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군.
강우와 타임스지의 인터뷰는 바로 잡혔다. 타임스는 강우가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순간을 놓치기 싫은 모양이었다. 다른 언론들도 연일 강우에 대한 소식으로 뜨거웠다. 하지만 강우는 오직 타임스와의 인터뷰만 잡았을 뿐이었다.
위이잉-
근래 가장 핫한 남자 강우가 의자에 앉아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데 왜 헤어와 메이크업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타임스에서 요청했다.
“사장님, 관리받으시니까 인물이 더 좋으세요.”
“아…. 그런가요.”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는 스텝들은 강우를 바라보며 연신 ‘꺅꺅’ 소리를 냈다. 그런 강우를 보며 최 비서가 씩 웃고 있었다.
‘암…. 그럴만하지. 남자가 봐도 멋있으니까.’
아직 이십 대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더 멋있어지는 강우였다. 최 비서는 강우를 보며 뿌듯하고 흐뭇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깔끔한 회색 슈트에 갈색 구두 그리고 머리는 단정히 넘긴 강우였다.
“사장님, 오늘 정말 멋지십니다.”
“좀 어색하기는 한데요.”
강우는 여전히 털털한 복장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강우의 평범한 복장은 늘 주변의 화젯거리기도 했다. 명품으로 도배하는 다른 재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도 이제 사장님의 위치가 있으십니다. 어느 정도 깔끔한 모습은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지난번 있었던 청와대의 대국민 발표 이후 강우의 유명세는 더욱더 높아졌다. 어디를 가든지 강우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다들 칭찬 일색이었다. 강우에 대한 호감은 곧 강우가 하는 일들에 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우리 그룹도 이제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사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비서는 오늘 유난히 말이 많았다. 하지만 강우는 그런 최 비서의 말이 싫지 않았다. 최 비서의 얼굴에는 동양그룹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신경 많이 쓰고 다니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최 비서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박강우 사장님,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난 강우를 타임스 관계자가 불렀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작은 광장처럼 넓은 공간에는 타임스에서 나온 촬영팀이 있었다. 강우가 나타나자 오늘 인터뷰를 진행할 관계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미국 타임스에서 나온 제임스입니다.”
“안녕하세요. 동양그룹 박강우입니다.”
강우의 정확하고 유창한 발음에 타임스에서 나온 제임스가 눈을 빛냈다. 마치 미국 유명 뉴스의 아나운서를 보는듯한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듣던 대로 영어가 유창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제임스가 강우에게 자리를 권했다. 강우와 제임스가 마주 보았다.
“먼저 이렇게 좋은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의 이번 인터뷰 목적과 딱 맞는 장소입니다.”
“이곳이 홍보되면 저도 좋으니 서로 윈윈이군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인터뷰 장소는 바로 신사옥 별관인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이었다. 강우가 타임스에 장소 제공을 제안했고, 타임스 측은 대환영이라는 답을 주었다.
“이곳은 개인이 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정말 역사적 가치가 많은 곳 같습니다.”
“제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독립박물관에서도 몇몇 자료들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제임스가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인이 만든 박물관이라기에는 정말 신경을 많이 쓴 게 보였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질문입니다. 얼마 전 세기의 결혼식이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 결혼식은 전부 박강우 사장님이 구상하신 것입니까?”
“네, 맞습니다. 저는 제 결혼식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 결혼식이 축하받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결혼 축하드립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제임스가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동양그룹의 성장 과정은 정말 극적인 부분이 많더군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동양그룹이 폭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다음 질문은 동양그룹에 대한 것이었다. 강우의 본업이 사업가인 만큼 가장 무난한 질문이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기를 잘 탔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IMF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양그룹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성장 과정을 알고 있는 제임스였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은 국민에게 아프고 힘든 시기였지만…. 저희에게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강우의 입에서 동양그룹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제임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의 사업적 안목을 칭찬했다. 계속되는 칭찬 세례에 강우가 멋쩍어할 정도였다.
“동양그룹은 굉장히 친사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직원들의 복지도 훌륭하고 사회봉사도 적극적이죠. 이 점은 한국 기업문화에 보편적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질문을 던지는 제임스의 얼굴에는 강우에 대한 호감이 가득했다. 제임스는 강우에 대한 인터뷰를 준비하면 많은 조사를 했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강우에 대한 호감을 느꼈다.
“부는 순환할 때 가장 올바르게 쓰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여있는 자본은 썩게 마련이니까요. 내가 얻은 만큼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끊임없이 자본을 순환시키는 것이 모두가 잘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우의 답변에 제임스가 감탄성을 뱉어냈다. 실제로 만나본 강우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멋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의 얼굴에 강우에 대한 호의적인 미소가 짙어졌다. 그리고는 강우와 가족들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박강우 사장님의 동생분이 얼마 전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다고 들었습니다. 최연소 드라마 작가 데뷔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강용이에 관한 질문에 강우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네, 맞습니다. 제 동생은 최연소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오~ 정말 대단합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다니 말입니다. 혹시 차기작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가능할까요?”
강우가 바로 답을 했다.
“한국 독립운동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오~ 역시 그렇군요.”
제임스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강우는 영화 내용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개봉 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제임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일반적인 신상 질문이 끝났다. 제임스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표정도 진지한 것이 본격적인 질문을 하려나 보다. 이어지는 질문은 역시나 요즘 가장 뜨거운 이야기였다.
“이번 한국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는 데 박강우 사장님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외교적인 부분까지 가능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강우도 자세를 고쳐잡았다. 지금부터는 정말 신중히 대답해야 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가진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사실 이 부분은 민감할 수 있어서 말을 아끼려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모든 사실을 밝힌 마당이니 저도 솔직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국에 있는 위진오 위원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양부님께서는 아시아 국가들의 유대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십니다.”
“역시 박강우 사장님의 영향력이 컸던 게 맞군요.”
제임스가 눈을 빛냈다. 위진오가 누구이던가? 중국 차기 주석으로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중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위진오가 펼치는 정책들이 중국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중국이 아무리 공산국가라 하지만 민심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제 영향력이라니 조금 민망하군요. 그것보다는 양부님께서는 정직하고 곧은 분이십니다. 그리고 화합과 순리를 중요시하십니다. 동북아 삼국은 결국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도 가지고 계십니다. 더 이상의 발언은 정치적인 부분일 수 있어서 자제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위진오 위원장님과 인터뷰도 해보고 싶군요.”
제임스가 씩 웃었다. 강우에게 다리를 놓아달라는 말이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번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제임스가 눈을 빛냈다. 중국 정계의 거물 위진오와의 인터뷰라니 정말 엄청난 건수였다.
“다음 질문입니다. 박강우 사장님께서는 현재 과거사 진상규명법의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현재 진행 중인 친일파 청산과 위안부 그리고 강제노역 소송과 관련이 있는 것이 맞습니까?”
제임스의 질문에 강우의 표정이 대번에 진지해졌다.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맞습니다. 현재 일본은 지나간 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국의 관계가 미래 지향적으로 되려면 이 부분은 순리대로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국내에 남은 친일파에 대해서는 제가 강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강우의 강한 어조에 제임스가 꿀꺽 침을 삼켰다. 당당하고 확신에 찬 강우의 언변과 표정에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잘못된 방법으로 쌓아 올린 부와 명예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는 데 노력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많은 사람을 깎아내리고 가난하게 만들고 무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결코 그들과 타협할 생각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들의 죄를 세상에 밝혀내고 진정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분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겁니다.”
강우가 말을 마치고 숨을 돌렸다. 주변으로 깊은 정적이 흘렀다. 강우의 몸에서 뿜어나온 강렬한 카리스마에 모두가 압도되었다. 찰나의 정적이 끝나고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임스 역시 손뼉을 치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군.’
그리고 수많은 유명인사를 만나본 제임스는 직감했다. 운명이 아니 천명이 강우를 지금 이 자리로 만족시키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제임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박강우 사장님은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으신 겁니까?”
다시 정적이 흘렀다. 강우를 향해 시선이 쏟아졌다. 강우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예전에는 위진오가 그리고 그 이후는 주변의 많은 사람이 말하고는 했다. 혹자는 세상이 강우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 했다. 또 누군가는 정말 정치적인 야망이 없냐고도 물었다. 몇몇 사람은 강우가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강우는 지금의 행복이 좋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어야 할 친일파 청산을 비롯한 많은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명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앞으로 남은 길도 멀었다. 강우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가진 사명을 이루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강우의 발언에 주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제임스는 눈을 빛내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우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역사상 훌륭했던 많은 지도자가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이 박강우 사장님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 같군요.”
제임스의 말에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운명이 어디로 자신을 이끌지 아직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