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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8화 (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8화

내게 필요한 것을 찾는다 (2)

반짝이는 크리스탈 샹들리에. 그리고 그 아래에서 우아하게 빛나는 황금빛 대강당. 마지막으로 벽면 여기저기를 장식한 보석들까지.

통로의 끝에 자리한 경매장의 전경은, 낡은 목재로 위장된 건물 외부의 모습과 다르게 과한 사치의 향연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멀찍이 떨어진 각각의 좌석들은, 왕족들조차 쉽게 볼 수 없을 정도의 상등품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점은 또 있었다.

좌석에 앉은 이들 모두, 하나같이 신분을 가리기 위해 로브를 뒤집어썼다는 점이었다.

뒤따라 걸어오던 남작이 얼떨떨한 듯 중얼거렸다.

“귀족들로 보이는데, 가면무도회랑은 확연히 다른 분위기군요…….”

진득한 욕망이 엿보이는 음지의 분위기.

그건, 모난 것 없이 정직하게 살아온 그에게는 생소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근본은 다르지 않을 테지. 저들에게는 단지 유흥만을 위한 놀이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로브를 뒤집어쓴 것도 결국 흥을 돋우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흥을 돋우기 위한 요소…….”

그렇게 대화를 곱씹는 남작을 뒤로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를 확인한 경매장의 사용인이 다가오더니, 입찰을 위한 자그마한 팻말과 와인 한 잔을 조심스레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는 떠나갔다.

……공교롭게도 내게 할당된 번호는 44번이었다.

“이건 뭐, 꼭 죽은 사람을 대하는 취급이군.”

놈의 통행권을 사용한 죄라면 죄인가?

나는 피식 웃은 뒤에 품속에 넣어 둔 회중시계를 어루만졌다.

‘아수스, 죽은 뒤에야 처음으로 쓸모란 것이 생겨났군.’

지금쯤 놈들은 내 의도를 짐작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터였다.

말 그대로 죽은 아수스의 통행권을 가진 인물이 하늘에서 떨어진 격이었으니.

하지만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한데.”

그때, 남작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기색이었다.

나는 남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지?”

“아, 전하께서 말씀해 주신 통행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초대장을 대신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단순하게 초대장을 보내면 되는 것이 아닌지, 해서…….”

정녕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순수한 의문이었다.

물론 그 말대로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놈들은 자네의 말대로 장소와 시기를 감추었을 정도로 보안에 민감한 음지의 길드다. 매번 위조를 우려해야 하는 초대장을 보내는 것보다, 믿을 만한 자에게 영구적인 증표를 쥐여 주는 편이 확실하겠지.”

“……아.”

뭐, 그 외에도 세간에 널리 알려진 방법을 고집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의미도 있으리라.

실제로 저 비도르 남작이 짐작하고 있을 정도의 방법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귀찮은 일이 골백번은 더 생겼을 테니까.

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작에게 말했다.

“시작한다.”

“예?”

그 순간.

철컥-!

경매장 내부를 밝히던 불빛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소등되었고, 이내 단상 위로 남은 한 줄기의 빛줄기만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경매사를 비추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경매가 시작되오니, 참석해 주신 귀빈들께서는 자리로 착석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내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가고 있었다.

정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매의 시작이었다.

* * *

경매가 시작되고 30여 분.

그 사이, 꽤 많은 가짓수의 물품들이 단상을 거쳐 갔다.

물론 대부분은 경매 초반의 열기를 달구어 주는 용도의 예술품 따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가격만큼은 몹시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었는데, 그만큼 이번에 암상인 길드에서 내놓은 물품이 가치 있다는 말이기도 했고, 자리에 참석한 귀족들의 재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니.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을 테지.

“저, 전하…….”

등 뒤에 선 비도르 남작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만류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내 손은, 또다시 테이블 위에 들린 팻말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75만.”

-75만! 44번의 귀빈께서 단번에 75만 골드를 부르셨습니다!

“아악!”

……물론 그 44번의 귀빈이라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뜻한다는 사실은, 혼절하기 직전인 남작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짜증과 경악이 뒤섞인 시선들이 다시금 나를 집중했다.

“……쯧, 상도덕도 없는 놈.”

“대체 뭐야? 어느 가문에서 나온 녀석이지?”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한 재력이 있다는 소리인데…….”

벌써 몇 개째였던가? 물품들은 나오는 족족 ‘44번’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시작가부터 시작하여 점차 가격이 오르는 치열한 경매…… 따위도 필요 없었다.

단지, 물건이 공개되면 시세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에 호가할 뿐이었다.

고작 3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수많은 물품이 단상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은, 그러한 이유였던 것이다.

이를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던 남작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대, 대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정말로 이제는 더 이상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군.”

“으으어어…….”

……진짜로 울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지 않다니. 심력이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후 경악한 시선들이 조금 가라앉자, 경매장의 관리인이 화려하게 생긴 플라스틱 쪼가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경매에 낙찰되었음을 알리는 증표였다.

“……경매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뜻밖에도, 뒤이어 물러나는 그 표정은 괴이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분명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간 물품들이 반가워야 마땅한데도 말이다.

그때, 남작의 울상지은 얼굴이 귓가로 다가왔다.

“전하…… 정말로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앵무새처럼 내내 반복하던 대사였지만. 뭐, 실제로 그 말대로였다.

1왕자의 앞으로 할당된 예산. 이미 그것의 수배 가량을 사용한 지 오래였으니.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왕궁의 예산으로 갚아야 될 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만 더 말하면 열아홉 번째인 것은 알고 있나?”

“…….”

“이리도 즐거운 경매에 신경을 곤두세우다니 어불성설이다. 자네는 조금 더 즐길 필요가 있겠군.”

“흐으윽……!”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블에 놓인 와인을 즐길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작의 주먹이 움찔거린 것은 아마도 착각만이 아니었으리라.

“국왕 전하, 어째서 제게 이런 시련을…….”

“쉿, 다음 물품이 올라온다.”

“…….”

그 한 맺힌 중얼거림과 동시에, 마침내 경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귀중한 물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 크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물품은 남부 대륙의 유적에서 발견된 로드입니다!

첫 시작은 거대한 유리 진열장 속에 장식된 은빛의 지팡이였다.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십시오! 추정 제작 연도는 1000년 전이며, 여전히 강렬한 마력의 파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전설 속의 엘프가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흠!”

“……허어!”

그 우아한 자태는 내내 짜증만 내고 있던 귀족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였으니.

순간, 마법으로 증폭된 경매사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울렸다.

-시작가는 70만 골드입니다!

“……뭣이!”

“70만 골드라고?!”

“이런 터무니없는 가격이!”

경매장 내부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말 그대로 시작가였을 뿐인데, 벌써 저택 한 채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가망이 없다 판단한 몇몇 귀족들은 일찌감치 손에 들린 팻말을 테이블 위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작은…….

“저, 전하 설마 이번에도 참여하실 것은 아니실지…….”

“내게도 생각이 있다.”

“……하하, 역시 필요도 없는 마법사의 물품을 구매할 리는 없으시겠죠. 당연히 그렇죠.”

단지 작은 불안감을 잠재우고 있었다.

이윽고 경매가 시작되었다.

“70만!”

“80만!”

“350만.”

“뭣이!”

“저 미친 새끼가!”

“커어어억!”

남작이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경매사의 흥분된 목소리가 경매장으로 울려 퍼졌다.

-이, 이럴 수가! 44번의 귀빈께서 350만 골드에 입찰하셨습니다! 350만 골드! 더 없으십니까?!

“…….”

있을 리가 없었다.

엘프니 뭐니 해도 고작 장식용으로 사용될 지팡이 따위였다.

그딴 것에 수도의 대저택도 살 수 있는 금액인 350만 골드를 태울 미친 작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실로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3, 2, 1…… 아아! 낙찰입니다! 유적에서 발견된 롱소드는 27번의 귀빈께서 350만 골드에 낙찰받으셨습니다!

“제길!”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썩 즐거운 기분이었다. 어느새 수척해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남작과는 정반대로.

‘역시 돈은 써야 제맛이군.’

멍청한 귀족들이 사치에 찌드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확인했으면 충분하겠지.”

“……뭐? 아니, 예?”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초부터 내 관심사는 저딴 욕망이 뒤섞인 경매 따위가 아니었다.

경매에 참여하는 것은 수단에 불과했을 뿐,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자네는 나 대신에 경매에 참여하고 있도록.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낙찰받도록.”

“저, 전하?!”

남작의 당황한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경매장에서부터 이어진 통로의 끝.

그리고 삼엄한 경계 속에서 자리한 문 너머에는 이 경매의 주최자인 암상인이 있었다.

“바, 바쁘신 와중에 귀한 걸음을 내주시다니, 대단히 영광입니다.”

자신을 암상인 길드의 길드장이자 총지배인이라 소개한 중년인이 대뜸 고개를 조아렸다.

암상인 길드가 무엇이던가? 인정이나 손속 따위의 감정은 배제한 채로, 오로지 철저한 자본의 상하 관계만을 따지는 음지의 범죄자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보인 모습은 세속적인 권력 따위에 굴복한 정치가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겨, 경매가 끝나면 찾아뵙고자 하였는데 벌써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그렇군.”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자리에 앉았다.

익숙한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태도였다.

그러자, 총지배인이 오른쪽 눈에 걸쳐진 외눈 안경을 어색하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실례지만 백작님과는 알고 지내시는 사이셨습니까?”

내가 놈들에게 보인 회중시계로 짐작해 본 내용이리라. 정확하게 말하면 짐작이라기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것이었을 테지만.

다만, 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감상을 내던졌다.

“경매는 재미있더군. 특히 이번 경매는 볼거리가 풍부했다.”

“하, 하하, 감사합니다. 즐거우셨다면 준비한 저희로서도…….”

“그런데 왜 아수스의 물건들을 경매에 내놓았지?”

“…….”

연못에 나타난 작은 파문과 같은, 그 감상을.

총지배인의 입가에 머물렀던 어색한 웃음이 사라졌다.

“……백작님의 물건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네놈들이 내놓은 물건들 대부분이 아수스가 맡긴 것이라는 사실을?”

“그, 그건…….”

놈의 표정은 더 이상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윽고 드러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제, 젠장, 어쩐지 이렇게 될 것 같았더라니……!’

암상인 길드의 통행권을 받거나 물건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보증을 위한 물품들이 필요했다.

보석이나 무구. 하물며 금화 따위여도 상관없었다.

이는 보증금의 의미도 있었으나, 만에 하나 일이 수틀리거나 첩자 따위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대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아수스가 죽자 그걸 내다 팔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꿰뚫어 말했다.

어째서 네놈들의 것이 아닌 물건을 멋대로 판매했느냐고.

간절한 바람과는 정반대로,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 아수스 백작님께서 임명하신 대리자분이십니까?”

“아니.”

“그, 그렇다면…….”

총지배인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감히 음지의 상인들 주제에 ‘그들’의 지원을 받던 아수스의 물건을 멋대로 판매한 것은, 도무지 가벼이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는 놈들의 편이 아니었다.

단지 희망을 짓밟는 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분께서 느끼신 실망이 크신 것 같더군.”

“……!”

돈. 명예.

그런 것들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모순적이게도 암상인들은 누구보다 권력에 민감한 도구에 불과했고.

나는, 오만하게 다리를 꼬며 철저한 타인을 연기했다.

“감히 연방제국의 것을 탐내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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