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화
과거로 돌아오다 (2)
1왕자가 왕성에서 고위급 귀족인 백작을 참수한 전대미문의 사건.
하물며 상대는 국왕의 오랜 친우인 아수스 백작이었다.
덕분에 에스테반 왕국의 왕성이 뒤집혔다.
“1왕자 전하가 드셨사옵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칭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드넓은 대전 끝으로 솟아오른 왕좌에 다가갔다.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황금빛의 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것이었던 자리.
그리고 최후에는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던 공간.
하지만 이제 그곳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님이 정정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다.
“알렌 에스테반.”
오랜만에 들어 본 아버님의 목소리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웃는 것이 대체 얼마 만일까?
회귀하기 전의 내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왕이라는 자리에 오르고 난 이후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진심으로 웃어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어색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크흠.”
어느 귀족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상념에서 벗어났다.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보자, 왕좌 주변으로 나열해 선 귀족들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 다 아는 얼굴들이구먼.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아버님.”
“항시 언동에 주의하라 일렀거늘, 알렌 에스테반. 지금은 엄중한 귀족회의 시간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아차.
나는 오래전 배웠던 예법을 떠올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아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쯧. 1왕자는 그만하고 고개를 들라.”
“예.”
이런 우스꽝스러운 대사를 읊는 것도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이 또한 나름대로 신선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제법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귀족회의가 시작되었다.
“어째서 귀족회의를 열었는지 알고는 있겠지?”
“그렇습니다. 씹새…… 크흠. 아수스 백작이 죽은 탓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정확하다. 그렇다면 1왕자는 오늘 아침, 집무실에서 자신의 보좌관인 아수스 백작을 죽인 사실을 인정하는가?”
“예. 인정합니다.”
내 빠른 인정에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대부분은 왕성에서 일어난 참사에 고개를 내젓는 수준이었지만, 개중에는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혹은 적대적인 눈빛으로 쳐다보는 작자들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회귀 전에도 아수스 공작 옆에 붙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던 승냥이들이었다.
소란이 이어지자 국왕의 손에 들린 검집이 바닥을 세차게 두드렸다.
쿵쿵쿵!
그러자 대전 내부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조용해진 귀족들을 한 번 훑어보던 그때, 노한 국왕의 음성이 벼락처럼 귀에 꽂혔다.
“1왕자는 어째서 죄 없는 아수스 백작을, 그것도 고결해야 마땅한 왕성에서 살해하였는가?”
죄 없는 아수스 백작.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귀족들의 시선에서 보이는 아수스 백작은, 그 누구보다 청렴하고 왕가에 충성을 다하는 충신이었으니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내가 놈을 죽여 버린 것은 정당한 일이었고, 그래야 마땅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저들의 입장은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다.
미래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이빨을 드러내지 않은 청렴결백한 아수스 백작이 아니겠는가.
이번 일이 앞으로의 행보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은 당연지사.
‘고작 이런 일에 새로 얻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오게 된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미래에서 알아냈던 지식을 무기로 꺼내 들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 국왕 전하께 감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하라.”
“왕국 법률에서 다루는 적국과의 내통은 어떤 범위의 행동까지 적용되는 것입니까?”
당당하게 던진 내 질문에 몇몇 귀족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표정이 변한 귀족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국왕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하며 말했다.
“작게는 군량미나 금화 등의 금전적인 지원이요, 크게는 적국에 이익이 되는 모든 행위라고 정해져 있다.”
“하면, 타국의 지원을 받고 반란을 도모한 자는 어떤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까?”
“그건…….”
그제야 국왕도 이상함을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당사자와 삼족을 즉결 처형하고 귀족의 작위를 영구히 박탈한다.”
입꼬리가 다시 한번 올라간다.
나는 두 팔을 벌리며 연설하듯 소리쳤다.
“아수스 백작이 죄 없는 자였다면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녀석은 카롯트 연방 제국의 지원을 받고 비밀리에 군사를 육성하고 있었습니다!”
“……뭐라?”
“물론, 그 모든 것은 반란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음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귀족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높아지며 대전 내부에 여태껏 없었던 소란이 일었다.
“거짓말입니다! 어찌 왕가에 충성을 다해 온 아수스 백작님이 그러신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웅성웅성-
감히 일국의 왕자에게 거짓말이라고 말하다니.
평소라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나, 대전에 정렬해 있던 귀족들이 받은 충격은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국왕의 얼굴에는 노기 어린 표정이 서려 있었다.
“가만히 듣자 하니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알렌 에스테반!”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감히! 너는 지금 수백 년에 걸쳐 왕실에 충성을 바쳐 온 왕국의 기둥을 죽인 죄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한데, 그러한 자리에서 감히 짐을 우롱하고자 하는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소리의 연속이다. 국왕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저는 단지 왕국을 위해 행동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마치 진실만을 말했다는 듯,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그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당당하지 않은가.
“변명을 위해 짐을 능멸하고자 한 것이라면 가벼이 넘어가지 않겠다. 스스로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물론입니다.”
“증거. 증거가 있을 터다. 아수스 백작이 제국과 내통했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지?”
“공교롭게도, 제가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가지고 오라.”
나는 사전에 챙겨 왔던 두 장의 종이를 품에서 꺼내, 왕좌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하에게 건넸다.
귀족회의에 불려 나가기 전. 급히 꺼내 온 물건이었다.
물론 놈이 말했던 대로, 모든 증거는 집무실 아래에 잠자고 있었다.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이야…….’
숨겨진 금고를 여는 비밀번호는 놈이 주로 사용하던 그대로.
놈의 성격 상, 물건을 숨기는 장소나 비밀번호 따위가 바뀌지 않았을 거라는 내 추측이 들어맞은 부분이었다.
이윽고 신하의 손을 거쳐 국왕에게 넘어간 종이.
이를 읽어 나가는 국왕의 표정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왕에게 건네준 것은 아수스가 카롯트 연방 제국에 보내고자 했던, 전생의 내가 오랜 시간 찾아왔던 확실한 증좌 중 하나.
보내는 이에 대한 내용은 없었으나, 아마도 아수스의 오랜 친우였던 국왕은 아수스 특유의 필체와 각인을 읽어 냈으리라.
하지만.
“이건…….”
고작 두 장의 서신이었을 뿐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왕위 찬탈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물론이고, 서신 중 하나에는 왕국 병력의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을 수준이었으니.
특히나 다음 대목에서는 국왕의 노기가 극에 달했다.
“얕게 희석시킨 독약을 십여 년간 먹게 함으로써 암살의 증거가 남지 않도록 하겠다고? 지금 짐더러 이 내용을 믿으라는 말이더냐!”
국왕의 손에 들린 서신이 무참히 구겨졌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회귀한 나조차도 믿지 못했던 사실이었으니, 타인이 이 사실을 한 번에 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이 또한 증명할 수 없었다면 제시하지도 않았을 테고.’
나는 천천히 왕좌로 다가가며 말했다.
“설마 그 서신이 조작되기라도 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당장의 면책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왕궁의 마법사를 불러 조사하라 이르면 단 한 시간 내로 들통 날 것입니다. 물론, 그 서신이 진품이라는 것은 아수스 백작의 친우이신 국왕 전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실 테지만요.”
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어느새 순식간에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 대전 내부.
그리고 이를 감상하듯 쳐다보는 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아수스 백작이 저지른 일은 그 밖에도 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북쪽의 야만족들과 내통하여 아군의 군사적 정보를 팔아넘긴 일이 있겠군요.”
“……뭐라?”
카롯트 제국과 내통한 것이 충격적인 고발에 가까웠다면, 이번 발언은 정말이지 황당함의 연속이었다.
이는 비교적 냉정한 모습을 보이던 국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국왕은 떠듬거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야만족들에게 정보를 팔았다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리로다.”
“그 증거로, 야만족들의 침공을 알리는 사자가 곧 당도할 것입니다.”
“허! 어찌 야만족 따위가 왕국을 침략할 수 있단 말이더냐?”
“역시 믿지 않으시는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왼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비틀어 빼낸 뒤, 조심스럽게 자리에 내려놓았다.
왕실의 문양이자 1왕자의 신분을 증거 하는 보물이었다.
“제 말이 틀렸다면 모든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일로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러니 정녕 제 말이 맞다면…… 에스테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직속의 정보부처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허, 네 죄에 대한 청문회에서 오히려 권리를 요청한다?”
여전히 귀족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대전 내부.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소란을 잠재워야 마땅할 국왕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이 또한 네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야만족의 침략이라는 것은 너무도 허무맹랑한 소리였기에.
그 순간.
쾅!
그 모든 소란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 들어온 기사에 의해 종식되었다.
정비할 틈도 없이 달려왔는지, 기사의 몸에서 흙먼지가 비산하며 대전 바닥에 흩뿌려진다.
그 모습에 국왕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무례인가!”
왕의 진노한 음성이 대전에 울려 퍼졌다.
숨을 들이쉴 틈도 없이 국왕 앞으로 달려온 기사는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말했다.
“소, 속보입니다! 부디 급작스러운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속보라고? 당최 무슨 일이기에 엄중한 귀족회의를 방해한 것이냐?”
“북쪽의 국경지대에서 야만족에 의한 대규모 침공을 감지하였습니다!”
“……뭐라고?”
귀족들의 시선이 단숨에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혼란에 빠진 대전 내부.
나는 외투를 벗으며 대전 한가운데에서 숨을 헐떡이는 기사에게 말했다.
“즉시 국경지대 주위의 귀족들로부터 병력을 차출하고, 전선의 병사들로 하여금 방어선을 물리고 버티는 데에만 집중하라 일러라. 왕실의 정예 부대가 나흘 내로 도착할 것이다.”
“예?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명령.
명백한 월권행위였으나,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이를 의식지 못했다.
나는 떠나가는 기사를 보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국왕 전하. 이리하면 제 말이 증명되는 것입니까?”
“당최 이게 무슨…….”
“아수스 백작이 적국과 내통했다는 것에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거짓말이었다.
야만인들의 침공은 단순히 오늘 일어났어야 했을 뿐. 아수스 백작과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 덕에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수스 백작이 벌인 일이라는 사실만이 생각을 지배했을 것이다.
마치 퍼즐처럼 맞춰지는 상황.
일부러 시간을 끌며 곧바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완벽에 가까운 설계로, 내통에 대한 온전한 증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롯트 연방 제국의 세작이었다는 사실을 국왕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1왕자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아수스 백작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따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런가…… 정말로 아수스 백작이…….”
“감히 왕궁에서 인명을 해한 일이 가볍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 신념이 이를 용서치 못하였습니다.”
국왕이 탄식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며 왕좌에 몸을 기댔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백작은 내통 외에도 암살자를 고용하여 사업에 방해가 되는 귀족을 죽이는 등의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왔습니다.”
“후우.”
마찬가지로 이 역시 말로만 해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부족한 시간 탓에 미처 가져오지 못한 증거들.
이번에 꺼내 든 것은, 이 사건을 종결지을 쐐기였다.
“이를 증명 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제가 이 자리에서 증거가 위치한 장소를 말씀드리는 것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건 무슨 뜻이지?”
“증거가 존재하는 장소를 말해 본들,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그 증거를 인멸해 버린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요.”
내 시선이 다시 한번 귀족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귀족들부터 시작해서 사색이 된 놈들까지. 나는 그런 표정들을 충분히 즐기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즉시 대전의 문을 봉쇄하고 조사원을 파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확신에 찬 1왕자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행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말투와 행동거지.
지난 20년간 함께 지내 온 국왕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판단은 빨랐다.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흐음…… 여봐라. 왕실 수호 기사단장 아놀드는 들어라.”
“예. 폐하.”
“1왕자가 장소를 말하는 즉시 증거를 가져오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
“아니요.”
나는 아놀드의 말을 끊어 냈다.
그러자 국왕의 눈썹이 꿈틀댔다.
“또 뭐지?”
“그는 평소 아수스 백작이 후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수스 백작의 명예를 위해 증거를 인멸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회귀하기 전. 왕실 수호 기사단은 국왕의 직속 근위기사단임에도 불구하고 반란을 도왔다.
그리고 아놀드는 미래에도 왕실 수호 기사단의 단장으로 역임하고 있던 상태였고.
그렇기에 놈을 배척했으면 배척했지, 믿을 수는 없었다.
아놀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휙휙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 아수스마저 그랬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지요.”
그러고는 아놀드를 향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후우.”
국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러하면 1왕자는 누구를 조사원으로 보내기를 원하는가?”
“제 생각에는…….”
나열해 있는 귀족들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회귀 전 아수스 공작과 접점이 없었으면서도, 폭로 당시 표정이 변하지 않았던 사람.
나는 적당한 인물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도르 남작이 좋겠습니다.”
“예? 저, 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게 호명된 비도르 남작이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미래에도 유약하고 큰 욕심이 없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영지민을 위하는 공명정대한 귀족.
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충분했다.
“좋다, 비도르 남작. 1왕자에게 위치를 듣고 즉시 다녀오도록.”
“시, 신 비도르. 명을 받들겠습니다.”
됐다.
정확히 의도했던 상황이다.
나는 서기가 앉아 있는 책상으로 다가가 종이와 팬을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증거가 위치한 장소와 함께 간략한 약도를 그려서 비도르 남작에게 건넸다.
위치를 확인한 비도르 남작이 크게 놀랐다.
“저, 정말로 이런 곳에 있습니까?”
“음.”
나는 훠이 훠이 손짓하며 비도르 남작을 재촉했다. 그러자 그는 반신반의한 얼굴을 하면서도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국왕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번 귀족회의 안건이었던 1왕자의 처우 결정은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하지. 더 할 말이 있는가 1왕자?”
“예. 있습니다.”
“……해 보거라.”
“아수스 백작이 죽었으니 제 보좌관을 다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국왕이 피곤한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혹 1왕자가 원하는 보좌관이 이 자리에 있다면 호명하도록.”
그 말에 귀족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걱정 마라. 너네는 안 뽑을 거니까.
“이 자리에는 없으니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또한, 예의 정보부처 아래에서 별도의 정보 수집을 진행할 기사단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십시오.”
“후…… 그래, 뜻대로 하라.”
국왕은 이내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는 듯이 눈을 감고 몸을 기댔다.
그렇게 대전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이 상황에서 신이 난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어디 보자…….
내 서늘한 눈빛이 몇몇 귀족들에게 닿았다.
아수스 공작의 손에 죽기 직전. 놈의 뒤에서 웃었던 얼굴들.
그리고 주변국의 명을 받고 사사건건 훼방만 놓아 두던 세작들.
비록 지금은 젊어졌다지만 그 역겨운 얼굴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너희들도 곧 죽여 주마.
이번 일은 사소한 경고에 불과했다.
내 복수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