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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2화 (1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화

미래를 바꾸기 위해 (2)

“마, 마법? 이럴 수가!”

정신이 든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리는 어느 신전의 중앙 홀과 같은 장소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이변을 눈치챌 겨를도 없이 갑작스레 몸이 이동된 것이었다.

‘공간 이동 마법.’

과연. 흑마법사들의 은신처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이라 이건가?

들었던 것보다도 완성도 있는 마법이었기에 조금은 놀랐을 정도였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음.”

“이렇게 갑작스런 이동이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단순한 이동 마법일 뿐이다.”

나는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증명하듯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이미 기감을 넓게 펼쳐 둔 상태였다.

안전을 위협할 만한 요소는 전무했으니 굳이 심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소극적으로 움직여서는 좋을 것이 없겠지.”

“하기야…….”

그나저나.

그런 와중에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나는 당황하고 있는 남작을 뒤로하고 중앙에 위치한 조각상으로 다가갔다.

“…….”

석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동감 있는 한 마리의 까마귀.

하나, 어째서인지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까마귀의 날개는 불꽃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보석 같은 눈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분노. 후회와 패배감.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진 탓에 빛이 바랬다지만, 작품의 의도를 훼손시킬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흑마법사 토벌 성전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

“음?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흑마법이라는 존재는 대륙에 존재해서는 안 될 ‘부정’이다.

그건 상식과는 달리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그들의 몰락은 곧 하나의 역사와도 같았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배우며 자랐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해질 것이 분명한 승리의 역사.

‘성전이라…….’

50년 전. 신성제국을 필두로 벌어진 신전들의 흑마법사 말살 작전.

필요성을 불문하고 흑마법이 관련된 모든 것들은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흑마법사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임을 당했고, 겨우 피난에 성공한 이들마저 다시는 태양 빛을 보는 사치는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잔당들의 은신처가 간혹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멸망.

그런 의미에서 이 조각상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고작 하늘을 나는 일조차도 탄압을 당하였기에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까마귀들의 절규.

그리고 거짓된 악의를 멸하는 탐욕의 불꽃.

그 아래로 쓰인 ‘진실’의 문구…….

“어라? 이곳에 상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석상 반대편에서 남작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비도르 남작이 내 쪽으로 조그마한 상자를 건넸다.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된 검은빛의 수려한 상자.

남작의 표정은 한층 더 밝아져 있는 상태였다.

“혹시 값비싼 아티팩트 같은 것이 들어 있지는 않을까요?”

“열어 봐야 알겠지.”

이 또한 회귀 전 보고서에 있던 내용이었기에, 상자의 정체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감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굳이 아는 체하지 않았다.

“아!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제가 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열어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허가가 떨어지자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 보는 남작.

그의 얼굴에 서린 기대감이 한층 더 진해졌다.

하지만…….

“응?”

상자의 덮개는 어째서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힘을 줘도 마찬가지였다.

“서, 설마 고장 났나?”

그렇게 한참이나 상자와 씨름하던 남작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여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그의 잘못은 없었다.

나는 남작이 더 안쓰러운 표정을 짓기 전에 설명을 보충했다.

“마법 장치다. 힘으로 열어 봐야 소용이 없겠지.”

“과연! 그런 것도 꿰뚫어 보시다니!”

애초에 흑마법사의 은신처에서 평범한 상자가 나올 리는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어깨를 풀었다.

그러자, 남작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전하?”

“그 자세로 가만히 있도록.”

마법적인 처리가 된 상자를 여는 방법은 여러 방법이 있다.

상자에 가미된 마법을 해독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여는 것.

더 강한 마력으로 상자를 강제로 해제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힘으로 때려 부숴 버리는 것.”

콰직!

“으아악!”

어느새 뽑힌 검이 상자를 베어 넘기며, 세찬 검풍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곧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 남작이었지만, 정작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상태였다.

궤도를 정확히 계산한 검격이었기 때문이다.

“머, 멀쩡하다?”

“호들갑은 그만 부리고 일어나라.”

원인을 제공한 주제에 호들갑이라니…….

남작이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다친 곳이 있나, 몸을 살피는 것이 꽤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몸은 멀쩡하니 내용물이나 확인하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남작은 어디론가 날아간 상자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제 뒤에서 동강 난 상자의 잔해를 발견하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피를 흘리고 있는 저것을 상자의 잔해라고 할 수 있을까?

“저건…….”

“미믹이다.”

욕망의 상징인 보물 상자로 위장해, 모험가들을 잡아먹는 인공 몬스터.

심지어 흑마법사들이 마법으로 포장해 진짜 보물 상자처럼 보이게 만든 걸작이다.

아마도 은신처를 발견할 사제들을 죽이기 위한 함정이었겠지.

남작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럴 수가…… 이런 것을 전하께 드리려고 했다니…….”

“운명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지.”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목숨을 노리던 몬스터였다.

이런 일을 처음 겪었을 것이 분명한 남작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일 것이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로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위로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과거의 힘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 되었기에.

끼이익- 철컥!

거대한 중앙 홀에서 연결되어 있는 조그마한 방.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는 녹슨 철문을 열고 마주한 내부라고 해 봐야 그다지 다를 것은 없었다.

“……창고?”

“혹은 그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한 장소겠지.”

빈 상자와 수납장으로 가득한 방의 내부.

일정한 규격으로 나열된 가구들이, 방의 용도를 짐작게 했다.

이내 수납장을 이리저리 열어 보던 남작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정말로 잡다한 아티팩트 하나 남기지 않았군요.”

“남긴 물건으로 인해 추적당하는 경우까지 염두해 둔 모양이다.”

“그, 그렇군요.”

남작이 입맛을 다셨다.

“철저하다고 해야 하나…… 은신처라 해서 기대했는데 조금은 아쉽습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군.”

“예?”

나는 남작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작의 생각이야 어떠하든, 잡다한 물건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중앙 홀에서부터 내 기감을 잡아끌던 이 녀석만이 중요했으니까.

“찾았다.”

여느 상자와 동일한, 대수롭지 않게 방치되어 있는 작은 상자.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은 다 부식된 해골의 머리통이었다.

남작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어 왔다.

“으으…… 이건 평범한 흑마법 기물이 아닙니까?”

겉보기에도 실제로도 은신처에서 흔히 발견되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물건.

흑마법의 대표적인 매개체.

그렇기에 저 황당하다는 반응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결코 중요한 것은 그 형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존재만으로 시체조차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녀석이었으니.

“비도르 남작. 명령이다.”

“예? 하명하십시오, 전하.”

“지금부터 정화 의식을 시작할 것이다. 자네는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도록.”

정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남작이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정화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흑마력의 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 분명하다.”

“허억! 그렇습니까?”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주위를 살피는 비도르 남작.

나는 고개를 까닥이며 말을 이었다.

“비록 조사를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지만, 이렇게 지독한 마력을 눈앞에 두고도 모른 체한다면 뭇 시민들의 본보기라 할 수 있겠는가.”

“그, 그렇다면야…….”

사실, 정화라는 말은 써먹기 편리한 핑계이기에 덧붙인 것이었지만…….

“설마 위험한 일은 아니겠지요?”

이대로 시간을 낭비하기는 싫으니 짧게 일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필요 없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당하겠지만 누구 안전이라고 명을 거부하겠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내 명령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30분이 지나도록 내가 나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왕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예? 먼저 왕궁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물론 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

“끄응.”

“알아들었으면 이만 나가보도록.”

그렇게 남작은 걱정과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로 창고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해골을 자세히 살피게 된 것은 그 이후였다.

‘범인에게는 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가.’

은신처 내부를 짓누르는 듯한.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의 끔찍한 마력이다.

대마법사의 마나를 타인이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이 해골에 감춰진 음 차원의 마나도 그러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

‘재미있군.’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하찮은 물건이 아닌가?

그런 해골 따위가 죽은 시체조차 일으킬 수 있는, 일종의 아티팩트로 진화하는 일이 흔할 리가 없었으니까.

이 장소가 특별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음 차원의 마나가 풍부한 공동묘지 아래에 지어진 은신처.

놈들은 발각당하기 쉽다는 리스크를 지고서라도 힘을 모을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 온 마력의 양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함부로 들고 갈 수 없기에 버리고 달아났을 정도의 양.’

무려 죽어 나간 흑마법사들의 혼을 간직한 동시에, 차원이 다른 수준의 마력량을 축적해 둔 물건이다.

거기에 버려진 뒤로도 오랜 시간 공동묘지에서 파생되는 감정의 잔재를 쐬었을 것이고.

이는 일종의 에고로써, 수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티팩트로의 성장을 이뤄내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회귀 전 조사원들이 내렸던 결론이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은 성장의 동력원이지.’

미래의 지식이 있기에, 더 안전하고 확실한 아티팩트를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흑마법사들의 은신처를 선택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흡수한다.”

회귀 전에는 정화라는 명목하에 신성제국 측에서 회수해 갔던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이를 흡수해서 얻을 이득도, 거기에서 나오는 리스크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흑마법사들의 원한에 잡아 먹혀 이성을 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감이 외치고 있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기필코 해낼 것이다.

그것은 검왕이라 불리었던 내 자신감의 전부라고 해도 좋았다.

나는 해골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만끽하며, 천천히 몸속에 있던 기운을 선회시키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회오리치듯 솟구쳐 온몸을 집어삼켰다.

분노와 회한. 더 나아가 삶을 갈망하는 욕망까지.

머릿속에는 죽임당하는 동료를 보는 흑마법사들의 시야가 떠올랐으며, 잠시 후에는 굶어 죽어 가는 패배자의 인생이 내 의식을 잠식했다.

곧 온몸을 분쇄하는 듯한 고통이 찾아오며, 내 몸은 어느새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흡!”

나 자신의 죽음조차도 똑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수십, 수백의 인간들이 남긴 비참한 감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내 일이었던 것마냥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짧은 시간 동안 느낀 고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아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겪는 것이 정말로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이미 자아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주도권을 쥐기 위한 혈투.

몸을 탐하는 부정들은 조금이라도 틈을 비집기 위해 정신을 침식시킨다.

고통의 탓인지, 감정의 탓인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째서 내가 이런 곳에 있는지, 어째서 힘을 갈망하고자 하는지.

시간의 흐름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정신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웃기지 마라.”

악다문 입에서 비릿한 피가 새어 나왔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믿지 않았던 신을 찾았던 것은 어째서였던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통감하고 조지를 등용한 것은 무슨 이유였나?

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나와 백성들을 고통받게 했던 원수들을 모두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

쿠구구구궁!

멋대로 난동을 부리던 부정의 기운들이 하나로 모이며 대기가 진동한다.

내 머릿속을 침식하던 처음의 그 잘난 기세와는 정반대의. 일종의 발악에 가까웠다.

그 증거로, 더 이상 타인의 기억을 주무르지 않고 나 자신의 약점을 찾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으니까.

“하, 하하!”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장면들에 웃음이 나온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무력하게 움직이던 그 날들의 기억.

세작들이 즐비한 왕국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던 매일매일.

그리고…….

-공작. 나는 너무도 두렵네.

원수를 앞에 두고 나약한 소리만 했던 과거의 나.

-모두 잊고 멀리 떠나고 싶어.

스스로의 과오조차 잊고 도망치고자 했던 과거의 나.

잊은 척했을지언정 한시도 잊으려 하지 않았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무리 부정한다 한들, 모든 일이 ‘나’ 자신을 이루던 요소인 것을.

모두 멍청한 나 때문에 벌어졌던 일인 것을.

그렇게 생각한 순간.

“국왕 자리는 잘 받아 가지. 머저리에게 잘 가라는 인사는 하지 않겠네만.”

나는 악몽 속에 있었고.

“……아수스.”

나는 내 심장을 찌르고 있는 아수스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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