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8화 (388/402)

삼촌! 나랑 놀아줘!

중국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강우와 이재원이 앉아있었다. 강우는 핸드폰에 담긴 수호의 사진을 보며 연신 웃고 있었다. 그런 강우를 향해 이재원이 물었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사진 좀 봐봐요. 너무 예쁘죠?”

강우가 이재원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재원이 사진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사진 속에는 브이를 그리고 있는 수호가 있었다.

“인정. 내가 봐도 정말 예쁘게 생겼다. 사내자식이 예쁘게 생기면 별로 안 좋은데 말이야. 이건 경험담이거든.”

“아~ 그러세요?”

강우가 픽 웃었다. 이재원이 진짜라는 듯 눈을 치켜뜨며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라니까? 여자애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고.”

“네네.”

이재원이 품에서 사진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 이재원이 강우에게 쓱 내밀었다. 사진 속에는 정말 예쁘게 생긴 아기가 한 명 있었다.

“봐라. 수호랑 비교해도 손색없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원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이재원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악착같이 덤벼 그런 이야기를 쏙 들어가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런 이재원의 한탄을 들은 강우가 씩 웃었다.

“우리 수호는 다를걸요? 아빠 닮아서 힘이 장사거든요.”

“너 닮았으면 어디 가서 놀림당하지는 않긴 하겠다.”

강우가 수호를 떠올렸다. 시간이 흘러 수호는 6살이 되었다. 수호를 낳고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6살인 수호는 벌써 강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주변을 경악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를 뛰어넘는 강한 힘으로 주변에서 운동을 시켜야 한다고 난리가 날 정도였다.

‘내 아들이지만, 진짜 잘났지.’

강우가 수호를 떠올리며 헤벌쭉 웃었다. 그런 강우의 표정에 이재원이 인정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수아가 매일 집에 오면 수호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재원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하나뿐인 딸이 벌써 수호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제 6살인데 애들이 친해서 그러죠.”

“야, 네가 몰라서 그래. 요새 애들이 얼마나 빠른데.”

강우의 아들 박수호와 이재원의 딸 이수아는 현재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바로 동양 그룹 내에 있는 직장 어린이집이었다. 수호가 태어난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뒤 이재원도 득녀했다. 이름은 이수아였다.

“그래도 둘이 친해서 다행이죠. 억지로 친해지게 만들고 싶어도 안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긴 해.”

강우와 이재원이 각자의 2세들을 떠올렸다.

“아…. 우리 수호 보고 싶다.”

“나도. 우리 수아 보고 싶다.”

출장길에 오른 두 사람의 목적지는 상하이였다. 상하이 스타디움이 완공되고 바로 내일 개장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핸드폰에서 수호와 수아의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회장님, 곧 상하이 공항에 도착합니다.”

이윽고 뒤쪽으로 떨어져 앉아있던 최 비서가 다가왔다. 강우가 핸드폰을 접고서는 최 비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5년이란 세월 동안 늘 강우의 옆을 지키는 최 비서는 현재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강우의 일정을 늘 옆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네, 오늘 일정은요?”

최 비서가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은 디지털 시대로 가속화되고 있었지만, 최 비서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선호했다.

“일단 상하이 시장님을 만나실 예정입니다. 그리고 중국 공영텔레비전과 인터뷰가 있으십니다. 그다음은 대진 그룹 상하이 지점에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일정 모두 재원이 형과 함께인 거죠?”

강우의 질문에 최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두 분이 함께하시는 일정입니다.”

일정을 보고 받는 사이 비행기는 상하이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두 사람이 입국장을 벗어났다. 입국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강우를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과 팬들이었다.

“와아아와!”

“나왔다!”

강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공항이 떠나갈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팬들이 난리가 났다.

펑- 퍼펑-

취재진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중국 공안들이 나섰다. 강우를 지키듯 호위하며 주변을 통제했다.

“역시 대단해.”

이재원이 주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중국에서 강우의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중국 최고 기업의 수장이자, 현 주석의 양자. 중국 젊은이들의 우상이고 닮기 원하는 인물 1위가 바로 강우였다.

“최 비서님, 차량은요?”

“바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한국에서 넘어온 실무진들이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을 벗어났다. 그런 강우를 따라오는 인파는 마치 한류스타를 방불케 했다. 준비된 차량에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최 비서가 탑승했다.

스르륵.

차량이 부드럽게 출발하며 첫 목적지인 상하이 시청으로 향했다. 이윽고 상하이 중심지로 들어서자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상하이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라 평가를 받는 상하이 스타디움이었다.

“멀리서 보니까 더 크고 웅장하네.”

이재원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광복 그룹이 투자하고 대진 건설이 심혈을 기울여 시공한 건물이었다. 많은 빌딩이 있는 상하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우와 이재원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완공된 스타디움을 감상했다.

* * *

덜컥.

한남동의 현관문이 열리고 한 명의 아이가 바람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정원의 한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장군! 루피!”

아이의 부름에 멀리서 장군이와 루피가 달려 나왔다.

멍- 멍-

아이를 향해 달려오는 장군이와 루피의 속도는 무척 빨랐다. 하지만 아이는 익숙한 듯 겁먹지 않고 마주 달려갔다.

“아이코!”

이윽고 대형견인 장군이와 루피 그리고 아이가 뒤엉켰다. 하지만 아이는 넘어지지 않고 두 마리 대형견을 감당해냈다. 아이의 얼굴에 해맑기 그지없는 미소가 번져 나갔다.

“하하하! 간지러워!”

장군이와 루피가 아이의 얼굴을 마구 핥았다. 아이는 간지럽다고 얼굴을 피하면서도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때, 아이가 돌연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두 마리의 대형견이 버거워하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으하하! 복수다!”

아이가 두 마리 대형견의 배를 마구 긁었다. 장군이와 루피가 몸을 비틀며 즐거워했다. 그때였다.

쏴아아아-

정원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물이 아이와 두 마리 대형견을 덮쳤다. 아이는 그게 또 재밌는지 비명을 지르며 정원을 뛰어다녔다. 장군이와 루피도 물을 맞으며 신이 잔뜩 났다.

매앰- 매애앰-

한여름의 매미 소리가 정원에 심어진 나무에서 났다. 한 명의 어린아이와 두 마리의 대형견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어느새 스프링클러는 멈춰 섰고, 정원의 잔디도 아이와 장군이 루피도 흠뻑 젖었다. 하지만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좋다.”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박수호!”

현관문에서 이나은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제 30대에 들어선 이나은은 여전히 20대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앗! 엄마!”

장군이와 루피와 놀던 아이 박수호가 벌떡 일어났다. 이제 6살이었지만, 범상치 않아 보이는 박수호였다. 체격도 당당했고, 무엇보다 눈동자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수호야, 뭐 했길래 다 젖었어?”

이나은이 수호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호가 씩 웃었다. 그 미소가 강우를 많이 닮아있었다.

“장군이랑 루피랑 놀았어.”

흠뻑 젖은 장군이와 루피를 보며 이나은이 말했다.

“엄마가 장군이랑 루피 괴롭히지 말라고 그랬지?”

이나은의 말에 수호가 민망한 듯 씩 웃었다. 그런 아들의 미소에 이나은의 얼굴이 스르륵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수호의 미소는 정말 순수하고 귀여웠다.

“헤헤…. 알았어. 그런데 괴롭힌 게 아니라 놀아준 건데….”

“그래도, 너랑 놀고 나면 장군이랑 루피가 앓아눕는다고.”

힘이 얼마나 장사인지 대형견인 장군이와 루피도 버거워하는 수호였다. 수호의 손길에서 벗어났지만, 장군이와 루피는 꼬리를 흔들며 곁을 지켰다. 수호의 좌우로 나란히 앉은 장군이와 루피의 모습에 이나은이 픽하고 웃었다.

“엄마, 장군이랑 루피는 내 부하야.”

수호가 콧잔등을 쓱 훔쳤다. 두 마리 대형견을 좌우에 둔 수호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장군이랑 루피가 너보다 나이 많거든?”

“그래도. 내 부하야.”

수호가 장군이와 루피를 마구 쓰다듬었다. 장군이와 루피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럼 부하님들 밥 주고 수호도 밥 먹으러 들어와.”

“응!”

수호가 장군이와 루피의 집 쪽으로 달려갔다. 식사 시간을 직감한 장군이와 루피가 수호의 뒤를 따라갔다. 이나은이 수호의 뒷모습을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수호는 장군이와 루피에게 사료를 부어주었다.

매애앰- 매애앰-

해가 중천을 향해가자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요란스러워졌다. 수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한여름의 푸르름이 짖은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빠 보고 싶다~”

수호가 강우를 보고 싶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유독 강우를 따르는 수호는 잠깐 떨어져 있는 것도 싫은가 보다.

“부하 1호, 2호. 대장은 밥 먹고 올게.”

수호의 말에 장군이와 루피가 ‘멍!’ 하고 짖으며 알겠다고 했다. 수호가 몸을 돌려 집을 향해 걸어갔다.

덜컥.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 수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실에는 할아버지와 최준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할아버지! 나 왔어요.”

수호의 말에 할아버지와 최준의 시선이 대번에 수호를 향했다. 홀딱 젖은 수호의 모습에 두 분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빨리 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 감기 걸릴라.”

“그래그래.”

수호가 알겠다고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6살인 수호는 나이에 비해 참 야무졌다. 혼자 알아서 척척 모든 것을 해내고는 했다. 그런 수호를 보며 박씨 집안에 신동이 났다고 했다. 잠시 후, 샤워를 끝낸 수호가 옷도 혼자 갈아입었다. 샤워를 끝낸 수호가 이번에는 어디로인가 급히 달려갔다. 방문 앞에 도착한 수호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똑똑.

수호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방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수호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다시 노크했다.

“누구세요?”

방 안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덜컥.

수호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에는 강용이가 앉아있었다.

“삼촌! 나랑 놀아줘!”

강용이가 의자를 빙글 돌려 수호를 바라보았다. 수호를 바라보는 강용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강용이의 얼굴에는 앳된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이쿠…. 우리 수호.”

강용이가 수호를 번쩍 안았다. 수호가 좋다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수호를 땅에 내려놓은 강용이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 트렸다.

“삼촌! 삼촌! 놀아줘. 응?”

“그래, 뭐 하고 놀까?”

수호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옛날이야기!”

“오케이.”

강용이와 수호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강용이의 입에서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옛날이야기는 할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 명의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또 한 명의 어린아이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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