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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화 (1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화

미래를 바꾸기 위해 (4)

“아, 암살자?!”

암살자들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짚이는 곳은 많았다. 오히려 짐작 가는 데가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그렇다고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호위 기사도 없이 왕궁을 빠져나간 1왕자와, 검술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유일한 수행원.

마지막으로 괴상한 소문 탓에 인적조차 드문 공동묘지라는 배경이 겹쳤으니, 암살자들이 찾아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이 최고의 적기라 이거군.”

단 하나의 변수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숨기고 습격을 기다리는 암살자들의 모습은 꽤 훌륭했다.

날벌레들조차 이변을 느끼지 못하고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저 정도의 수준이라면 사주를 받고 찾아왔을 뿐인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었다.

‘최소 암살 길드의 정예 살수들.’

실제로 놈들이 서 있는 위치조차 조직적이었기에,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후방에 숨은 것이 다섯.

전방에 부채꼴 모양으로 여덟.

측면을 노리는 타격대가 넷.

그렇게 도합 열일곱 명이나 되는 암살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나는 남작을 뒤로 물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들켰으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지?”

“…….”

“쯧. 미련하군.”

여전히 정적이 흐른다.

들켰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연기를 유지하려고 하는가?

뭐, 그렇다고 해도 고작 말 한마디에 은신을 풀고 대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나는 곁눈질로 공동묘지 내부를 살피며 한숨을 쉬었다.

“전방 묘비 뒤에 둘. 나무 위에 셋. 투명 포션을 먹은 것이 다섯…….”

“…….”

“나머지 위치도 말해 주랴?”

“저희의 은신을 간파하다니…… 이거 놀랍군요.”

어딘가에서 들려온 기괴한 목소리가 안개를 타고 공동묘지 내부에 울려 퍼졌다.

오래 갈고닦았을 것이 분명한 기술이었다.

방향도, 거리도 짐작할 수 없게끔 만들었겠으나, 내 시선은 정확히 한 점을 향하고 있었다.

“쓸 만한 은신이구나. 네놈이 대장쯤 되는 모양이지?”

“……알렌 에스테반, 듣던 것보다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칭찬으로 듣겠다.”

안개 속에서 검은색 두건을 뒤집어쓴 한 남성이 나타났다.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서로의 모든 것이 간파당한 이상, 더 이상의 은신은 소용이 없겠다 생각한 모양이지.

“중간부터 종적을 놓쳤기에 당황했거늘,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겠습니다.”

종적을 놓쳤다는 것은 은신처에 들어갔을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머지 졸개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허. 안목은 대단하지만, 사태를 파악하는 머리는 없는 모양입니다. 아니라면 허세를 부릴 뿐이거나.”

암살 대상에게 들켰음에도 당당한 자신감이다.

그렇기에 한 나라의 왕자를 암살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이 자리에 온 것이겠지.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어느 쪽도 아니라면?”

“멍청하기는. 예상외의 상황에 놀랐다지만, 사냥감이 되었다는 근본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은 것을.”

“글쎄? 적어도 숨어서 기회만을 엿보는 겁쟁이들에게 사냥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물론 그 자신감의 원천은, 저들의 실력이나 안개 속에서 들어오는 기습 공격은 아닐 것이다.

“짐덩이를 끌어안고도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곧 죽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허.”

“나쁘게 생각하지만은 말아 주십시오. 피차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까?”

놈들이 칭한 짐덩이는, 아무 전투 능력이 없는 비도르 남작을 뜻했다.

대치는 고사하고 제 몸 하나 지킬 힘도 없다.

유사시에는 놈들의 인질이 되어 전투에 방해만 될 것이 분명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는 조금은 황당한 기분이 되어서 실소가 나왔다.

그러자, 두건 사이로 드러난 남자의 눈이 좁혀졌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십니까?”

“하하. 이거 정말로 우습게 보인 모양이네.”

실제로도 우스운 사람이었던 것을 알았기에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짐덩이를 끌어안고도 자신감이 넘쳐? 허세를 부릴 뿐이라고?”

자신감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허세란, 쥐뿔도 없는 사람이 겉으로만 기세를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그러니 어이없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에 자신감이 필요한가?”

여전히 허리춤에 메여진 칼집을 쥐고 있는 왼손.

놈들은 개미다.

신발을 타고 오를 수도 없을 정도로 작기에, 수십 수백이 뭉쳐서 기어 온다 한들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단지, 새롭게 얻은 내 힘을 측정할 뿐인 실험체.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마침 고마울 따름이구나.”

“……뭐라?”

“저승에서 꼭 감사 인사를 전해 주거라.”

칼자루를 쥐는 오른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이내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낼 듯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뒤틀기 시작했다.

아직 30미터 이상 벌어져 있는 거리.

모순되고 기형적인 전투태세에 헛웃음이 나올 법도 했지만, 자리에 위치한 그 누구도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무, 무슨…….”

두려움? 공포?

암살자는 본능을 건드리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

세상은 흑백이었다.

분명 태양 빛을 가리는 안개 탓은 아니었다.

시간.

영원히 고정된 흑백사진 속 세상이 있다면 이럴까?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 순간. 오롯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검을 쥐고 있는 1왕자뿐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절망에 빠지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것이 암살자의 마지막이었다.

“자네를 보낸 귀족도 금방 보내 줄 터이니.”

우우우우우웅!

한껏 휘둘러진 검이 공간을 베어 낸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빛의 잔상이 아름답게 피어올라, 그림을 그린 듯 허공에 훤히 새겨졌다.

단지 사선으로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었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단 일격.

무덤과 묘비. 안개와 암살자들까지.

궤적에 있던 모든 것이 반으로 갈라졌다.

어쩌면 아직도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천천히 옆으로 쓰러져 내리지만 않았다면 절대로 믿을 수 없었겠지.

“이걸로 열둘.”

마침내 멈춘 듯했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

후방에 위치했던 덕에 죽음을 피한 암살자들의 몸이, 더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기에.

평소 죽음에 대한 훈련을 받았을 그들이었으나,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렸다면 말은 달랐다.

이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신이시여.”

단언컨대. 살면서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놀랍다? 고작 그런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말조차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소드마스터.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위인들.

자신의 상관은 아득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스스로 말하고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말은 지금 상황에서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움직이는 놈이 있다면 즉시 죽여 버리겠다.”

순식간이었다.

장내를 제압한 것도. 남작을 지나 숨어 있던 암살자들에게 다가간 것도.

“제, 젠장! 이건 말이랑 다르잖아!”

한 암살자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려 했으나, 그보다는 내 대처가 빨랐다.

“쯧.”

슈우욱-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상태로 땅바닥에 무너진 그 고깃덩어리는, 더 이상 암살자라 부를 수 없었다.

솟아오른 피 분수가 다른 암살자들의 몸을 적셨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는 말이 정확하겠지만.

“좋아. 그대로 서 있도록.”

나는 싱긋 웃으며 가장 왼쪽에 있던 암살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수 복면을 벗겨 주며 입을 열었다.

“너. 어느 암살 길드의 사람이지?”

처음 보는 얼굴.

애처롭게 흔들리는 파란 눈동자가 불쌍할 정도였다.

“부,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어디서 왔는지 말하면.”

“저, 저는 처자식과 병든 노부가…….”

“후우.”

푹!

심장을 찔린 암살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무너졌다.

나는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고 다음 암살자에게 걸어갔다.

“너. 어느 암살 길드의 사람이지?”

“그, 그것이…….”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푹!

일말의 자비조차 없는 손속이었다.

남아 있는 두 암살자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코끝을 찌르는 지린내가 불쾌했지만, 아직 내 미소는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다음.”

“사, 상업 도시 아델라의 암살 길드 소속입니다!”

퍽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그렇다면 누가 암살을 의뢰했지?”

“…….”

“쯧. 학습 능력이 부족하구나.”

푹!

이로써 남은 암살자는 하나였다.

나는 아까보다 밝은 미소로 놈에게 다가갔다.

“누가 암살을 의뢰했나?”

“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의뢰에 관한 것은 모두!”

“자네는 협조성이 좋군.”

나는 녀석의 앞에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닥였다.

“이제 말해 봐.”

“처, 처음은 일주일 전 길드로 찾아온 어느 수행원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모시는 귀족이 최고급 암살자들을 필요로 한다고 했는데…….”

잠시 숨을 몰아쉬던 암살자가 말을 이었다.

“일억 골드를 의뢰비로 주는 대신, 암살 대상을 들으면 더는 물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호오. 일억 골드씩이나?”

“그, 그렇습니다.”

“재미있군.”

일억 골드라는 거금을 사용할 만큼 부가 있는 귀족이란 말인가.

흥미로운 이야기에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래서 의뢰주는 누구라고 했지?”

“의뢰주…… 의뢰주는…….”

“음?”

점차 어눌해지는 말투와, 혼란에 빠진 눈빛.

그 순간.

“이런.”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섰다.

순간적인 판단이었지만, 이는 매우 옳았다.

“크아아아악!”

펑!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머리가 이내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들이 허공으로 비상했다.

다행히 뒤로 물러선 탓에 직격타를 맞지는 않았으나, 옷자락이 더러워지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쯧. 저주가 걸려 있었군.”

하기야. 이런 일에 최소한의 방지를 놓치지는 않았겠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일억 골드라…….”

옷을 털어 내며 짧은 상념에 빠졌다.

현 상황에서 나를 적대시할 만한 귀족들은, 아수스와 함께 부정을 저지르다 죄를 발각당하게 생긴 잔당들과 제 발이 저린 머저리들. 두 부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오노레오 자작이란 본보기 탓에 납작 엎드려 있을 아수스의 잔당들을 제외한다면, 남은 것은 제 발 저린 머저리들 뿐.

하지만 아무런 구심점조차 없는 머저리들이 리스크를 짊어진 상태로 나를 암살하려 든다고?

‘불가능해.’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정보부처고 뭐고 이미 귀족회의 때에 나를 공격해 궁지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놈들에게서 조직적인 움직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고.

말인즉,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귀족들을 내버려 두고 행동하는 제삼자, 정확히는 제3의 세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아수스가 죽은 것을 계기로 급히 결성된 새로운 세력이.

그렇다고 한다면 암살을 시도하는 세력의 정체는 불 보듯 뻔했다.

“그렇군. 이제 정리가 됐어.”

내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일억 골드라는 거금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이 수장으로 있으면서도, 반드시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세력.

머릿속으로 떠오른 가설을 조용히 곱씹는다. 아마 조금의 물증만 있다면 곧바로 확신이 될 테지.

“비도르 남작.”

“아! 예, 전하!”

“이만 돌아간다.”

이제는 정말로 왕궁으로 귀환해야 할 때였다.

사절단의 방문을 1주 앞둔 시간이었다.

* * *

보고서를 읽던 4황자가 웃었다.

“그러니까. 허무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서 증거까지 남기고 갔다 이겁니까?”

꾸며낸 듯 아름답게 포장된 존댓말.

이에, 보고서를 올린 수행원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 누구보다 4황자의 성격을 잘 아는 것은 본인이었기에.

“그리고? 제 계획을 막은 것이 1왕자라고요?”

“그, 그렇습니다.”

“정말로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재미있는 이야기라니?

평소 모든 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의 주인이었으나, 아수스에 대한 보고를 들은 지금은 달랐다.

그 모습은 지금껏 4황자를 보좌해 온 수행원에게 있어서도 낯선 일이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상황은 절대로 재미있는 장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데, 어째서 이 사실을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보고한 것입니까?”

“화, 황제 폐하께서 직접 정보를 통제하셨습니다. 하여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폐하께서 말입니까?”

“송구하옵니다. 전하.”

의외의 대답에 놀란 4황자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분명 의중이 있으셨겠지요. 이만 나가 보셔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소인은 이만…….”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혹시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재빠르게 자리를 이탈하려 했던 수행원은, 자신을 부르는 4황자의 목소리에 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말은 정말로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에스테반의 1왕자. 그를 주시하라 하십시오.”

“예?”

수행원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두 번의 설명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황제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미리 소식을 전해 두겠습니다.”

“예. 그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참이나 책상에 놓인 보고서를 바라보던 4황자는, 곧 창문 밖으로 들려 오는 마차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행원에게서 받은 보고서 아래에는, 1왕자에 대한 정보들이 언뜻 보인 것만 같기도 하다.

“우유부단하고 유약하여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라고?”

꼼꼼하게 쳐진 커튼 사이로 한 줄기의 햇빛이 들어와 그의 얼굴을 비추자, 황자의 눈을 가로지르는 끔찍한 자상이 드러났다.

신경이 죽어 버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 눈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누가 이런 정보를 줬을까나.”

라이덴 델 카롯트.

카롯트 연방제국의 4황자이자, 장차 황제가 될 그의 혼잣말은 황궁에 불어 닥칠 피바람을 암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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