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1화 (381/402)

그게 마음대로 돼요?

강우와 가족들의 행복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계절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의 끝자락을 맞이했다. 한 대의 고급세단이 용산에 나타났다. 고가도로를 넘어서자 멀리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바로 오랜 시간 끝에 오늘 개관을 하는 용산역 복합 멀티플렉스 건물이었다. 오늘 개장식을 앞둔 복합 멀티플렉스 앞쪽으로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사장님, 사람이 정말 많이 모여있습니다.”

“그렇네요. 정말 많이들 와주셨네요.”

강우가 완벽하게 준비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대한민국 최대 그리고 최고의 복합 멀티플렉스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대진 그룹이 총력을 기울여 만든 용산 복합 멀티플렉스는 대한민국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이윽고 고급세단이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스르륵.

강우의 차 번호를 알아본 보안요원들이 주차장 입구를 열어주었다. 고급세단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텅 빈 주차장은 곧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로 한창이었다. 많은 직원이 주차장에 배치되어 있었다.

“주차 담당 인원들이랑 쇼핑카트 담당 인원들이죠?”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며 강우가 물었다. 층마다 많은 청년이 추위를 참아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네, 사장님.”

“총인원이 얼마나 되죠?”

“주차 인원 50명에 쇼핑카트 인원이 30명 그리고 관리자급 5명까지 총 85명입니다.”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한 거 맞죠?”

IMF 이후 비정규직이라는 채용 형태는 급격하게 늘어난 상태였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강도의 업무를 한다. 하지만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해고가 간단한 채용 형태였다. 또한, 정규직이 받을 수 있는 각종 복지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미래 기억대로라면 대부분 대형마트나 백화점 그리고 멀티플렉스 시설의 관리는 전부 하도급으로 고용되는 형태였지. 그 말은 지금 제일 고생하는 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된다는 것이고.’

물론, 2006년쯤 비정규직 보호법이 만들어진 후 그나마 상황은 나아진다. 하지만 강우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좀먹은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라 생각했다.

“네, 사장님. 지시대로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했습니다.”

“좋네요.”

그런 이유로 강우는 비정규직 채용을 전면 금지했다. 그곳은 대진 그룹과 동양 그룹 모두 마찬가지였다. 주변 다른 기업들은 그런 동양 그룹과 대진 그룹을 비웃기도 했다. 비용 절감과 인적 관리에 쉬운 방법을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다 했다. 하지만 강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올바른 길을 가는 건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쉬운 길을 찾다 보면 언젠가는 넘어지기 마련이고.’

강우는 주변 기업들의 비웃음과 비판 속에서도 뜻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강우의 노력을 국민도 알아주고 있었다. 그룹 호감도 조사를 하면 항상 동양 그룹과 대진 그룹이 1, 2등을 다투었으니 말이다. 취업준비생들이 뽑은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도 바로 동양 그룹과 대진 그룹이었다.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고급세단이 지하 주차장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주변으로는 여러 대의 고급세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 개장식에 초대받은 주요 인사들의 차들이었다. 정 기사가 한쪽에 고급세단을 주차했다. 강우의 차량을 알아본 보안요원 몇 명이 다가와 차를 지키듯 섰다.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린 강우가 보안요원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강우야!”

엘리베이터 홀에서 이재원이 반갑게 소리치며 나타났다. 오늘 개장식의 주인공인 이재원은 오늘 잘 차려입고 있었다. 강우가 손을 들어 이재원에게 인사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너 왔다는 소식 듣고 마중 나왔지.”

“개장식 준비는요?”

“다 끝났다. 이제 시간 맞춰 오픈만 하면 돼.”

이재원이 조금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복합 멀티플렉스 개장에 쏠린 관심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정·재계의 많은 사람이 오늘 개장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올 예정이었다. 물론, 다양한 언론에서도 취재를 나온 상태였고 말이다.

“긴장하지 말고 잘해요.”

“하…. 그냥 예전처럼 네가 하면 안 되냐?”

이재원은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강우가 대진 그룹에 있을 때도 이런 일들은 전부 강우가 도맡아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제 강우는 동양 그룹의 주인이었다.

“대신 상해 스타디움 개관식은 제가 맡기로 했잖아요. 형 하나. 나 하나. 공평하게.”

“하…. 알겠다.”

이재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강우가 대진 그룹을 나가고 나서 이재원은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 업무들을 처리하면서 이재원은 새삼 강우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강우는 대진 그룹의 엄청난 양의 업무를 혼자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했던 것이었다.

“일단 올라가요.”

강우와 이재원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사방으로 온갖 디스플레이들이 달려있었다. 각 층의 정보와 쇼핑 정보를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강우가 미래 기억을 이용해 온갖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대진 건설은 그 아이디어를 이용해 충실히 건설해주었다.

“사람들이 처음 들어올 때 그 표정이 정말 궁금하지 않냐? 나도 오늘 와보고 깜짝 놀랐거든.”

“다들 여기서 행복했으면 좋겠는데요.”

이재원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강우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강우의 마음이 지금의 동양 그룹과 대진 그룹이라는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튼튼한 두 개의 기업이 앞으로 만들어나갈 대한민국의 경제도 기대가 됐다.

띵.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거대한 광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광장의 양쪽으로는 잘 꾸며진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들을 위해 임대를 한 공간이었다. 강우가 비싼 임대료 걱정 없이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마음껏 장사할 수 있게 결정한 부분이었다.

“활기차고 좋네요. 사장님들 표정도 좋고요.”

“당연하지.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저렴한 임대료로 장사를 하니.”

이재원이 씩 웃었다. 보통 유명 백화점이라면 명품 샵이나 대기업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 개장할 대진 플렉스는 달랐다. 강우는 이윤보다는 모두가 사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강우는 일 층을 둘러보며 많은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장님들은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장사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강우는 장사가 잘되기를 응원해주며 이 층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는 메이커들이 많네요.”

“그렇지. 사람들이 찾는 브랜드를 아예 입점시키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이 층부터는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명품 가게들은 물론이고 대기업 브랜드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이 층 역시 개장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 일 층과는 다른 분위기였지만, 이 층 역시 많은 사람이 열심히 했다. 강우는 이 층 매장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전 층을 다 둘러볼 생각인 거냐?”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가 힐끗 시간을 확인했다. 개장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요.”

강우는 가능하면 많은 층을 돌아보고 싶었다. 대진 플렉스가 잘 지어졌는지 그리고 층마다 분위기는 어떤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계속해서 매장을 둘러보았다. 총 8층으로 이루어진 대진 플렉스는 정말 다양한 매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와…. 여긴 진짜 잘 지었는데요.”

그리고 대진 플렉스의 핵심인 7층과 8층은 정말 압권이었다. 먼저 7층은 E-SPORTS 스타디움으로 꾸며져 있었다. 강우가 특히 신경을 쓴 곳이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가 가장 중요시하는 게 바로 문화 산업 아니겠어?”

“그렇죠.”

강우는 7층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상해 스타디움과 E-SPORTS 계의 쌍두마차를 이룰 곳이었다. 선수들을 위한 대기실과 연습 시설도 잘 꾸며져 있었다. 경기를 치를 메인 스테이지와 관중석은 최신식 설비였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네요. 선수들 자리도 좋고. 관중석도 좋고요.”

“응. 그런데 왜 선수석은 저렇게 여러 개를 만들라고 한 거야?”

이재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보통 스페이스 크래프트는 1:1로 진행이 되었다. 물론 팀전도 진행하고는 했지만, 선수석 5개씩이나 필요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재원의 질문에 강우가 씩 웃었다.

“있어요. 조만간 필요할 날이 올 거거든요.”

강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강우와 이재원이 메인 스테이지를 벗어나 보조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보조 스타디움에는 더 많은 선수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튀니지 2나 다른 온라인 게임의 공성전 혹은 길드전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여기도 제 주문대로 완벽하네요.”

“그럼, 대진 건설 관계자들이 네 아이디어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그렇게 7층을 모두 둘러본 강우가 8층으로 향했다. 8층은 바로 영화관이 들어서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상영관 숫자와 최고의 음향시설 그리고 아이맥스 스크린까지 갖춘 곳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넓은 8층의 곳곳에는 다른 문화 시설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무료 전시관 공연장 등등이었다.

“오늘 개장하고 바로 개봉하는 거죠?”

강우가 영화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재원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 여기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개봉할 거다.”

강우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영화관 곳곳으로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포스터에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이나은의 모습이 있었다. 포스터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질 만큼 생생한 표정이었다.

“대박 났으면 좋겠는데요.”

“걱정하지 마라. 벌써 시사회 반응 폭발적이니까.”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강우가 안도의 빛을 떠올렸다. 이번 영화는 정말 강우에게는 남다른 느낌을 주었다. 강용이가 집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고, 이나은이 주연급으로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나은은 임신이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온 힘을 다해 영화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나은이가 임신했는데도 너무 건강하고 힘이 넘쳐서 영화 관계자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지….’

강우가 배 속에 있는 광복이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광복이는 배 속에서 이나은을 든든히 지켜주었다. 아니 지켜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능력을 이나은에게 제공해주었다. 이나은은 쉽게 지치지 않았고 힘도 강해져 힘든 액션 장면도 쉽게 소화했다. 엄청난 양의 대사도 대본을 통째로 외워버릴 정도였다.

‘자식…. 벌써 효도하네.’

그렇게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나은은 다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물론, 얼마 전 시사회 행사에는 참석했다. 이제는 배가 제법 나온 이나은이었다. 관객들은 순산을 기원하며 이나은을 응원해주었다. 많은 사람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이나은은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예정일이 언제라고 했지?”

“한 3주 정도 남았어요.”

이재원이 손가락을 세어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빠른년생으로 태어나면 안 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돼요?”

“그럼 우리 미소랑 친구가 안 되잖아.”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강우의 임신 소식이 들려오고 몇 달 후. 이재원 역시 좋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바로 이재원과 미나 사이에도 2세가 생긴 것이었다.

“에이~ 친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요.”

“그래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애들끼리 결혼시키기로 한 건 잊지 마라.”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보며 픽하고 웃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벌써 결혼 운운하니 그럴만했다. 그렇게 8층을 마저 둘러보던 순간이었다.

“사장님! 시간 됐습니다.”

이재원을 수행하는 비서가 개장행사 시작을 알렸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심호흡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네, 있다가 봐요.”

이재원이 빠른 걸음으로 행사장을 향해 걸어갔다. 손님으로 참석한 강우는 다시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화가 한국을 넘어 세계에까지 흥행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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