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5화 (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5화

과거로 돌아오다 (5)

“들어오라.”

국왕의 집무실은 정말로 내 방보다 편안하고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정말로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들었다.

아버님은 책상 앞에 서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계셨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

“자리에 앉거라.”

나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가 화들짝 놀라서 다시 일어났다.

그러고는 머쓱한 얼굴로 상석 맞은편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이런 사소한 행동이 오해를 받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무심코 나오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모양이었다.

“보좌관은 정했느냐?”

“아직은 아닙니다. 다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을 보좌관 후보로 올려 두었습니다.”

“그래. 알아서 정했을 테지. 잘했다.”

아버님이 자리에 앉으시자 의자가 삐걱하고 소리를 질러 댔다.

우락부락한 몸체에서 나오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으려니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생각을 듣고 싶구나. 그렇기에 이 자리로 너를 불러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정보부처 이야기입니까?”

“그렇다.”

미묘하게 올라간 저 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아버님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개인에게 귀속되는 정보라는 것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찌 왕자의 것이 그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왕국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정론이군. 하지만 대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왕국을 위한다는 명분은 충분했다.

거기에 에스테반은 국왕 독살이라는 거대한 위협을 겪은 뒤가 아닌가?

그러니 그치들의 반발이 거셀지언정 무산될 일은 없을 터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귀족이 있다면, 그건…….

“결국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그 스스로도 아수스 백작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겠지요.”

“…….”

“죄 없는 자는 이번 일에 찬성할 것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 있던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윽한 차향이 집무실에 퍼져 나갔다.

“한 잔 드릴까요?”

“크흠! 됐다.”

원래도 차를 그리 좋아하시는 분은 아니었지.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 여유롭게 그 향을 음미했다.

그렇게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아버님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대로다. 정말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면, 놈들이 정보부처의 설립을 반대하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평범하게 절차를 진행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다. 무리한 독단은 나라의 혼란을 증폭시킬 뿐이야.”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나는 소파의 손잡이를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타협을 하자는 뜻입니다.”

“타협?”

“이유야 어쨌든, 놈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아닙니까?”

두 사람이 귀족들을 칭하는 명사가 어느새 ‘놈들’로 변해 버렸지만, 정작 아버님께서는 이를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를 두는 것으로 하지요.”

“……뭐라고?”

이를 들은 아버님의 몸이 굳었다.

설마 정보부처와 기사단에 감사를 두자는 말인가?

그 주체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었기에, 뜻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시는 듯했다.

“그 감사라는 것은 귀족들의 결정으로 파견되는 것을 말하느냐?”

“그러합니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놈들 역시 정보부처의 설립을 반대하지는 않을 터이지만…….”

하지만 아버님의 눈은 조금은 우려스러운 듯했다.

“알렌 에스테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아버님의 말씀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십시오. 사자가 무리에 숨어든 쥐새끼를 무서워해서 쓰겠습니까?”

“정말로 그래도 괜찮은가?”

“예. 고작 쥐새끼를 풀어 놓은 정도로 맹수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놈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

그건 바로 내가 눈과 검을 쥐고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면서 죄를 캐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가 발견되는 즉시 아수스 백작이 그러했듯 마땅한 처벌을 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반은 맞았다 하겠다.

실제로 놈들이 저질러 온 죗값을 묻기 위해 정보부처를 설립한 것이니까.

하지만 정작 놈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미래에서 돌아온 회귀자라는 사실이다.

정보부처의 용도는 놈들의 죄를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보부처라는 껍데기를 일부러 드러냄으로써, 더욱 은밀하게 놈들이 저질러 왔던 죄의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엇비슷한 말이었지만 이는 엄연히 달랐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놈들이 감사라는 직책을 믿고 안일한 행태를 벌이고 있을 동안, 나는 극히 비밀리에 움직여 증거를 수집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정적 속에서 아버님의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로 많이 바뀌었구나.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배신과 음모. 알력 다툼과 알량한 충성심.

아버님으로서는 이번 일로 느낀 점이 많았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스스로의 의사만이 저를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군.”

아쉽지만, 늙은 사자의 감상은 여기서 끝이었다.

“좋다. 그 의견을 토대로 정보부처 설립을 진행하도록 하지.”

“그럼 이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여러 가지 절차와 예산의 문제가 있으니 당장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또한 당장에 일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정보부처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귀에 적응하고 난 뒤, 조지의 교육이 끝났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어도 상관없단 말은, 적어도 정보부처 설립을 반대하는 아수스의 잔당들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협상에서 한발 물러선 것을 계기로 내 행보에 사사건건 반대 의견을 내비친다면, 그보다 귀찮을 수는 없겠지.

“참 곤란하지 않습니까?”

“음?”

“감히 여론의 뒤에 숨어서 나라를 주무르려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하나, 지금의 상황으로는…….”

“놈들을 모조리 잡아내기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단지 본보기로 한 명쯤 걸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지요.”

나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넌지시 말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내 표정은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 * *

오노레오 자작가의 저택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달빛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짙게 내리깔린 안개 탓은 아니었다.

“젠장!”

쨍그랑!

술병을 내던지는 오노레오 자작의 표정은, 어둡다 못해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세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나, 귀족사회에서의 입지 등등. 모든 것이 과거와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병신같이 숨어서 작당 모의를 하던 꼴이라니…….”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은 어디 가고, 이제는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자칫 수틀렸다가는 지금까지 애써 쌓아 놓았던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할 수도 있었기에.

……그래. 자신들을 대표하던 아수스 백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오노레오 자작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증거…… 증거는 진즉에 처분했다. 비리에 연루된 상인들도 추적하고 있고…….”

아수스 백작과 함께했던 비리의 잔재들.

지금 같은 시국에 그런 것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결코 가벼이 넘어가지는 못하리라.

그 사실을 알기에, 죽을힘을 다해 정보를 은폐하고자 움직여 왔다.

하지만 이 석연찮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대체 무엇을 빠뜨리고 있는 것이지?

꽉 쥔 주먹이 하얗게 질리며 핏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자작의 눈이 번뜩 뜨였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그때’까지는 납작 엎드려서 버티는 수밖에 없어.”

정보부처의 설립이 진행되는 그 날.

그때는 비로소 혐의에서 벗어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보부처 설립 협의안의 발표는. 닷새 전, 국왕의 입에서 직접 발표되었다.

-정보부처 설립의 필요성은 인정되는바, 이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금하도록 하겠다.

-다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귀족들의 감사를 파견하고, 권력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겠다.

요약하자면. 한발 물러설 테니, 너네도 그만해라…… 정도가 될 것이다.

당연히 귀족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암, 그럼! 진즉 이리했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막말로 1왕자 전하께서 잘못된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르실 수도 있는 것이니…….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우려하던 일은 없을 것이야.

-어디까지나 전하의 뜻에 따르기 위한 반대였던 셈이지.

이는 설립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의 반응이었다.

반대로, 이번 협의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1왕자 전하께서 실수하고 계신다. 이리 물러나서는 안 될 일이었건만…….

-이번 기회에 에스테반을 좀먹는 세작 놈들을 뿌리째 뽑았어야 했거늘.

-후우. 소문으로 익히 들었지만, 너무도 유약하시다.

거의 절반으로 갈려 버린 여론들.

그 외에도 더 강한 제약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아예 정보부처의 주체를 국왕으로 두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수많은 의견들이 부딪치고, 무너지는 변혁의 시기.

이 모든 여론을 주도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은, 아마 그 누구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크흐흐…… 정보부처 설립을 방해하는 작전이 이리도 잘 먹힐 줄이야.”

날고 기어 봐야 멍청한 핏줄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인가?

아수스라는 싹을 잘라 냈다고는 하지만 연방제국의 마수는 이미 들이닥친 뒤였고, 그 사이에 모습을 감춘 세작들은 셀 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보부처 설립의 타협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가 온다면, 이런 수모를 받게 만든 1왕자와 국왕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려 나가던 그때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군.”

“……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대체 어째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지는 둘째 치고, 마음속을 잠식하는 너무도 생생한 공포감이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웠다.

“설마…….”

잘못 들은 것일까?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저것은 분명 사신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에 쐐기가 박힌 것은, 그 직후였다.

“나도 끼워 줬으면 좋겠는데.”

안개 사이를 비집고 드리워진 달빛이 발코니를 비추었다.

그런 발코니 난간에 앉아 있는 것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1왕자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1왕자!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호오.”

오노레오 자작의 경악에 찬 비명이 저택에 울려 퍼졌다.

1왕자가 싱긋 웃으며 소음의 주인공에게 말했다.

“감히 왕족에게 그따위 말을 하게 되어 있나?”

“제, 제기랄! 아무도 없느냐! 경비병!”

“경비병?”

아, 설명을 잊은 모양이었다.

“이미 저택의 모든 인원은 제압당했다. 자네가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고발한 상인이 나타났거든.”

“……그게 무슨?”

“정확히는 우리가 먼저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지. 결국 자네에게 살해당하느니, 모든 정보를 불고 정상참작을 받길 원했던 모양이야.”

1왕자의 붉은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이 간악한 짐승을 어떻게 해서든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저, 저는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저를 범죄자 취급한단 말입니까? 귀족가의 저택을 침범한 사실을 국왕 전하께 고발할 것입니다!”

강하게 나서면 된다.

아무것도 꿇리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면 놈도 무시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그 틈을 타서 국왕과 담판을 지으면 되리라 생각하는 오노레오 자작이었다.

하지만…….

“해 봐.”

“예?”

“한번 해 보라고.”

너무도 당당한 말에 자작의 말문이 막혔다.

이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미 아수스 사태에 대한 전권을 아버님께 위임받았다.”

“그럴 리가…….”

“정말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마.”

1왕자의 품에서 나온 칙령서가 여유롭게 흔들렸다.

자작의 눈이 질끈 감겼다.

‘대체 어느 새에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는 말인가…….’

놈이 유일하게 움직인 것은, 5일 전. 국왕의 호출로 인한 독대였다.

그 전으로는 1왕자의 자숙기간이었던 탓에 일체의 대화조차 오가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낌새는 없었고…….

‘설마 그때!?’

자작이 애써 떠오른 생각을 지워 내며 몸을 떨었다.

말이 안 된다.

애초에 가능하지 못한 일인지라 상정하고 있지도 않았던 상황이었다.

5일 전에 독대한 자리에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소리는, 고작 5일이라는 시간 만에 상인을 추적해 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자신이 죄를 저질렀을 거라는 점을 특정해 내며 말이다.

‘젠장…… 어쩌지?’

국왕과 1왕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정보부처의 설립을 방해시켰기에, 모든 것이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게 패인이었다.

놈은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내 목을 옥죄이고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끝이었다.

아수스를 가차 없이 베어 버린 1왕자.

그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언가를 결심한 자작의 눈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전하, 저는 억울합니다! 소인은 결코 반란 따위에 가담한 일이 없습니다!”

“음?”

“제가 모든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부디 한 번만 눈감아 주신다면, 저의 억울함을 입증하고 이번 사태의 전말을 밝혀내겠습니다!”

“호오.”

조금의 흥미가 생긴 듯, 1왕자가 난간에서 내려와 자작에게 눈을 맞춰왔다.

“그러니까, 자네는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다?”

“저는 단지 아수스 백작에게 속았을 뿐입니다!”

“호오. 거기에 내란의 증거도 공유해 주겠다고?”

“그, 그렇습니다.”

“흐음.”

흥미가 당긴 듯 고개를 끄덕이는 1왕자의 모습에, 자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돼, 됐다!’

놈이 들고 있는 정보는 오직 상인의 폭로뿐이다.

지금까지 비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움직여 왔기에, 아마도 증거는 불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유도하여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겠지.

자신은 그저 뒷일을 도모하기 위해 몸을 낮출 뿐이었다.

동료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한낱 희망도, 이내 짓밟히기에 이르렀다.

“내가 왜?”

“……예?”

“어차피 자네는 여기서 죽을 텐데?”

죽는다고?

대체 어째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는 자작에게, 1왕자가 말했다.

“오노레오 자작. 아수스와 함께 저지른 비리와 내란 모의가 발각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게 대체…….”

“이후. 1왕자의 기지 덕분에 정보 수집 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모든 주동자들이 잡혀 들어가며 아수스의 내란 모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마치 오래전 일을 설명하듯, 그렇게.

상황을 곱씹던 자작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참 안타까울 일이지. 역사서에 그렇게 기록될 터이니.”

1왕자의 손에 들린 칙령서 아래로, 익숙한 형태의 서신들이 보였다.

5일. 그보다 더 오래전에, 자신의 손으로 태워 없앴을 것이 분명한 비리의 증거들이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 하하…….”

자신들의 정보가 들통 난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5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이른 시간에. 자기들도 알아채지 못한 사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바로 저기에 서 있는 1왕자가.

어느새 추한 행태로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으흑흑…… 제,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하등 쓸모없는 체면치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 이건가.”

“사, 살려만 주신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멀리 떠나겠습니다!”

“쯧.”

옷자락을 힘겹게 붙든 자작의 손을, 1왕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쳐 냈다.

“자네가 건넨 술잔의 차가웠던 감촉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그게 무슨…….”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에게도 좋은 기억은 아니었거든.”

“저, 전하……! 으아아아악!”

드리웠던 달빛이 가려지며 1왕자의 웃는 모습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런 그가 내뱉는 마지막 말을, 자작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자네가 두 번째야. 오노레오 자작.”

푹-

“끅…… 끄억……!”

어느새 조용해진 밀실의 내부.

그렇게 모든 상황이 끝나고, 장내에는 피 묻은 검을 닦아 내는 1왕자밖에 남지 않았다.

“끝났군.”

이로써 당분간은 그를 귀찮게 할 사람이 없을 터다.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던 1왕자의 입이 열렸다.

“정보 수집이란 것은 이렇게 하는 거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수행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굳이 자살로 위장하지 않으셨더라도 사형당할 운명이지 않았습니까.”

“만에 하나, 놈이 공범에 대한 정보를 발산하기라도 하면 곤란하거든.”

“공직에 선 귀족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혼란을 우려하신 겁니까?”

1왕자는 수행원의 질문에,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아니. 정의에는 반드시 양척해야 할 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정보부처의 설립이 가능했던 표면적인 존재의의는, 국정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 있던 세작들 때문이지. 그런데 놈들을 한 번에 내친다면 어떨까.”

이내 문을 나서는 1왕자의 중얼거림이 방에 울려 퍼졌다.

“이미 목줄은 채워진 상태다. 녀석들은 이대로 이용해 주지.”

그 뒤에 선 조지의 고개는 의아한 듯 끄덕여질 뿐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