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시죠?
강우의 결혼식을 앞두고 한국은 더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에서 위진오를 시작으로 여러 유명인사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중국 대기업 총수들과 후계자들이 한국으로 입국하자 정계는 물론이고 재계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늘 중국 최대 기업인 알리바마의 마운 회장이 입국했습니다. 마운 회장의 한국 방문 목적은 박강우 동양 그룹 부사장의 결혼식 참석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여러 기업이 마운 회장의 한국 방문 기간 동안 미팅 요청을….-
뉴스에서는 연이어 뉴스 속보가 이어졌다. 속보가 끝나면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이어서 들어 온 소식입니다. 동양 그룹 박강우 부사장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틴센트의 창업자인….-
그야말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의 창업자들과 회장들이 줄줄이 입국했다. 유례없는 유명인들의 입국 러쉬에 인천공항이 매일 취재진으로 미어터질 정도였다.
“강우야, 안 되겠어. 김 이사님한테 전화 다시 해봐야겠어.”
한남동 저택 거실에서 강우와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던 이나은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많이 몰려드는 엄청난 하객들의 면모에 걱정이 되었다. 결혼식 준비를 정말 꼼꼼히 챙겼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나은이 핸드폰을 꺼내 김성현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네네.”
이나은이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강우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나은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결혼을 준비하며 강우와 이나은도 다른 예비부부들과 같은 일들을 겪었다. 가구를 고르며 취향 차이를 알게 되었고, 신혼여행지 선택에서도 의견이 갈렸었다.
‘나는 휴양이 좋은데 나은이는 돌아다니는 게 좋다고 했지.’
그런 과정에서 강우와 이나은은 서로에 대해 더욱더 깊숙한 부분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강우에게 해준 말대로 모든 것을 이나은에게 맞추어 양보해주었다. 사실 강우도 그럴 생각이었고 말이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강우가 이나은의 뒷모습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 현명하고 차분한 이나은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것은 없었다. 이나은은 정말 알뜰하고 현명하게 결혼 준비를 해나갔다. 주변의 말처럼 강우는 정말 아내를 잘 얻었다고 생각을 했다.
“네, 자꾸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손님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신경 쓸 게 너무 많네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김성현 이사와 통화를 끝낸 이나은이 한숨 돌린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강우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강우가 씩 웃으며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준비 잘 되고 있다고 하지?”
“응, 이사님이 신경 많이 써주고 계시대.”
두 사람이 결혼할 신사옥 별관은 현재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으로 개장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박물관에는 그동안 모아온 자료들과 여러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모아 놓았다. 강우는 이 박물관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자 했다. 강우가 박물관을 꾸미기 위해 자금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진 엔터는 강우와 이나은의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해주고 있었다.
“더 예쁜 곳이 있겠지만 나는 꼭 거기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최대한 더 많은 사람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눈을 빛냈다. 사실 다른 것 모두는 이나은의 선택에 맡겼지만, 결혼식 장소만은 강우가 원하는 곳으로 했다. 훨씬 더 예쁜 장소가 많았지만, 이나은도 강우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박물관 아주 예뻐.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결혼식이 될 거야”
“그렇지.”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음이 잘 맞는 두 연인은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샘솟았다.
“얘들아, 시간 안 늦었니?”
그때, 안방에서 어머니가 거실로 나왔다. 두 사람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오늘은 이나은의 본식 웨딩드레스 가봉이 있는 날이었다.
“엄마, 다녀올게요. 나은아 가자.”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강우와 이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현관으로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늘 완벽한 일 처리를 하는 강우도 결혼 준비를 하면서는 좌충우돌이었다. 그런 강우의 모습이 어머니는 참 인간적이고 좋았다.
“그래, 다녀와~ 저녁은 먹고 올 거니?”
어머니가 현관을 나서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크게 답했다.
“집에 와서 먹을게요.”
그 말을 끝으로 강우와 이나은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강우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차고를 벗어나 빠르게 언덕을 내려갔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제 며칠 후면 강우가 결혼한다는 생각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장성한 아들을 떠나보내는 여느 부모의 마음과 다를 게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
이윽고 어머니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잠깐 들었던 묘한 감정은 털어버리고 강우와 이나은이 돌아오면 맛있는 밥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늘 그렇듯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감정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존재였다. 이윽고 주방에서 어머니의 콧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딸랑.
청담동 유명 드레스샵에 강우와 이나은이 나타났다. 이재원이 소개해준 유명 디자이너가 소유한 가게였다. 두 사람은 오늘 이곳에서 이나은의 본식 웨딩드레스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알려준 덕분에 다행히 시간을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 늦었죠?”
이나은의 말에 기다리고 있던 드레스샵 직원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반겼다. 강우와 이나은은 안내를 받아 웨딩드레스 피팅룸으로 향했다.
“신랑님은 앉아서 대기해주세요.”
강우가 자리에 앉았다. 정면으로는 살짝 높이가 있는 작은 무대가 있었고, 그 뒤로는 거대한 거울이 있었다. 이나은이 강우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금방 갈아입고 나올게.”
“어어.”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드르륵.
커튼이 쳐지고 이나은이 직원 몇 명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홀로 남은 강우에게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차 한잔 드릴까요?”
“네, 저는 오렌지주스로 부탁드려요.”
직원이 오렌지주스를 가지러 갔다. 남은 직원이 강우를 바라보며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드레스샵의 막내 직원이었는데 유명한 강우와 이나은을 보고는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저…. 혹시 사진 찍으실 건 가지고 오셨나요?”
강우가 움찔하며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급하게 오느라 사진기를 챙기는 것을 깜빡한 것이었다.
“아…. 제가 깜빡했네요.”
그러자 막내 직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한 건 하나 싶은 것이었다. 막내 직원이 한쪽에 있는 커다란 서랍장을 열었다. 그곳에는 드레스샵이 보유한 사진기가 있었다.
“그럼 이 사진기로 찍어서 필름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강우는 이나은이 나오면 취해야 할 리액션 생각에 몰두했다. 그사이 오렌지주스를 가지러 갔던 직원이 돌아왔다.
“떨리시죠?”
“네? 아…. 그렇네요.”
강우가 멋쩍게 웃자 직원의 말문이 트였다.
“신부님께서 워낙 몸매도 좋으시고 예쁘셔서 어떤 드레스라도 다 어울릴 거예요. 신랑님은 신부님 나오시면 크게 좋아해 주시면 되고요.”
“조언 감사합니다.”
강우가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강우 역시 이나은의 드레스를 입은 자태가 궁금하고 기대됐다. 그 순간이었다.
“신부님 준비 끝나셨습니다.”
커튼 안쪽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커튼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와~~”
강우와 함께 있던 직원들이 먼저 감탄성을 뱉어냈다. 커튼 너머로 나타난 이나은은 그야말로 여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깨가 살짝 보이고 밑으로 내려오면서 A라인으로 풍성하게 퍼지는 드레스 자태는 정말 아름다웠다.
“와…. 나은아…. 진짜 예쁘다.”
강우 역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평소에도 예쁜 이나은이 웨딩드레스를 입으니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괜찮은 거 같아?”
이나은이 살짝 부끄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강우의 뜨거운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강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야. 그냥 이걸로 하자.”
강우의 말에 피팅을 도와주던 직원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신부의 웨딩드레스 자태를 본 신랑들의 반응은 누구나 한결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1번 드레스에요. 사진 찍으시고 지금 느낌을 잘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커튼이 쳐졌다. 이나은은 그 짧은 이별의 순간이 아쉬운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나은이 모습을 감추자 강우가 꿀꺽 침을 삼켰다.
“정말 예쁘세요. 어떤 드레스를 입어도 다 어울리실 것 같아요.”
“맞아요.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예쁘세요.”
오렌지주스를 가져다준 직원도 막내 직원도 이나은의 미모에 난리가 났다. 지금껏 봤던 어떤 신부보다 아름다운 이나은이었다.
“2번 드레스입니다.”
다시 커튼이 열리고 이나은이 모습을 나타냈다. 다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몸에 꽉 달라붙는 머메이드 형태의 드레스였다. 이나은의 몸매가 드러나는 스타일이었다. 몸에 꽉 끼는 드레스가 조금 부끄러웠는지 이나은이 또 얼굴을 붉혔다.
“이건 어때?”
이나은의 질문에 멍하니 있던 강우가 엄지를 ‘척’ 하고 내밀었다. 1번 드레스가 잊혀질 만큼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이나은의 자태였다. 막내 직원이 연신 카메라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이건 2번 드레스입니다. 신부님의 몸매가 강조되는 드레스입니다. 잘 기억해두세요. 신랑님.”
강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나은의 모습이 강우의 머릿속에 사진이 찍히듯 선명히 박혔다.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한 웨딩드레스였다. 강우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었다.
“그럼 다음 드레스 입으시겠습니다.”
이나은이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이나은은 여러 가지 드레스를 계속해서 입었다. 사실 그 정도까지 여러 벌을 입어 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드레스샵 디자이너가 이나은의 자태에 감탄하며 계속해서 드레스를 권했다.
“정말 예쁘세요. 오늘 저희 샵에 있는 드레스 전부 입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나은도 싫지 않은 듯 거절하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신부의 설레는 마음이 그대로 나타났다. 강우는 이나은이 새로운 드레스를 입을 때마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나은의 드레스 자태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럼 이제 드레스를 고를 차례인데요. 너무 많이 입어보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몇 개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드레스샵 디자이너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디자이너의 걱정과는 달리 강우의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기억이 되어 있었다. 강우의 입에서 하나씩 하나씩 이나은이 입었던 드레스에 대한 감상과 품평이 쏟아져 나왔다.
“와…….”
드레스샵 직원들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강우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소문에 들리던 강우의 기억력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우리 강우야.”
이나은도 싱긋 웃으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그 많은 드레스 중에 몇 가지 후보군을 골라냈다. 이나은도 강우의 선택과 같은 마음이었다. 두 사람이 고른 최종 후보는 총 3개의 드레스였다. 가장 기본적인 A형 드레스와 이나은의 몸매를 부각해주는 머메이드형 드레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허리선까지는 타이트하게 붙다가 하체부터 풍성하게 퍼지는 벨라인 드레스였다.
“나은이는 어떤 게 마음에 들어?”
강우의 질문에 이나은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골라야 할 드레스는 단 한 벌이었다. 이윽고 고민을 끝낸 이나은이 드레스를 골랐다.
“난 이거.”
이나은이 고른 드레스는 머메이드형 드레스였다. 강우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씩 웃었다.
“좋네. 나도 이거.”
두 사람의 선택은 늘 그렇듯이 통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나은이 강우를 향해 말했다.
“나 부탁이 있어.”
“응?”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나 이 드레스 대여가 아니라 사고 싶어.”
“그래?”
강우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결혼 준비를 하며 정말 검소한 이나은이었다. 그런데 드레스를 사겠다고 하니 의외였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응, 드레스를 꼭 사야 하는 이유가 있어.”
이나은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은이 원한다면 그리고 어떤 이유가 있다면 못 사줄 이유가 없었다. 강우가 드레스샵 디자이너를 향해 말했다.
“이 드레스 대여가 아니라 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