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아내를 얻었구나.
봄을 맞이한 정원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꽃은 만개했고, 향긋한 내음이 가득했다. 장군이와 루피는 마당을 활기차게 뛰어놀았다.
“장군! 루피!”
강용이는 잔뜩 신이 나서 정원을 뛰어다녔다. 그런 강용이를 위진오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강용이는 볼 때마다 생기가 넘칩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 것이지.”
위진오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최준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강용이를 볼 때마다 항상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위진오도 강용이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참 보기 좋습니다. 강우 가족은 항상 행복해 보이고 밝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그런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지.”
최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강우 가족과 함께한 나날들이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허허…. 부끄럽구먼.”
김말숙을 언급하는 위진오에 최준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위진오가 최준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중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혈색도 좋아졌고, 건강해 보이는 최준이었다.
“한국으로 가신다고 하셨을 때 걱정도 되고 조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어르신은 제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니까요. 하지만 오늘 이렇게 와서 보니 그 결정이 정말 옳은 것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랬구나…. 내가 너에게 너무 무심했어.”
최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잘 따르던 위진오였다. 위진오의 친부가 죽고 나서는 더욱 의지하고는 했었다.
“아닙니다. 저는 어르신이 행복하신 거로 만족합니다.”
“그래, 고맙구나.”
위진오와 최준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위진오가 슬쩍 정원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김말숙이 위이강과 위단향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쌍둥이 남매의 질문을 받는 김말숙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 처음 뵙지만 정말 좋으신 분 같습니다.”
“맞아. 참 좋은 사람이야.”
최준이 김말숙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최준과 시선이 마주친 김말숙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쌍둥이 남매와 대화를 이어갔다.
“형님,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십니까?”
집 안에서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마침 살랑이는 봄바람이 불어와 세 사람을 부드럽게 휘감고 지나갔다.
“정말 좋으이. 날씨도 좋고. 이제 곧 강우의 결혼식도 있고 말이야. 거기에 우리 진오까지 한국에 왔으니 내 생에 무슨 여한이 남겠는가.”
최준의 말에 위진오가 화들짝 놀랐다.
“어르신….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형님, 강우네가 낳는 아이까지 안아보셔야죠.”
할아버지도 최준을 향해 무슨 소리냐며 말했다. 최준이 부드럽게 웃었다.
“사람의 수명은 천명인 법. 하지만 내 최대한 노력은 해보지. 우리 진오가 중국 정계에 우뚝 서는 것도 보고 싶긴 하니까.”
“어르신….”
위진오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위진오도 최준 앞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할아버지와 최준 그리고 위진오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김말숙은 위이강과 위단향을 정말 친손주처럼 예뻐해 주었다. 조금 어색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예쁜 듯했다.
덜컥.
또다시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강우가 나왔다. 강우의 옆에는 박선영과 박지영도 함께였다. 세 사람은 곧장 정원에 밥을 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집 안에서 먹기로 했었지만, 위진오가 정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밖에서 먹자고 제안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정원에 준비만 끝내면 됩니다.”
강우와 두 자매가 열심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의 파티로 익숙한 듯 상을 펴고 의자를 놓았다. 강용이도 후다닥 달려와 세 사람을 도왔다. 위진오는 그 모습을 보며 연신 흐뭇해했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모여 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위진오가 위씨 가문의 장원을 떠올렸다. 북경 정계에 진출한 이후 못 가본 지도 참 오래된 상태였다. 강우 가족의 정원을 보니 문득 장원의 봄이 그리워지는 위진오였다. 하지만 위진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장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훨씬 먼 세월이 흐른 후일 것이었다.
“나도 여기에 올 때마다 흐뭇하고 훈훈하게 있다가 돌아가고는 하지.”
“형님, 그러지 말고 다시 들어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최준을 향해 말했다. 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재 최준과 김말숙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최준은 김말숙과 여생을 보내기로 한 이후 집을 얻어 나갔다. 강우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였다.
“우리가 들어오면 다른 가족들이 불편할 텐데….”
“형님, 그런 말씀 마세요. 다들 형님이 나가시고 나서 얼마나 아쉬워했다고요. 그리고 지금도 형님 내외가 들어오신다고 하면 다들 기뻐할 겁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최준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위진오도 할아버지를 도와 말을 보탰다.
“오늘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의 의향을 물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대번에 맞장구를 치셨다. 최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시간을 맞추어 아버지가 퇴근했다.
“형님!!”
아버지가 위진오를 보고는 대번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위진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우!”
아버지와 위진오가 얼싸안았다. 두 사람도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사업차 중국을 왔다 갔다 했지만, 바빠서 만나지는 못했었다.
“뉴스 봤습니다. 번거로우셨죠?”
아버지도 뉴스를 통해 위진오의 입국 장면을 본 듯했다. 몰려든 취재진과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중국 대사관 사람들 때문에 복잡했을 위진오라 생각했다. 강우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런 번거로움을 모두 감당한 위진오였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무관심보다는 낫지 않아?”
“하하! 맞습니다. 형님.”
위진오의 말에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위진오가 아버지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 어서 들어가서 준비하고 나와.”
“네, 형님.”
아버지가 상기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퇴근도 기뻤고, 위진오와의 술자리도 기대됐다. 집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번개처럼 준비를 마치고 정원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정원에는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 집 정원이 참 좋군.”
위진오는 한남동 저택의 정원이 참 마음에 든 듯했다. 박선영과 박지영이 정성을 들여 가꾼 정원은 누가 봐도 예쁘기는 했다. 아버지가 위진오의 옆에 앉았다.
“제 조카들이 정말 정성 들여서 가꾼 곳입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좋네요.”
“아…. 그랬군.”
위진오가 박선영과 박지영을 바라보았다. 강우를 도와 열심히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많은 가족으로 북적이는 정원의 모습도 참 흐뭇했다.
“한국은 자손들을 많이 낳을 수 있어 참 좋은 거 같아. 여기는 정말 사람이 사는 냄새가 가득한 거 같아.”
“하하. 그런가요? 아…. 아직 제 형님이 안 오셨습니다.”
위진오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아버지에게 들어 큰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오? 자네의 친형님도 정말 만나 뵙고 싶었지.”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오실 겁니다.”
위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작은 어르신께서 큰 어르신이 다시 저택에 들어왔으면 하시더군.”
“우리 가족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이제 강우도 신혼집으로 나가니까요.”
아버지가 최준을 바라보았다. 최준은 여전히 고민 중인 표정이었다.
“큰아버지, 가족 모두가 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함께 사시는 게 어떠세요?”
“음…. 그럼 안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마.”
최준의 말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표정이 환해졌다. 김말숙이 거절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큰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큰아버지를 위진오에게 소개해주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식이 형입니다.”
“반갑습니다. 위진오입니다.”
두 사람은 영어로 소통을 했다. 큰아버지도 영어를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는 할 수 있었다. 가족이 모두 모이자 정원이 가득 찰 정도였다. 위 부인과 쌍둥이 남매는 북적이는 분위기를 정말 즐거워하며 만끽했다.
“그러나저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언제 오는 거지?”
위진오가 이나은이 언제 오냐며 궁금해했다. 이나은은 오늘 CF 촬영을 마치고 오기로 했다.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강우와의 결혼 발표 이후 오히려 인기가 더욱더 많아지고 있었다.
“지금 다 도착했다고 하던데요.”
식사를 준비하던 강우가 답했다. 강우의 말에 위진오와 위 부인 그리고 쌍둥이 남매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 이나은을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와!!”
그 순간, 쌍둥이 남매가 동시에 감탄성을 터트렸다. 강우의 시선이 저택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계단에서 이나은이 올라오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바로 온 듯 잘 꾸민 이나은은 너무 아름다웠다. 결혼을 앞두고 미모가 만개한 듯 주변을 밝히며 나타났다.
“나은아, 왔어?”
식사 준비를 하던 강우가 헤벌쭉 웃으며 이나은에게 다가갔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응, 촬영 끝나고 바로 왔어. 너무 늦은 거 아니지?”
이나은이 웃자 주변의 꽃들이 색을 잃어버린 듯했다. 위진오도 이나은을 보며 크게 감탄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아니, 시간 딱 맞춰 왔어. 일단 인사부터 드리자.”
“응.”
이나은이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나는 위진오 가족이었고, 중국어도 못 했으니 그럴만했다. 강우가 이나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다들 좋은 분이야.”
“응.”
강우와 이나은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최준을 향해 먼저 인사를 드렸다. 어느새 나와계신 막내 할아버지에게도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와 최준 그리고 막내 할아버지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며느리가 아니던가.
“그래, 우리 며늘아기 잘 갔다 왔지?”
“힘들지는 않았고?”
할아버지들의 폭풍 같은 관심과 칭찬에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긴장감이 사라지고 어느새 집에 돌아온 듯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들에게 인사를 마친 이나은이 위진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나은이라고 합니다.”
강우가 이나은의 말을 중국어로 통역해 주었다. 위진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나는 강우의 양부 되는 위진오라고 한다. 이렇게 직접 만나니 듣던 것보다 훨씬 예쁘구나.”
강우는 또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를 드리러 중국에 가지 못해 죄송해요.”
“아니다. 한국에서 바빴을 테니 너무 개의치 말아라.”
강우는 열심히 통역했다. 이나은과 대화를 나누며 위진오는 정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정계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위진오였다. 몇 마디 대화와 행동으로도 이나은의 성품을 알아차렸다.
“녀석, 참 좋은 아내를 얻었구나.”
“감사합니다.”
강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위진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자자. 우리 며늘아기 힘들겠어. 어서 식사부터 하자꾸나.”
할아버지의 말에 다시 저녁 준비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잔뜩 신난 표정을 지었다.
“오늘 한국 음식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위진오를 향해 호언장담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부족한 재료로도 위진오와 가족들을 만족하게 했던 어머니였다. 홈그라운드인 한국이니만큼 엄청난 요리 솜씨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오늘을 위해 큰어머니도 어머니를 도와 요리에 참전했을 정도였다. 이윽고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준비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와~ 대박.”
강용이가 음식들을 보며 감탄을 했다. 쌍둥이 남매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정원으로 향긋한 음식 냄새와 북적북적한 사람이 사는 냄새가 가득 차올랐다. 강우와 이나은은 오늘의 주인공으로 많은 축하를 받았다.
“행복하다.”
이나은이 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우도 이나은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도 행복해. 그리고 이게 시작이야.”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