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3화
과거로 돌아오다 (3)
나는 1왕자 시절 지냈던 방을 둘러보며 그리움에 젖었다.
정말로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방 한편에 위치한 거울로 다가가서 내 얼굴을 살펴보았다.
짧게 자른 은발의 머리카락. 적색의 눈과 턱선을 따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얕은 검상. 의복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잔근육들.
그야말로 내가 기억하고 있던 스무 살 시절의 나였다.
나는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돌리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
나는 검왕이라는 이명까지 존재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하나, 지금의 이 기생오라비 같은 여리여리한 모습은 대체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능으로 나이에 맞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회귀를 통해 과거로 온 나에게 있어서는 연약한 신체 그 자체였다.
당연히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몸을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겠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수스 백작 참수 사건은 사흘간의 근신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연하게도 백작을 죽인 것에 대한 처분이 아닌 왕성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처분이다.
지금까지 저질러 온 비리들의 증거들과 더불어 국왕에게 먹이려 했던 독약이 추가로 발견된 덕분이었다.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거울에 비친 눈이 싸늘하게 웃었다.
비도르 남작에게 가르쳐 주었던 장소는 왕궁 내부에 있는 아수스 백작의 개인실.
정확하게는 그가 사용하던 변기의 물탱크 속이었다.
회귀 전에는 이곳에서 비리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금고가 주요 증거들을 모아 둔 곳이었다고 한다면, 물탱크는 잡다한 증거들을 모아 두는 곳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내란 음모를 꾀하고 국왕 암살을 시도했던 아수스는 더 이상 백작이라는 지위로 불리지 않았다.
아쉽게도 아직 놈이 육성한 군사의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녀석의 일족들이 왕성의 감옥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분간은 내실을 다지겠다는 내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숙이라는 명목하에 방에만 있노라면, 회귀에 적응하지 못한 내 행동들이 합리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숙이라는 처분은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어째서 이 몸이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긋나 있던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나를 노리는 승냥이들에게는 폭군의 모습을…….”
그리고 나의 백성들에게는 성군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
북쪽 변방 소국의 국왕이 아닌, 절대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내 최종적인 목표였다.
나는 시험 삼아 방에 놓여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능숙한 솜씨로 뽑아낸 검이 조명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빛났다.
회귀 전에 사용하던 보검보다야 성능이 떨어지겠지만, 그 예리함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정도였다.
아마도 이 시절의 나는…… 따로 검술 선생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서 구르던 놈인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크게 도움이 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회귀 전 사용했던 나만의 비전 검술을 시연했다.
“흐읍!”
샥- 샥-
검풍이 허공을 가르며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운 비명을 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 나간 검격.
여기에는 그 어떤 불필요한 궤적이나 동작은 존재하지 않았다.
검과 하나가 된 것만 같은 완벽한 숙련도.
속도나 파괴력 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했지만, 도저히 스무 살의 실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거울에 비친 눈이 번뜩이며 단전에 잠재되어 있던 기운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우우우우웅!
검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섬뜩한 핏빛의 기운.
거의 1미터에 달하는 오러가 거울과 함께 벽면을 완전히 갈라 버렸다.
소드마스터의 비기, 오러 블레이드였다.
다른 기사들이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하였을 장면이었으나, 정작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나약했을 줄이야…….”
후우.
나는 검을 쥔 손을 늘어뜨리며 숨을 골랐다.
검을 휘두른 것이 고작 2분 남짓이다. 하물며 오러를 사용한 것은 단 한 순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비록 신체 수준을 상회한 검술을 전개했다지만 벌써 지쳐 버릴 줄은 몰랐다.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기에 실망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회귀 전의 경지를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가…….’
쉽게 말하면 기억과 숙련도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스무 살의 신체와 오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번 일로 회귀 전의 실력이 모두 죽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으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
이미 한 차례 검왕이라는 이름하에 군림하던 시기가 있었기에, 다시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방 상태가 이래서야 편히 쉴 수는 없겠네.
나는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벽면을 보며 호출 수정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민감한 청력을 통해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똑똑-
“허억, 허억. 부, 부르셨습니까? 1왕자 전하.”
비도르 남작이 문을 두드렸다.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급하게 뛰어온 모양이다.
“들어오도록.”
내 허가가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비도르 남작이 들어왔다.
가벼운 옷차림의 그는 식사하던 도중 불려왔는지 입가에 소스를 묻히고 있었다.
비도르 남작은 아버님의 명으로 내 임시 보좌관이 되었다.
새로운 보좌관이 뽑히기 전까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 그의 의사가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쯧. 지지리 운도 없지.’
하필이면 나를 도와줬다는 죄로 이런 개고생을 한다니…….
그 모습이 불쌍해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식사하던 도중이었나 보지?”
“예? 그게…….”
내 시선을 의식한 비도르 남작이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 냈다.
그러고는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1왕자 전하 앞에서 이런 실수를…….”
음.
고위급 귀족을 망설임 없이 죽여 버린 것이 어지간히도 무섭게 다가왔나 보다.
나는 그냥 식사하던 도중이었냐고 물어 본 것뿐이었는데.
“날이 밝으면 수리공들을 불러 벽을 수리하도록 지시하라. 나는 오늘 밤 다른 방에서 자겠다.”
“알겠습니…… 허억!”
이제야 갈라진 벽을 발견한 비도르 남작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저건 대체 무슨…….”
“잠시 검술 수련을 했다.”
“거, 검술로 저렇게 벽을 가르는 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확실히.
소드마스터가 아닌 이상에야 저런 식으로 깔끔하게 벽을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니 뭐니 해도 저 벽은 마법으로 강화된 벽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씩 웃어 보인 뒤 비도르 남작에게 말을 걸었다.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어어…… 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정보 수집은 이미 끝마친 상태입니다. 혹시 몰라서 서류를 가져오긴 했는데…….”
“이리 주도록.”
“옙!”
나는 비도르 남작이 건넨 서류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거기에 적힌 것은 특정 인물들에 대한 상세 정보.
“좋군.”
정확하게 내가 원하던 정보였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비도르 남작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질문을 던져 왔다.
“저, 외람된 말씀이오나 귀족은 몰라도 평민들의 인적 사항 또한 함께 조사하라는 것은 어떤 연유십니까?”
“으음.”
“혹시 주제넘은 질문이었다면…….”
“내가 말해 주지 않았던가?”
“예?”
나는 서류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어느새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내 새로운 보좌관 후보들이다.”
“……예? 그게 무슨…….”
그는 잠시 생각이 정지한 듯 입만 뻐끔댔다.
그 모습은 마치 금붕어와 닮아 있었다.
“자, 그럼 누구를 뽑으면 좋을까?”
서류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머리를 굴렸다.
정보부처를 설립하겠다는 미래의 계획에 크게 쓸모가 있으면서도, 보좌관의 임무를 수행 가능한 사람.
그러면서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성품.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며 가장 나은 사람을 도출해 낸다.
마침내 가장 눈에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
“이 녀석밖엔 없군.”
나는 한 장의 문서를 따로 꺼내 비도르 남작에게 건넸다.
썩 훌륭한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무려 검왕이라고 불리었던 시절의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이윽고 상황을 파악한 그가 크게 경악했다.
“아, 아니 됩니다! 전하의 보좌관으로 평민을 뽑으시다니요!”
“어째서?”
“소인이 평민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오나, 보좌관의 자리에 출신도 모르는 사람을 앉히는 것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또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자가 왕실 일원의 보좌관이 된다니, 안전의 여부를 떠나더라도 일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자네의 밑에서 배우면 되겠군.”
“…….”
왕자라는 자리는 언제나 여러 가지 위험 요소에 노출이 되어 있는 자리다.
그렇기에 최측근의 직책에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고는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이 자가 어떤 자인지도 뻔히 알고 있었으니.
회귀 전 지식이 있는 나로서는 여기 이 사람만큼이나 능력 있는 보좌관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이 사람을 뽑지 않는다면 추후 큰 걱정거리가 생기는 격이었다.
‘그는 후에 제국 전쟁에서 큰 활약을 보이는 사람이다.’
조지 헤그메스.
적국인 카롯트 연방 제국의 참모로서 악명이 높았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가 참여한 전투들은 기괴한 전략 탓에 하나같이 아군의 피해가 막심했으며, 그 전술은 나의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도 뚫는 것에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냉철한 판단력과 폭넓은 전쟁 지식으로 순식간에 요직의 자리에 오른 조지 헤그메스.
놀랍게도 그는 에스테반의 시민이었던 자였다.
‘죄를 짓고 왕국에서 도망쳤다고 했지.’
보금자리를 벗어난 한 마리의 용은, 곧 자신의 날개를 펼치고 세상으로 날아올랐다.
자신의 고향인 에스테반에 이빨을 드러낸 상태로 말이다.
그렇기에 조지 헤그메스를 보좌관 후보로 선택했다.
유능한 보좌관을 뽑겠다는 것과 적국의 전력을 미리 줄여 놓겠다는 것. 이 두 가지의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
‘그리고 왕국을 바로잡기 위한 비장의 수단으로.’
아마 이번 아수스 사건을 계기로 많은 일이 변할 것이다.
켕기는 것이 있노라면 제 꼬리를 감추고 숨어 있을 테지.
그렇기에 더더욱 조지라는 인재가 탐이 난다.
내가 가진 미래의 지식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눈. 그리고 뛰어난 통찰력과 머리를 가진 그림자.
꼬리를 감춘 겁쟁이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했다.
휘하의 정보부처를 설립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런 이유였다.
복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미래 지식을 사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쳐 죽일 녀석들이 한 뭉텅이나 남아 있었기에.
나는 아직까지도 결사반대를 외치는 비도르 남작에게 말했다.
“비도르 남작.”
“예, 전하.”
“그럼 자네가 앞으로도 내 보좌관을 맡을 텐가?”
“흐억…….”
“걱정하지 말도록. 나 역시도 그를 곧바로 보좌관으로 임명할 생각은 없으니. 뭐, 자네가 반대한다고 해도 진행하겠지만 말이야.”
평민 출신의 보좌관은 내게 정치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나 역시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적당한 시기를 헤아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 완강한 태도에 결국 비도르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하다.”
나는 간단한 서류를 작성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왕실의 직인까지 찍혀 있는 정식 명령서였다.
“그 명령서를 놈이 일하는 상단 지부에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 * *
“크, 큰일 났어!”
기숙사에서 책을 읽던 조지 헤그메스는 룸메이트의 호들갑에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 저런 행동을 보인 적 없던 사람인지라 더욱 그랬다.
“무슨 일인데 그래?”
“빠, 빨리 회의실로 가봐야 할 것 같아!”
“나 말이야?”
조지는 책을 내려놓고 룸메이트에게 물었다.
“그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아이 씨. 갑자기 무슨…….”
“빨리!”
그는 룸메이트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회의실로 이동했다.
회의실 내부에는 벌써부터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심지어는 평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상단의 지부장마저도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예감에 조지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그런 조지에게 굳은 표정의 지부장이 다가왔다.
“조지 헤그메스.”
“예, 지부장님.”
“당장 짐을 싸고 수도로 이동할 준비를 하도록.”
“예?”
조지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조지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일하는 곳은 수도를 기점으로 여기저기 퍼져 있는 어느 대형 상단의 지부였다.
그 외에는 수도라는 장소와 별다른 연관이랄 게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수도로 이동하라니?
“나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만, 일단 이 문서를 보거라.”
지부장의 품에서 한 장의 서류가 나왔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악필이 눈에 띄는 서류였다.
때문에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지부장이 말했다.
“너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구나.”
“누가요?”
당황하며 되묻는 조지의 말에 지부장이 조용히 읊조렸다.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께서 말이다.”
그 말에 잠시 토끼 눈으로 입을 뻐끔거리던 조지는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니, 대체 그 인간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