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8화 (1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8화

감춰진 진실과 드러난 사실 (3)

지저귀는 참새 소리. 은은하게 번져 오르는 어스름의 파도.

“후우.”

서늘한 새벽녘의 공기를 폐부로 들이켜며 기지개를 켠다.

기분전환도 할 겸 새벽에 나와서 수련을 했더니, 늦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이 꽤 차가웠다.

톡- 톡-

차가운 이슬비가 손가락에 닿는다.

때마침 비가 오다니, 타이밍이 좋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시린 감각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슬슬 들어가야겠군.”

검이 젖지 않도록 외투를 동여매고 왕성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이전에 쓰던 1왕자의 보검이 아닐지라도, 검을 대하는 태도는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아, 다녀오셨습니까?”

새벽부터 집무실을 정리하던 비도르 남작이 서류 뭉치를 내려놓으며 반겨 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한숨도 자지 못한 듯 퀭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파티의 준비는.”

“휴우…… 어떻게든 예정된 시간까지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평소보다 분주한 손놀림으로 움직이던 사용인들이 보였었지.

사절단 따위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고생하는 것은, 내 입장에선 그닥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쌓여 있는 서류들을 대강 훑어보며 말했다.

“놈들에게서는 연락이 왔나?”

“놈들…… 아, 연방제국의 사절단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음.”

아버님과 약조했던 사절단과의 독대 자리.

다행히, 남작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고대했던 내용 그 자체였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런가.”

지금까지의 행동들은 그 순간만을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후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 것인지…… 그러한 사실을 떠보기에, 회담이라는 장소는 적절하지 않았으므로.

“그럼 두 시간 후에 집무실로 불러내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빗방울이 맺힌 외투의 단추를 천천히 풀어 나갔다.

남작의 시선이 풀어 헤친 소매 사이로 드러난 문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목욕의 준비는.”

“……이미 조지가 시녀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 이른 상태입니다. 지금은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적응은 잘하고 있는 모양이지.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놀라울 정도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빠릅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습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렇군.”

비록 사소한 일이었으나, 일정의 파악이나 일손의 조율이 필요한 만큼, 어지간한 경험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했다.

녀석을 가르치는 입장인 남작이 칭찬할 정도라면, 역시 능력만큼은 출중하다 하겠다.

“조지의 교육에 신경 쓰도록. 자네도 슬슬 임시 보좌관의 임무를 마무리해야지 않겠나.”

“아……! 예, 명심하겠습니다!”

“녀석이 오는 대로 올려 보내도록.”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향했다.

거울로 보이는 얼굴이, 아까보다 더욱 희망차 보여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영지로 돌아가게 해 준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웃고 있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악마 같았다.

* * *

첨벙-

“흐음.”

뜨거운 목욕물이 빗물로 젖은 몸을 씻어 내려 준다.

머리까지 크게 담갔다가 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똑똑-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툴툴대는 목소리.

나는 휴식을 만끽하기도 전에 찾아온 불청객에,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대충 놔둬라.”

그러자,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옷자락이 땅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놓아두라 했다고 정말로 땅바닥에 내던진 것이다.

기감을 통해 확인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보이는 그 장면에, 나는 피식 웃었다.

“상은 취소해야겠네.”

잔잔하게 몸을 감싸 오는 물에 몸을 맡기고 고개를 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방금과 같이 마음을 충족시키는 흥은 올라오지 않았다.

밖에서 툴툴대고 있는 저 불청객 탓이다.

결국 대강 몸을 닦으며 짧았던 휴식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고는?”

“모조리 함구시켰습니다.”

“……더 자세히 말해.”

“사실을 알고 있던 협회의 직원은 모두 둘. 적당한 돈을 쥐여 주고 북쪽 오지의 조사원으로 즉시 파견시켰습니다.”

“나름 합리적인 입막음이군.”

이로써 최소 한 달간은 미스릴 광산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평야의 소유권을 온전히 흡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하지만 조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미스릴 광산입니다. 차라리 영구적으로 입을 막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신성철.

다른 말로는 미스릴이라 불리는 이 광석은, 그 가치가 금붙이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한 물건이었다.

단단함은 금강석과 견줄 정도이며, 오러의 전도율은 가히 비할 광석이 없을 정도의 보물.

“그것도 연방제국의 땅이었던 것이라 하면, 분쟁이 생기지 않을 리는 없을 텐데요.”

“그렇겠지.”

미스릴 광산이 에스테반에 가져다줄 이득은 감히 따질 수도 없을 정도.

과거, 대륙에 있었던 대전쟁 중 하나인 백 년 성전의 시초가 미스릴 광산의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가히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녀석이 말한 것은, 그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 한 것이고.

하지만 내 생각은 한결같았다.

“상관없다.”

“상관없다니…… 뭐, 연방제국 놈들이랑 전쟁이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놈들이 세작을 심어 반란을 유도한 시점부터, 이미 두 국가 간의 관계는 어긋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합의는 어디까지나 보여 주기식이라 할 수 있겠지.”

“그건 그렇지만…….”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 시기가 불분명할 뿐.”

나는 회귀 전에 있었던 연방제국과의 전쟁을 떠올렸다.

비록 아수스의 간계에 놀아나 놈들과의 전쟁을 결심했다지만, 그 전쟁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녀석들은 에스테반을 먹어 치울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기에…….

물론 나조차도 죽을 순간에 와서야 모든 퍼즐이 완성된 사실이기도 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고삐는 이쪽에서 쥐고 있는 편이 좋겠지.”

“…….”

어차피 미스릴의 유통로를 알아보는 순간, 소문은 날 수밖에 없었다.

이전처럼, 놈들이 미스릴 광산을 발견하는 꼴을 우두커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비록 그 존재가 전쟁이라는 도화선의 점화를 앞당길지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다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더 나은 내일의 에스테반을 위해서.

후회 없는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는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내 목표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래서야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겠지.”

나는 짧은 목욕을 마무리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수면에 비친 내 눈빛은 번뜩이고 있었다.

* * *

“1왕자 전하. 조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찬이라는 자리에 알맞게, 깊이가 있으면서도 결코 무겁진 않은 완벽한 예를 표하는 에슐라 백작.

그 뒤로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맞은편의 자리를 손짓하며 말했다.

“자리에 앉지.”

“감사합니다.”

드르륵-

굼뜬 몸짓으로 의자를 빼낸 백작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 시녀가 테이블 위에 식기를 놓기 시작했다.

“따로 즐기는 술이 있는가?”

“코르트 데임 80년산을 주로 찾습니다.”

“그럼 그걸로 하지.”

식전주로 즐기기에는 썩 훌륭한 취향이었다.

그렇게 주문했던 술이 나오고 입술이 술에 적셔지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연방제국 측에서 보낸 서신은 읽었다. 하면, 연방제국에서는 누가 이런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고 있지?”

“저희가 확인한 정보로는 신성제국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신성제국이 파 놓은 함정에 두 나라가 놀아나고 있다 말하는 건가?”

“그 말대로입니다.”

나는 와인 잔을 부드럽게 돌리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이득은?”

“아마도 이번 일을 빌미로 보호라는 명목하에 내정 간섭을 해 오리라는 것이 연방제국의 추측입니다.”

“흐음.”

“그렇기에 황제 폐하께서는 에스테반과의 우호를 다지는 한편, 신성제국 측의 만행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저를 귀국으로 보내셨습니다.”

신성제국과 연방제국. 그리고 야만족의 땅 사이에서 일종의 평화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에스테반.

이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로 신성제국이 에스테반과 연방제국 사이를 이간질해 간접적인 이득을 보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요구했던 땅을 너무 순순히 넘겨줬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원을 하러 온 것이라면, 땅을 달라는 요구 자체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상황은 합의를 위해 금전을 쥐여 준 것이나 다름없이 비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변은 단순했다.

“이건 우호를 다지기 위한 초석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죄를 밝히기 위한 정보의 수집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군. 대외적으론 지원의 영역이지만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그림이라는 건가.”

“정확합니다.”

모든 것이 거짓으로 이루어진 대화다.

마치 짜인 연극처럼, 그렇게 서로 간의 의중을 눈치챘으면서도 충실하게 대본에 따른다.

그리고 그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에스테반 역시 그 뜻에 따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황제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지루한 떠보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역겹군.’

땅을 준 이유?

놈들의 입장에선 언제든지 되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선뜻 내준 것이다.

오히려, 관리조차 어려운 20킬로미터 남짓의 땅을 주는 대가로 이번 일을 무마하는 것이면 싸게 먹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신성제국이라는 존재 탓에 껄끄러운 땅.’

실제로도 에스테반이 가진 입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어떨까?’

놈들의 계략은 간파당한 지 오래고, 미스릴 광산을 뺏어 오기까지 했다.

과거와는 다르게 미래를 이루는 인과관계가 완전히 박살 나 버린 것이다.

때마침 시녀가 가져온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백작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호오!”

“에스테반의 특산물을 곁들인 베이컨 요리지. 사절단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네.”

“과분할 정도로 좋은 음식이군요.”

비아냥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라고 직접 명령한 것이었으니.

나이프를 쓰다듬는 내 손은 차게 식어 있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이런 자리’에 끼지 않는 것인가?”

“……예?”

“아까부터 뒤에 서 있기만 하지 않았나.”

당황하고 있는 백작을 뒤로하고 어깨 너머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좋은 음식을 준비했으니, 함께 식사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크흠! 어찌 수행원을 전하와의 식사 자리에 끼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

나는 나이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 미소 짓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마주 웃어 주었다.

“한참 서 계시느라 지루하셨을 터인데, 슬슬 자리에 앉으시지요.”

“…….”

“아니면 정말로 ‘이런 자리’에는 끼지 않는 것입니까?”

그리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라이덴 델 카롯트 전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