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6화 (376/402)

진짜 잘 어울려.

인터뷰를 끝낸 강우는 제임스와 악수하였다. 제임스가 강우를 향해 말했다.

“인터뷰는 끝났고 이제 사진 촬영을 조금 하겠습니다.”

“아…. 네.”

오늘 강우가 유독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바로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강우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지정된 촬영 위치에 섰다.

“와…. 정말 멋지십니다.”

사진작가가 강우를 보며 엄지를 들었다. 키도 크고 아시아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체격을 가진 강우였다. 얼굴도 훤칠하게 생겨 카메라에 담아보니 정말 모델 저리 가라였다.

펑- 퍼펑-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강우는 사진작가의 요구대로 자세를 잡아주었다. 촬영 내내 스태프들의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이나 진행된 사진 촬영이 끝났다.

“미국에서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군요. 오늘 못다 한 질문이 많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사업차 들를 일이 있기는 하거든요.”

강우의 말에 제임스가 눈을 빛냈다. 동양그룹의 사업은 모두 아시아 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근 동양그룹이 유럽과 북미 쪽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건 들었습니다. 이거 유럽 시장과 북미 시장에 큰 바람이 불겠군요.”

“넓디넓은 시장입니다. 작은 미풍 정도겠지요.”

강우의 겸손함에 제임스가 씩 웃었다. 아시아인 특유의 겸손함은 늘 새롭게 느껴졌다.

“아…. 그리고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저희 잡지 꼭 구독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답했다.

‘올해부터였나. 타임스에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을 발표하기 시작한 게.’

강우는 다른 타임스 스태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인터뷰를 끝낸 제임스와 타임스 스태프들은 독립운동 역사박물관을 조금 더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강우는 당연히 허락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별관을 나온 강우가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촬영이 한창일 이나은이 떠올랐다. 강우가 최 비서를 바라보았다.

“전 촬영장 갔다가 바로 퇴근할게요.”

“네, 사장님.”

“아…. 그리고 영화 스태프들 줄 간식이랑 밥차 좀 부탁드려요.”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직접 운전해 이나은의 촬영 현장으로 향했다.

* * *

마차 한 대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마차 주변으로는 일본군들이 호위하듯 늘어서 있었다. 마차는 길을 달리고 달려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푸르륵.

먼 길을 달려왔는지 말들이 거친 숨을 뱉어냈다. 그와 동시에 마차의 문이 열렸다. 일본군들이 좌우로 늘어섰다. 마차에서 한 명의 남성이 내려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성의 얼굴에는 거만함이 가득했다.

“조선의 공기는 참 좋군.”

남성이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이었다.

탕!

단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남성의 심장에서 피 분수가 솟아올랐다.

“끄르륵….”

남성이 거품을 물며 뒤로 넘어갔다. 좌우로 늘어서 있던 일본군들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누구냐?!”

“저격이다! 잡아라!”

일본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한쪽에 있는 건물에서 한 명의 여인이 몸을 숨겼다. 복면을 쓴 여인은 빠르게 건물 사이를 뛰어넘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여인은 마치 잘 단련된 전사처럼 건물 지붕을 마구 뛰어넘었다.

“와아….”

그 모습이 너무 놀라워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1900년도를 재현해 놓은 세트장의 주변으로 있던 영화 촬영팀의 스태프들이었다.

“컷!”

카메라를 지켜보던 영화감독이 컷을 외쳤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영화감독의 지적에 탄성을 뱉어냈던 스태프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누가 촬영 중에 잡음을 내? 너네 미쳤어?”

영화감독의 화는 당연하였다. 물론, 오디오가 겹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지금 장면에 채워질 오디오는 전부 후처리 작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집중력 문제였다. 더군다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여배우는 지금 매우 위험한 스턴트 연기 중이었다.

“저러다가 나은 씨 사고라도 나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야?”

영화감독의 말에 스태프들의 얼굴에 미안함이 짙어졌다. 영화감독이 이렇게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나은이 하는 액션 장면은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나은은 스턴트맨 대역 없이 직접 장면을 소화한다고 했다. 배우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행위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너희들….”

영화감독이 무어라 더 화를 내려던 순간이었다. 한쪽 건물에서 이나은이 훌쩍 뛰어내렸다.

“감독님, 저 괜찮아요.”

이나은은 검은색 기다란 롱코트에 얼굴은 복면을 쓰고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어깨에는 1900년대에 쓰이던 기다란 라이플이 걸쳐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스태프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와…. 뭐야….”

이나은이 맡은 배역처럼 정말 잘 훈련된 독립군 전사의 모습이 느껴졌다. 복면 속 날카로운 눈빛에 몇몇 사람들은 압도되기도 했다.

“나은 씨….”

영화감독이 이나은을 보며 움찔했다. 이나은의 몸에서 강한 기세가 느껴졌다. 항상 웃는 얼굴인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순간 영화감독은 정말 괜찮은 건가 싶었다. 그런 영화감독의 표정을 읽은 이나은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아직 몰입이….”

이나은이 복면을 풀었다. 그리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의 날카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천사 이나은의 모습이 되었다. 그런 이나은의 모습에 주변 스태프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날이 갈수록 미모가 꽃을 피우고 있는 이나은이었다.

“아…. 아니에요. 나은 씨.”

영화감독이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나은이 곧장 모니터링 화면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 촬영 장면이 궁금했다. 이나은이 모니터링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영화감독 역시 모니터링 화면을 주시했다.

“......”

이나은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화면을 주시했다. 이나은이 이번에 선택한 것은 바로 영화였다. 그것도 이나은에게는 정말 중요한 영화였다. 바로 영화의 시나리오 원작자가 강용이였기 때문이었다. 강용이는 첫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영화였다.

‘강용이가 정말 좋은 시나리오를 써주었어. 내가 실수해서는 안 돼.’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이 강용이의 시나리오라서만은 아니었다. 강용이는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모든 지식을 흡수하듯 빨아들였다. 강용이의 배우는 속도에 주변 관계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강용이가 쓴 대본을 보는 순간 바로 대박이 날 것이라는 걸 알았어.’

대진 엔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용이의 대본을 보고는 모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감독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정말이지 완벽해요. 내가 찍은 액션 장면 중에서 가장 그림이 잘 나온 거 같아요. 난 진짜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인 줄 알았다니까?”

영화감독의 칭찬에 이나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영화감독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나은 씨, 요즘 운동 많이 해? 이건 남자들도 힘들 액션인데 너무 잘하는데?”

영화감독의 말에 주변에 있는 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은은 영화 준비를 위해 액션스쿨을 다녔었다. 강용이가 쓴 시나리오는 독립군에 관한 이야기였다. 강용이는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당연히 영화에는 사선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음…. 그러게요. 요즘 힘이 넘치고 몸이 너무 가벼워요.”

“역시 천상 연기자야. 이번 배역을 위해서 몸도 마음도 무장한 거지.”

영화감독이 정말 대단한 배우라며 이나은을 칭찬했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촬영 끝난 건가요?”

그때, 스태프들 속에서 손 하나가 번쩍 올라왔다. 영화감독이 누구냐며 미간을 좁히려다가 움찔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강우가 씩 웃고 있었다. 영화감독이 화들짝 놀라며 강우를 알아보았다.

“사…. 사장님.”

강우의 등장을 모르고 있던 스태프들도 깜짝 놀라며 인사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주변에 인사했다.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가 간단히 간식을 좀 준비했습니다.”

강우는 역시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촬영 현장을 위해서 여러 대의 간식 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물론, 남은 촬영을 위해 고생할 스태프들을 위한 밥차도 잊지 않았다. 스태프들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강우야!”

이나은이 강우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강우가 이나은의 복장을 보고는 감탄했다.

“이야~ 우리 와이프 진짜 독립군 여전사 같은데?”

“그래? 잘 어울리지?”

“응, 진짜 잘 어울려.”

강우와 이나은의 달곰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부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나은과 인사한 강우가 영화감독을 바라보았다.

“나은이 분량 아직 남은 건가요?”

“아닙니다. 지금 이게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집에 혼자 가기 적적했는데요. 아…. 촬영 현장에 부족한 건 없습니까?”

“없습니다. 모든 게 정말 완벽히 준비되어있습니다.”

영화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촬영을 하는 세트장만 해도 그랬다. 이번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세트장은 옛 경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감독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지원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행이네요. 앞으로 외국 현지 촬영도 남아있죠?”

“네, 상해 촬영 일정이랑 러시아 촬영 일정이 있습니다.”

“최대한 지원을 해드릴 테니까 영화 잘 부탁드립니다.”

강우의 말에 영화감독이 의지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와 이나은이 주변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하고는 촬영장을 벗어나 이나은의 개인 대기실로 향했다. 이나은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강우야, 다 갈아입었어.”

“피곤하지?”

“아니, 여보가 데리러 와서 하나도 안 피곤해.”

강우가 이나은 옆에 있는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오늘은 저랑 같이 들어갈 거니까 매니저님은 퇴근하세요.”

“네, 사장님.”

매니저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퇴근했다. 강우와 이나은은 근처에 주차해놓은 강우의 차량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차에 올라탔다. 강우가 이나은의 안전띠를 매어주었다. 강우에게서 느껴지는 향기에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부우웅-

강우가 차를 출발시켰다. 멀리 멀어져가는 촬영장은 다시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강우가 보내준 간식 차들과 밥차들에 스태프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도 보였다.

‘역시 우리 남편이 최고야.’

사람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강우가 이나은은 참 존경스럽기도 했다. 이나은이 창가를 보며 강우에게 물었다.

“강우야.”

“응?”

이나은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옆모습도 멋진 남편을 보니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 있잖아. 요새 이상하게 몸이 튼튼해지고 힘이 넘친다?”

“그래? 내가 너무 잘 해줘서 그런가?”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오늘도 액션 장면 찍는데 나도 모르게 막 힘이 솟아나더라고. 지붕 위를 뛰어넘는 게 있었는데 그냥 쉽게 뛰어지고.”

“그래?”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은도 고개를 갸웃했다.

“액션스쿨 김 감독님도 내가 재능이 있다고는 하셨는데 그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음…. 우리 여보가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까 막 없던 힘도 솟아난 게 아닐까?”

이나은이 그런가 싶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이나은을 보며 강우가 눈을 빛냈다. 사실 이나은의 촬영 장면을 강우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강한 신체 능력을 보여주는 이나은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강우도 모르는 일이라 무어라 말해줄 수는 없었다.

“뭐…. 아무튼 연기가 잘 돼서 다행이야. 액션 장면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항상 조심해야 해 다치면 큰일 나니까.”

“응, 걱정하지 마.”

이나은이 강우의 어깨에 살짝 고개를 기댔다. 강우는 역시나 헤벌쭉 웃으며 기뻐했다.

“강우야, 그런데 강용이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이번 영화 시나리오 주변에서도 재밌다고 난리야.”

“재미도 있고 역사적으로도 독립운동사에 대해 잘 알려질 기회지.”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영화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그리고 이번 영화로 강용이가 큰 상이라도 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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