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26화 (2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26화

도망자들 (4)

“……뭐라?”

멍하니 있던 드워프 대장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황당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죽이겠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는지, 이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분노를 표출해 냈다.

“감히!”

콰당-!

급하게 일어난 드워프 대장의 의자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녀석의 손에 들린 것은, 예의 동그랗게 생긴 그 아티팩트였다.

“수, 수백 년 만에 만난 손님이 반가워서 어울려 주었더니, 그 방자함이 끝이 없구나!”

위이이잉!

반딧불 무리의 군무처럼 응집되는 빛이 구슬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내 발동의 준비가 끝난 듯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한 아티팩트.

의기양양한 얼굴로 구슬을 어루만지던 드워프 대장이, 이내 거드름을 부리며 말을 이었다.

“이것만큼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떠냐! 지금이라도 이 땅에서 나간다면 목숨만큼은 살려 주겠다!”

“흐음. 그게 네놈이 가진 자신감의 근원인가?”

“그, 그래! 매운맛을 보고 싶지 않거든…….”

……그렇단 말이지?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퍽!

“커억!”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한 드워프 대장이, 무언가에 막혀 뒤로 밀려났다.

어느새 들려 있던 아티팩트는 내 손바닥 위에서 굴려지고 있었고, 허공을 더듬는 손은 허무하리만치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드워프 대장의 표정이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대, 대체 언제……!”

놈이 저도 모르는 새에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손에 들린 아티팩트를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게 있다면 야만족들 따위가 무섭지 않다고 했던가?”

금방이라도 침입자를 향해 막강한 힘을 방출할 것만 같았던 아티팩트가.

퍼석-

오러를 운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아귀에 약간의 힘을 준 것만으로도 가볍게 깨어졌다.

속이 썩어 있던 것처럼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는 아티팩트의 잔해에, 나는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이딴 겉보기에 속을 거라 생각했나?”

“아, 안 돼!”

잔해는 허공으로 흩날려, 어느새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까지 변해 버렸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드워프 대장에게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 온 물건의 내부가 멀쩡할 리는 없겠지. 게다가 그 아티팩트는 엘프가 만들었으니, 수리하기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크윽!”

“생각해 보면, 외부의 결계도 생각보다 간단하게 깨져 나갔지. 수명이 다하기 직전이었나?”

적어도 내가 알던 정보에는 결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녀석들이 발견되었던 그 시기가, 결계의 수명마저 다하는 시점이라는 말이 된다.

나는 아티팩트의 잔해를 짓밟고, 비틀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를 협박하려던 만용만큼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말이야.

슈욱-

“크악!”

희망을 짓밟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며 사라졌다.

곧 눈을 깜빡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나타난 내 몸은, 무장한 채로 숨어 있던 드워프들의 이마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있었다.

흐르는 물결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눈으로 좇기 어려운 움직임.

나는 버둥거리는 드워프들의 귓가로 얼굴을 들이밀고, 조용히 속삭였다.

“쥐새끼처럼 엿듣고 있는 것까지는 허락한 기억이 없다만.”

“거, 건방진 인간 놈이!”

“이거 놔라!”

휙 휙!

당혹스럽다.

팔을 휘둘러 몸을 떼어 내려 해도, 얼굴을 붙잡아 온 손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양손에 붙잡힌 두 놈을 제외한 나머지 드워프들이 살벌한 얼굴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어서 일족을 지켜!”

“건방진 인간! 살아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거라!”

협상이 틀어진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해가 될 존재였다.

그러니 저런 식으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것이겠지.

물론 이를 지켜보는 나는 실없는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이래서야 내가 나쁜 놈처럼 보이는군.”

“뭣이야?!”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직접 죽음을 선택한 것은, 네놈들이지 않은가?”

“이이익……! 궤변이다!”

“그렇게 생각해?”

반문하는 내 눈은, 더 이상 비웃음조차 흘리지 않는다.

나는 손에 붙잡고 있던 드워프들을 가볍게 밀쳐 냈다.

그러고는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진 드워프들에게 다가가며 검을 뽑아 들었다.

“시대에 뒤처진 아집으로 도움을 건넨 손길조차 걷어 내고.”

저벅-

“순간의 탐욕을 참지 못해.”

“마, 마…… 막아!”

저벅-

“스스로 큰 화를 불러일으켰지.”

“젠장! 죽여!”

흐아아압!

기합을 지르며 달려든 드워프들을 보는 내 눈이 번뜩였다.

“그런 네놈들의 최후는 이미 예견되어 있는 일이다.”

────!

말이 끝나자, 색채를 가지던 세상이 붉게 물들며 지옥과도 같은 형상으로 일그러졌다.

“허억!”

“헙!”

착각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닥을 기는 저들의 대장을 포함해 ‘세상’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 저거…….”

남자의 손에 들린 검에서 불길한 기운이 솟아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러 블레이드?”

타오르는 검이 수정처럼 반짝였고, 일그러졌다고 생각한 것은 조명처럼 퍼져 나간 빛이 석벽에 부딪혀 벌어진 현상이었다.

확실하게.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검이 향하는 방향이 자신들에게 닿아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누군가의 입에서 목을 비틀 듯 힘겨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망쳐…….”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섣불리 움직이는 순간. 검이 떨어져 내릴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눈앞의 인간에게서 넘실대는 살의는, 눈동자에 비칠 정도로 선명하게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소란을 듣고 뒤늦게 달려온 로데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돼!’

그날 봤던 미증유의 힘이다.

단 몇 초의 짧은 시간으로, 그의 마음에서 경외감이라는 낯선 감정을 들게 만들었던 그 힘.

그러나 이제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경외하던 그 힘의 정체가, 고작 존재감이란 얄팍한 단어로 표현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굳어 있는 드워프들의 대장에게 다가갔다.

“네놈이 그랬지. 채광될 광석 지분의 20%를 주지 않으면, 절대로 협력하지 않겠다고.”

“살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녀석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처음부터 혼란을 감수한 행동이었다.

미스릴의 존재만으로도 복잡해지는 이 상황에서 드워프를 데리고 간다?

거기서 얻을 이득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만은 그 어느 선택지보다 큰 것이 사실이었다.

“굳이 광산의 지분을 주면서까지 이주를 제안한 것은, 인간을 피해 달아난 네놈들을 위한 배려였어. 다리가 잘린 채 이용만 당하는 것은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고, 나는 에스테반에 피해만 가지 않으면 됐지.”

리스크를 지고 참혹한 미래를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놈들에게 자유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광석’까지 쥐여 준다.

내가 말한 정당함 그 이상의 ‘대가’라는 것은, 놈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겠다는 말과도 똑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설픈 욕심에 눈이 멀어 내 배려를 이용해 먹으려 든다면, 나는 최선책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이건 네놈이 했던 것과는 다르게 협박이 아니야. 정말로 어떻게 흘러가든 내게는 관련 없는 이야기니까.”

차선책이 아닌 최선책.

효율의 차이일 뿐, 시간만 주어지면 미스릴을 다룰 수 있는 장인들이라면 얼마든지 육성할 수 있다.

그러니, 오히려 놈들을 죽이고 리스크를 줄이는 편이 회유보다 좋을 수도 있었다.

“아아, 아아아……!”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저항할 수 없다. 처음부터 억지를 부렸으면 안 됐다.

이 자리에 있는 저 인간은 정말로 일족의 안위에 관심이 없었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 것은, 욕망 때문에 일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최악의 방향에 불과했다.

“부, 부탁이오…… 이 모든 책임은 내가…….”

이대로 놔둔다면 일족의 끝은 파국으로 치달을지니.

온몸이 공포에 잠식당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에도 놈은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려고 애썼다.

그저 납작 엎드려서 제 손으로 끝을 맺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저, 적어도 다른 일족만이라도, 살려 주십시오…….”

“살려 달라?”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으니 부디……!”

“좋아.”

굳이 녀석들을 죽일 이유까지는 없었다.

정확히는 당장 녀석들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만.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서며 넘실거리던 오러를 억제시켰다.

“원하는 대로 살려 주지. 네놈의 가치 없는 목숨 따위도 필요 없다.”

“고, 고맙소!”

나는 언제 왔는지, 저 뒤에서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조지를 불러냈다.

“무슨 일입니까.”

“태양기사단에 연락해서 임시 막사를 정리하라고 일러라.”

“흐음. 이제 돌아가는 겁니까?”

“그래. 야만족들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기 전에, 빠르게 에스테반으로 이동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그 순간. 드워프 대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화를 끊어먹는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애써 삼켜 내고 짧게 되받아 물었다.

“뭐지?”

“이대로 떠난다는 말이오? 하면, 우리 일족은 어떻게 하라는…….”

“살려 달라며? 그래서 살려 주겠다잖아.”

“하, 하지만…… 그대가 말한 대로, 이대로 가면 우리 일족은 위험에 빠지게 되오!”

하아.

나는 검을 집어넣으며 다리를 굽혔다.

이내 녀석과 눈높이를 마주하며, 놈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친히 설명해 주었다.

“네놈들의 안위 따위가 나랑 어떠한 상관이라도 있나?”

“그게 무슨…….”

“방어 수단이 없다고? 그건 네놈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어.”

나는 입꼬리를 올려 한껏 비웃어 준 뒤, 덧붙였다.

“네놈들을 살려 주는 것만이, 내 마지막 배려라는 것을 명심해라.”

“……계약을 하겠소. 아니, 뭐라도 할 테니 부디 우리 일족을 구해 주시오.”

“우리를 따라오겠다는 말이냐?”

“그렇소.”

“대, 대장!”

“호오.”

드워프 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계약을 요청해 왔다.

결계가 깨어지고 남은 수단마저 없는 지금. 우리가 떠난다면, 남은 미래는 비극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체되면 남아 있는 기회조차 없을 것을 알았기에, 이제는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론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협박이 수틀리니, 인제 와서 도움을 구걸하겠다고? 참 편한 처세술이군.”

“……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 아예 썩어 있던 것은 아니라는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계약의 조건을 억지로 수정하려 했던 것도, 불확실한 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이었다.

“좋아. 그렇게 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하지만 지금은 네놈들의 처지를 깨닫는 것이 우선이겠군.”

놈의 얼굴 앞에서 멈춘 내 손이, 천천히 펴졌다.

엄지와 검지까지의 세 손가락이었다.

“나는 네놈들을 노예로 부릴 생각이 없다. 충분한 대가와 공정한 거래는, 내가 생각하는 지배자의 덕목이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돼서야 이전의 조건으로 계약해 줄 수는 없겠지.”

“그, 그건…….”

“네놈들이 캐낸 광석의 3%. 내가 제안할 수 있는 최종 조건이다.”

드워프들의 대장이 억지로 숨을 들이쉬었다.

처음에 제안했던 5%보다도 현저히 낮은 양이다.

그것도 광산 전체의 3%가 아닌, 일족이 캐낸 광석의 3%.

그럼에도 그 입에서 나올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지막 자비를 내려 주어서 감사하오.”

놈이 쫓기기라도 하듯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녀석이 짐작했던 대로, 이건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능히 생각이 있었다면 잡아보기라도 해야 할 썩은 동아줄.

나는 말없이 드워프 대장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태양기사단을 협곡으로 들여라. 협상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오호라, 이 정도 수확이면 국왕 전하가 뒤집히시겠네요.”

조지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마법구를 꺼내 들었다.

“뭐라고 전하면 됩니까? 뭐든 좋으니 일단 털어 가라고요?”

“……추가적인 교육이 필요하겠군. 왕자의 보좌관으로 일해야 하는 주제에, 아직까지도 저급한 단어를 사용한다니.”

하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화려하게 성을 장식하던 무구도, 그리고 저기에 굳어 있는 모든 드워프들도.

모든 것이, 계약을 이행할 우리의 몫이었기에.

그것이 감히 나를 거스르려 한 오만의 대가였다.

* * *

“이, 이렇게 많은 양이라니……!”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았던 물건들은, 태양기사단이 가지고 왔던 빈 마차 앞에 줄 세우더라도 한참이나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심지어 품질이 좋지 않은 녀석들은 처음부터 목록에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기사가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 검보다 좋은데도 그냥 버려지는 처지가 된다니…….”

“그만큼 마차에 실린 것들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겠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바꿔서 들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라면 개인 짐 가방에 챙겨서 넣어 두거나.

모래사장에서 모래 한 줌을 퍼다 나르듯, 그 정도는 약간의 티조차 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1왕자는 물품을 수거하게 될 기사들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주의사항을 남겼다.

-한 사람이라도 잇속을 챙겼다가는, 재미있는 꼴을 보진 못할 것이다.

1왕자에게 거스르지 말라는 말은 선발대에게 신신당부하듯 들어왔으니, 굳이 나서서 위험을 초래할 간 큰 기사는 없었다.

애초에 최전방에서의 전투를 자진해서 담당하는 그들에게는, 욕심이 없기도 했고.

물건을 조심스레 정렬하던 기사들의 시선이 다른 마차로 향했다.

“……진짜 드워프네.”

“동화책에서만 나오던 녀석들이잖아.”

“저렇게 작은 놈들이 이런 최고급 장비를 만들 수 있다고?”

초췌해진 얼굴로 마차 속에 몸을 얹힌 오십 명의 드워프들.

1왕자의 말에 따르면, 녀석들이 야만족의 땅에 숨어 있던 드워프들의 전부인 모양이었다.

“일족이라길래 천 명쯤 되는 줄 알았네.”

“그래도 드워프니까…….”

“하긴, 그런데 쟤네는 왜 죽상이래? 부단장님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으시고.”

“……글쎄? 정든 땅을 떠나는 게 아쉬운가? 아니면 놈들에게는 지금이 잘 시간일지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인간이랑 다르잖아.”

어쨌든.

이번 원정을 통해 사라졌다고 생각한 드워프와 최상품의 무구들을 전리품으로 획득한 1왕자는, 여느 전쟁의 승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이득을 챙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는 가뜩이나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 나가던 1왕자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기사들의 표정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1왕자 전하께 줄을 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서라. 우리 같은 최전방의 기사가 무슨 정치에 관여하겠다고.”

“그게 아니라 잘 보여서 처우라도 개선 받자는 거지. 막말로, 우리가 받는 불합리함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잖아.”

“……그런가?”

가정일 뿐이었지만 충분히 행복한 상상이었다.

왕실 수호 기사단과는 다르게, 최전방에서 싸우는데도 불구하고 취급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혹시 모르지, 전하께서 직접 우리의 검술을 손봐 주실 수도 있고.”

기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기를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 원정에서 안전하게 귀환하기만 하면 돼. 이미 공은 따 놓은 당상이야.”

이곳에 오기까지 벌어졌던 수많은 전투들.

선발대에게도, 후발대에게도 고된 시간이었지만, 결국 그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공을 손에 집어넣었다.

돌아가는 길에 마주하게 될 야만족 전사들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그들의 수다는 모든 정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저쪽은 달아오른 모양입니다.”

나는 조지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놓고 가는 물건들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예정대로 모조리 묻어 두고 간다. 단검 한 자루도 남기지 않고.”

“수백 년 역사의 드워프 보물창고네요.”

“어차피 왕궁 창고 구석에 처박히는 운명밖에는 되지 못하는 녀석들이겠지.”

이번에 챙겨 가는 화려하고 좋은 것들은, 이번 원정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

버리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세상일이란 것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니까.’

야만족이 연방제국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장치였다면, 이 역시도 언젠가는 그렇게 작용할 수 있었다.

드워프들이 수백 년 동안 만들어왔던 무구들이 잠든 장소.

위치를 적당히 흘리는 것만으로도 미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다한다고 할 수 있겠지.

조지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미 알고 계셨죠?”

“…….”

“드워프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그리고 욕심을 부려 협상을 망칠 거라는 것도. 안 그랬으면 미스릴의 정보를 감추지도 않았을 거고요.”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아무렴요.”

나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거기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후회와 절망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드워프들의 대장이었다.

녀석은 내가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몸을 떨더니 다 죽어 가는 얼굴을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이제는 명백해진 상하 관계에, 나는 싱긋 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라.”

“……알겠소.”

예의가 확실하게 머리에 박혔는지, 말은 곧장 듣는다.

녀석이 비척비척 일어나는 것을 구경하는 동안, 조지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알고 있었냐고?’

물론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정확히는 야만족의 땅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이 땅을 찾아온 야만족들에게도, 놈들을 사로잡은 연방제국에게도 이런 식으로 행동했었으니까.

“꺼내.”

“예.”

내 명령에, 조지가 한숨을 쉬며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계약서였다.

드워프 대장의 얼굴이, 다가올 운명을 체념한 듯 어둡게 물들었다.

“허울뿐인 계약서는 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뭐, 효용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아.”

찌익-

작성되기 직전이었던 계약서의 단편이, 허공으로 흩날리며 드워프 대장의 눈을 어지럽혔다.

녀석이 더욱 불안에 찬 눈빛으로 물어 왔다.

“계, 계약의 조건을 다시 수정할 생각이오? 우리를 노예로 부리고자?”

“아니.”

노예로 부리지 않겠다.

허울뿐인 말뿐이야 어길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 할 ‘의식’은, 그런 내 생각을 투명하게 드러내 줄 것이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날을 손바닥에 가져다 댄 뒤, 바이올린 활을 휘어잡듯 가볍게 검을 움직였다.

잠시 섬뜩한 감각이 손바닥에 퍼지고, 곧 방울진 피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 계약서를 믿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저건 아무런 강제력이 없거든.”

“…….”

“저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여 줄 관례에 불과해.”

그래. 내가 원한 것은 한 목적을 위해 함께 갈 동료지, 뒤통수를 치려는 협잡꾼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뻗어 녀석의 이마를 움켜쥐었다.

“모든 책임을 네놈이 지겠다고 했던가? 요정의 계약이라 하면 알겠지?”

“그게 대체 무슨…….”

뒤늦게 대화의 내용을 곱씹던 드워프 대장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인간이 그걸 어떻게!”

0