 함께 작업에 들어갔다. 남재식이 개발팀에 들어간 이후로는 정말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사라락. 사라락.
강우가 회장실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재원과 남재식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사업 착수에 들어갔다. 더군다나 SJ 그룹의 식품 사업은 강우가 온전히 담당해야 할 몫이었다. 강우는 정말이지 초인적인 업무량을 감당하고 있었다. 강우를 지켜보던 진남규가 걱정할 정도였다.
똑똑.
이윽고 진남규가 회장실로 들어왔다. 진남규의 손에는 보고할 서류가 잔뜩 들려있었다. 진남규가 강우의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이 정도 서류는 제 선에서 처리해도 괜찮습니다.”
강우가 서류를 확인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강우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사업들의 모든 내용을 머리에 담고 있었다. 다만 엄청난 기억 능력을 잘 모르는 진남규는 강우가 무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괜찮습니다.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정도니까요. 그보다 SJ 그룹 프랜차이즈 현지화 계획은 마무리된 겁니까?”
“네, 회장님.”
진남규가 서류 더미 중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 맨 위로 올려놓았다. 강우가 서류를 확인하고, 진남규는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북경을 시작으로 프랜차이즈 식당 오픈을 준비 중입니다. 회장님께서 한국에서 미리 알려주신 대로 최대한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오픈을 하려고 합니다. 가격도 다른 프랜차이즈점들과는 달리 고가 전략을 앞세울 예정입니다.”
“좋네요. 무엇보다 첫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브랜드 가치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겁니다. 향후 운영에도 차질이 없게 잘 부탁드립니다.”
수많은 외국 프랜차이즈 식당들과 패스트푸드점들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오랜 시간 폐쇄되어있던 중국 사람들에게 외국의 새로운 문물들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런 이유로 외국에서는 저가의 프랜차이즈도 중국 내에서는 고가에 판매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현지화에 신경을 쓰지 않고 품질이 좋지 않은 기업들은 제자리를 찾아갔지.’
얼마 전 쌍둥이 남매와 같이 갔었던 패스트푸드 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의 이미지였지만, 나중에는 가난한 농부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강우는 SJ 그룹의 프랜차이즈 라인을 그렇게 운영할 생각이 없었다.
‘문어발식의 확장은 필요하지 않다. 대도시 위주의 적은 업장 수를 유지하면서 철저히 고급화 전략으로 간다.’
그와 동시에 대도시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SJ 그룹의 식품들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이는 모두 중국 내에서 광복 그룹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이미지 덕분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진남규가 보고를 이어갔다.
“회장님의 지시대로 북경 1호점과 상하이 2호점 그리고 충칭 3호점은 기존의 건물을 임대해 오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정에 차질 없게 준비해주세요.”
“네, 회장님.”
중국에 새로 런칭할 대형마트는 각 대도시에 있는 기존 건물을 임대해 시작할 예정이었다.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은 대진 엔터의 멀티플렉스 부지와 연계해 접근성과 연계성을 높일 계획이었다.
사라락. 사라락.
강우는 계속해서 서류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이내 만족스럽게 웃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이제는 중국 시장에 대한민국의 깃발을 꽂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제가 자리를 비워도 충분할 만큼 준비가 됐네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강우의 칭찬에 진남규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물었다.
“한국에는 언제 돌아가실 예정입니까?”
“아직입니다. 몇 군데 더 다녀올 곳도 있고요.”
진남규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중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다. 많은 거대 기업들이 강우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강우와 만나자는 연락도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연락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사업적인 접근도 가능했다.
“아직 방학 기간이 남아계시는 거죠?”
방학 기간을 물으며 진남규가 머리를 긁적였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어우르는 그룹의 총수가 아직 대학생이라는 사실은 늘 놀랍기만 했다. 그만큼 어리다는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네, 남은 방학 기간은 중국에 투자할 생각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진남규가 사업 진행 상황 보고를 끝마쳤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진남규가 회장실을 나가고 강우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창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업무를 마무리 짓고 바라보는 북경 시내의 모습은 볼만했다.
“강우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의자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위혁오가 씩 웃으며 서있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위혁오를 반겼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세요?”
“숙부님께서 답장을 전해주셨다.”
위혁오의 말에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혁오가 강우를 향해 잘 봉인된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강우가 편지 봉투를 받았다.
“숙부님께서 너는 뜯어보아도 좋다고 하셨어.”
강우가 편지 봉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보지 않아도 내용 알 것 같아요.”
“그래?”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진오의 성향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 그럼 랴오닝성으로 출발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런데 말이다.”
위혁오가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이번 랴오닝성에 네가 같이 가주었으면 한다. 미안하구나 한창 바쁠 텐데. 하지만 주변의 보는 눈들이 많아서 말이다. 아무래도 네가 관다 그룹의 왕 회장과 랴오닝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위장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구나.”
위혁오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아니에요. 마침 가볼 일이 있기도 해요. 같이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