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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7화 (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7화

내게 필요한 것을 찾는다 (1)

다음 날 아침.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작의 손에는 무언가가 적힌 서류들이 들려 있었다.

“전하, 여기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작이 건넨 것을 받았다. 과연, 찾고 있던 정보가 맞았다.

하지만 읽어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한 번 빠르게 훑어진 서류는 이내 책상 위로 무심하게 던져졌고, 나 역시도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할 따름이었다.

“녀석은 어디에 있지?”

“……녀석? 아, 조지 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일순간 남작의 미간 사이로 깊은 골이 생겼다. 그저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고민할 때 나오는 버릇 같아 보였다.

이윽고 남작은 기억났다는 듯 반색하며 말했다.

“새벽 즈음에 외출의 허가를 받고 왕성을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전하께서 명하신 정보 수집을 위해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나는 의외의 대답에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실소를 지었다.

녀석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당연히 늦장을 부릴 것으로 생각했건만, 예상외로 명령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뭐, 그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 진의를 알아내기 전까지 연기를 이어 가겠다는 말인가?’

놀랍게도, 조지는 그날 이후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녀석의 친모에게 만들어 주겠다 약조한 치료제에 대해서도. 그리고 데리고 오기로 한 가족들에 대해서도.

그저 충성을 다하겠다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 말하듯,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역시도 뻔한 이야기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이는 당장은 내 뜻에 따르며 구속당해 줄지언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망가겠다는 의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 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녀석에게 있어서 가족의 존재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범죄자가 되기를 무릅쓰게 만든,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조지 헤그메스.

녀석 본인보다도 그 진심을 잘 아는 것은,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 계산적인 태도는 썩 마음에 든단 말이지.”

“예? 제게 하신 말씀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두서없는 그 말에 남작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미묘하게 납득한 듯 주억거리던 남작이 다시금 질문을 던져 왔다.

“……저어 그런데 전하, 갑자기 아르곤 기사단에서 정보를 받아 오라 하신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십니까?”

“내용은 확인했나?”

“예? 아, 그렇습니다. 음지에서 벌어지는 불법 경매에 관한 것이 아닙니까? 시간과 장소는 나와 있지 않지만…….”

특정 부유한 귀족들을 대상으로 불법 경매가 열릴 거라는 첩보.

남작이 가지고 온 서류에는, 경매에 출품될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모른 척 되묻는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런 남작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대답을 던졌다.

“생각이 다 드러난단 말이지.”

“…….”

“걱정하지 말도록. 녀석을 시켜 털어먹거나 하진 않을 테니.”

“……휴우.”

비로소 그렇게 확답하고 난 뒤에야 남작의 표정이 풀려 갔다.

앞서 조지의 전과를 드러낸 일과 다짜고짜 녀석을 찾은 것이, 큰 불안감으로 작용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정말로 나는 녀석을 시켜 경매를 털어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

‘녀석을 시켜’ 털어먹을 생각은.

“경매에 참석하는 것은 조지가 아니라 나다.”

“으악!”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남작이 비명 같은 무언가를 내지르며 까무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미소 띤 입가를 매만지며 첩보의 내용을 상기해 나갔다.

‘일주일 뒤의 밤이란 말이지.’

이미 미래의 지식 들을 알고 있는 내게는,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확인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다만 내 시선은 어느 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화려한 경매의 품목들 속에서 숨어 있는, 낯익은 형태의 것들에게.

‘내 행보를 거들 능력.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되어 줄 힘.’

나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야만 했다.

***

협회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공기관, 혹은 단체를 뜻한다면, 길드는 개인이 만든 울타리에 불과했다.

신고와 함께 세금만 납부하면 누구나 길드를 창설할 수 있었고, 이는 그 목적과 규모가 어떠하든 설립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왕국 법률에도 적시된 사항이었다.

“……그, 하지만 전하, 이, 이곳은.”

북부의 매서운 겨울을 이겨 내고 피어난 3월의 어느 밤.

눈앞의 낡은 건물을 바라보는 비도르 남작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무리 길드 창설에 제한이 없다지만 그 목적이 정녕 위법이라면 말은 달랐다.

왕실은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애쓰고, 불법적으로 지어진 길드는 어떻게든 음지로 숨어들어 가려 애쓰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돈만 된다면 타인은 물론이고 저 자신의 목숨까지도 팔 수 있는 암흑가의 상인들을 손꼽을 수 있겠지.

나는 그런 남작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 여기는 암거래 길드가 운영하는 비밀 경매장이다.”

“이, 이런!”

남작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경매 중에 이런 데를 오신단 말인가…….”

소탈하고 청렴한 비도르 남작이라 해서 음지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그렇기에 그 무서움과 폐해를 더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었다.

“호위를 떼어 놓고 오실 때부터 불안한 예감이 들더라니…….”

“거추장스러운 것은 싫다 했을 텐데? 낙담하고 있는 것은 좋지만, 시간이 없으니 이왕이면 들어가서 해 주었으면 좋겠군.”

“너, 너무하십니다!”

“뭘 그 정도로.”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남작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러고는 북부의 눈처럼 시린 은발을, 깊게 뒤집어쓴 로브로 가렸다.

이에 남작이 눈치를 보며 황급히 뒤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전하, 정말 이대로 움직이셔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내가 시선을 던지며 묻자, 남작이 주위를 힐끔 경계했다.

“경매를 주최한 암거래 길드는 장소와 시기를 감추었을 정도로 보안에 신경 썼습니다. 그렇다면 보통은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초대장 같은 것을 주고받지 않겠습니까?”

“보통은 그렇겠지.”

“하지만 전하께서는 그런 것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암거래 길드는 그 어떤 음지의 단체보다 드러나 있었기에 보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경매가 벌어진다는 사실이 아르곤 기사단의 첩보에 걸려들지 않았던가? 남작의 걱정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미 초대장이라 할 만한 것은 가지고 있으니.”

“예?”

“이봐, 거기 형씨들.”

“으음?”

그 순간.

웬 거구의 사내가 경매장으로 들어서는 내 앞을 막아섰다.

2미터는 가뿐히 상회할 법한 체구. 그리고 우락부락한 근육에 그어진 수 없이 많은 검상들.

시선을 조금 올려 그 얼굴을 쳐다보자, 사납게 생긴 놈의 얼굴이 히죽 웃었다.

“아, 별 건 아니고. 내가 잠시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지.”

놈은 손을 뻗어 무언가를 확인하듯 남작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전…… 아니, 도련님. 이자는 대체…….”

꽉-!

“억!”

순식간에 그 어깨를 근육질의 팔로 우악스럽게 감싸고 흔들었다.

흡사 친우를 대하듯 익살스럽고 자연스러운 행동. 하지만 남작의 몸은 갈대가 휘둘리듯 이리저리 낭창이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검 한 번 쥐어 보지 않은 중년의 몸이군. 저쪽의 도련님이란 사람은 검을 들고는 있지만, 아직 애송이인 모양이고. 이 안은 당신네 같은 샌님들이 들어갈 만한 장소가 아니야.”

“…….”

“로브로 감춰도 소용없다. 암거래 길드는 진실한 척하는 주제에 먹잇감을 노리는 후각이 발달했다는 말이지.”

놈은 그렇게 말하고는 제 콧잔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더욱 짙어진 미소가 부각 되었다.

그 은근한 행동과 위협이 주는 의미는 하나였다.

“경매에 참여하고자 왔나? 마침 내가 돈이 떨어져서 그런데, 술값으로 쓸 정도의 돈만 지불해 준다면 용건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호위해 줄 생각도 있지.”

“공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고.”

일순, 황당함을 느낀 남작의 얼굴이 대략 멍해졌다.

감히 용병으로 보이는 주제에 일국의 왕자를 협박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검술에 일가견이 있다 정평이 난 ‘기사의 나라’의 1왕자에게?

그러나 그 황당함이 당혹감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말로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내가 로브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 위로 올려 두었기 때문이다.

스윽-

“아, 아니, 대체 무엇을?”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회중시계.

그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돈이나 호신용 무구 따위가 아닌 단순한 회중시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감싸는 뚜껑이 열린 순간, 분위기는 뒤바뀌었다.

팅-!

“……!”

내 손을 따라 움직이는 용병의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져 있었다.

어쩌면 상관의 돌발행동을 눈앞에서 본 남작보다 더욱 놀란 것처럼 보였다.

이는 보잘것없는 협박에 회중시계를 건네는 것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용건이 끝났으면 질척거리지 말고 비키도록.”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곧이어 흘러나온 목소리는 무척이나 정중했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가린 로브를 걷으려 했다.

그 순간.

“손대지 마라.”

서리가 내릴 것만 같은 차가운 목소리에 용병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죽이겠다거나, 손목을 자르겠다거나. 그따위 살벌한 경고는 손대지 말라는 말 이외에는 단 한마디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용병은 지금, 그 어떤 경고보다도 확실한 살의를 느끼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드리우는 두려움에 얼굴이 퍼렇게 질릴 정도로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들어가십시오.”

놈은 내게서 뒷걸음질 치며 조금씩 물러나더니, 거의 뜀박질을 하듯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거구의 몸이 우스울 정도로 꼴사나운 행동이었다.

끼이익-!

그렇게 비로소 경매장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리자, 턱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남작이 물어 왔다.

“방금은 대체…….”

“자네가 말한 초대장이라는 것이다.”

“예?”

“뭐, 정확히는 통행권이라 해야겠지만.”

굳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묻는 남작의 표정이 퍽 심각해 보였기에, 나는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넌지시 말했다.

“손님의 입장으로 온 것이라면 관례에 맞게 움직여 주는 것이 옳겠지.”

이윽고 남작을 지나쳐 경매장 내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방으로 2미터를 상회하는 거구가 몸을 들이밀었다. 경매를 좇아 온 이들을 맞이하던 경비였다.

하지만 절도 있게 자세를 낮추는 표정과 모습만큼은, 한량을 연기하던 그때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보, 보셨습니까?”

내부에 앉아 있던 경매장의 총지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일련의 상황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경비’고, 그러기 위해서 세워둔 ‘건달’이었으니까.

당연히 그가 보인 의문스러운 행동의 의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 회중시계는 분명 아수스의 통행권이었다.”

음지 깊숙이 감춰진 그림자였으나, 그 누구보다 드러난 것이 암상인 길드다.

또한 이번 경매는 온갖 진귀한 것들이 출품되었으니, 알음알음 퍼진 소문을 듣고 물을 흐리는 것들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잡것들을 걸러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길드에서 부여받은 고유의 ‘통행권’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공갈을 무시하고 통행증을 보인다면, 그들은 암상인들의 손님이자 돈줄이 되어 줄 경매의 큰 손이라는 뜻이었다.

반대로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면, 위장해 놓은 다른 장소로 놈들을 유인해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가 보인 증표는 확실히 증명된 통행권이었다.

다만, 그것이 이미 죽어 없어진 아수스의 것이라는 점이 문제일 테지.

“하, 하지만 다른 한 놈은 통행권의 존재를 확실하게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멍청한 놈. 너 같으면 수하 따위에게 통행권의 존재를 알려 줄 테냐?”

“죄, 죄송합니다.”

쯧.

총지배인은 작게 혀를 차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놈의 얼굴은 확인했느냐?”

“밤인데다 로브까지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그렇다면 아수스가 가진 통행권의 존재를 알 만한 인물이 몇 명이나 있지?”

“……지금으로서는 아수스와 어울리던 귀족들 외에는 없습니다.”

“칫! 도무지 도움이 안 되는군.”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찾아온 이들은 누구인지. 하물며 무슨 목적인지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때에…….”

총지배인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다가 말했다.

“제길! 일단 경매가 끝날 때까지 놈들을 감시해라. 그 이후에 따로 놈들을 만나 보겠다.”

“아,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 보도록.”

“예.”

그렇게 거한의 경비가 나가자, 총지배인의 표정은 더욱 처참히 일그러졌다.

차라리 평소에 찾아왔다면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마냥 떳떳하지는 않을지언정, 찔리는 것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구린 구석이 많지 않았던가?

“……설마 그곳에서 찾아온 놈들은 아니겠지?”

총지배인의 가슴속으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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