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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화 (9/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화

내게 필요한 것을 찾는다 (3)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연방제국.

그 이름을 듣는 총지배인의 머리는 어느새 바닥을 처박고 있었다.

“죽을죄를 지었다?”

“그, 그렇습니다!”

“호오.”

나는 꼬고 있던 다리를 내리며 흥미롭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총지배인의 눈에는 그런 모습조차, 단두대를 내리기 직전인 집행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수스의 뒤에는 연방제국의 ‘그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네놈들이 모르지는 않았을 터다. 평소 아수스의 위세에 빌붙어 여러 편의를 받아 온 네놈들이라면.”

“예, 어찌 저희가 그 사실을 잊겠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실제로 그 덕분에 이익들을 챙길 수 있었던 놈이 모를 리 없는 것이다.

아수스의 진정한 뒷배가 누구인지를.

또한 한낱 암상인 주제에 ‘그들’을 실망시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말이다.

그 순간, 문밖에서 작은 기척들이 느껴졌다.

-총지배인님?

-무슨 일이십니까!

경비병들이었다.

그러자 총지배인이 온 힘을 다해 고함을 내질렀다.

“다, 닥치고 물러나라! 감히 네놈들이 귀빈과의 대화를 방해할 셈이더냐!”

-예…… 예! 죄송합니다!

“제길…….”

후욱- 후욱-

그러고는 머리를 박던 모습 그대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조소를 지었다.

‘뭐, 일단은 성공적이군.’

고작 연기 따위에 속아, 당장에라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저 모습.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아니, 정말로 즐거운 반응이었다.

쓸모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이제 놈에게 내가 연방제국에서 보낸 인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켰으니, 보다 결정적인 무언가를 제시해야 했다.

심장과 뼈까지 내줘야만 한다고 다짐하게 만들, 무언가를.

나는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 내며 말했다.

“아수스 따위가 죽었다고 해서, 그분이 에스테반에서 눈을 떼시기라도 할 것 같았느냐?”

“그런 것이 아니옵고…….”

“그런데 어째서 그분이 허락하시지도 않은 것에 손을 대었지?”

“그, 그건, 우연히…….”

“흐음. 의도한 것도 아니고, 손을 떼시리라 감히 짐작한 것도 아니다?”

“……그렇습니다.”

놈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듯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반대로 놈을 바라보는 내 미소는 점차 짙어지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농락하듯. 천천히.

그 순간.

“아니라면 그분이 그까짓 수작도 알아보지 못하실 정도로 아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결단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일이 수틀리면 남부에 짓기 시작한 지부로 몸을 피신하면 될 거로 생각했나?”

“……!”

총지배인이 경악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 그걸 어떻게!”

바로 얼마 전부터 비밀리에 짓기 시작한 길드의 남부 지부. 내가 그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란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다시금 바닥에 고개를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앞에서 고개를 치켜들지?”

“죄, 죄송합니다!”

이제 총지배인의 몸은 공포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정확히 의도했던 대로의 반응이었다.

‘역시 예상대로군.’

이제 녀석의 마음속에는 단 한 줌의 의심도 남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이 이상 같잖은 수작을 부렸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겠지.

그렇다면 이제 전리품을 수확할 시간이었다.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총지배인에게 차갑게 말했다.

“나는 네놈의 얼굴을 보기 위해 경매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물건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지.”

“…….”

“이 내가 직접 경매에 참석해 물건을 회수해야 한다니, 이보다 귀찮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저, 질문보다는 탓하는 억양에 가까웠다.

하지만 놈은 공포 속에서 억지로 머리를 굴려 가며, 옳은 정답을 꺼내 놓았다.

“귀인께서 낙찰해 주신 경매 품목들을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

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수스가 맡긴 물건이 저것이 전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나머지는 어디에 있지?”

“저, 전부 내어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아랫것들에게 일러, 경매품들과 함께 정리해 두라 하겠습니다!”

“그렇군.”

경매에 나온 것이 회귀 전에 알게 된 목록들과는 조금 달랐기에 찔러본 말이었는데, 선뜻 내준다고 하니 예상대로 남은 것이 있던 모양이었다.

괘씸하네.

“뭐,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번만큼은 특별히 그분께서도 넘어가실 터다.”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놈의 표정이 풀어졌다.

이야기가 그나마 평화롭고 원활하게 돌아가자,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물론 나는 이렇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위쪽의 명령. 한데, 우리 사이에는 아직 남은 빚이 있지 않았나?”

“……예?”

“내가 경매에 참여해 주지 않았다면 네놈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지?”

마치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문득 놈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무, 문제없이 회수를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인이 아니셨다면 주제도 모르고 그분께 실례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맞아. 내가 아니었다면 아수스의 물건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겠지. 회수는 물 건너간 꼴이 되었겠고.”

“그렇고말고요!”

물론 경매를 중지하여 타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끔 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던 암상인 길드가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았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놈에게 있어서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생명의 은인에 가까운 것이 되어 있었다.

“마침 내게 필요한 것이 있지.”

“예! 말씀만 하십시오, 반드시 구해 보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기브 앤 테이크. 암상인의 덕목이라 이건가?

내 입술이 길게 휘었다.

이윽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녀석만이 들을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속삭였다.

“엘레이라 꽃에서 피는 열매.”

“……!”

“그렇게 말하면 알겠지?”

“그, 그건…….”

총지배인이 당혹감으로 말을 더듬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약성 환각제의 원료.

그것은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을뿐더러, 애초에 에스테반에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남부 대륙에서만 간혹 발견되는 녀석이라서 당장은 구하기가…… 게다가 요즈음은 아무래도 국경의 경계가 엄중하다 보니…….”

“목숨을 빚진 주제에 혓바닥이 길군.”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조금 걸려도 괜찮으시다면 어떻게든 구해 보겠습니다.”

“언제까지?”

“딱 이 주일의 시간만 주십시오.”

“좋아.”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처박힌 놈의 머릿가로 무언가를 던졌다.

툭 하고 떨어져 내린 것은 무언가가 적힌 쪽지였다.

“읽어 보도록.”

그러자 총지배인이 다급하게 쪽지를 챙겨 들었다.

“이건…….”

“거기에 적힌 장소는 에스테반 수도 서민가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다. 경비는 물론이고 인적조차 드물지.”

“아아.”

“기한은 이 주 뒤의 정각이다. 엘레이라 꽃 열매를 그곳에 놓아 두도록. 수거책이 직접 회수해 갈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충고를 잊지 않았다.

“이건 그분께서 내리시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며, 명심하겠습니다.”

꿀꺽-

놈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별도 없는 퇴장이었다.

“…….”

저벅- 저벅-

-아아! 21번의 귀빈분께서 생명의 앨릭서를 110만 골드에 낙찰하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경매장으로 도착하자 경매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간혹 마주친 시선들은 경계를 표했으나, 개의치 않았고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때, 나는 굳어 있는 남작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분명 하나도 빠짐없이 낙찰받으라 했던 것 같은데.”

저 굳은 모습을 보니, 입찰은 고사하고 자리만 지켰던 것 같다.

저 소탈한 성격에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였을 리가 있겠는가?

적어도 돈이 나갈 리는 없다는 설명이라도 해 주고 나올 걸 그랬다.

‘뭐, 그래도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남작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는 남작을 뒤로하고, 흡족한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볼일은 모두 끝났으니 이만 일어나도록. 물건이 준비되는 즉시 돌아간다.”

“드, 드디어…… 예, 알겠습니다!”

남은 것은 이제 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젠장.”

다사다난했던 경매가 끝났다.

총지배인은 그 사실만으로도 진이 빠졌는지, 앉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심력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목숨의 위협?”

문득 그렇게 중얼거린 총지배인이 실소를 지었다.

그런 것을 겨우 목숨의 위협 따위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지껄이는 이들은 그분…… 4황자라는 사람에 대해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내면에 숨겨진 자아를 눈치채지 못한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안다.

점잖은 가면 속에 감추어진 미치광이의 웃음을.

피에 미친 폭군의 진정한 모습을.

그건, 목숨의 위협이 아니라 영혼마저 종속시키는 악마의 심판과도 가까운 것이었으니.

“……제기랄, 불청객이라 생각한 놈이 나를 구할 줄이야.”

“총지배인님.”

“하아, 또 뭐냐?”

어느새 내부로 들어온 수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그 험상궂은 2미터의 거구는 의심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놈들이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아랫것들을 시켜 뒤쫓게 할까요?”

“……뒤쫓는다고?”

“예, 놈들의 행동은 아무리 봐도 수상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거구의 수하가 신이 난 듯 떠들기 시작했다.

총지배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이 타이밍에 아수스의 대리인이 나타난다고요? 그것부터가 이상합니다. 정말로 대리인이 있었다면, 놈이 죽자마자 재산을…….”

“……닥쳐.”

“찾으러 왔을…… 예?”

“닥치라고 이 새끼야!”

퍽!

“악!”

총지배인이 구두의 끝부분으로 수하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졸지에 얻어맞게 된 수하의 표정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아, 아니 대체 왜…….”

“이 새끼는 가뜩이나 심란한데 헛소리나 늘어놓고 지랄이야!”

“그, 그게…….”

2미터의 체구가 찔끔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질 법도 했으나, 총지배인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 나서지 말란 말이다!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죄, 죄송합니다!”

“……하아. 그래, 네가 무슨 죄가 있겠냐.”

그렇게 머리를 감싸 쥐던 총지배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내 얼굴을 쓸어내리듯 마른세수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한테 화풀이해서 뭐 해.’

수하는 연방제국과 아수스의 관계를 모른다.

단지 놈들이 아수스의 재산을 찾으러 온 대리자인 줄로만 아는 것이다. 그러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경매품을 상납하는 것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지.

그래,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섣불리 움직여 예의 남자를 자극하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서 안 된다.

화를 내서 막는 한이 있더라도, 감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절대 그들을 뒤쫓거나 감시해서는 안 된다. 열매를 전해 준 뒤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살길은 그것뿐이야.”

“예? 아, 알겠습니다.”

“……됐으니까 이만 나가 봐.”

“예.”

철컥-

“……후우.”

그렇게 수하가 밖으로 나가자, 총지배인은 자괴감에 빠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엘레이라 꽃의 행방을 아는 놈을 찾아봐야겠군.”

마지막 기회.

그것마저 놓쳐 버린다면, 정말로 한 몸 살길조차 남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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