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7화
감춰진 진실과 드러난 사실 (2)
대전 밖으로 나서는 내 뒤로 누군가의 다급한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전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은 비도르 남작이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남작을 반겼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꽤 곤란했던 모양이군.”
“전하! 어찌하여 저를 두고 홀로 사라지셨습니까!”
“사라지다니? 잠시 어디에 다녀오겠다고 편지를 남기지 않았던가.”
“그걸 두고 세간에서는 사라졌다고 하는 겁니다!”
“그랬군.”
“…….”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남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은 계급이 깡패였다.
“잘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공로를 치하하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이에, 조금은 누그러진 남작이 뒤로 따라붙으며 질문을 던져 왔다.
“그런데 대체 어디를 다녀오신 것입니까? 조지라도 데려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필요한 것이 있어서.”
“음? 그런 것은 사용인들에게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남작의 의문에, 나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오노레오 자작을 죽였을 때부터 느끼고 있던 것이 있었다.
최근, 왕궁 내부에 나를 감시하는 눈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그 대부분이 연방제국의 세작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몰래 움직이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사용인을 움직여 경각심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1왕자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었으니.
“이제 와서 수상함을 느낀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말이야.”
“…….”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1왕자의 집무실 앞으로 도착해 있었다.
“오늘은 이만 쉬러 가도록.”
“예?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지 않습니까?”
“곧 아버님의 호출이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일 테지.”
너무도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의아해하던 비도르 남작.
하지만 이내, 저 멀리서 다가온 아버님의 수행원을 보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1왕자 전하. 국왕 전하의 호출이 있었사옵니다.”
“역시……!”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도 호출이 없다면 도리어 이상한 이야기겠지.
나는 시간을 힐끔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하도록.”
“예, 전하.”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남작이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는 전하께서 다녀오실 동안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음대로.”
“다녀오십시오.”
끼익-
약간의 소음과 함께 열리는 집무실의 문.
하지만, 집무실 내부로 들어가려던 남작이 무언가 생각난 듯 머리를 갸웃거렸다.
“아, 전하! 그건 그렇고, 아까 조지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
“예. 연방제국의 사절단들을 보고 위화감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호오.”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이전부터 느꼈지만, 특유의 감이라는 것은 경험이 없어도 큰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이라도 줘야 하나.”
덕분에 집무실 앞을 떠나는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 * *
금세 목적지에 도달했다.
기껏 목적지라 해 봐야 꺾인 복도를 지나면 바로 보이는 아버님의 집무실일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만큼은 의외의 장소로 나를 인도했다.
소위 말하는 국왕의 서고였다.
“1왕자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왔느냐.”
서고에는 선대부터 모아 온 수많은 책이 존재했다.
역사서부터 금지된 마법 서적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만 해도 무려 1만여 권이었다.
그렇기에, 이 장소만큼은 국왕의 침실과 더불어 철통 수준의 보안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사실 따위는 이미 왕관의 무게를 견뎌 왔던 내게 있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책을 읽고 계셨습니까.”
“…….”
나는 외투를 대강 벗어 두고 아버님이 서 계시는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얼핏 보이는 책들은, 하나같이 과거 에스테반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왕국의 보물이었다.
잠시 동안 침묵을 일관하고 계시던 아버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갈데르드 평야는 옛 에스테반의 영토였지. 하지만 우리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아 왔고, 그럴 가치조차도 없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알렌 에스테반. 너도 알겠지만, 그 땅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갈데르드 평야는 국경지대와 맞닿아 있음에도 전략적 요충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간단한 이유였다. 평야의 뒤편으로 솟아오른 천혜의 산맥. ‘실 타프 그란데’가, 에스테반과 연방제국을 완전히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놈들이 관리조차 버거운 갈데르드 평야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 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큰 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상징적인 이유를 들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땅의 쓸모는 정확히 거기까지였다.
“쓸모가 없고 아니고는 정보가 정하는 것입니다. 놈들의 잣대로 파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로 네 말대로 정치적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더냐?”
“그렇게 보였다면 성공적이겠군요.”
“미련한 놈. 옛것을 되찾는 일은, 어디까지나 효용의 가치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아버님의 대답은 날카로웠다.
내가 놈들에게 내세운 명분은 옛 영토를 되찾아 국가의 위상을 세우겠다는 것.
하지만. 에스테반의 옛 영토라고 해 봐야 이미 수백 년이 지난 시점이고, 이제 와서 그 땅을 되찾는다 한들,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 땅은 연방제국의 것이지. 이번 일은 귀족들에게 먹잇감처럼 노려질 수 있음을 모르는가?”
대의명분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국토를 받는다는 말은 돈이나 보물 따위의 재물을 받는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제아무리 계륵과도 같은 땅이었다고는 하나, 소유권을 놓지 않고 있던 현 상황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더욱 복잡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관심 밖일 따름이었다.
“그런 저를 믿고 합의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해 주신 것은 아버님이 아닙니까. 이미 갈데르드 평야는 우리 에스테반의 것이 되었지요.”
“…….”
“한데, 귀족들의 표정이 생각보다 유쾌하더군요.”
나는 대전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이 연방제국의 사람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연방제국과 함께 국익을 논하고 있던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 말대로다.
이번 회담은 놈들의 실수를 지탄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당당하게 넘어가려 한들, 결국 이 자리에서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던 것이다.
“연방제국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럴 수는 없지요. 그치들의 생각이야 어찌하든, 우리는 우리만의 작은 이득을 챙기기만 하면 됩니다.”
내게 있어서 사절단과의 회담은 복수의 과정에서 파생된 이득에 불과했다.
놈들과 신경전을 벌이든, 사이가 어긋나든…… 그런 것 따위는 어차피 예견된 결과에 지나지 않았고.
“이 서신을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이건?”
“오늘 아침. 제 손으로 직접 받아 온 물건입니다.”
“……확인할 것이 있다 말했던가.”
아버님의 시선이 내 손에 쥐어진 서신으로 향했다.
붉은색 실링 왁스로 밀봉된 한 장의 서류.
그리고 그 위에는 유려한 글씨로 ‘에스테반 지질학 협회’라고 쓰여 있었다.
“지질학?”
“지각의 성질을 다루는 곳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해하기 편할 것입니다.”
그런 협회도 있었던가?
내 손에서 서신을 낚아챈 아버님이,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살펴보기 시작하셨다.
스윽-
에스테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분명 국가에서 지원하는 협회일 것이다.
다만 주요 보고서에도 올라온 적 없었던데다, 워낙에 관심조차 가져 보지 않은 분야이기에 생소한 이름이라고 국왕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잠시. 서신의 내용을 훑어본 아버님이 눈을 부릅뜨셨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두 물질의 성분을 대조한 결과물입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분석 자체를 시도한 것에 대해서다.”
“그 부분은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군요.”
우연히. 그리고 아주 뜻하지 않은 일.
단지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정도가 너무도 확실했기에…….
백지에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실현성이 부족할지 모르나, 알고 있는 정보에 과정을 덧붙이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허, 작은 이득이라고?”
서신을 쥔 국왕의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장부를 확인하던 지질학 협회의 직원은 뜻밖의 상황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오늘은 웬일로 제대로 된 손님이 있었대?”
협회라는 이름하에 수도로 자리 잡았다지만, 실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기껏 찾아오는 손님이라고 해 봐야, 농토에 관련된 의뢰를 하기 위해 찾아온 농장주들 뿐.
이래서는 여기가 농업 협회인지, 지질학 협회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오전 타임을 담당하던 직원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연구도 아주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소리겠지.”
“그래 봐야 농부들만 먹여 살리겠지만…… 어라? 심지어 성분 대조 검사였잖아?”
장부를 들고 있던 직원이 휘파람을 불며 검사기를 쓰다듬었다.
“이게 웬 떡이야? 마침 지원금도 떨어져 가던 마당이었는데…….”
“검을 재료로 사용한 걸 보니, 철광산이라도 발견한 모양이더라.”
“광산?! 크으!”
두 물질을 한데 모아 융해시키고, 마법 처리된 용액을 떨어뜨린다.
이후. 용액의 색상 변화를 통해, 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의 본질이 얼마나 비슷한 수준인가를 따진다.
지각 구조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이 대조 기술은, 지금에 와서는 사장된 기술이 된 지 오래였다.
재료를 영구히 소모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냥 검사 비용이 무지막지하게 비쌌다.
“그래서 검사 결과는 어땠는데?”
“붉은색.”
“동일 성분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소리네. 부럽다.”
이제는 아예 검사기 옆에 주저앉아, 장부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직원의 입에서 흥미로움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방제국이랑 맞닿은 곳? 실 타프 그란데 쪽이던가?”
“어. 그쪽은 마침 대조군에 사용할 흙의 표본이 남아 있었더라.”
“흐음…….”
그런 곳은 개발이 곤란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텐데…….
직원은 턱 밑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켜 냈다.
“뭐. 천혜의 산맥이 끼어 있으니 매장량은 풍부하겠지.”
별 대수롭지 않게 장부를 내려놓은 직원.
하지만. 이윽고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장부를 집어 올렸다.
그런 직원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야. 이, 이거.”
“왜 자꾸.”
“……검의 원소는 확인하고 집어넣은 거야?”
“아니? 그냥 집어넣었는데?”
그런데도 장부를 든 직원의 표정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보다 눈빛이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카운터를 정리하던 직원은 답답할 뿐이었다.
“왜 그러는데? 검사 결과에 문제라도 생겼어?”
“그, 그건 아닌데…….”
정갈하게 프린트된 검사지에 표기된 원소 기호.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탓에, 정체를 알아보는 것이 늦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거…… 미스릴이잖아…….”
힘없이 장부를 내려놓은 직원은, 자신이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