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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6화 (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6화

과거로 돌아오다 (6)

“뭐라? 자살?!”

국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보고를 이어 가던 기사가 식은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반란에 연루된 사실이 발각되고 자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면, 공범에 대한 정보는 어찌 되었는가?”

“송구하옵니다.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졌던지라…….”

“허어!”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라 생각했거늘,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버릴 줄이야…….

아파 오는 머리를 감싸 쥔 국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새로 발견된 사실은 있나?”

“예. 먼저, 평소 오노레오 자작과 친분이 있던 귀족들을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은 이번 사태와 연루되지 않은 표면적인 친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입수한 암호를 토대로, 저택에서 발견된 자작의 금고들을 면밀히 조사 중에 있습니다.”

“잠시만.”

국왕이 오른손을 들어 올려 기사의 보고를 멈춰 세웠다. 금방의 대화에서 의구심을 느낀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암호를 입수했다고? 분명 자작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다 하지 않았나?”

“그, 그게…….”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잘근 깨물던 기사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1왕자 전하께서 제출해 주신 문서를 토대로 암호를 완성해 냈습니다.”

“……그 문서라는 것이, 오노레오 자작이 반란 모의에 참여했다는 것을 입증해 낼 수 있는 증거인가?”

“그렇습니다.”

“놈이 반란에 연루되었단 사실을 알아낸 것도 1왕자고, 이에 대한 확증을 가지고 온 것도 1왕자. 거기에 암호에 대한 실마리를 준 것도 1왕자라는 말은…….”

“…….”

왕실 직할의 기사단 중, 제3 기사단을 맡고 있는 아르곤 기사단. 그들은 왕궁을 지키는 왕실 수호 기사단과,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태양 기사단과는 다르게, 전투에 특화된 기사단은 아니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내부의 질서. 첩보를 수집하고 움직여 정의를 집행하는, 일종의 수사팀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황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국왕이 아니라, 열심히 첩보활동을 해 왔던 아르곤 기사단이어야 했다.

“당초 아르곤 기사단에서는 오노레오 자작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 않았나?”

“그게…… 그, 그렇습니다.”

“허! 긴히 1왕자를 도와 놈들을 처단하라 했거늘, 기껏 한 일이라고는 들러리를 섰을 뿐이란 말인가? 이래서야 1왕자의 발목이나 잡지 않았으면 다행이겠군.”

“……면목이 없습니다.”

“쯧, 됐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1왕자를 믿고 맡긴 일이었으니.”

기사가 고개를 깊이 숙이고 반성의 자세를 보였다. 그러는 사이, 국왕의 머릿속은 온통 1왕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알렌 에스테반. 언제 이렇게 성장한 것이더냐…….’

전권을 위임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자숙기간이 끝난 1왕자에게 현 상황을 일러 주기 위해 호출을 했던 그날.

정보부처 설립을 반대하는 귀족들에 대해 알려 주면서도, 유약한 1왕자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말을 아끼곤 했다.

하지만…….

-저를 믿고 일을 맡겨 주십시오.

아무렇지 않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들의 모습.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둘째 치고, 너무도 자신감 있는 모습에 당황했을 정도였다.

정말로 이런 상황마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토록 자신 있게 맡겨 달라 했기에, 아수스 사태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해서라도, 홀린 듯 모든 일을 맡긴 것이다.

한데 이게 뭔가?

아수스 사건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일이 아직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다니, 대단한 것도 정도가 있었다.

“귀족들의 여론은 어떻지?”

“대부분은 괜한 불똥이 튈까 몸을 사리고 있는 눈치입니다. 물론 1왕자 전하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그런가.”

벌써 둘이나 되는 귀족들을 쳐 냈음에도 여론이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귀족들에겐 나라를 위해 앞장서서 움직이는 모습만이 비치는 것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못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넘친다면 부족함만 못한 일이다.’

아수스 때부터 이어진 연속된 숙청은, 필연적으로 귀족들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성할 것이다.

특히 정보부처와 같이 민감한 사항이 겹쳐 있는 지금에는 더욱.

결국 1왕자가 무슨 수로 정보를 휘어잡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잘 풀려야 좋겠건만…….’

지금 국왕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었다.

이대로 더 나은 국가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초조함과, 무게를 짊어진 아들에 대한 걱정, 그사이.

어느새 1왕자는, 국왕의 마음속에서 불안함 따위를 만들어 내는 유약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1왕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지? 추가적으로 주동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있나?”

“……그것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곤란에 처한 기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증거는 충분하니 알아서 하라며, 이 일에서 손을 떼셨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

순간, 1왕자에 대한 평가가 다시금 바뀔 뻔한 국왕이었다.

* * *

하루의 휴식 기간을 가진 나는, 곧바로 비도르 남작을 호출해 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남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온 조지는 덤이었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음.”

“전하의 혜안으로 반란 모의에 참여했던 귀족을 잡아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군.”

본보기를 위해서 라고는 하나, 전부 설계했던 일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비도르 남작을 불러냈다지만 정작 눈에 띄는 것은 조지였다.

아까의 단출했던 옷차림에서 벗어난 검은색의 양복과 은빛의 견식 줄. 비록 어울리지도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 행색만은 확실히 남작급 귀족의 보좌관을 상징하는 인상착의였다.

나는 조금은 의아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조지의 옷차림이 이상하군.”

“죄, 죄송합니다. 사실 그것이…….”

비도르 남작이 굳은 얼굴로 품에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언뜻 보이는 내용에는 보좌관 임명이라는 문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보좌관 임명이라…….”

“조지를 보좌관으로 임명하고자 하시는 전하의 뜻에 따르기로 했지만, 단순히 교육만 받아서는 그 뜻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더 나은 실전 교육을 위해 자네 휘하의 보좌관으로 임명했다?”

“그,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도 있었고, 전하께서 거북하시다면…….”

“잘했다.”

“……당장 취소를…… 예?”

순식간에 어벙한 표정으로 변한 비도르 남작. 나는 서랍 첫 번째 칸에 서류를 고이 넣어 두며 말했다.

“나를 생각해서 내린 판단이 아닌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하, 하지만…… 1왕자 전하의 보좌관이 될 사람을 감히…….”

“나는 쓸데없는 허례허식보다, 내게 이득이 될 상황을 더 좋아하지.”

아무리 허락 없이 벌인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이 옳았다면 용납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일처럼 더할 나위 없는 판단이었다면 더욱.

“앞으로도 나를 위해 힘써 주도록.”

“화, 황송하옵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넘어가지.”

꿀꺽-

집무실 한편에 비치된 달력을 쳐다보는 내 목소리가 낮아졌다. 순식간에 변한 내 분위기에 남작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이번 달의 공식 일정은 어떻게 되지?”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 연방제국 측의 외교 사절단이 공식적으로 왕궁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렇군. 드디어 미끼를 물었나.”

국왕 암살과 반란을 시도했던 아수스는, 더 이상 백작이라는 작위로 불리지 않았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 왕궁의 감옥에서 죽을 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오노레오 자작가 역시도 그리되리라는 것쯤은 기정사실이었고.

그런 와중에 제국으로 보낸 강력한 항의 의사는, 유야무야 넘어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였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놈들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외에는?”

“그, 당장에 예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달이라…… 꽤 짧군.”

나도 모르게 침음이 새어 나온다.

놈들이 오기 전까지의 한 달이라는 시간. 그 시간만이 불투명해진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일들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나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을 때의 일이다.’

그러나 이미 미래는 내가 벌인 행동의 여파로 크게 뒤틀려 있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 국왕의 최측근이자, 귀족들의 중심점이었던 아수스 백작을 죽인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을 테지.

‘내 행동을 제한하려는 놈들이 생겨난 것처럼.’

비록 정의로운 왕족의 모습을 보여 스스로의 입지를 강화했다지만, 그 반대급부로 나를 적대하는 세력이 생겨난 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부터 착실히 움직여 내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설령 제국의 압박이 들어오더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기틀을.

나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에게 말했다.

“내가 네놈을 필요로 하는 이유. 이젠 짐작할 수 있나?”

“……뭐, 제 일 처리 능력을 높게 샀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만.”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은 그런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런 것을 왜 물어보냐는 듯이 나를 꼬나보는 조지. 이내 무언가를 눈치챈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횡령이나 기만, 혹은 음모 같은. 뭐 이런 은밀한 행동들을 원하셨겠지요. 이번에 보여 주셨던 것처럼.”

“음.”

“그중에서 지금의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면…… 정보 수집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정확하다.”

“자, 잠깐만요!”

무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가는 둘만의 대화. 결국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비도르 남작이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지?”

“은밀한 행동이라니요? 횡령은 또 무슨 뜬금없는 말입니까?”

뜬금없다니?

이유 없이 그런 단어가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무심한 말투로 툭 하고 대답을 던졌다.

“당연히 놈의 능력이 그런 것에 특화되었으니 하는 말이지.”

“아아, 그런 것에 특화되어서…… 예에?!”

점점 경악스러운 얼굴로 변해 가는 남작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아직 듣지 못했나? 녀석이 상단에서 각종 사기를 저지르다 온 범죄자라는 사실을?”

“그, 그게 대체 무슨…….”

“그 반응을 보니 듣지 못한 모양이군.”

그런 것도 모르고 나를 위해 선뜻 제 보좌관으로 임명했단 말인가? 나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작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올바른 교육을 기대하지. 혹시나 남작가의 예산이 비게 된다면 내가 대신 갚는 것으로 하겠다.”

“으악!”

그러자 ‘망했다’든가, ‘속았다’든가, 등등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남작.

이를 뒤로하고 조지에게 다가갔다.

“정보 수집. 그것이 내가 네놈에게 내리는 첫 번째 명이다. 어떤 방법이든 사용해도 좋다.”

“……뭐, 무슨 말씀이신지 대충 알겠습니다.”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보기에는 설렁설렁 대답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놈의 능력과 성격을 알고 있는 내게 있어선 대충 알겠다는 말은 가장 믿음직스러운 문장이었다.

“그래서, 무슨 정보를 수집하면 됩니까?”

“현재 내 상황은 알고 있나?”

“분명 아수스를 죽인 뒤로 귀족들의 여론이 들쑥날쑥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잘 알고 있군.”

나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죽여 없앤 머저리를 제외하고도 여론을 조작하는 놈들이 있을 터다. 한 명도 빠짐없이 알아 오도록.”

“……그게 끝입니까? 최소한 해당 귀족들의 약점을 가지고 오라든가…….”

“나는 두 번 명령하는 것을 싫어하지. 내가 방금 그런 것까지 알아 오라고 시켰던가?”

그러자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저를 얕잡아 보시는군요.”

비슷한 느낌이다. 정확히는 그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으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일부러 이죽거리는 말투로 녀석을 몰아붙였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다. 시간을 넉넉하게 주었으니, 적응 기간을 핑계로 두진 않겠지?”

“쓸모없는 정보였다고 후회하셔도 모릅니다.”

애초에 어떤 정보를 가지고 와도 상관없었다.

녀석이 가져오는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으니까.

‘사건의 흐름을 조합하기만 해도 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가져올 정보가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겠지.

이미 계산은 끝나 있는 상태였다.

이후의 행동까지도 모두.

하지만.

‘……그 전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겠지.’

내 눈길이 조지에게 닿았다가, 이내 떨어졌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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