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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0화 (1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화

내게 필요한 것을 찾는다 (4)

조지는 자신을 호출한 남작의 부름에 의아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 교육이 아닌 이상에야 자신을 부르는 일이 없었다는 것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는 지금이 한밤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특히나 최근 남작은 1왕자의 명을 받고 조사를 시작한 자신에게 시간을 배려해 주는 일이 잦았기에, 이 상황이 더욱 의문이 드는 조지였다.

‘뭐지? 분위기가…….’

그리고 옷을 입고 1왕자의 집무실 앞으로 도착한 순간.

그 의아함은 더욱 증폭되었다.

“부르셨습니까, 남작님.”

“……아. 조지 군, 왔는가?”

“무슨 일 있습니까?”

남작의 표정은 지금껏 없었을 정도로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남작은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집무실의 문을 향해 눈짓했다.

“1왕자 전하께서 자네를 기다리고 계시네.”

“예?”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전하께 듣는 것이 좋을 걸세.”

“…….”

……알겠습니다.

당장은 그렇게밖에 대답할 길이 없었다.

그 표정에 드러난 감정이, 어쩌면 너무도 복잡해 괴로워 보였으므로.

“들어가겠습니다.”

끼이익-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달빛 아래에서 책장을 넘기는 1왕자의 모습이 보였다.

은빛의 머리카락은 달빛을 머금어 찬란하게 빛났고, 이어진 핏빛의 시선은 아련한 듯 그림자 속에서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힌 조지가 무언가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집무실의 책상 위로 책을 내려놓은 1왕자의 입에서 특유의 무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지 헤그메스.”

“예.”

“네놈이 온 이후로도 제법 시간이 지났지. 보좌관의 일은 성미에 맞나?”

“…….”

그 시선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고작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자신을 부른 것일까? 그것도 이런 오밤중에?

조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으나, 찰나에 불과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 누구한테 들었던 대로. 자신은 사기꾼이었다.

치부를 감추기 위해 늘 거짓을 입에 담았으며, 그 자신의 행동 또한 진실 된 것이 없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 따위를 하는 것쯤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또다시 목적을 위해 행동할 뿐이었다.

그가 말했던 허무맹랑한 약속들의 진의를 파악하겠다는 일념을 위해서.

치료제의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그 맹목적인 종착지를 향해서.

그러나.

반대로, 마주한 남자의 눈은 허상을 비추는 달빛 속에서도 진실을 보고 있었다.

“……그렇군.”

1왕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으로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슬슬 약조한 것을 줘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약조한 것이라면.”

“네 어미의 병을 낫게 할 치료제다.”

“……!”

그 무심한 목소리에 조지의 얼굴에 여태껏 없던 동요가 일었다.

“치, 치료제라니…….”

횡령 사실을 들켰을 때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당혹감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조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일렁였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체 무슨 의도로 제게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말 그대로다. 계약서에 명시된 내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말이다.”

“……예,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제 어머님은 불치병을 앓고 계십니다.”

순간, 조지의 눈이 번뜩이며 1왕자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한데 전하께서는 제 어머니의 병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무슨 소리지?”

“전하께서는 제 어머니의 상태를……. 아니, 하물며 그분께서 겪고 계신 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습니까?”

자신의 상사이기 이전에 일국의 왕자에게 하는 말 치고는 굉장히 날 선 어투였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에게는 타인의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 병은 감기 따위가 아닙니다. 손쉽게 치료제를 입에 담을 만큼 단순한 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며 치료제를 약조한 것은 1왕자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정작 그 1왕자는 마치 감기약을 주겠다 하듯 제 어머니의 일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치료 사제는 물론이고 대도시의 의원들까지 알지 못하는 치료제를…….

어처구니없게도, 고작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구해 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이를 믿고 인내하려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우둔하고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다음에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 주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기대할 수 있게끔.”

“……”

“……그게 전부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지는 차갑게 뇌까리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조지 헤그메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1왕자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처음과 달라지지 않은 표정으로.

이변은 없노라고. 그리고.

“지금부터 이걸 가지고 내가 말하는 곳으로 가서 치료제를 수거하도록.”

……그렇게 확답했다.

“그리고 네 어미를 치료하고 돌아와라.”

“…….”

“이건, 명령이다.”

치료제.

정말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조지의 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수도의 서민가.

1왕자가 지시한 장소로 움직이는 조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그저 이상한 소문을 듣고 자신을 찾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정확히는 아무 생각 없는 머저리에 가깝다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미쳤다고 시골 상회에서 일하는 범법자를 거둬 간단 말인가?

기껏 해 봐야 평민도 차별 없이 등용한다는 싸구려 이미지를 위해 나를 이용했다고.

그러니 언제든 도망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 생각‘했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1왕자의 모습은 자신이 짐작하는 것과 달랐다.

정보 수집을 맡기겠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은 확신이었으나, 방금의 그 표정과 눈빛만큼은 무엇보다 올곧았던 것이다.

‘속을 읽을 수 없었어.’

그리고 상황이 닥쳐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옭아매었다.

마치 반항하는 것조차 계획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일을 상정해 두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꾸욱-

조지는 마른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그 허무맹랑한 자신감의 이유가 눈앞에 있으리라. 실망하여 떠나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조지가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저건.”

조지는 골목길의 구석에 놓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길하면서도 위험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검은색 보따리였다.

하지만 조지는 홀린 듯 가까이 다가가며 이를 살폈다. 놀랍게도, 보따리에 싸여 있는 것은 아는 물건이었다.

“이건.”

……엘레이라 꽃의 열매?

하지만 이건 그 독성과 마약으로써의 기능이 강해서 기껏해야…….

“!?”

문득 조지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출발하기 전 왕자가 줬던 주머니.

조지는 그것을 서둘러 열어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있던 쪽지를 확인해 나갔다.

“……!”

그 순간, 서서히 머릿속으로 퍼즐이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년간 읽어 왔던 고서와 기록들의 단편적인 정보가, 틈틈이 조사해 오던 각종 의학 지식들이.

믿을 수 없게도, 이것을 보는 순간 정답을 찾았다는 듯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정말로…….’

처음으로 든 생각은 가능성이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적어 준 방법은 일목요연했다.

그다음으로 든 것은 우려였다.

이 열매는 마약성 환각제의 원료인데, 정말 이런 것을 어머니께 써도 괜찮을까? 학계에서 검증된 것도 없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것은 의문이었다.

대체 왕자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알았는지.

그리고 생산조차 엄금되는 이것을 어떻게 구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지.

……지금 마음속을 잠식한 이 조급한 기분은 무엇인지.

조지의 몸은 어느새 어두컴컴한 빈민가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드러난 열매를 품속에 소중히 넣어 두었다는 사실은 그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한데 이 또한 그의 안배였던 것일까? 다행히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철컥-!

모두가 잠든 시간.

조지는 초라하지만 익숙한 판잣집의 내부로 들어갔다.

왕자에게 언제라도 벗어나기 위해, 지원한다는 장소마저 거절하며 직접 장만한 거처였다.

끼이익-

뒤이어 조심스레 들어간 방 안에는, 창백한 혈색의 어머니께서 누워 계셨다.

조지는 다급하게 품 안에 넣어 둔 열매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열매를 부여잡고 그 입에 가져다 댔다.

이윽고 다른 손에는 주머니의 쪽지와 함께 있었던 새하얀 나뭇잎이 쥐어졌다.

쪽지에 적혀 있던 한마디.

-열매의 즙을 정화 작용이 있는 칼투스 잎을 거쳐 먹이게 되면 증세가 완화될 것이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만약 이 열매가 치료제가 아니라면…….’

그간 지냈던 수많은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속삭이며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했던 사기꾼들.

영약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하던 자신을 수탈하려 들었던 건달들.

돈만 챙겨 들고 도망간 무책임한 의사들까지.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드는 확신이 단순한 착각이라면.

그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1왕자, 그자가 그런 놈들과 다를 바 없는 녀석이라면?

……아니.

그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제발…….’

조지가 열매를 쥔 손에 간절히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 * *

“……전하.”

나는 남작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남작은 조지가 떠난 이후부터 계속 심란한 듯 표정을 굳힌 상태였다.

“뭐지?”

“전하께서는 조지 군이 돌아오리라 생각하십니까?”

“돌아올 것이냐고?”

“……예.”

남작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하의 말씀대로 그 아이가 보좌관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것은 오로지 가족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껏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저 역시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렇지.”

“하지만 전하께서는 그 아이에게 직접 약을 건네주셨습니다.”

조지라는 인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시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거라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치료는 미리 해 주되, 관계가 정립된 이후에 그 이야기를 하거나.

“……저는 당장의 목적조차 잃어버린 조지 군이 이대로 떠나 버릴까 두렵습니다.”

남작은 그렇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렇기에 나는 녀석에게 약을 건네주었다.”

“예?”

“한 번 정립된 관계는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운 것일 테니까.”

하얀 천에 색을 입히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물감이 칠해진 뒤라면, 원하는 색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색상은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것일 터.

난.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유일하게 원하는 색을 입힐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리라.

창문에 비친 붉은 눈이 번뜩 빛났다.

“나는 내게 충성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전생과는 달리, 나를 위해서라면 불길에도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와 함께 전장을 거닐고, 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 외의 감정은 불필요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

그렇기에 나는 확신했다.

“녀석은 돌아온다.”

성수를 구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범죄자가 되기를 자청했던.

그런 와중에도 불치병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서적과 기록들을 독파했던.

끝끝내 수십 년에 걸쳐 발견한 치료제를 어머니의 묘지 위로 뿌려야만 했던.

“조지라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그런 존재일 테니까.”

처음부터. 녀석을 데리고 온 순간부터, 이미 모든 설계는 끝나 있던 것이다.

그때였다.

끼이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왜소한 남자의 인영이 내부로 들어왔다.

서늘한 북부의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이곳까지 달려왔을 남자.

조지 헤그메스였다.

“자, 자네…….”

“…….”

남작의 놀란 목소리가 집무실 내부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정작 시선을 마주한 나와 조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충성을 다하겠다는 감상도. 하물며 감사를 담은 인사조차도 없었다.

그저, 달빛에 반사되어 출렁이는 눈빛이 내게로 집중되었을 뿐이다.

……그걸로 충분했다.

“시간이 늦었군.”

나는 내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문 앞을 가로막는 조지를 지나쳐 걸어갔다.

“하루의 휴식 시간을 주지.”

“…….”

“그 이후에는 다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등 뒤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게서 깍듯한 태도를 바라지 마십시오. 가식 따위조차 바라지 마십시오.”

……더 이상 거짓을 품고 나를 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걸로 충분했다.

녀석은 간절히 바랐던 대로 어미의 생명을 얻었고, 나는 내게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을 얻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한 시작은 그 정도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멋대로 하도록.”

비록 나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장차 그 누구보다도 내게 도움이 될, 사기꾼의 진심 역시 변하지 않을 테니까.

“내 사람이 된 것을 환영한다.”

나는 한줄기의 눈물을 흘리는 조지를 뒤로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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