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4화 (354/402)

안 될 건 또 뭐야?

거리를 걷던 행인들의 발걸음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춰 섰다. 행인들의 눈에 들어온 크고 아름다운 구조물에 모두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삼성동에 있는 커다란 빌딩은 바로 동양 무역의 신사옥이었다. 강우가 미래 기억으로 떠올린 여러 유명 건축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건물이었다.

“와…. 건물 진짜 예쁘다. 구경하고 싶은데.”

“저기 1층은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저기 옆에 있는 건물은 박물관이래. 저기도 무료 관람 가능하다고 하더라.”

“대박….”

행인 한 명이 열을 내며 동양 무역 신사옥에 관해 설명을 계속 늘어놓았다. 동양 무역의 신사옥은 건설 당시부터 세간의 화제를 모았었다. 일단 동양 무역이라는 중소기업이 단번에 커다란 신사옥을 짓는 것이 화제였다.

“그뿐인 줄 알아? 건물 1층에는 시민들과 직원들을 위한 도서관이랑 카페도 있어. 더 대박인 건 사내 어린이집이야. 박강우 부사장님이 어린이집에 엄청 신경을 썼다고 하더라. 직원들의 자식들은 전부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하고. 최고의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더라고.”

“와…. 진짜….”

일행의 멍한 표정에 설명하는 행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뿐이 아니라고. 내부에 직원들을 위한 복지 시설은 또 얼마나 잘 돼 있는지 아냐? 휴식공간은 물론이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엄청나. 그리고 진짜 대박인 건 사내 식당인데 웬만한 호텔 뷔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요리사들도 고용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야?”

일행의 질문에 행인이 씩 웃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일행에게 내밀었다. 핸드폰 액정에는 합격을 축하하는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

“사실 나 이번에 동양 무역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했거든. 이제 저기가 내 회사란 말씀이시지.”

“대박! 축하한다.”

일행의 축하에 설명하던 행인의 얼굴에 자부심이 떠올랐다. 동양 무역은 신사옥 완공과 더불어 대대적인 신입 및 경력직 사원 채용을 했었다. IMF 이후로 취업난에 시달리던 많은 인재가 동양 무역에 몰려들었다. 경쟁률 역시 엄청나게 높았고,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사원 채용이었다.

“아무튼, 내가 저렇게 대단한 회사의 일원이 됐다 이거지.”

“부럽다….”

행인의 일행은 넋을 놓고 건물을 바라보았다.

“동양 무역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단시간에 저렇게 회사가 커졌지?”

“저건 빙산의 일각이야. 너 동양 무역이 중국에서 얼마나 큰 그룹인지 모르지?”

중소기업에서 순식간에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동양 무역의 신화는 정계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양 무역 신사옥을 보며 각자가 가진 지식을 뽐내던 때였다.

스르륵.

고급 세단 한 대가 신사옥의 앞쪽으로 나타났다. 차 안에는 강우가 타고 있었다. 신사옥을 바라보는 강우의 눈동자에는 옅은 설렘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럴만한 것이 바로 돌아오는 토요일이 신사옥이 정식으로 문을 열고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냐?”

강우의 옆에 앉아있던 이재원이 물었다. 강우가 이재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했다.

“긴장 안 할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떨리네요.”

“그나저나 건물 진짜 잘 지었다. 그냥 대진 그룹 본사 하고 싶을 정도야.”

이재원이 신사옥을 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진 그룹도 새로 하나 지어요. 그럼.”

“그럴까?”

이재원이 진심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대진 그룹 역시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는 있었다.

“내가 또 건물 아이디어 하나 제안해줘요?”

“하…. 진짜 네 머릿속에는 얼마나 다양한 지식이 담겨 있는 거냐? 정말 외계인이 있다면 바로 너일 거야.”

“아직도 외계인 타령이에요.”

이재원이 멋쩍게 웃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외관부터 다른 건물들을 압도하는 신사옥의 모습은 정말 볼만했다. 강우 역시 신사옥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건물 외관에 박혀있는 ‘동양 그룹.’이라는 현판에 벅찬 심정을 느꼈다. 이제는 엄연히 그룹으로 탈바꿈할 동양 무역이었다.

“이제 그룹으로 발돋움한 만큼 더 힘차게 나아가 보자.”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동양 그룹과 대진 그룹의 동맹은 나날이 굳건해지고 있었다.

“우리야말로 잘 부탁하지.”

이재원도 씩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저러나 시간 참 빠르다. 너 결혼 발표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나 지났어.”

“그러게요. 시간은 항상 빠르게 스쳐 지나가죠.”

이재원의 말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04년 4월이 된 상태였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사업적으로 동양 무역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신사옥 입주와 함께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만큼 보유자산도 기업의 자산가치도 늘어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동양 무역이 진행하던 중국 사업은 초대박이었다.

‘중국 내 요식업과 식품 그리고 엔터 사업은 중국 법인이 완벽히 장악했지. 그리고 JG 소프트의 튀니지 2도 중국 최고의 인기 게임이 되었고.’

강우의 승승장구는 주변의 찬사와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손을 대는 사업마다 대성공을 거두는 강우는 현재 가장 유망한 청년 사업가이자 인기인이었다. 강우의 한 마디는 사람들이 회자하는 명언이 되었고, 입는 것 먹는 것은 많은 사람이 따라 할 정도였다.

“이제 다 둘러봤으니까. 출발할까?”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었다. 강우의 결혼식을 앞두고 한국을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네, 가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고급 세단이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오늘 목적지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이재원은 미나와 통화를 했다.

“여보, 뭐 하고 있어?”

아직 신혼인 이재원과 미나는 꿀이 떨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강우는 이재원의 통화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연신 웃음꽃이 피어나는 이재원을 보니 스르륵 미소가 지어졌다. 문득 이재원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사람이 참 밝아졌어.’

물론, 그때도 겉으로는 밝은 척했던 이재원이었다. 하지만 그 뒷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강우는 알고 있었다.

“형, 결혼하니까 그렇게 좋아요?”

“당연하지. 얼마나 좋은 줄 알아? 하루하루가 살맛이 난다고 할까? 특히 집에 갔을 때 누가 나만 기다리고 있어 주는 게 너무 좋다고. 그리고 미나가 음식은 또 얼마나 잘하냐?”

이재원이 미나를 떠올리며 헤벌쭉 웃었다. 그리고는 미나 자랑을 마구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우는 한참이나 이재원의 아내 자랑을 들어주었다. 이윽고 이재원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팔불출이었냐?”

“뭐…. 미나가 좋은 아내인 건 맞죠. 그럴만해요.”

“그렇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겠지?”

“표정만 봐도 알겠네요.”

이재원이 연신 실실 웃음을 흘렸다.

“흐흐…. 그런데 신혼집 인테리어는 끝난 거야?”

“네, 끝났죠. 짐도 다 들어왔을걸요?”

“내가 보낸 선물들 마음에 들었어?”

이재원이 씩 웃으며 물었다. 이재원은 강우와 이나은의 신혼집에 들어갈 가전을 모두 선물해 주었다.

“네, 나은이도 엄청 좋아해요. 고마워요.”

“에이~ 아니다. 너도 나 결혼할 때 선물해 줬잖아.”

물론, 강우도 이재원이 결혼할 당시 엄청난 선물을 해주었었다.

“이제 너도 신혼집에 들어오면 우리 더 자주 만나서 놀 수 있겠다.”

“그러게요.”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이재원과 미나는 강우와 이나은의 신혼집 바로 앞에 신혼집을 차렸다. 이재원이 강우와 가까이 붙어살고 싶다며 결정한 것이었다. 물론, 이나은과 친한 미나도 대찬성했다고 했다.

“우리 나중에 애도 맞춰서 같이 낳는 게 어때?”

“네?”

강우가 슬쩍 얼굴을 붉혔다. 이재원이 그런 강우를 보며 픽하고 웃었다.

“이거 아직 총각이라 부끄러워하는 거야? 비록 너랑 나랑은 형과 아우였지만, 우리 아이들은 친구 만들어 주자는 거지.”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강우의 질문에 이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안 될 건 또 뭐야?”

“.....”

강우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재원은 강우를 놀리는 게 재밌는지 연신 말을 걸어왔다. 강우와 이재원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 * *

인천공항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취재진은 물론이고 정부에서 여러 관계자도 나와 있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는 강우와 이재원도 있었다.

“진짜 양부님이 대단한 사람이기는 한가 보다.”

이재원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강우도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진오가 온다는 소식에 한국 정부가 난리가 났다. 중국 고위 간부의 한국 방문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문 목적이 강우의 결혼식 참석이라는 게 알려졌다.

“제 결혼식 때문에 어렵게 방문해주시는 건데 너무 번거롭지는 않으실지 모르겠네요.”

“어디를 가시나 이럴걸? 익숙하실 거야. 걱정하지 마라.”

강우와 이재원이 위진오가 출국장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두 사람을 알아본 취재진이 우르르 몰려왔다.

“박강우 부사장님, 위진오 위원장님께서 결혼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다른 이유는 없는 겁니까?”

“박강우 부사장님이 위진오 위원장님의 양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 양자가 되신 겁니까?”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내 정부에서 나온 인원들이 취재진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한 명의 남성이 강우와 이재원을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외교부에서 나온 김승규 실장입니다. 오늘 위진오 위원장님의 방문을 담당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강우와 김승규 실장이 악수하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성이 다가왔다. 주한중국 대사관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혁 중국대사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강우를 향한 중국대사의 깍듯함에 김승규 실장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 정부 인물들을 향해서는 늘 고압적이던 태도를 보이던 이혁 중국대사였다. 하지만 강우에게는 정말이지 조심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반갑습니다. 오늘 양부님 일정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위진오가 강우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왔다고는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차기 중국 대권에 가장 가깝다는 인물이 바로 위진오였다. 그런 이유로 외교부에서 직접 인원이 나와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현 한국 대통령도 위진오와 면담을 잡길 원한다고 들었다.

‘물론, 양부님은 내 결혼식 참석이 1순위라고 못 박으셨다지.’

강우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중국에 갔을 때도 위진오의 위상은 늘 직간접적으로 느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위진오의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제 곧 전용기가 도착합니다.”

강우와 이재원이 안내를 받아 공항 안으로 향했다. 위진오의 도착을 위해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위진오가 나오기로 예정된 게이트 앞에 섰다.

“아. 그런데 중국 가족들도 오는 거 맞지?”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강우의 결혼식을 위해 위진오의 가족 모두가 한국에 오고 있었다.

“나오십니다.”

이윽고 게이트가 열리고 위진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진오의 뒤쪽으로는 위 부인과 위이강 그리고 위단향이 보였다. 위진오를 발견한 강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외교부 김승규 실장과 주한 중국대사 이혁도 질세라 위진오에게 다가갔다.

“오! 강우야!”

강우를 발견한 위진오가 반갑게 웃으며 포옹했다. 김승규 실장과 이혁 중국대사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우를 바라보는 위진오의 표정은 반가움 그 자체였다.

펑! 퍼펑!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강우가 위진오를 향해 씩 웃었다.

“결혼식 참석해 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하지. 너는 내 아들이 아니더냐.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와야지.”

강우와 위진오의 대화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알려진 것보다 더 가까운 두 사람의 관계는 충격적이었다. 김승규 실장도 멍한 표정을 지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강우에 대한 정부의 중요도를 한참이나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원장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혁 중국대사가 인사를 건넸다. 위진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 분명히 이번 한국 일정은 내 양자의 결혼식에만 쓰겠다 했다. 알겠나?”

“네, 위원장님.”

이혁 중국대사 역시 강우를 향한 눈빛이 한층 달라졌다. 그런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세기의 결혼식이 될 거라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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